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3
〈 3화 〉 [몰락 귀족의 영애] 루시아 – 2
“그러면 나는 이만 갈게. 다음에 보자.”
루시아를 만난 것은 기뻤지만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나는 기쁨과 욕망을 숨기고 돌아섰다.
“앗, 잠깐만요! 저, 그게, 포션 값을 드릴게요!”
루시아가 당황하며 그런 나를 붙잡았다.
“응? 아니,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아니에요. 마나 포션은 귀한 물건이니 맨입으로 받을 순 없어요.”
루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마나 포션은 상당히 비쌌다. 이 세계의 물가가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게임에선 중상급 무기들과 거의 비슷한 가격이었다.
즉, 몰락 귀족인 루시아에겐 한 달 용돈으로도 모자랄 게 분명하다.
“신경 쓰지 마. 소용량의 포션 같은 건 나한테는 그냥 짐이거든. 필요하지도 않고.”
“아니에요. 작은 것이라고 해도 받았으면 돌려주는 것이 귀족의 소양이에요!”
루시아가 보기 드물게 의견을 강하게 드러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믿지 못하는 것 같으니 보여주도록 할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차에서 찍었던 스킬을 떠올렸다.
그리고 루시아가 연습하고 있던 고목을 향해 손을 뻗고,
“이터널 프리즌.”
적당히 익혀둔 최상위 얼음 마법을 사용했다.
“앗. 와앗……!!”
사각사각사각사각, 사각사각!
내가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사각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목의 뿌리부터 얼음이 자라기 시작해, 채 10초도 되지 않는 사이 고목은 완전히 얼음에 뒤덮였다.
“괴, 굉장하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된 고목을 올려다보며 루시아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나는 뻗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이제 마나 포션이 필요 없다는 말, 믿을 수 있겠어?”
“……네, 네! 굉장하세요! 이렇게 굉장한 수준의 마법은 처음 봤어요!”
루시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 머리 위에 하트 마크가 뿅, 하고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방금 그건…… 호감도 상승 마크?’
게임을 하면서 익히 보아왔던 호감도 상승의 표식이었다. 설마 현실에서도 보일 줄이야.
“저, 저기. 다음에 꼭! 강의를 듣게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기대하고 있어.”
나는 근질근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루시아에게 대답했다.
사관학교 본관의 행정실.
“조금 늦으셨군요.”
원래 만날 시간보다 늦었기에 단정한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 교감이 살짝 언짢은 기색을 비쳤다.
“죄송합니다. 작은 만남이 있었던지라.”
크게 비중은 없지만 자잘한 이벤트에선 많이 뵙게 되는 사람이기에 나는 정중히 사과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학생과의 강의에서는 늦지 않도록 하세요.”
교감은 너그럽게 말했다. 인상은 무섭지만 꽤 착한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발령이니 많이 놀라셨겠지만, 명문 교수 가문의 당신이라면 훌륭한 지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99번 들었고 100번째로 듣는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특별히 신임인 당신에게는 가르치고 싶은 학생을 직접 결정할 기회를 드리지요. 일주일의 시간을 드릴 테니 학생들과 접해보고 리스트를 제출해주세요.”
“담당할 수 있는 최대 인원 같은 건 정해져 있나요?”
나는 버튼을 연타하다 실수로 묻곤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혹시 현실에선 다를지도 모르니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일단은 10명 정도가 적당하겠지요. 그 이상으로 할 자신이 있다면 더 받아도 좋습니다만, 무리하진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답은 게임과 똑같았다. 시스템상 별다른 차이는 없는 듯하다.
참고로 99회차에선 키울 생각도 없는 남자 유닛을 잔뜩 받고 첫 출격 이벤트에서 전부 죽여버렸다. 그리고 이후 영입 시스템을 이용해서 여자들로 가득 채웠다.
남자 유닛을 죽이는 게 미션이기도 했지만, 게임의 진행상에 내가 받지 않은 학생은 언젠가 적으로 나오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진행에 있어 편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인 지금 그런 짓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혹시 모를 엔딩 이후가 두렵다.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고. 당장 그런 짓을 한 뒤 이 교감과 마주하면 어떤 분위기일지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래도 이후 벽이 되는 유닛 몇몇은 죽여두거나 이용할 수 있게 해두는 게 좋겠군.’
물론 지금 생각하기엔 몹시 이른 이야기다. 지금은 차라리 루시아를 어떻게 구슬려서 먹을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기대는 어떤 의미로는 충족되고 어떤 의미로는 몹시 배신당할 것이지만.
나는 면담을 끝낸 뒤 느긋하게 학교를 돌아보았다.
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고 있었다.
벌써 대련장에서 훈련을 시작한 용병 출신의 성실한 학생도, 인맥을 중시하며 만남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조용히 책만을 읽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정말 엠블럼 레전즈의 대사관학교에 와 있구나.’
한 바퀴 둘러본 끝에 새삼 실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지도할 학생의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물론 남자 유닛은 고려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99회차만큼은 죽이진 않아도 결코 동료로 만들 생각은 없다. 아주 확고하다.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본 나는 교수의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도 책 몇 권과 옷가지가 전부였기에 딱히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꼭 예전에 훈련소를 끝내고 부대에 와서 더플백 푸는 것 같네. 실제로 사관학교니 군 관련 시설이긴 한가.’
물론 당연히 각방인데다 놓여있는 가구도 무척 고급이라 결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보다 이런 거랑 비교해도 덜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좀 쓴웃음마저 나온다.
‘어디, 침대는 푹신한가 볼까.’
나는 가장 중요한 가구인 침대의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푹신한 정도나 소음을 체크했다.
‘딱 적당히 푹신하고 삐걱거리지도 않네. 내가 쓰던 침대보다도 좋……’
“저, 실례합니다?”
한창 침대 위에서 몸을 들썩이던 중에 노크하며 문을 여는 소리와 동시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옆방을 쓰고 있는 라라아에요. 역사와 신앙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아아. 네. 먼저 찾아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은 소개대로 역사와 신앙의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 라라아였다.
‘그러고 보니 옆방이었지. 유닛이 아니라고 완전히 잊고 있었네.’
라라아는 키는 작지만 의외로 몸매는 좋은(특히 가슴이 크다), 부드러운 인상과 갈색의 허리까지 오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다람쥐같이 포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일까. 사관학교 편의 귀중한 성인 여성 중 하나다.
크게 인기는 없지만 왠지 동인지는 꼴리는 게 많이 나오는, 그런 캐릭터다.
“오늘 새 교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기, 선물이에요.”
라라아는 과자가 들어있을 것을 보이는 상자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드릴 걸 챙겨와야 했는데.”
“마음만으로도 기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라라아가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미소다.
“혹시 고민이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음 물어도 좋아요. 저도 아직 1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선배 교수니까요!”
“네. 곤란한 일이 있으면 찾아뵐게요.”
나는 웃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사실 이쪽은 벌써 100번째고 그 인사를 듣는 건 99번째라고 정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
직전의 대화를 끝으로 나와 라라아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서로 묘하게 우물쭈물했다.
“여기, 침대가 굉장히 푹신하죠? 무척 잠이 잘 와요.”
먼저 화제를 꺼낸 것은 라라아였다. 들썩이던 것을 들켰다 싶어 약간 민망해졌다.
“저도 여관이나 그런 곳에 가면 바로 침대부터 확인해요. 잠자리란 중요하죠!”
“음. 그렇죠. 침대가 중요하죠.”
라라아는 공감대라고 생각하는 듯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렇죠, 그렇죠 하는 라라아의 머리 옆에 호감도 마크가 떴다가 사라졌다.
사실 이쪽은 잠보다 다른 용도로서의 성능을 검증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학기의 시작은 다음 주다.
이번 주 주말에는 그에 앞서 입학생들의 스킬 등급의 측정이 이루어진다.
‘지금쯤 루시아는 어떤 기분일까.’
나는 한가로이 캠퍼스를 거닐며 생각했다.
게임을 막 시작했을 때 루시아의 등급은 어째서인지 검술이 C인 것을 빼면 전부 D의 최하 등급이었다. 유닛 설명에는 ‘대기만성형의 마법 유닛’이라 적힌 주제에 마력도 D였다.
‘오죽하면 DDD급이라고 까는 밈이 있었지.’
그런 주제에 주인공급의 주요 유닛 판정도 아니라 SSS급 달성도 불가능하다. 키우는 건 잉어킹급으로 힘든데 갸라도스만큼 강하지도 않다.
‘어제의 연습은 스킬 등급의 측정에 대비였던 건가?’
시험이 있는 주말까지는 이제 이틀이 남았다. 그사이 연습한다고 등급이 오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최저 등급인 D였으니까.
‘……한 번 찾아볼까.’
나는 아마 오늘도 연습하고 있을 루시아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루시아가 매번 연습하는 숲의 공터로 향했다.
숲을 지나 고목이 있는 자리로 도착했을 때,
“하아, 하아……. 큭, 콜록…….”
루시아는 땅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있었다.
“루시아!”
“하악……? 앗, 아. 어제 그 교수님…….”
내가 놀라서 이름을 부르자 창백한 얼굴의 루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뭘 얼마나 무리한 거야. 꼴이 말이 아니잖아.”
“그게, 죄, 죄송합니다.”
“일단 마셔.”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루시아에게 마나 포션을 건냈다.
“어, 어제도 받았는데 또 받을 수는…….”
“교수의 명령이야. 마셔.”
루시아는 거절하려 했지만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이내 조용히 마나 포션을 받아들고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마나가 보충되며 창백했던 루시아의 안색이 조금씩 편해졌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무리한 거야?”
“……저, 그게. 이대론 안 될 것 같아서요.”
루시아는 나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중얼 대답했다.
“이대로는 스킬 등급 측정에서 아주 나쁜 성적을 받을 것 같아서, 그게 불안해서…….”
“알겠어. 그러면 잠깐 있어 봐.”
나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겨 상태창을 소환했다.
루시아 lv.1
‘이 칭호는 언제쯤 바꿀 수 있을는지.’
나는 루시아의 능력치로 시선을 옮겼다. 익히 보아왔던 대로 엉망이었다.
레벨업의 성장치가 무척 높다지만 기본 능력치가 이래서야 그 레벨 1을 올리는 것도 몹시 힘들다. 죽기 직전의 적 근처에 살금살금 두었다가 막타만 치는 식으로밖에 키울 수 없다. 먼저 때리면 반격 데미지로 죽어버리니까.
‘그러면 스킬은 어떻지?’
보유 스킬
‘……역시.’
예상대로 게임 내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등급이었다.
“안 돼.”
즉, 지금 아무리 단련해도 루시아는 스킬 등급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네?”
“지금부터 아무리 단련해도 너는 등급을 올릴 수 없어.”
쓴소리를 하고 싶진 않지만 계속 이런 짓을 하게는 둘 수 없다.
“남은 경험치도 한참인데 이런 효율도 나쁜 방법으로는 절대 올라가지 못해.”
루시아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 죠. 그렇겠죠. 사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어요.”
그러고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억지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말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야?”
“……스킬 등급은 부모님에게 통지가 간다고 들었어요.”
내 질문에 루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대로 엉망진창인 등급을 받으면……. 저 하나만 믿고 없는 재산을 털어서 보내준 부모님에게,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루시아가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나는 지금의 루시아의 스킬 등급을 올려줄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벌써 이렇게 각이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방법이…… 있어요?”
루시아는 눈물을 닦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루시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랑 야한 걸 하면 돼.”
“……네?”
루시아의 눈이 재밌을 정도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