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82
제82화
이 부분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이고, 그렇기에 다들 날 바라보는 시선에 살짝 존경심이 묻어 나왔다.
“드레이크 칼린 공작이 유제프를 지지하지 않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중립을 지키는 건 많이 서운한 일이었다. 그런데 게오르가 이렇게 날 돕고, 스타크 공작까지 왔으니 이제 승리는 우리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아라의 환상에선 버나드가 졌었고, 솔직히 내가 합류했다 하더라도 전력 차는 여전히 유제프가 앞서는 걸 버나드도 알 텐데도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귀족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겠지.’
기세에서부터 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허장성세를 해서라도 군대의 기운을 북돋아야 하는데 고작 이 정도야 뭐.
“으음, 스타크 공작?”
“네.”
“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진채도 세웠고, 여길 보니 이곳을 모형화한 것 같은데 맞나?”
버나드는 내가 만든 전장의 모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맞습니다.”
“이곳이 전장이 될 거라 예상했던 건가?”
“저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적이 올 거라는 건 굳이 예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흐흐, 그렇지. 보고에 따르면 적들은 이곳에 가까이 왔고, 내일이면 이곳에 도착한다고 한다.”
“네.”
“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어떤 걸 준비했는지 들어 볼 수 있겠나?”
버나드의 말에 난 전장을 중심으로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나무를 모두 베어 낸 걸 이야기했다.
“흐음, 나무… 중요하지. 그런데 전략도 세워 둔 게 있나?”
“있습니다.”
“오호, 그래? 뭔지 얘기를 들어 봐도 될까?”
“네. 잠시 일어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난 전장 모형 앞으로 갔다. 그리고 나뭇조각을 이리저리 배치했다.
“여기 보이는 나뭇조각 하나가 병사 만 명을 나타낸다고 가정을 했습니다.”
“색은?”
“빨간색은 적이고, 파란색은 아군입니다.”
“병종 구분은?”
“아직 아군과 적군의 병종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표시는 안 했습니다만, 파악이 되는 대로 구분할 생각이었습니다. 나뭇조각에 말 모양을 붙이면 기병, 화살 모양을 붙이면 궁병, 창 모양을 붙이면 보병, 불꽃 모양을 붙이면 마법사로 정하려 합니다.”
짝짝짝.
“똑똑하군.”
“감사합니다.”
“세워 둔 전략을 듣고 싶다.”
“병종 구분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라 변화가 있기는 하겠지만, 대충 이렇게 세워 봤습니다.”
말을 하면서 피스토와 함께 세웠던 전략을 설명했다.
한참의 설명이 끝난 후.
짝짝짝, 짝짝짝.
버나드가 먼저 박수를 쳤고, 눈치를 보던 귀족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하하, 이대로만 하면 되겠는데? 그렇지 않나?”
“흠흠, 병종에 대한 게 빠졌으니 조금 더 보충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답한 건 이지크 크사이드 백작이었다.
황태자의 삼촌이며 죽은 황후의 큰오빠였고, 현재 크사이드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나이도 환갑을 넘었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신분 때문에 버나드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신하의 모습을 취했다.
“그렇지. 정찰 결과는 나왔나?”
“나왔습니다. 적은…….”
이지크가 설명하는데, 난 이미 아라를 통해 다 알고 있었기에 새로울 건 없었다.
“으음, 그럼 내일 적이 오기 전에 작전을 세워 봅시다.”
회의는 한밤이 다 되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
다음 날이 되어 너른 평야에서 서로 대치한 양쪽.
30만 명 대 30만 명.
총 60만 명의 대병력이 전투를 벌이기에 역사에 남을 회전이 될 게 분명했다.
대부분의 역사는 전장의 병력 숫자를 뻥튀기한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숫자는 역사서에 쓰여 있는 가짜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양측의 거리는 대략 500여 미터였다.
국궁 같은 게 있다면 이 거리에서도 화살을 날릴 수 있겠지만, 이 세계의 활은 유럽의 장궁과 같아서 사거리가 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공작 각하, 괜찮으세요? 저는 아쉽네요.”
피스토가 날 위로하듯 말했다.
“괜찮다.”
“하지만 저희가 세운 전략이 모두 허사가 되어서…….”
피스토는 바뀐 결과를 듣고 분개했다.
“뭐 대단한 전략이라도 짰나 싶었는데, 이게 뭡니까? 다들 멍청이만 모였습니까?”
버나드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니, 늦게까지 회의한 결과는 내가 제시한 전략을 다 뒤집는 거였다.
“할 수 없지.”
“바뀐 전략은 아라가 본 그대로 아닙니까?”
“맞다.”
우리가 패배하는 바로 그 전략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냐면…….
첫째로 버나드의 환호는 거짓이었다.
나를 반기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따르지 않았던 날 여전히 싫어했다.
둘째로 귀족들의 날 향한 경계심이었다.
저들에겐 내전에서 승리하는 것도 목표였지만, 공을 세워 새로운 황제 체제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내가 세운 전략을 뒤집고, 자신들이 세운 전략으로 바꾸려 했다.
셋째는 내가 소국의 공작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병사도 데리고 왔고, 나 자신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체르니아 왕국이 대국으로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가 세운 전략이 계속 바뀌어 결국에는 원안이 완전히 사라졌어도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전략은 군을 셋으로 나누는 거였다.
버나드가 이끄는 중군.
내가 이끄는 좌군.
귀족들 중에서 가장 작위가 높은 왈텍스 백작이 이끄는 우군.
여기에 세부적인 전략은…….
없었다.
없다고? 진짜?
그랬다. 진짜 없었다.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말은 많았는데, 결론적으론 그냥 정공법으로 서로 맞붙는 게 전부였다.
저들의 논리는 이렇게 많은 인원이 맞붙을 때는 그저 정공법이 최고라는 거였다.
괜히 잡스러운 전략을 세워 봤자 혼란만 가져온다는 것.
섬세한 운용은 아니더라도 묵묵히 시키는 대로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저 단순하게 전진!
한편 이런 작전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현 상황에서는!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다.”
“도대체 뭐가요?”
“이런 대회전의 전투가 벌어진 게 언제였을까?”
“…….”
대답은 안 했지만 피스토는 머릿속으로 제국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지난 2백여 년 동안 큰 전투가 없었다.”
제국으로선 지난 2백여 년이 안정기, 평화기였다.
“그러니 저들로선 우리가 내민 전략을 따라 할 자신이 없었을 거다. 진형 변화가 꽤 되는데, 과연 실제로 할 수 있을지 말이다.”
우리조차도 먼저 와서 대기하며 진형 훈련을 시켜 봤지만 꽤 힘들었다.
버나드가 이끄는 병력이나, 유제프가 이끄는 병력이나 기사단을 제외하곤 각 지역에서 모인 귀족들과 그들이 이끌고 온 사병이 대부분이었다.
또 저들은 이 자리에 처음으로 함께 모인 것.
그 때문에 세밀한 운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말은 세밀한 전략을 세워 봤자 머릿속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
‘나와 피스토는 그 점까지 고려해서 전략을 세웠는데…….’
이 말은 내뱉지 않고 속으로만 삼켰다.
하여튼 내가 이끄는 10만 명은 좌측을 맡게 되었다.
“대충 이럴 거란 생각도 했다. 그래서 다른 플랜도 마련해 둔 게 아닌가?”
이름하여 플랜 B.
말은 거창하지만, 플랜 B는 아주 단순했다.
버나드가 세우는 전략을 그대로 따른다.
반대해 봤자 먹히지도 않고 정신력만 소모되니까.
그렇다고 패배를 그냥 두고 볼 거냐고?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하는데?
버나드는 귀를 막고,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모두 나를 경계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뭘 어떻게 하냐고!
그럼 왜 플랜 B냐고?
플랜 B의 핵심은 병사들이 얼마가 죽든 나와 나를 따르는 지휘관들만큼은 살아남는 거였다.
또 내가 변수가 되어 적 지휘부를 덮치는 거였다.
만일 성공한다면 적은 승리했음에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다.
안타까운 건 내게 속한 지휘관들만 아니라 죽이려 하는 체르니아의 귀족들까지 같이 살리게 된다는 것.
“내가 튀어 나가면 그대와 이드로, 아라, 마고, 사이나는 뒤로 빠지며 도망쳐라.”
내가 전장에 데려온 지휘관들은 몽크, 페온, 바렛, 제이미, 레이몬드, 피스토, 이드로, 마고, 사이나, 아라까지였다.
참고로 아시모프와 한스는 데려오지 않고 체르니아에 남는 지휘관들과 함께 있도록 했다.
“나머지는 내가 선두로 나서면 무조건 내 뒤를 쫓아온다.”
이 말은 고개를 살짝 돌려 뒤에 있는 지휘관들을 향해 말했다.
너무 약한 지휘관들은 뒤로 돌리지만, 그렇지 않은 지휘관들은 내 옆에 있는 게 차라리 안전하리라 판단했다.
난 상점을 이용할 수 있으니 다치면 바로 치료해 줄 수 있고, 지치면 힐링 포션을 주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었다.
처억!
거리가 좀 있지만 적진에서 깃발들이 일제히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이를 신호로 적들이 움직였고, 우리도 미리 짠 대로 진형을 움직였다.
사실 60만 명이란 대병력이 섞여서 전투를 벌이는데 전투 중에 진형을 바꾸거나 공세 방향을 트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전투 전에 미리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이 된 상태가 아니라면 말이다.
드론 같은 게 있어서 공중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아니기에 전장을 보는 직관과 감각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면 전장의 변화에 반응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그저 미리 정한 전략에 따라 움직일 뿐.
“전진!”
“돌격!”
“공격!”
중앙, 좌군, 우군이 동시에 움직였다.
우리 진형처럼 셋으로 나뉘어 있던 적들도 반응했다.
“우와아아아~!”
누가 질세라 양편에서 목청껏 외치는 고함 소리.
잠시 후, 거리가 좁혀지자 궁병들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쏟아지는 화살 비.
보병들은 방패를 들어서 막았으며, 쓰러지는 자들은 잽싸게 뒤로 빼냈다.
그리고 드디어 벌어지는 보병끼리의 격돌!
기사단과 기병들은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으며,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좌군인 우리만 빼고 전투는 아라가 말해 준 대로 흘러갔다.
내가 좌측을 맡게 되면서 초반부터 무너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먼저 마차 군단이었다.
체르니아 왕국에서 출발할 때 짐을 싣기 위해 가져온 마차, 오는 동안에 들르는 마을, 도시에서 징발한 마차.
모두 모으니 거의 100여 대에 달했다.
여기에 미리 와서 베어 낸 나무들의 잔가지, 덤불들을 꽉 채워 놨다.
또 말은 마차 하나당 4마리씩 묶었고, 눈도 가렸다.
이건 말이 겁먹고 중간에 달리는 진로를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준비 상황은 아군인 버나드에게조차 알려 주지 않았었다.
말해 주면 자신이 있는 중군에서 써먹으려고 가져갈 테니까.
또 적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뒤편에 숨겨 두었다.
다음은 짚으로 만든 사람의 키 이상 높이에, 10여 명이 뒤에 숨을 정도의 기다란 너비의 거대한 장태였다.
장태는 동학군이 쓰던 방어 장비(?)였다.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의 키 높이, 10여 명이 옆으로 설 정도의 기다란 너비의 둥그렇게 만든 짚더미였다.
동학군은 이걸 앞에 두고 굴리면서 전진해 관군과 일본군의 총알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