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어때?
“부탁하신 거, 알아봤는데 말이죠.”
탐정이 그렇게 말하며 운을 뗐다.
부탁이라면 백우진이 데리고 있는 친척 여자아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백우진의 말에 따르면, 먼 친척을 임시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고 지금 새로운 보호자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여자애가 보호자를 잃게 된 게 내가 한 일 때문이었으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백우진이라면 그 플레이아데스 길드에서 부길드장 하던 그 남자 말하는 거 맞죠? 백건우의 아들. 길드 낼름 삼킨 백건영 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그래.”
“그 길드가 박살 나면서 그쪽 집안도 완전히 나가리가 되긴 했는데…….”
부길드장이지만 길드의 더러운 일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던 백우진과 오랜 입원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는 백우섭.
그 둘을 제외한 친인척들은 모두 사망했거나 철창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해외로 도주했거나.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가 유일하게 멀쩡한 친척인 백우진을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아직 어려 보이는 아이가 스스로 친척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고. 아이 하나만 남겨 두고 나머지가 싹 증발했다는 것도 우연이라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그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탐정에게 조사를 맡긴 거였다.
하지만 탐정은 서류를 테이블 위로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주의해서 다뤄야 할 문서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없어요, 없어.”
“없다니?”
“애초에 그런 애 자체가 없다고요.”
“…….”
그러니까.
백우진의 친척이라고 자처할 만한, 그 나이대의 여자 아이에 대한 인적 사항이 없다는 뜻이었다.
“허술하게 지어낸 자료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어요. 호적 자체가 등록이 안 되어 있을걸요? 이름을 몰라서 못 찾는 것도 아니고. 그쪽을 싹 다 뒤졌는데 그만한 여자애는 하나도 없었어요.”
백지 상태.
탐정은 허술할 정도의 투명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여자애는 실제로 백우진의 친척도 뭣도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서 온 건진 몰라도 애초에 남남이었다.
“백우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러자 탐정이 대답했다.
“그럴걸요. 백우진 그 남자가 어디 낙하산도 아니고. 조금만 알아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정보니, 충분히 눈치채고도 남을 거라고 봐요.”
“그런가.”
모르고 속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사정이 딱한 아이인 것 같으니 잠시 맡아 두는 거겠죠. 서류가 없는 이상 어디 보내기도 어렵겠고. 본인 입으로 말해 주지 않으면 곤란하겠는데요.”
탐정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서류들을 넘기며 일반론적인 소리를 내뱉다가 물었다.
“한번 파 볼까요?”
더 자세히.
맡겨만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탐정이라면 충분히 모든 걸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충분해.”
그건 백우진의 사정이었으니.
내가 더는 참견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 * *
“학교는 안 가나?”
식사 도중 백우진이 물었다.
요 며칠 지켜본 결과, 백수아는 아예 외출을 않는 건 아니었어도 매일 아침 가야 하는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저씨에게 의탁하러 온 것 치고는 지나치게 의연한데, 학교를 땡땡이 칠 정도로 충격이 커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학교에 갈 나이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기록이…….’
없었다.
공식적인 루트로 알아봐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다른 수단을 사용해도 백수아라는 친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백우진도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에 갑작스러운 등장. 어린아이가 하는 것치고는 조리 있는 설명.
그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알지도 못하는 여자아이를 윽박지르며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쫓아낼 기력도 없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신세를 지고 싶은 거라면 마음대로 하라는 심정이었다.
“아저씨도 안 가잖아요.”
“난……. 내가 학교 갈 나이는 아니잖아.”
“대신 어른들은 직장에 가야 하잖아요.”
직장.
백우진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얼마 전까진.
“아저씨가 안 가면 나도 안 갈래요.”
요즘 애들답게 참 당돌한 발언이었다.
백수아가 학교를 가든 말든. 실제로 친척도 아닌 백우진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우진은 왠지 모르게 물었다.
“내가 가면 너도 가나?”
“…생각해 보죠, 뭐.”
백수아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딱히 학교라는 곳을 가고 싶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백우진은 생각에 잠겼다. 커리어의 전부가, 아니 성인이 되기 전부터 해 온 게 플레이아데스 길드의 일이었다. 부길드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그런 만큼 능력이나 적응력엔 자신이 있었지만.
‘누가 써 줄지.’
플레이아데스 길드.
헌터 범죄를 저지른 대가로 완전히 작살이 나 버린 길드의 부길드장 출신을 누군가 써 줄지 모를 일이었다.
듣기로는 일반 직원들도 이직할 때 꼬리표가 달려 상당히 곤란을 겪었을 정도라는데.
‘역시 거기뿐인가.’
백우진이 남은 토스트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아저씨? 어디 가요? 편의점?”
편의점 갈 거면 같이 가요.
백수아가 그렇게 말하며 쫄래쫄래 백우진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지금 갈 곳은 편의점 따위가 아니었다.
“일 구하러.”
오랫동안 멈춰 있던 백우진의 태엽이 다시 움직이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 * *
“왜 하필이면 그 여자와 함께인 건데요.”
클레어가 도끼눈을 뜨고 캐물었다.
클레어의 입에서 나온 그 여자란 샤디아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밤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자, 안 그래도 탐탁지 않게 듣던 클레어는 샤디아 이야기에 결국 불만을 토하고 말았다.
“눈이 좋은 것 같아서요.”
“눈…….”
내 대답에 클레어가 주춤했다. 일리가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솔직히 나도 샤디아와 굳이 만날 기회를 늘리고 싶지 않았지만, 샤디아가 가진 눈의 힘이 요긴한 건 사실이었다.
“알았어요.”
결국 클레어의 허락이 떨어졌다.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클레어가 날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쪽이 좀 더 속이 편했다.
“그래도 고마워요.”
“예? 뭐가 말입니까?”
그러자 클레어가 사악하게 웃었다.
“이젠 말도 없이 튀진 않아서.”
“…….”
말에 가시가 있었다.
외출하려던 내가 돌아서서 물었다.
“저기, 제가 그런 걸로 감사받을 정도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러지는…….”
…그랬나?
지금도 고둥이라거나, 망량의 누이인 이매라거나 하는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고작 보고하는 정도로 감사를 받을 일인가.
“내일 아침.”
클레어가 선언했다.
“요즘 아침을 거르면 영 힘이 안 나요. 그러니까…….”
긴 설명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돌아올 거죠?”
클레어의 물음에 내가 몰래 슬쩍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침을 거르면 힘이 안 난다는 얘기는 거짓말이 아닐 테니까.
그래도 내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아침은 비교적 간단하게 차리니까, 클레어라 해도 충분히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기야 할 테지만.
“늦지 않게 돌아오죠.”
내가 약속했다.
* * *
“되게 오랜만이네, 여기도.”
샤디아가 감상을 남겼다.
우리는 불야성에 와 있었다. 센터장 영감의 의뢰로 보석 ‘세이렌의 눈물’을 구하기 위해 아크투러스 투기장에 참가한 이후로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소문은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도시를 주름잡고 있던 세력 구도가 변한 만큼 분위기도 크게 어수선해졌다고.
실제로 도시 안을 거닐어 보니 괜한 소문이 아니란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날이 서 있군.’
다소 향락에 빠진 관광지 같았던 분위기는 뒷골목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옛 모습이 남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층 더 우중충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웃음소리와 활기가 줄어 있었다.
“똑바로 보고 있나?”
“네, 네. 제대로 하고 있어.”
나 역시 주머니에 넣어 둔 고둥을 매만지며 이변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달리 반응은 없었다.
불야성에서 내가 방문했던 장소를 모두 뒤져 봐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를 크게 돌아 가 볼 만한 곳은 모두 가 봤다.
단순히 걷는 것보다 피곤한 일이긴 했지만, 샤디아는 훨씬 더 불평했다.
“저기, 조금만 쉬었다 하자. 피곤하단 말야.”
“네가?”
연약한 여자도 아니고, 투기장에서 랭커로 불릴 몸이었다면 조금 걸은 정도로 지칠 리가 없었다.
괜한 여유를 부릴 이유가 없었다. 클레어에겐 아침까지 돌아가겠다고 약속해 놓은 참이었으니까. 두 번 오는 건 사양이니 오늘 안에 가능한 걸 모두 해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샤디아는 지지 않고 주저앉았다.
“이거 계속하는 거, 되게 피곤하단 말이야.”
“…….”
샤디아가 가리킨 건 자신의 금색 눈동자였다.
내가 샤디아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였다. 무언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것처럼, 샤디아의 눈은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할 말이 없었다. 피곤하다고 해도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럼 잠깐만…….”
“아싸!”
샤디아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피곤해 주저앉은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럼 자기♥, 우리 저기서 잠~깐만 쉬는 거 어때?”
팔짱을 끼기 위해 다가오는 샤디아가 가리키는 건 근처에 있는 숙박 업소였다.
불야성에 있는 업소 중에서도 몇 없는 멀쩡한 숙박 업소가 아니라. 본래 용도가 아니라는 걸 자랑하듯 핑크빛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건물.
“꺼져.”
“피. 치사하게.”
샤디아가 툴툴거렸다.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임자 있는 몸도 아니면서.”
“…….”
역시 알고 있었나.
샤디아에게 이미 내 정체를 들킨 건 기정사실이었지만. 그 경우엔 내가 클레어의 남편이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샤디아는 클레어와 내가 계약 부부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러 말하고 다니는 건 아닌 듯하니 일단 넘어가지만. 어떻게 알게 된 건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것도 그 눈의 힘인 건지.
“남에게 보여 주기 싫은 거라도 있는 거야?”
샤디아가 긴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 한복판을 가리켰다.
“예를 들면……. 그 흉터라든가.”
샤디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흉터 정도는 딱히 숨길 만한 것도 아니야.”
남들 보여 주기에 좋은 몰골이 아니니까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각성자로 살아가다 보면 늘 격렬한 싸움을 하게 되니, 몸에 흉터가 있는 것 정도는 달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특히 비싼 돈을 들여 흉터를 지우지 않는 남성 각성자라면 더더욱.
물론 이 흉터들을 얻은 곳이 다른 세상이라는 비밀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누가 겉으로 봐서 알아차릴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잠깐.’
겉으로 봐서 알아차릴 만한 문제가 아니라면.
내 눈앞엔 마침, 보이는 것 이상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샤디아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보이는 금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나를 정면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나, 다 보이는데.”
“…….”
어디까지?
“어때?”
샤디아가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이제야 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들어?”
눈동자가 맹금류의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