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마침 겨울이라 농사도 없이 쉬고 있던 영지민들이 영주의 결혼식을 보겠다고 구경을 오는 바람에 성은 더없이 북적거렸다.
원래도 예뻤지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세 여인의 자체 발광은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영주님은 복이 터졌지. 세상에 저런 미녀를 셋이나 얻으시다니.”
“아비도 모르고 크다가 반다이크 영주님이 죽기 전에 영지로 왔다잖아. 진짜 운은 타고났어.”
“그렇지. 운은 타고났지. 그런데 전쟁도 두 번이나 이기셨잖아. 그건 운이 아니라 실력인데?”
“다들 큰 소리로 떠들지 마. 영주님 흉보다가 걸리면 어찌 되는지 알지?”
“에이, 설마 이 좋은 날에 경을 칠까?”
“조심들 하라고. 영주님 아니었으면 하루 세 끼가 말이나 되는 소리야?”
“맞아, 맞아.”
하루 세 끼라는 부분에선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민들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도 하루 세 끼보다 위대한 건 없었다.
결혼식은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식이 끝난 후에는 내가 말을 타고서 세 여인이 탄 마차와 함께 성 밖을 나가 20여 분 정도 돌다가 들어왔다.
미래로 치면 퍼레이드 같은 그런 거였다.
에이, 이게 뭐야~!
이러겠지만 여긴 21세기 지구가 아니다.
신혼여행 같은 개념도 없고, 성 밖을 돈 건 성 주위로 허름한 집을 짓고 사는 수많은 영지민들에게 영주의 결혼을 알리는 의례적인 절차와 같았다.
하여튼 식도, 절차도 끝나고 첫날밤이 시작되었다.
***
세 여인과 돌아가며 보낸 세 번의 첫날밤.
잠자리에서 셋의 성향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레아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래, 신혼이란 이런 거지.
최대한 다정하게 그녀를 잘 달래 가며 보냈다.
반면에 아나이스는 마치 운동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달달한 맛은 좀…….
게임이랑 현실은 정말 달랐다. 기가 빨리는 것 같기도 했고.
마지막의 이자벨은…
뜨거웠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나이스가 경기를 뛰는 기분이라면 이자벨은 생사를 걸고 하는 전투 같았다.
기가 빨리다 못해 말라 죽을 것 같았다.
이자벨이랑만 지내야 한다면 몇 년도 못 가서 수명이 다할 것 같은 느낌?
이자벨하고만 결혼생활을 한다면 정말 미라가 될 거다.
나에게 레아와 아나이스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한테 반해서 이러는 것 같진 않고 상속 때문이겠지.’
반드시 아이를 가지겠다는 일념으로 덤비는 이자벨은 너무 적극적이었다.
아직도 그녀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던 나로서는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하여튼 3일을 보냈는데,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꽤 힘들었다.
‘하아, 도저히…….’
중간중간 눈치채지 못하게 게임 상점에서 상급 힐링 포션을 몇 개나 사 먹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이자벨을 만족시켰고, 셋 다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게오르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뜨겁게 보내자.’
그래도 레아가 5일이라면 아나이스는 2일, 이자벨은 1일.
이 정도 배분은 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
영지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몇 달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적어도 봄이면 연락이 올 줄로 알았던 게오르가 감감무소식이었다.
인편으로 편지 하나라도 보내 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사람을 써서 수도에서의 상황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급한 건 내가 아닌데, 내가 왜 조급하게 이래야 해?’
솔직히 난 아직도 영지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반이 넘는다.
사람은 안주하고 싶은 게 정상이니까.
고블린 던전에선 꾸준히 고블린이 나와 재정에 톡톡히 도움을 주고 있었고, 영지도 안정되어 흑자 폭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황제에게 받은 10만 골드도 거의 그대로 보관 중이었다.
봄이 될 때까진 무척이나 조급했는데, 여름이 가까워 오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래, 이대로 쭉 가자. 떠나더라도 내년에 갔으면 좋겠네.’
그렇다고 계속 놀고 있을 수는 없기에 이드로를 불러서 일을 맡겼다.
“현재 우리 영지에는 큰 문제가 있다.”
“뭔가요?”
“내가 게오르 황자님을 따라 체르니아 왕국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이 영지를 다른 이에게 맡기려 한다.”
이어서 실버훈에게 남긴다는 것과 그가 레아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말해 주었다.
“그런데 실버훈 남작께서 영지를 맡는다는 걸 주위의 영주들이 인정을 해 주어야 한다.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영주가 되었을 때…….”
모카비가 시비를 건 것과 모어슨과의 전투까지 두 번의 영지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있지도 않은 10만 골드라는 빚을 내세우며 전쟁을 걸 정도다. 이걸 생각하면 내가 없을 때 어떤 시비든 만들어서 전쟁을 걸어올 수도 있다.”
끄덕끄덕.
“그렇겠군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오비엥 백작님과 모어슨 자작이다. 솔직히 두 사람 외에 다른 영주들은 그다지 걱정할 게 없다.”
왜냐하면 병력도 그리 대수로울 게 없고, 영지전을 걸 정도로 호전적이지도 않아서다.
“오비엥 백작님의 경우에는 게오르 황자님과 함께 가서 미리 이야기를 해 둔 게 있다. 다만 내 후임이 누군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약속만 받은 거였다. 이번에는 약속한 걸 확인받을 차례다.”
“황자님도 함께 계셨다면 다른 말을 하지는 않겠군요.”
“그렇지. 영지전을 걸어오진 않을 거다. 그러나 백작님은 권위적이기에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른다.”
권위에 도전받은 거라 여겨서 상상도 못할 방해를 해 올 수도 있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선물을 드리며 허락을 구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어슨 자작의 경우는 5년이란 시간으로 약속을 했는데 가능하면 그 기간을 10년… 아니, 20년 이상으로 늘리고 싶다.”
“으음, 제가 두 가지를 해결하면 되겠군요.”
이드로는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짚어 냈다.
“그렇다. 이걸로 그대의 실력을 검증하겠다.”
“흠흠, 그런데 영주님, 제가 일을 잘 해내면…….”
이드로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실력 검증이라고 했는데 그 이상을 바라나?
“흐흐, 대가를 원하나?”
“아… 물론 저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짐승들도 주인의 말을 잘 들으면 먹을 것을 얻죠.”
처억.
100골드가 담긴 가죽 주머니를 내놓았다.
“이건 추진비다. 일을 성공하면 그땐 보수를 또 주마.”
“하하, 감사합니다.”
이드로는 호위할 병사 10명과 함께 아인스탑으로 떠났다.
오비엥을 만난 후에는 모어슨까지 만나고 돌아올 거다.
이드로 다음에는 피스토도 불러서 대화를 나눴다.
“영주님의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결에서 이기셨겠죠.”
“흠흠, 운이 좋았다.”
이거까지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드러난 사실이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체르니아 왕국에 가는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흐흐, 벌써부터 전략을 세우려고 그러나?”
“…….”
대답이 없는데 아니라는 말도 없었다.
“내가 그대에게 뭘 바라는지 짐작이 가나?”
“대충은요. 전 다른 건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군을 운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저에게 전권을 주십시오.”
“알겠다.”
어차피 주려고 했던 거였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한계가 있다.
고인물이라 하더라도 나비 효과로 변한 것들도 꽤 되고.
내가 나서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서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피스토에게 맡기는 게 승리로 가는 길이라 믿었다.
제갈량을 뽑아 놓고 그에게 전권을 주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다만 아주 가끔 상식을 벗어난 조언을 할 때도 있을 거다. 그럴 때는 내 뜻을 따라 주길 바란다.”
“상식을 벗어난… 조언… 그런데 따라야 한다라…….”
“납득이 안 되나?”
“네.”
“으음, 아라에 대해 알고 있나?”
“아라라면… 노예 아이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아라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
“오호, 정말이요?”
“아라에 대한 신탁을 받았다.”
실버훈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으음, 그렇다면 따라야겠죠. 하지만 그런 아이가 있다면 전 필요가 없겠네요?”
“아니지. 미래가 항상 보인다는 법도 없잖나. 그리고 아라가 본 미래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 건지에 대한 계획을 세울 이도 있어야 하고.”
“으음, 알겠습니다.”
피스토가 긍정하며 물러났다.
마지막으론 아라 차례였는데, 내가 부르는 게 아니라 그녀가 찾아왔다.
“영주님, 미래를 봤습니다.”
“오호, 정말?”
“제국 땅을 벗어나 체르니아 왕국으로 가는 길에 큰 공격을 받는 걸 봤어요.”
“그, 그래?”
갑자기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누가 공격한 걸까? 황태자가? 아니면 황후가?’
방해는 없을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가?
“조용한 곳에서 따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알았다. 가자.”
아라만 데리고 집무실로 갔다.
문까지 닫고 오로지 둘만 되었을 때 다시 질문하자 아라가 입을 열었다.
“2황자님의 지시로 아롱드 후작가의 기사단이 움직여요. 그들이 용병들과 함께 저희를 공격해요.”
“왜?”
“이유까진 몰라요. 제가 보는 건 그냥 미래에 벌어진 사건이니까요.”
“아! 그렇지.”
내가 질문하고도 멍청한 물음이란 걸 깨달았다.
미래를 볼 뿐이지 사건이 벌어진 배경이나 이유 따위까지 아라가 알 리가 없었다.
“후우, 그러면 황제께선 어떻게 나오실까? 2황자가 벌인 일을 두고만 보실 리 없을 텐데.”
“글쎄요. 그 이후의 미래까지는 보지 못했어요.”
“혹시나 다른 건 본 거 없었어?”
“네.”
“진짜지?”
질문한 이유는 전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속내는 내 자신에 대한 거였다.
내가 원래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건 아라였다.
내 진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이 세계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아라라는 소리.
혹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숨긴다고 해도 나로선 밝혀낼 재주가 없었다. 아라를 고문할 수도 없고 말이다. 설사 고문한다고 해도 고문 결과로 나온 말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고.
“진짜로 본 거 없어요.”
“아까 네가 본 장면 좀 더 자세히 말해 줄래? 그리고 네가 2황자님이나 아롱드 후작가의 기사단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지?”
“대화를 들었어요.”
“아! 대화…….”
미래를 본다는 건 침묵의 영상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소리도 다 듣는다는 거.
궁금한 건 다 풀렸다.
***
아라의 얘기로 상황이 심각해졌기에 바람 좀 쐬면서 생각을 하려고 성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자벨이 다가왔다.
“할 말이 있어요.”
“뭔데요?”
“…아기가.”
이자벨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헉!
이어질 말이 뭔지 뻔히 예상이 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에서 그렇게 전투적으로 나를 괴롭히더니.’
결국 이자벨이 레아나 아나이스보다 먼저 아기를 갖게 되었다.
인간 승리라고나 할까?
‘아들일까? 딸일까?’
이것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나.
아기가 다 클 때까지 내가 살아나 있을까?
만일 엔딩을 보고 나 혼자 현실로 돌아가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