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3
@53. 활발한, 그리고 충실한
“…모르겠습니다.”
이아페가 결국은 고개를 저었다.
“네?”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이토록이나 가까이 가고 싶은지. 이유가 너무 많은데,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뜻인가?
뭐, 어쩔 수 없지.
이아페에게 더 생각을 해 보라고 닦달을 하고 싶었지만, 표정이 너무도 고민스러워 보여서 묻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오늘은 몸도 안 좋기에,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다.
“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물어볼게요.”
이아페의 멱살을 놓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그가 따라오지 않았다.
그가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를 향해 쓸쓸하게 물었다.
“시샤 님은…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오고 싶은 생각이 드십니까?”
‘아이론’이라는 이름이 잘 보이는 정면 자리에 다가가고 싶냐고?
사실 이름을 그렇게까지 가까이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전설 속의 인물 같은 사람이니 이 또한 일종의 성지순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아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제야 그가 발걸음을 옮겨 문으로 걸어갔다.
“어서 돌아가야겠군요.”
밖으로 나오니 타는 듯한 주황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저녁이었다.
우리는 호수 중앙부에서 공중 부양을 해 위로 올라와, 마차를 향해 걸었다.
저벅대는 발소리와 함께 바람이 풀을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호숫가에 보이는 빛을 받은 수풀이 바람에 한꺼번에 흔들리며 옆으로 누웠다.
꽤나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먼저 마차에 올라탄 그가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을 잡자 가볍게 몸이 당겨져 올라왔다.
“멀미약을 연하게 탄 겁니다. 가는 길이 험하진 않으나 혹시 몰라서요.”
출발한 마차가 부드럽게 달리는 동안, 이아페가 자연스럽게 수통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거람.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드는데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찡했다. 그걸 감추고자 부러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아페는 가끔 보면 저를 종이 인형 정도로 아는 것 같아요.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사람의 입으로 불었을 때 당신이 날아가진 않습니다.”
이아페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팩트를 이야기했다. 너무 뼈를 맞아서 우선 멀미약을 먹고 기운을 충전한 후 모범 답안을 들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꿀꺽꿀꺽 약을 넘기던 중.
“하지만 인형… 그 정도로 아름답다고는 생각합니다.”
“으읍.”
입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멀미약을 간신히 삼켰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여기에 내 아밀라아제… 아니, 아밀레이스를 투척할 뻔했다.
“괜찮으십니까?”
이아페가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내가 입을 닦는 동안,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인형과 당신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형은 그저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러 소비될 뿐이지만…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활발히, 그리고 충실하게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
“그래서 당신을 볼 때, 멋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담백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은 이아페가 약간은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사이 나는 멀미약을 다 먹고, 이아페가 건넨 사탕까지 먹었지만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저게 모범 답안이 분명했으니까.
기분이 참을 수 없이 들뜬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치솟고, 심장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했다.
생각해 보면 이아페는 나의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당당히 가슴 펴고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의 시작점부터 그가 있었고, 도서관을 찾을 때며 마법을 공표하기 위한 지금의 과정까지도 모두 그와 함께였으니.
그런 그가 내 걸음이 멋있다고 말하다니.
열심히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던 불안을 누군가 덜어 간 것 같았다.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요.”
그의 따뜻한 칭찬에 충만한 기쁨이 마음 곳곳으로 퍼졌다.
‘그런데 왜 내가 인형과 다르단 말을 한 거지? 몰라,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아페의 대답에 감탄하느라, 내가 물은 것이 비실비실한 사람을 뜻하는 ‘종이 인형’이었으나 그가 자체적으로 인형만 캐치해 답했다는 사실은 잊은 채였다.
“거의 다 와 가는군요.”
얼마나 달렸을까. 이아페가 커튼을 살짝 들어 밖을 살폈다.
“아, 오늘은 요 앞에서 내려 주세요. 좀 걷고 싶어서.”
아무래도 바람을 쐬면 머리가 나을 듯싶어서, 나는 정문에서 내려 저택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럼 함께 걷… 아닙니다.”
지난번 경호를 하니 마니 한 사건이 떠오른 듯, 이아페가 말을 멈추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정문 앞에 다다랐기에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이아페가 배웅을 하려는지 따라 내렸다.
나를 본 문지기가 바로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펼쳐진 길. 그 끝에 자리한 저택.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아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아페, 바깥바람 좋아하죠?”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음, 계속 돌아다니잖아요.”
소설을 볼 때는 완전히 집돌이인 줄 알았는데, 직접 관찰해 보니 그는 꽤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사냥 대회가 있는 날이면서 아침부터 비트리비아 호수에 오고.
직접 부르쌍 마을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고.
과외받으러 와 놓고는 굳이 정원에 산책을 하러 나오고.
숙소 놔두고 숙소 밖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별 보고….
누가 봐도 집돌이는 아니지 않은가.
밤공기도 시원한데, 같이 걷자고 할까?
나는 손가락을 쭉 뻗어 정원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분수대 보여요?”
이아페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시선에, 기묘한 찌릿함이 심장에서 목까지 올라왔다.
그의 그 눈빛 덕에, 나는 다음 말을 망설였다.
그러자 이아페가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며, 다소 능청스럽게 물었다.
“저기까지 함께 걸어도 됩니까?”
웃음기 가득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분명히 같이 걷자고 하려고 했는데도, 그의 태연한 말투에 괜히 오기가 차올랐다. 나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가 터뜨리듯 열었다.
그렇게 멋대로 어처구니없는 의견을 내뱉고 말았다.
“달리기 경주합시다.”
“…경주, 말씀이십니까.”
“저기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기면.”
“이기면?”
“앞으로는 이렇게 웃지 마요.”
이아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음, 하고 고민하는 음성을 내던 그가 살짝 비딱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내가 이기면?”
“당신이 웃어도 되는 거죠.”
“아니.”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내게로 손을 뻗었다. 길고 예쁜 손가락이 살짝, 내 입가에 와 닿았다.
“당신도 웃어 주십시오.”
“…나 잘 웃는데.”
“압니다.”
“그런데 뭘 더 웃어 달래요?”
“그냥, 애써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새벽이슬 같은 말투가 내 심장 위로 떨어졌다. 그 위로 이아페의 담담한 미소가 뛰어내렸다. 그것들은 여기가 무슨 방방인 줄 아는지 트램펄린의 탄력성을 오지게 즐겼다.
그만, 심장 아프니까 그만 뛰어.
“당신이 제 앞에서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아페는 내가 그의 요망한 설렘 모먼트를 볼 때마다 승천하려는 광대를 애써 묶어 두고 있던 걸 알고 있었나.
“오늘도.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으면….”
이아페가 쓴웃음을 지었다. 달빛에 비친 그 표정이 처연해서, 더 바라보고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 시작!”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먼저 뛰기 시작했다.
내가 더 다리가 짧으니까 이 정도 반칙은 해도 된다. 나는 먼저 전력 질주를 했다.
하지만 다리 길이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 금세 이아페가 날 앞질렀다.
“헉헉….”
아니, 그런데 몸이 왜 이러지.
안 그래도 힘든 와중에 갑자기 뛰어서 그런가.
급격하게 머리가 핑 돌았다.
피가 머리로 몰린 건지, 쏙 빠져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몸에 힘이 풀렸다. 분명히 지금은 밤이라 까만 하늘이 보여야 하는데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노래졌다.
아, 안 되는데.
“이, 이아페….”
숨소리인지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좀, 데려각…!”
픽.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 * *
만약 내기가 없었다 해도 이아페는 최선을 다해 달렸을 것이다.
그가 아는 시샤 아르비나라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봐주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이 아니니.
애초에 상대가 봐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내기를 걸지도 않을 만큼 공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오기가 생긴 것이 사실이었다.
제 웃는 모습이 그리도 보기 싫었단 말인가. 그래서 저렇게 먼저 달리는 반칙을 써 가며 전력으로 달리는 것인가.
혹은, 그녀는 솔직한 자신을 내게 보일 만큼 나를 신뢰하지는 않는 건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가야 하는데 마음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녀의 솔직함을 쟁취해,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짧은 순간 그러한 생각들을 마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를 앞질러 수 걸음을 갔을 때쯤, 뒤에서 열심히 들리던 발소리가 점차 느려졌다.
쌔액, 쌔액.
바람 소리인지 숨소리인지 모를 무언가가 들렸다.
이상한 예감에 이아페가 뒤를 돌아본 순간.
시샤가 그대로 주저앉듯 쓰러졌다.
“시샤 님!”
이아페는 그대로 시샤에게로 질주했다. 주변의 모든 광경이 사라지고, 오직 그녀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이 없었다. 급격히 파리해진 안색이 이아페를 너무도 불안케 했다.
이아페가 떨리는 손으로 시샤를 안아 들었다.
시샤 님, 하고 다시 한번 불렀지만 그녀는 어떠한 응답도 없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그 순간 이성이 날아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 돼, 안 돼요.
입술이 달달 떨렸다.
“빨리… 치, 치료를 해야….”
어서 저 아르비나 저택으로 가서, 일단은 따뜻한 곳에 그녀를 눕히자. 도착해서는 의사를, 어떤 협박을 해서라도 지금 당장 불러오자.
우선, 우선은 빠르게 저 저택으로 가려면… 뛰는 건 안 된다. 마법. 마법으로 가야겠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판단을 내린 이아페가 주문을 외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
“너 설마 지금 마법 쓰려고? 미쳤어?”
누군가가 떨리는 제 팔을 꽉 잡았다.
그의 어릴 적 친구이자 배신자, 르디엘 체르실로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