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먼저 출발하십시오
“…어두워.”
클레어가 눈을 뜬 건 드넓은 동굴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아, 클레어의 말대로 이곳은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녀의 검이 마력을 받아들여 빛나긴 했지만, 이 넓은 공간 안에선 점과 같은 크기에 불과했다.
“일단…….”
클레어의 검이 발하는 빛이 더욱 밝아져, 등불처럼 이곳을 비췄다.
그렇게 밝아진 검을 통해 이 공간을 비춰 보았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는 것 같네.”
그런 게 있었다면 빛이 새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완전한 칠흑.
게다가 공기의 흐름 또한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이 턱 막힌 공간 특유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유일하게 바람이 통하는 곳은 천장. 짐작하기로는 그 커다란 뱀의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는 건 명백한 자살 행위였다.
“통신기는…….”
클레어가 아티팩트를 조작해 봤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것도 안 되네.”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전파가 아닌 마력으로 통신하는 아티팩트. 마력의 밀도가 짙은 던전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제법 좋은 품질의 통신 기능을 탑재한 물건이었다.
이걸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그 정도로 외부와 격리된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 정도로 튼튼하다는 뜻인데.’
클레어가 검으로 내벽을 비춰 보았다.
살아 있는 생물답게 점액과 꿈틀거리는 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단단해 보였지만, 그 안쪽에 흐르는 특별한 기운이 클레어의 발길을 잡아 끌었다.
독성이 느껴지는 점액질에 손이나 검 끝을 대 보고 싶진 않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마력? 아니야…….’
거기 흐르는 건 마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클레어는 왠지 모르게 그로부터 익숙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 힘은…….”
거기에 완전히 몰입해 열중하고 있을 때. 클레어의 등 뒤로 무언가가 재빠르게 들이닥쳤다.
등 뒤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클레어가 검으로 쳐 냈다.
캉!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
클레어의 등 뒤를 기습한 물체가 무엇인지. 검에 두른 마력으로 비추어 보니, 그것은 끝이 두 개로 갈라진 거대한 채찍이었다.
“혀……?”
그것은 이 거대한 뱀의 혓바닥이었다.
쐐액!
혓바닥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다가왔다.
정면을 향해 들이닥치는 공격을 다시 한번 검으로 쳐 내자, 갈라진 다른 쪽이 클레어의 등 뒤를 노리고 있었다.
간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두 번째 공격을 막아 내자, 그다음은 머리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몸을 날려 피하는 와중,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음 공격이 도달했다.
“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은 클레어가 혓바닥을 끊어낼 생각으로 검격을 휘둘러 보았으나.
키잉!
금속성만을 내며 더 큰 충격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가벼운 몸으로 더 멀리 밀려 나가며, 클레어는 혓바닥에는 그 어떤 손상도 생기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단단해.”
겉보기엔 평범한 혓바닥. 검의 날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막상 검을 대 보면, 혓바닥은 금속에 가까울 정도의 단단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라면 마력을 두른 클레어의 검격을 이겨 낼 수 없었다. 마력을 통해 강화한 칼날은 같은 강철 또한 두부처럼 잘라 낼 수 있으니.
저 혓바닥의 비밀은 단순한 재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력이…….’
클레어는 분명히 느꼈다.
마력을 두른 검이 혓바닥에 닿는 순간, 혓바닥이 내포하고 있는 미지의 힘과 충돌해 그 위력이 중화되었다.
서로 갈 곳을 잃은 두 힘이 부딪치고 섞여 단순한 충격으로 발산하는 일. 클레어는 이미 전에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설마…….”
도율이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쉬이익!
그때 어디선가 공기가 밀려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밀폐된 공간 속, 클레어와 혓바닥의 공방이 아니라면 그 어떤 움직임도 없던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그건 색을 띈 기체였다. 보라색 연기가 클레어를 향해 재빠르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잠깐……!”
이런 곳에서 독을 뿌렸다간 꼼짝없이 그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면 웬만한 독에도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저 독에도 마력과 충돌하는 성질이 들어 있다면. 버틸 수 있을지 확답하기 어려웠다.
“흡……!”
클레어가 얼마 남지 않은 맑은 공기를 들이켜고 검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후웅!
공기를 밀어내 독의 접근을 한 차례 저지하기는 했지만, 결국 사방이 막힌 곳에서 이곳이 독으로 가득 차는 건 시간문제였다.
고작해야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 상황.
게다가 독이란 반드시 들이마셔야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었다. 맹독에는 피부나 눈, 귀를 통해 침투하는 것도 있다. 그 모두를 틀어막을 순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물이 차오르듯 발목에서부터 독의 안개가 켜켜이 쌓여 갔다.
* * *
“커억…….”
백우진이 격통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눈앞이 핑 돌았다. 머리도 무거운 것이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다.
힘 조절을 할 겨를이 없었는지 배를 걷어차인 탓에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저 거대한 뱀에 삼켜지는 건 피할 수 있었다.
백우진의 앞엔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무언가가 뻗어 있었다. 세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크기를 가진 검은 무언가가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땅 위에 뿌리내린 것처럼 이빨을 박아 땅 위를 덮어 버린 존재.
“이건…….”
현무의 꼬리였다.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긴 몸통을 늘어뜨리며 하늘로부터 내리꽂혔다.
클레어는 지금 그 안에 갇혀 있었다.
뱀의 머리가 워낙 큰 탓에 깔려 죽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저 안이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닐 터였다.
금방이라도 입을 닫고 삼킬 수도 있고, 안에서 독이 나올 수도 있었다.
‘어떻게…….’
고민하던 백우진이 떠올렸다.
“연락.”
클레어는 주기적으로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팀장인 청진명과.
이곳은 마력이 너무 강해 전파를 통해 통신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를 대비한 소통용 아티팩트를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그걸 통해 청진명에게 연락을 취한다면 당장 이곳으로 올 게 뻔했다.
“…없군.”
문제는 그걸 갖고 있는 건 백우진이 아니라 클레어라는 점이었다.
아티팩트와 함께 저 안에 갇히고 말았으니. 저 안에서도 연락이 가능하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내가.’
직접 청진명을 찾으러 가야만 했다.
백우진이 창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이 창은 청진명이 빌려준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어떠한 방해물도 찾아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나타나 클레어를 공격한 꼬리와 같이, 지금부터 뒤늦은 대응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지금,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상책이 아니었지만.
“가자.”
백우진이 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꽈릉!
백우진의 눈앞에 검은 번개가 내리꽂혔다.
거기서 나타난 건 커다란 호랑이의 등에 타고 있는 도율이었다.
「대협!! 괜찮은 거 맞습니까?!」
“안 죽는다니까.”
집채 만한 호랑이는 하얀 털 위에 검게 그어진 줄기를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도율의 모습을 본 백우진이 놀라 외쳤다.
“이도율 씨……?!”
이 인간이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것 정도는 놀라운 축에도 속하지 않았다. 놀라운 건, 그가 지금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도율은 백우진이 아는 각성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 그런 자가 다른 누군가에게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상대가 강력하다는 뜻일까.
“백우진 씨?”
“그 상처는…….”
“아, 별거 아닙니다.”
도율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게 그 상처는 망량의 차원에 비틀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부러 낸 것이었으니까.
닫힌 세상 속에, 외부의 존재인 도율이 스스로의 몸에 힘을 부딪쳐 틈을 만드는 것이 탈출할 실마리를 잡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흰돌이와 함께 망량의 결계를 탈출할 수 있었다.
‘…괜찮다고?’
제아무리 각성자들이라 해도 피를 흘리게 되면 결국 제 힘을 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피는 생물의 근본적인 생명력인 데다가, 마력까지 품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각성자들은 피부와 갑옷을 튼튼하게 갖춰, 몬스터들로부터 상처를 입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하는 것이었다.
백우진의 눈엔 도율이 이미 상당히 많은 피를 흘린 걸로 보였지만.
도율은 안색이 나쁘지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본인이 괜찮다면 그런 거겠지.
백우진이 수긍했다.
“그러는 백우진 씨야말로 왜 이런 곳에 있습니까?”
도율이 주위를 둘러봤다.
탈출 지점은 따로 생각해 두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망량의 사신수 중 하나인 현무의 등짝 위에 도착했다.
어쩌면 커다란 내공을 지닌 존재끼리 인력처럼 이끌렸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누가 보아도 위험한 전장의 한가운데. 그런 곳에 각성자도 아닌 백우진이 몸소 나섰다는 게 의아했다.
그것도 웬 창까지 한 자루 들고.
“그건…….”
백우진이 대답했다. 다른 이들에겐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었지만 도율에게는 이야기할 수 있었다.
“수아가 이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뭔…….”
백우진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도율이 어떤 기운을 자세히 파헤치기 시작했다.
망량은 도율을 붙잡아두기 위해 그 세계에 남았다. 그 외에 따로 있던 건 영원한 생명으로 계속해서 살아나는 주작, 서오 뿐이었다.
그 외의 다른 요괴들은 모두 인간 세상을 습격하러 갔다.
망량은 가장 위험한 존재를 도율이라고 판단해 발을 묶어두려 했다. 그리고 망량이 이 일을 벌인 원인인 그의 누이, 이매의 영혼을 가진 백수아는.
‘적어도 거기엔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습격이 시작되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망량도 곁에 없는 백수아를 어디에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지.
사신수 중 최강의 방어력을 가진 현무의 몸 어딘가라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직접 찾을 겁니까?”
“…그러려고 온 겁니다.”
사실 도율과의 연락이 가능했다면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와서 돌아가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도율이 흰돌이를 향해 지시했다.
“태워 줘.”
백우진이 맨몸으로 뛰는 것보단 흰돌이의 등 뒤에 타는 게 더 안전하고 빨랐다.
「예?! 저보고 지금 대협이 아닌 다른 사람을 태우란 겁니까?」
“시끄럽고.”
「허, 참. 하. 참 내…….」
흰돌이가 투덜거리면서 얌전히 고개를 수그렸다. 각성자도 아닌 백우진이 쉽게 올라타기 위한 오르막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커다란 백호의 등 위로 올라가기 전, 백우진이 물었다.
“말하는 호랑이입니까…?”
“예, 뭐 비슷… 뭐라고요?”
“사람 말을… 하지 않습니까?”
백우진의 말에 흰돌이와 도율이 서로 마주 보았다.
“알아 듣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지금까지 흰돌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적어도 인간 중엔 도율이 유일했다.
그 이유는 흰돌이가 할 수 있는 말이 내공을 사용한 전음뿐이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설마, 당신…….”
“왜 그럽니까?”
그런 백우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백우진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백건우와 그 아내 사이의 출생이 확실하다는 점은 주대현이 보증했다.
하지만 어디선지 모르게 영향을 받아, 도율처럼 마력보다 내공을 먼저 받아들이게 된 거라면.
‘왜 그 유명한 백건우의 아들인데도 각성하지 못했는지 설명이 되는군.’
도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먼저 출발하십시오.”
“이도율 씨는?”
백우진의 물음에 도율이 턱을 벌리고 있는 뱀을 가리켰다.
“부부 동반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 백우진이 흰돌이의 등을 타고 멀어졌다.
“자, 그럼.”
그 모습을 확인한 도율이 거대한 뱀을 향해 돌아보았다.
“집적대는 놈부터 치워 볼까.”
도율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