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69
제69화
“으음, 평민의 자식을 받아들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런 것도 아니네. 그리고 그걸 근거로 범상치 않은 가문일 거란 추측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끄덕끄덕.
“인정합니다. 제 추측일 뿐이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지.
“하지만 신전과의 관계도 고려를 했습니다.”
“신전과의 관계?”
“그렇습니다. 저는 게오르 황자님을 모시고 체르니아 왕국으로 가서 게오르 황자님을 왕으로 옹립해야 합니다.”
“그래. 그런데?”
“황제의 아들이란 것과 어머니 가문에 대한 배경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신전의 힘도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건 게오르를 따르는 플레이를 했을 때 게임 속에서도 했던 거였다.
기반이 부족한 게오르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신전에 도움을 청하고 신전에서 지지 선언을 받는 건 왕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신을 모시는 수녀원에 있었던 이자벨이라면 신전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크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그대는 나와 레이에겐 구원자나 다름이 없으니…….”
그렇지!
내가 당신과 딸을 구한 걸 생각하라고.
“그대에겐 갚아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네. 그런데 내가 이런 소심한 생각을 하다니. 후손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 서운하게 했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레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많은 걸 물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실버훈 다음에는 말콤의 순서였다.
사정 이야기를 다 했고, 이자벨이 신전과의 관계에서 해 주어야 할 역할까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실버훈과 달리 말콤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아나이스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아이도 내 아들이네.”
“그렇죠.”
“그러니 난 최선을 다해 좋은 걸 줄 거야. 체르니아 왕국에 가서 얻을 게 아무려면 이곳 영지보다 못할까?”
“몇 배는 되겠죠. 왕을 따르는 건데요.”
“그렇지. 그러니 이 영지에 버금갈 정도의 것을 아나이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첫아들에게 줄 수 있도록 하겠네.”
“네.”
“…내가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나? 아니면 어길 것 같나?”
“아닙니다. 믿습니다.”
말콤은 계속 선선히 대답했는데 겉으로는 표정 변화가 없으니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말콤, 서운한 게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
“제가 어찌 감히 서운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쓰윽.
손을 내밀어 말콤의 손을 잡았다.
늙어서 쭈글거리지만 평생 기사로 살아온 그의 손은 무척이나 거칠고 단단했다.
“그대의 충성을 알고 있다. 그대가 살아서 후손이 잘되는 걸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늘에 있는 그대가 결코 서운해하지 않도록 아나이스와 아나이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잘하겠다고 약속한다.”
뚝뚝. 뚝뚝.
표정이 없는 말콤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건 레아와 아나이스였다.
두 사람은 따로 불러서 실버훈과 말콤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다.
“레아 양, 서운해요?”
“아니요. 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가장 큰 걸 물려주실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됐어요.”
“그래도 혹시나 아버님에게 이 영지를 주려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을 수도 있는데 그 기대가 사라졌잖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빚을 갚아 주신 것만으로도 넘칠 만큼 받았는데 이 영지까지는 욕심이죠.”
“그래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레아 다음엔 아나이스였다.
“제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거라 챙기고 싶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영주님이 알아서 잘해 주시리라 믿어요.”
“고마워요.”
민감한 문제였는데 그래도 잘 해결되어 기뻤다.
‘끄응, 앞으로 아이들이 몇이나 태어날까? 아이 하나하나를 다 챙기려면 내가 왕이 되어도 부족하겠어.’
아직 아기도 없는데 벌써부터 피곤하긴 했다.
***
“황자님을 따라 체르니아 왕국으로 가겠습니다.”
게오르는 영지 구경을 끝내고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
난 미뤄 둔 답을 게오르에게 해 주었다.
“결심을 해 주어서 고맙다. 이젠 내 차례구나.”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수도에 가서 황제를 만나 체르니아 왕국의 왕이 되는 걸 허락받는다는 소리다.
“허락하실 겁니다.”
이 허락이라는 건 황제 혼자만의 허락일 리 없다.
황후의 허락.
황태자의 허락.
왜냐하면 황제는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황후에게도 물어보고 신하들에게도 물어볼 테니까.
그리고 신하들은 황태자파와 2황자파로 나뉘어 있기에 결국은 황후의 허락, 황태자의 허락이란 얘기다.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대는 나의 유일한 조력자이자 조언자이고, 내 편이니까.”
“흠흠, 그렇죠.”
부담 100배네.
“수도로 가서 허락을 받은 후에 연락하겠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알고 있습니다.”
황제가 OK한다고 바로 체르니아 왕국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제국의 뜻을 체르니아 왕국에 전달해야 하고, 저들이 이걸 받아들여 게오르를 왕국으로 모셔 가야 한다.
체르니아 왕국에서 거절하면 전쟁도 해야 하고.
“우선 체르니아 왕국에서 날 다음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소식을 전하겠다. 그때는 그대가 수도로 올라오라.”
“네.”
“흠흠, 그런데 체르니아 왕국으로 갈 때 내가 준비할 건 뭐가 있을까?”
“병사죠. 폐하께 병사를 달라고 하십시오.”
제국의 황자라는 신분이 있으니 누구도 무시하진 못할 거다.
‘그래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잖아? 많은 병사가 곧 권세지.’
“병사… 주실까?”
게오르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받아 내야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으니까요. 제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구요. 지금이 아니면 폐하께 언제 이런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피식.
“돌아올 가능성은 0퍼센트지. 오라고 해도 안 올 거고.”
어머니의 죽음에도 찍소리 못하고 그동안 숨죽인 채 살아왔던 게오르 입장에선 다시 돌아올 이유가 1도 없었다.
“병사는 얼마나 받아 내야 할까?”
“많을수록 좋습니다.”
“흐흐,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작정 많이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처음엔 만 명을 말하십시오.”
“하! 만 명이나? 절대 주실 리 없다.”
게오르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지전에서 만 명의 병사를 동원하는 영주들이 있다.
그런데 영주도 아닌 황자인데 만 명이 많다고?
당연히 많다.
왜냐하면 영지전에 나오는 영지병들 만 명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
제국의 황제가 하사하는 병사들이다. 그런데 허접하게 불과 얼마 전까지 농사나 짓던 농부들을 모아서 목창 하나 쥐여 주고 병사라 하겠는가?
영지병은 딱 이런 수준이다.
하지만 황제의 병사는 완전 무장을 갖춘 정예병이다.
직업 자체가 병사인 자들이며, 밥 먹고 하는 일이 훈련이고 전투인 자들이다.
매달 월급을 받으며, 대우도 최고다.
기사단이 따로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병사는 병사다.
기사단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현대로 친다면 기사단은 공군, 병사는 육군 같은 것.
아무리 공군력이 뛰어나도 점령은 육군이 하는 거다.
결국은 병사가 나서서 정리를 해야 전투가 끝이 난다는 얘기.
그런데 황제라 해도 보유한 정예병은 3만 명가량.
이들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수만 골드가 들어간다.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막대한 재정이 있어야 하기에 병사의 수는 함부로 늘릴 수가 없다.
이렇게 막대한 투자를 하며 키운 병사들인데 3분의 1인 만 명이나 달라고?
황제가 기겁할 일이고, 황태자나 2황자는 분노로 치를 떨 게 분명했다.
“압니다. 절대 안 주시겠죠. 하지만 처음부터 적게 부르면 받을 수 있을 것도 못 받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대는 얼마를 받아 내려 하는가?”
받는 건 제가 아니라 당신이죠.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최하 3천 명, 최고 5천 명입니다.”
“후우, 5천 명… 힘들 거다.”
“미리부터 힘들 거라며 포기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당당하게 만 명을 말했다가 안 된다 하면 바로 5천 명?”
“아니죠. 천 명씩 줄여 나가야죠.”
“끄응, 그러면 분수도 모르는 놈이라 여기며 혼을 내실 텐데?”
끄덕끄덕.
“그러시겠죠.”
“하하, 그대는 혼나는 게 자신이 아니라고 아주 편하구나?”
“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혼이 나더라도 요구해야 하며, 병사를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혼을 내며 다 그만두라고 하시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걸 그대가 어떻게 알지?”
“황자님은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하는 요구인데 이걸 하지 못하게 한다고요?”
절레절레.
“절대로요! 신하들도 막지 않을 겁니다.”
본인은 황제가 아버지 같지 않게 여겨질 수 있어도, 황제도 게오르가 아들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오르가 황제의 피를 받은 건 사실이며, 대륙의 모든 이들이 게오르가 아들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속권이 있다고.’
“셋째라도 아들인데… 아무려면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습니까?”
잠시 말을 끌었는데 ‘죽은 후궁의 아들이래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황후께선 막을 수 있다.”
“아니요. 영악하신 분이기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나서면 폐하께 미움받을 걸 뻔히 알 테니까요. 병사는 다시 모으면 되지만, 가슴 깊이 새겨진 미움은 쉽게 없앨 수 없죠.”
“으음, 정말 그럴까?”
“후계 구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미움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게다가 모두가 황자님을 불쌍하게 보고 있습니다. 황자님은 이게 싫더라도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뭘?”
“불쌍하게 보는 거요.”
왜 불쌍한지는 다 아는 얘기니까 반복하지 않겠다.
“…싫다면?”
“굽힐 줄 모르는 이라면 저도 따를 수 없습니다. 함께하겠다는 말… 취소하겠습니다.”
동네 건달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갔던 한신의 고사를 얘기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내가 굳이 설득까지 해야 해? 그 정도 인물도 아니라면 따라가지 말아야지.’
“후후.”
가볍게 웃는 게오르.
왜 웃을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걱정 마라. 최대한 이용할 테니. 어머니도 내가 그러길 바라실 거다.”
“그렇죠.”
아들이 잘되는 게 최대의 복수니까.
다음 날이 되어 게오르는 수도로 떠났다.
하지만 난 이때부터 영지를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
그동안 미뤄 둔 걸 해야 할 때가 왔다.
바로 결혼식!
영지에 돌아온 이후로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결혼식을 빨리 하고 싶었는지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이 합심하여 한 달여 만에 준비가 다 끝났다.
식은 세 여인과 합동으로 치르고, 잠자리는 3일에 나눠서 번갈아 가지기로 했다.
‘으으, 연속 세 번의 첫날밤이라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이 무슨 복 터진 일인지…….’
그렇게 해가 바뀌기 전 연말에 결혼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