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저, 저… 모, 몸이…….”
아나이스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침 검술 수업 중이었는데 말콤이 얼른 다가와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프니? 다쳤니?”
“그, 그게 아니라요. 몸에서 기운이 막 넘쳐요!”
“하! 넌 정말 천생 기사가 될 아이였구나. 힘든 검술 수업 중인데 기운이 넘친다니…….”
“어… 몸이 한 단계 상승한 것만 같은 기분인데요?”
“벽을 넘어선 거다.”
“네?”
“이전에도 이런 경험 해 보지 않았었니?”
말콤은 잘 안다는 듯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말콤은 피지컬이 D에 불과한데 어떻게 아는 건지 궁금했다.
“했었어요. 다만 지금처럼 크진 않았는데…….”
“혹시 몇 번이나 경험했는지 기억하니?”
“두 번이요. 오늘까지 더하면 모두 세 번이요.”
“대단하구나. 난 평생 두 번밖에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시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면 주저앉는다고?”
이건 내가 물었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아! 소드마스터 단계까지 올라가면 육체가 재구성되어 젊음이 다시 찾아오며, 노화가 오더라도 힘을 유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더라도 늙어서 수명이 다하는 순간에는 모든 힘이 사라지겠죠? 제가 그 단계까지 오르지 몰라 정확한 건 모르겠습니다.”
소드마스터.
판타지만 아니라 게임 속에도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소드마스터라 할 이가 셋이나 있다.
하나는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드레이크 칼린 공작.
다음은 서쪽에 있는 아니스터 왕국의 베일리 클리게인 백작.
마지막은 남쪽에 있는 하르가르엔 왕국의 파트로 대너스 후작.
셋 다 내가 선택해서 플레이해 봤던 캐릭터였다.
제일 쉬웠던 건 드레이크 칼린.
제국을 배경으로 가지고 시작하기에 아무래도 난이도가 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때 드레이크의 가장 큰 정적은 샤이아 블랙미어.
베일리나 파트로를 선택하면 제국에 전쟁을 걸어 왕국을 제국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었다.
‘기회가 되면 셋 다 만나 보고 싶네.’
그런데 그 기회라는 게 빨리 찾아왔다.
셋 모두가 아니라 우선은 드레이크 칼린부터였지만.
털썩.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나이스가 내 앞으로 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나이스 양, 갑자기 왜…….”
“모두 영주님 덕분입니다.”
순간 찔끔했다.
내가 지휘관 성장 주문서를 써 줬으니까.
‘눈치챘나?’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영주님이 제가 검술 훈련을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아버지를 기사로 다시 불러 주셨으며, 함께 훈련도 해 주셨죠.”
“흠흠, 그렇다 해도 이렇게 성장한 건 모두 아나이스 양의 노력 덕분입니다.”
“아니요! 노력할 환경조차 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영주님 덕분이 맞습니다.”
그래, 맞는 얘기이긴 하지.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자에게 기회를 주는 게 이 세계에서 흔한 일은 아니니까.
특히나 아나이스는 결혼을 위해 부른 여인이었다.
진짜 결혼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약혼 예정자 비슷한 위치였는데 그런 여인에게 검술 훈련을 같이하자고 하는 남자가 나 외에 있을까?
“…영주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에엥?
이건 또 무슨 고백인가?
레아 이후로 두 번째로 받는 프러포즈였다.
특히나 옆에는 말콤이 있었다.
미래의 장인어른 앞에서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받다니.
21세기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나이스 양, 결혼이 아니라도 아버님과 당신의 생계는 책임을 질 겁니다.”
“생계 때문이 아닙니다. 전… 영주님이 좋아요.”
발그레.
아나이스의 양쪽 볼이 새빨갛게 변했다.
좋아한다고 했지만 의미는 사랑한다였다.
“저, 저도 아나이스 양을 좋아합니다.”
다소 무뚝뚝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미모와 몸매는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그런데 결혼은…….”
레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 주었다.
결혼식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이해해요. 준비가 되면 그때 할게요.”
“…….”
아나이스는 살짝 흥분한 목소리였는데, 난 속으로 미안해졌다.
왜냐하면 아나이스는 본처가 아니라 후처로 맞이할 거니까.
‘하아, 이 세계에 와서 여자 복은 터진다, 터져.’
***
두어 달이 지나 초석 밭 조성이 끝나자 기사 수행을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
“레아 양, 마법 수련은 얼마나 했어요?”
“딱 하나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어떤 거죠?”
“아이스 볼트요.”
아이스 볼트면 얼음 덩어리를 쏘아 내는 마법이었다.
불 마법으로 치면 파이어볼 같은 것.
“이번 기사 수행에서 몬스터를 만나면 써 보도록 해요.”
“네. 저도 이제 한 사람 몫을 할게요.”
슬쩍 옆에 있는 이자벨을 쳐다보았다.
멀뚱멀뚱.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백치미 표정이었다.
‘그래. 다급해지면 나서겠지.’
이번에도 몽크와 페온이 함께하는데 추가로 마고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녀도 경험을 쌓고 성장할 필요가 있으니까.
사실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마고는 달랐다.
쭈뼛쭈뼛.
“저어… 영지에 남으면 안 될까요?”
“안 돼.”
“흑흑, 왜요?”
“그대는 내 밑에서 일하겠다고 한 마법사다. 그러니 내가 가는 곳에 함께 가야지.”
“하지만 영주님을 따라가겠다는 이들이 많잖아요. 저 대신에 그들을 데리고 가시면 되잖아요.”
“아니. 그들은 내가 남겨야겠다고 판단했어.”
“으으, 따라가면 안전하지는… 않겠죠?”
“당연하지.”
내가 왜 마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나.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끄응… 네.”
울상이 되었지만 마고는 내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정 싫다고 거부하면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런 게 이 세계에서 영주와 지휘관의 관계였다.
“영주님,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출발 전에 몽크가 질문했다.
“남쪽이다. 제국의 최남단까지 가 볼 생각이다.”
전에 북쪽으로 갔으니까 이번에는 남쪽?
그런 이유도 있지만 찾을 이가 있었다.
이드로 브루실로프.
특성은 협상.
영지에서 한 달은 남쪽으로 가야 하는 제국 최남단에 브루실로프 가문이 있다.
살펴서 알아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한미한 가문이었다.
이드로는 영주의 다섯째 아들이며, 곧 성인이 되어 영지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협상 특성을 가진 이드로로서도 영지를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영지를 물려받는 첫째 아들 외에 나머지 아들들이 성인이 되면 영지를 떠나야 하는 건 대대로 이어져 오는 관습이니까.
그리고 관습은 지켜야 하는 거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협상 능력을 가진 이드로에게 무역을 담당시킬 수도 있겠지만, 당장 그에게 원하는 건 외교를 담당하는 거다.’
쉽게 말해 외무부 장관 같은 역할을 맡길 거다.
최우선적으로 맡길 일은 주변 영주들과의 협상이었다.
당장은 어떤 연락도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었다.
‘자작 작위도 받아야 하지만, 주변 영주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귀족 사회에 진입을 해야겠지.’
주변 영주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후에 말이다.
“꽤 먼 곳이고, 늦어도 내년 봄 안으로는 돌아와야 한다.”
현재가 봄이니까 최대 1년을 잡고 있다는 말이었다.
“으음… 1년. 제국의 최남단까지 갔다 오는 거라면 부족하진 않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세 숙녀분은 좀 힘들지 않을까요?”
“북부의 추운 겨울도 견뎌 냈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지병도 20명이나 데리고 가니까 시비 걸 놈도 줄어들 테지.”
마고까지 하면 여자가 넷.
아무래도 남자는 나, 몽크, 페온뿐이라 영지병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기간은 1년이래도 거리가 길어 전부 말을 타야 했기에 20명은 승마 실력을 보고 뽑았다.
인원이 확 늘어난 만큼 경비도 크게 솟구쳤지만, 가는 길에 던전도 몇 개는 공략할 거라 돈은 부족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떠나기 전에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을 불러서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는 히잡같이 생긴 걸 뒤집어쓰라고 했다.
또 몸은 긴 천을 감아 몸매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시했다.
셋은 너무 답답하다며 불평했다. 하지만 난 강경했다.
“북쪽은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그냥 다녀도 되었지만, 이제부터 갈 곳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요?”
“세 사람의 미모는 문제를 일으킬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가려야 합니다.”
남자라는 종족은 청각, 후각, 미각이 아니라 시각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자연스레 눈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이건 본능의 영역이었다.
내 주장에 따라 세 여인은 얼굴과 몸을 철저하게 가렸다.
***
길고 긴 여정이었다.
봄에 출발해서 가을에 도착한 제국의 최남단.
몇 달의 여정 속에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올라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기에 세 여인에게 계속 가리고 다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얼굴을 드러내면서부터 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영지병까지 있음에도 시비를 걸어오는 자들이 있던 것.
상대가 많이 건방지고, 신분이 하찮게 보이면 내가 직접 나서서 치명적인 일격을 사용해 무릎을 꿇렸다.
상대가 귀족인 것 같으면 말로 타일러 봤다. 하지만 말로 끝날 것 같으면 시비도 걸지 않았겠지.
어쩔 수 없이 결투를 했고, 당연히 내가 이겼다.
버서커, 빅자이언트, 치명적인 일격까지 쓴다면 아마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 외엔 날 이길 자가 없지 않을까?
시비를 건 자들의 목숨은 최대한 취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고 나면 어차피 나에게 원한은 갖겠지만 아무리 망나니라 해도 가족이 있을 테고, 만일 상대의 신분이 귀족이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끔이지만 나에게 술을 잔뜩 먹인 후에 세 여인에게 다가가 추행을 하거나, 성폭행을 하려는 놈들도 있었다.
난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상점에서 힐링 포션을 사서 이걸로 숙취를 해결하기에 취하지도 않지만,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이자벨이 있었다.
때론 독을 넣은 술을 권해 오기도 하기에 상대의 느낌이 안 좋을 땐 큐어 포션을 마셔서 예방했다.
아무튼 세 여인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게 적발되면 바로 싸움이었다.
만일 이 일이 벌어진 장소가 상대의 본거지 안이라면 우리에게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빅자이언트, 버서커의 효과는 단 1분 안에 실내에 있는 모두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싸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싸우게 되면 끝을 봐야 했다.
본거지 안에 있는 자는 물론이고, 밖에 있는 자들까지 상대편 모두를 깡그리 죽였다.
상대가 지역의 영주고, 일이 벌어진 장소가 영주성이라 해도 말이다.
일이 끝난 후엔 빠르게 지역을 탈출했다.
추적해 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다 죽였으니까.
소문이 퍼져 나갈 즈음엔 이미 멀리 간 상태였다.
한편 어찌어찌 죽은 자 없이 잘 이끌고 열대라고 할 곳까지 내려오니 확실히 기온이 견디기 힘들 정도까지 올라갔다.
이때 큰 도움이 된 건 레아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아이스 볼트 마법을 써서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 냈는데, 이게 더위를 식혀 주는 데 아주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