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이걸 알고 있던 내가 주장해서 비슷한 걸 만들어 냈다.
이 세계라도 곡물을 타작하고 남은 짚을 다양하게 재활용해서 썼는데, 그중 하나가 짚으로 엮은 밧줄이나 가마니 같은 거였다.
사람 사는 게 다 뭐 거기서 거기지.
그 때문에 장태를 만들 때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이것도 처음에는 아군이든, 적군이든 보지 못하게 뒤에 숨겼다.
이렇게 준비를 했고,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마차 군단을 앞으로!”
샤샤샥, 샥샥…….
전면에 늘어서 있던 보병들이 수십 명씩 모이며 수십 개의 틈을 만들었다.
이 사이로 나온 건 100여 대의 마차들.
“불을 붙이고 돌진!”
횃불은 미리 준비해 뒀기에 병사들은 마차에 실린 잔가지, 덤불에 불을 붙였다.
그 후에 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때리며 달리게 했다.
히이잉~!
말들이 크게 울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마부가 있는 게 아니기에 얼마 달리지 않고 멈출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연기와 불길.
아라에 의해 전장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10여 일이나 먼저 도착했기에 처음부터 전투가 벌어질 때 바람을 등질 수 있도록 진영을 꾸몄다.
그 때문에 마차가 달릴 때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오고 있었고, 마차에 실린 잔가지, 덤불이 타오르며 심한 연기와 불길이 크게 일어났다.
눈을 가리고, 4마리씩 마차에 묶여 있는 말들도 연기와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도망치려는 욕구가 있기에 마차에 마부가 없더라도 말들은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500미터가 사람을 기준으로는 상당한 거리겠지만, 4마리의 말이 전력으로 끄는 마차를 기준으로는 적이 미처 대처에 나서지 못할 거리였다.
꽈앙! 쾅! 콰앙…….
“으아악! 아악! 아아악…….”
100여 대의 마차는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서 있는 적 우군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뿐만 아니라 불타던 잔가지와 덤불은 마차까지 태웠으며, 여기서 튀어나온 불씨들이 사방에 퍼져 나가 적을 혼란에 빠뜨렸다.
“비켜! 저리 가!”
“물! 물!”
“으악! 밟지 마!”
아무리 전신에 튼튼한 보호 장구를 입고 있다 하더라도 불을 어떻게 견디나!
이를 지켜보던 적 지휘관들이 급히 마법사들을 찾았다.
버럭!
“어서 마법사들을 불러!”
“마법사들은 뭐 하나! 어떻게든 해 봐라!”
“마법사! 마법사!”
이에 뒤쪽에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달려왔으며, 물을 다루는 마법을 쓰는 이들이 불타는 마차 위로 물을 쏟아 냈다.
또 바람을 다루는 마법사들은 역으로 바람을 불게 하여 불씨들을 흩트렸다.
그런데!
아무리 역으로 바람을 불게 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거대한 힘을 어찌 거스르겠나.
공중으로 크게 솟구친 불씨들은 다시금 적진으로 향했고, 그 범위가 상당하여 혼란을 키우는 효과만 가져왔다.
이 상황에서 어느새 적진으로 다가온 우리 병사들.
“기사단! 적을 쳐라!”
원래는 보병끼리 붙은 후에 기사단이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상대하는 적 우군의 지휘관은 기사단을 출동시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그 때문에 일찍 적 우군에 속한 기사단이 움직였다.
“기병들이 온다!”
“기병이다! 기병!”
“짚 덩이! 짚 덩이를 옮겨!”
나는 장태라고 했지만 이 단어를 여기선 발음하기 어려워했기에 그냥 짚 덩이라 부르게 했다.
병사들이 기병들이 온다고 외침과 동시에 뒤쪽에 있던 짚 덩이를 병사들 머리 위로 올려 앞으로 이동시켰다.
부피는 엄청나게 크지만 짚으로 만든 것이기에 병사들이 힘을 합치면 머리 위로 이동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적 기사단은 적진의 맨 뒤에 있다가 앞으로 나왔기에 500여 미터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달려와야 했다.
또 우리는 언제든 짚 덩이를 앞으로 내보내려고 잔뜩 준비하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전열 앞으로 보낼 수 있었다.
기병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가?
기병이 아니라 기사라고?
기병이든, 기사든 무서운 이유는 말의 기동성과 그들이 들고 있는 수 미터짜리 기다란 마창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실컷 죽어라 뛰어왔는데 기사단이 마주한 건 사람 키의 거대한 짚 덩이.
너비도 10여 명이 늘어설 정도의 길이라 옆으로 돌아서 갈 수도 없었다.
마창으로 찔러 봤자 짚 덩이가 두꺼워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닿지도 않았다.
기사단이 막혀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저들을 덮친 건 무수한 화살의 소나기였다.
슛슛슛, 슛슛슛…….
짚 덩이가 가리고 있고, 앞에 아군 보병들이 있어서 앞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병들이 이걸 넘기고 적 기사단을 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우선 궁병들은 곡사로 쏘았다.
또 적의 위치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고, 오랜 훈련을 통해 궁병이 된 자들이었다.
푹푹, 푹푹푹…….
차라리 방패를 든 보병들이었다면 화살 공격에 피해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의 기사들은 좋은 갑옷을 입었을지언정 방패를 들고 달려오지 않았다.
저들은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마창을 잡아야 했기에 화살에 무방비였다.
물론 단단한 갑옷이 화살을 무력화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전부는 아니었다.
또 화살에 눈이 있는 게 아니기에 기사만 아니라 기사가 탄 말도 공격했다.
히이잉, 히잉…….
털썩, 털썩, 털썩…….
말이 쓰러지면 그 위에 있는 기사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다음엔?
그냥 난전이지, 뭐.
준비한 건 여기까지였고, 적에게 혼란도 주고, 기사단도 많이 약화시켰다.
하지만 초반의 강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졌으며, 결국 아라가 본 미래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준비된 우리는 잘 막아 냈지만, 중앙과 우측의 아군은 적들의 공격에 처음부터 밀리는 형세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팽팽하게 맞서는 모양새였다.
이게 바로 오전을 지나 오후에 들어설 때까지의 상황이었다.
***
처음에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적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전투에 나서면서 무게 추는 점점 저들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결국 오후로 접어들면서는 아군이 확실히 밀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고, 패색이 짙어졌다.
솔직히 이때까지 버틴 것도 대견할 정도.
당연하지만 내 덕분이었다.
‘여기까지인가? 그냥 서로 갖다 박은 거니까 전투도 오래 걸리는 거지.’
아군은 그저 석양이 빨리 찾아와 오늘의 전투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라가 본 환상에서 석양이 오기 전에 아군은 와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적들은 작은 승리를 큰 승리로 만든다.
‘내가 나설 때다.’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군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바람에 나와 내게 속한 지휘관들도 위험하게 된다.
“후우, 가자!”
마차 군단과 짚 덩이로 변화를 주었기에 아라가 본 환상과 차이가 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앙과 우측은 아라가 본 환상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아라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 지금의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있던 나는 먼저 외곽으로 빠져 크게 돌며 적 후방으로 나아갔다.
다다닥, 탁탁, 탁탁.
처음은 가볍게 말을 몰았다.
좌측을 맡은 총지휘관인 내가 앞으로 나가니 체르니아에서부터 따라온 귀족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따라오지는 않았다.
날 뒤따르는 건 오로지 내 직속 지휘관인 몽크와 페온만이었다.
날 막으려는 적들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검으로 후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군과 적군이 섞여서 싸우는 난전 속이기에 아무리 외곽이라도 원래라면 수십 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막힐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와 위험 감지 특성이 있는 나는 요리조리 피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나까지 해 봤자 고작 3명인데 이 숫자로 뭘 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중요한 건 나였다.
소드마스터가 혼자라고 안 무섭나?
일인 군단이지 않던가!
내가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빅자이언트와 버서커를 쓸 때만큼은 비슷한 위력일 수 있었다.
적 후방에 다가왔다 싶을 때부터 난 크게 달라졌다.
“빅자이언트.”
일단은 빅자이언트부터 사용했다.
이 순간에도 생사의 기로는 작동 중.
“우와아앗~!”
서걱, 서걱, 서걱…….
짚단을 쓰러뜨리듯 검 한 번 휘두름에 정예병 두셋을 베어 나갔다.
더 이상 파고들 수 없을 것 같던 적진에 길이 뚫려 나갔다.
단순히 1분이지만, 빅자이언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1분이 지나서 빅자이언트 효과가 끝나자 이번에는 버서커 특성을 사용했다.
“크와아아앗!”
다시금 끓어오르는 힘으로 인해 전장의 소음을 전부 눌러 버릴 정도의 괴성을 내질렀다.
이어서 다시 앞을 막는 적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저, 저자는 누군가!”
우리를 상대하던 적 우측의 지휘관은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마도 스타크 공작인 듯합니다.”
“스타크 공작?”
“체르니아 왕국군을 이끌고 있는데, 제이콘 기사를 일대일 결투로 이긴 자로 유명합니다.”
“아! 소드마스터 소문이 돌던 그자?”
“네.”
적 지휘관이 옆에 있던 참모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난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불과 2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말을 몰며 거의 속보 수준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던 나는 적 우군의 지휘관들이 있는 곳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제 날 막을 정예병도 얼마 남지 않았고, 위기를 느낀 적 지휘관은 당황하며 발악했다.
“막아! 막아!”
“막을 병력이 부족합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기사단은?”
“기사단은 너무 앞에 있어 돌아올 수 없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으윽!”
적 지휘관을 피신시키려던 참모는 내가 휘두른 검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커어억.”
적 우측을 맡고 있던 지휘관을 죽였다.
이쯤에선 버서커의 효과도 끝나 버렸지만, 적들은 두려움에 싸여 나를 향해 검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난 적 지휘관과 참모로만 끝내지 않았다.
상점에서 상급 힐링 포션까지 사서 마시며 적 지휘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적 우측이 무너지며 크게 밀리던 전황에 유의미한 변화가 찾아왔다.
‘적어도 오늘 전투는 무승부로 끝날 수 있겠어.’
계획은 성공이었다.
“헉헉, 헉헉.”
“공작 각하, 피하시죠.”
“그래.”
버서커 효과까지 끝나 잔뜩 피로가 밀려온 나는 뒤따르던 몽크, 페온과 함께 어쩔 줄 몰라 하는 적들을 헤치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이때도 선두는 나였다.
위험 감지를 쓰는 건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길을 터야만 했다.
지쳤어도 힐링 포션을 들이붓듯 마시면서.
전장의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는 지평선 너머로 넘어갔고, 첫날의 전투는 이렇게 끝을 맞이했다.
내가 데리고 온 병사들 중에 사상자가 5천여 명.
중군이나, 우군의 경우는 사상자가 각각 만여 명이나 되었으니 우리보다 피해가 2배였던 셈.
[병사들이 칭송하고 있습니다.] [군주의 효과가 올라갔습니다.]꽤나 오랜만에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하! 이제 더 못 얻는 줄 알았더니…….’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하니 군주의 효과가 36퍼센트로 늘어나 있었다.
***
와락.
“그대가 우리를 살렸다.”
버나드가 두 팔로 날 끌어안으며 고마워했다.
제대로 갑옷을 닦지 못해 피 칠갑 상태인데도 버나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