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61
61. 독심괴영(毒心怪影) 요맹벽(2)
그의 뒤를 따르는 일행도 덩달아 속도를 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정지! 정지!”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초무성은 곧장 마음을 바꾸어야만 했다.
멀리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주군!”
먼지구름의 정체를 파악한 한영중이 긴장한 얼굴로 초무성과 시선을 맞췄고,
“제길···.”
초무성은 당혹스러운 광경에 말끝을 흐렸다.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몰려오는 중이다.
선두에는 사내 하나가 도주해오고 있는데, 초무성 일행을 발견했음에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한쪽으로 물러난다!”
초무성이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일단 보내고, 스승님의 위패부터 확인해야 해.’
현재 초무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은룡문.
더 정확하게는 스승의 위패가 온전하게 남아있느냐 하는 것이다.
무림맹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이 요청한 비동의 진위 여부 확인은 후순위에 불과하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초무성의 결정은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선두에서 도주해 오는 인물을 잡아야 해요.”
문수관과 언노운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항산파가 남겼다는 비급.
“왜 그래야 하지?”
초무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쫓기는 사람이 보물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요. 그게 무공 비급이든지 무엇이든지요.”
“나도 언 소저와 같은 생각이오, 둘째 공자.”
문수관이 쓸데없이 결연한 얼굴을 하고 나섰다.
“그리 생각한다면 두 분이 잡으십시오. 저는 주군의 명에 따를 것입니다.”
어이없어하는 초무성 대신에 한영중이 나서서 얘기를 끝맺었다.
그 또한 쫓기는 사람에게 항산파의 비급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초무성을 도와 은룡문을 정리했을 때 파악이 다 끝난 일이니까.
“···우리만으로 그게 되겠소?”
“억지예요.”
문수관과 언노운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발끈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언제든 버리겠다고. 잊은 건가?”
초무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문수관과 언노운은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아니다.
제멋대로 따라온 짐 덩어리에 불과할 뿐.
“···명령에 따르겠어요.”
“후우! 알겠소.”
언노운과 문수관이 찔끔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길을 열고 한쪽으로 물러납니다. 저들이 지나칠 수 있도록!”
잡음이 없어진 일행에게 초무성이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에 따라, 일행은 말에서 내려 길가로 물러났다.
안력을 돋워야만 보였던 무인들의 모습이, 이제는 육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요맹벽 이놈! 보물을 놔두고 가라!”
“네놈이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순순히 가지고 있는 걸 내놓아라!”
“아까의 허세는 어디 갔느냐! 당장 멈춰라!”
요맹벽의 뒤를 추격하는 무인들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며 난리를 피워댔다.
“이것들이···.”
요맹벽은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놈들을 해치울 게 아니라, 동굴에서 나오자마자 도주해야만 했어.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남들이 봤을 때야 아무것도 아닌 같잖은 도발에 불과하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내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이상할 터였다.
그렇지만 요맹벽으로서는 무공을 수련하고서 처음으로 ‘참는다’라는 행위를 해내는 중이었다.
남들이 봤을 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한 번만 더 그 빛을 받아들일 수만 있었어도 그런 멍청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건데, 아깝게 되었어.’
요맹벽은 수련 동굴에서 자신의 몸을 덮쳤던 순백색의 빛을 떠올리면서 아쉬워했다.
마치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의 포근한 빛··· 아니, 기운이었다고나 할까?
고질적인 광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덕분에 지금처럼 ‘도주한다’라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무작정 들이받고 보았을 터다.
싸우다가 기력이 부족하면, 또다시 인간의 목을 물어뜯고 피를 빨아들이면서 점점 더 광기에 젖어 버렸을 테고.
‘또 피의 광기에 젖었다가는 지금 남은 이성마저 사라지겠지. 그러기 전까지는 희망이 있다.’
요맹벽은 쓸데없는 자극을 피해 조용한 산속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반천음양공(半天陰陽功)을 완성시키기만 하면 광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요맹벽이 품에 손을 넣었다.
“꺼져라!”
몇 자루의 비도를 꺼내 내공을 담아 뒤로 던졌다.
콰과과광!
작은 비도였으나 그의 손에서 떠나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면서 연달아 폭음이 터졌다.
바짝 뒤를 쫓던 무인들 몇이 폭발에 휘말려 절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보물에 눈이 뒤집힌 무인들을 포기하게 만들기엔 부족했다.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 잡히면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놈의 힘이 빠졌어! 위력이 아까만 못하다! 포기하지 마라!”
“아까의 빛! 놈이 무언가 손에 넣은 것이 틀림없어!”
“서라! 멈추란 말이다!”
요맹벽은 이를 갈았다.
쫓기는 상황이 계속되니, 속에서 또 무언가 부글거린다.
“이 미친놈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단 말이다!”
솟구치려는 광기를 애써 억누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개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당당하다면 멈춰서 조사를 받아라!”
“이놈!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가문의 원수!”
“······.”
도저히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기야 말이 통할 것 같았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평소 같았으면 저따위 녀석들쯤은 힘들이지 않고 해치웠을 텐데··· 저기 앞에 놈들처럼 알아서 주제를 파악하면 얼마나 좋을···.’
“!”
한쪽으로 물러선 초무성 일행을 발견하자, 요맹벽은 눈을 크게 떴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곤란해하던 요맹벽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차앗!”
항산 일대를 진동시킬 듯한 함성을 터트린 그는, 초무성 일행이 있는 곳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
“저, 저!”
한영중이 비룡도를 고쳐 쥐면서 당혹성을 흘렸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건만, 지나치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내면서 맹수처럼 도약해 오고 있다.
“망할!”
초무성 또한 뜻밖의 사태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명혼도를 단단히 붙들고 요명백을 노려봤다.
고작 비수 몇 개를 던져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막아야만 한다.
“놈은 지쳤습니다. 제가 전력을 다한다면 한 번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굳은 얼굴로 말하는 한영중.
“알아.”
바싹 긴장한 얼굴로 초무성이 대답했다.
한영중은 절정의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고, 초무성 본인은 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던 경험이 있다.
도주해 오는 자가 지쳤으니 감당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바바밧!
눈을 부릅뜬 도주자의 돌진에는 거침이 없었다.
초무성은 명혼도를 곧추세우고서 도첨을 까딱거렸다.
상대와의 간격을 재는 행위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도첨의 움직임이 멈추고 초무성의 상체가 가라앉았다.
꾸욱!
‘지금!’
초무성이 크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명혼도를 수평에 가깝게 눕혀서 베었다.
뇌전의 기운을 품은 그의 명혼도에 앞서서, 한영중이 내지른 비룡도가 공간을 사납게 찢어발겼다.
후웅! 씨잇!
“!”
“!”
초무성과 한영중은 공격과 동시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주먹에 기운을 맺은 채로 돌진해오던 도주자가, 두 사람의 공격을 비웃듯이 그대로 뛰어넘은 것이다.
그 시점이 너무나 절묘하여 헛손질한 순간에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앗!”
“으어헉!”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린 것과 한 쌍의 남녀가 비명을 내지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문 소협!”
언노운이 암담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도주자가 문수관을 납치해 숲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인식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았다.
“모두 말에 올라타!”
초무성이 소리쳤다.
도주자가 무슨 이유로 문수관을 납치한 것인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놈의 뒤를 쫓던 무인들이 곧 도착할 것이다. 그들에게 휩쓸려서는 안 된다.
말에 올라탄 초무성 일행은 황급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놈이 숲으로 도망쳤어!”
“쫓아! 쫓아라!”
“이 빌어먹을 자식! 그 와중에 또 더러운 짓거리를 하려는 거로구나!”
“놈에게 피를 마실 틈을 줘선 안 돼! 쫓아라!”
문수관이 납치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정, 사파 무인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만 클 뿐, 선뜻 숲으로 뛰어드는 무인은 많지 않았다.
인간의 피를 마시고서 기력을 회복하는 요맹벽의 악명이 워낙 잘 알려진 까닭이다.
자칫하면 기력을 회복한 초절정 고수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때,
퍼벙! 펑!
“항산파의 비동을 발견했다! 항산파의 폐허 아래에 비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신호용 폭약에 의한 폭음과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연기, 그리고 뒤이어서 들려온 아련한 외침.
“뭐? 비동이?”
“어, 어떡하지?”
“난 비동으로 간다!”
“어째서? 저건 속임수일지도 몰라!”
“그렇게 따지면 항산파가 은룡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추격하던 이들 중 다수가 동요했다.
“요맹벽이 겁나서는 아니고? 동굴을 무너뜨린 것만 봐도 수상하지 않아? 놈은 분명 보물을 얻었을 텐데?”
“누가 사파 놈 아니랄까 봐서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네놈이나 요맹벽을 쫓아라! 나는 항산파의 비동을 택하겠다!”
“으음···.”
싸움이 붙을 것처럼 흉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으나 금세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추격자들이 두 패거리로 갈라졌다.
“주군,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한영중이 곤란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초무성의 눈치를 살폈다.
‘은룡문이 박살 났다고 했으니 굳이 그곳에 갈 필요는 없어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아까 그 인간이 요맹벽이었다고?’
강호에서 흉명을 떨치는 요맹벽과 싸우려 했다는 사실에 기가 질리는 한영중이었다.
어지간하면 항산파의 비동을 찾아가 임무만 마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리는 요맹벽을 쫓는다.”
“주군! 소문에 의하면 요맹벽은 사람의 피를 즐긴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문 소협의 피를 마시고 내공을 회복한다면···.”
“문수관이 비록 제멋대로 쫓아온 것이기는 하나, 그가 잘못되면 세가에도 책임이 있다. 최소한 문 소협의 시신이라도 챙기는 게 도리야.”
초무성은 요맹벽이 도주한 숲 방향을 쳐다보았다.
추격해오던 무인들에게서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기둥이 파괴되고 수련 동굴이 박살 냈다는 얘기들
‘인간의 피를 마신다고? 피를 흡수하면 내공을 회복한다고? 진작 좀 얘기하지··· 아니, 아무리 강한 놈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어. 수련 동굴을 파괴한 죄, 반드시 따져 묻겠다.’
명령은 이미 내렸고, 초씨세가의 사내는 말을 바꾸지 않는 법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반드시 놈의 뒤를 쫓아야 한다.
상처 입은 지금이 아니라면 요맹벽을 어찌할 수 없을 거란 계산이 나온다.
추격하는 과정에서 문수관을 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무백은 말과 짐을 지키고, 나머지는 추격을 시작한다!”
“예, 주군!”
하무백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폭발하듯 터져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것도 고작 비도를 던졌을 뿐인데 말이다.
진짜배기 고수의 무공을 처음으로 보고, 하무백은 간담이 서늘해져 있었다.
‘세가에서 벌였던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간이 콩알만 해진 하무백이 순순히 초무성의 명을 따랐다.
“가자!”
결연한 얼굴의 초무성이 명령을 내리고는 숲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