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방송국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로비에서 2층 홀로 올라가는 계단에 붙어있는 커다란 현수막이었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이자 ID 영상 문구.
NTO 채널을 잘 보지 않는 사람마저도 그들의 *ID 영상(*Identification; 로고송 등 라디오 및 방송국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10초 남짓의 짧은 영상 혹은 음성)은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한 문장이기도 했다.
‘생각하니까 환청 들릴 거 같네.’
“이정아, 올라가자.”
이정의 차기작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까지 대충할 수는 없는 일. 우재가 그를 안내했다.
“형, 여기 맞아요?”
“어. 제3 회의실이라고 했어.”
아무런 표식도 없는 회의실에 이정이 의문을 표하던 도중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그럼 갔다 올…!”
“안녕하세요. 오늘 오디션 건으로 만나 뵙기로 한 이이정입니다.”
안쪽으로 열린 문에서 튀어나온 스태프와 부딪힐 뻔한 이정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침착하게 인사했다.
“어, 어어….”
“여기 드라마 회의실 아닌가요?”
그러나 이정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스태프의 모습에 우재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 말에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몸을 휙 돌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P… PD님! 정 PD님! 이이정 씨 오셨어요!”
“뭐? 진짜로?”
“잘못 본 거 아니고?”
“지금 회의실 문 앞에 있다니까요?”
눈앞에서 닫힌 회의실 문밖으로 안에 있는 스태프들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약속 잡은 거 아니었어요?”
“분명 잡았는데? 오늘 두 시 제3 회의실.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약속하고 왔음에도 다소 격한 반응에 우재가 다시 한번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틀림없이 오늘이 맞았다.
“맞아. 잘못 온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저래요?”
“나도 모르지….”
어리둥절한 것은 이정과 함께 온 우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다른 사람 캐스팅했는데 연락 누락됐나?”
“그거 형 희망 사항이죠.”
“응.”
이정과 우재가 회의실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안쪽에서 뭔가가 넘어지는 듯한 큰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드,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조금 전 이정과 부딪힐 뻔한 스태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문을 연 것이었다. 굉장히 긴장한듯한 그녀의 모습에 이정이 살짝 묵례로 화답했다.
“극본의 윤아름이에요.”
단순히 스태프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정체는 의 극본을 맡은 작가였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특이하게 뒤집어 놓은 니은의 형태로 꺾여있는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안녕하세요. 의 연출을 맡은 정혁입니다.”
“조연출 심손웅입니다.”
“총괄 PD님도 오신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회의가 잡히시는 바람에 오늘은 이렇게 셋만 오게 됐네요.”
나머지 두 사람이 차례대로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다. 출연 확정도 아니고, 오디션일 뿐인데 주요 스태프들이 전부 모여 이정을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희는 오늘 조연출님만 뵙기로 했었던 거 같은데….”
“아, 그게,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까. 네. 다들 이정 씨를 뵙고 싶어 하는 바람에…. 아니, 죄송합니다.”
딱히 탓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횡설수설하던 조연출 손웅이 이내 사과로 말을 마쳤다.
“저, 저희 NTO하고는 처음이시죠?”
시원시원하게 생긴 인상과 달리 긴장한 듯 손을 떠는 정 PD가 이정에게 물었다.
“네. 처음입니다.”
정 PD의 손을 맞잡은 이정이 순간 어이없어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봤던 PD는 이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정이 기억하는 의 PD는 좀 더 키가 작고, 머리숱이 없고, 통통했다. 조연출까지는 확실치 않지만, 작가 역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네요. 일단 앉으시죠. 저희는 사실 이정 씨가 안 오실 줄 알고….”
단순히 얼굴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윤아름과 달리 그가 기억하는 의 작가는 남자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성별까지 잘못 기억하고 있을 리가.’
사고 이후 몇 번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외향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구성의 스태프들에 이정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정 PD! 아직도 건 우리한테 안 넘겼어? 최 작가님이 기다린다니까? 라이징 스타가 퍽이나 그쪽 팀으로 가겠다!”
그 순간, 누군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PD님, 저희 팀 손님 와 계셔요! 막 들어가시면 안 돼요!”
“손님? 누구?”
그 소리에 손웅이 재빨리 달려나가 그를 만류했다. 문을 열면 보이지 않는 안쪽에 있어서인지 누가 왔는지는 모르는 듯했다.
“이 PD님!”
“어라?”
막무가내로 손웅을 밀고 들어 온 PD의 얼굴이 익숙했다. 이정이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PD였다.
“이이정이 진짜 왔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약속 잡았다고.”
“아니, 나는 당연히 시간 끌려고 하는 거짓말인 줄 알았지. 신인상까지 받은 배우가 뭐하러 정 PD나 윤 작가 같은 사람들이랑 드라마를 해?”
장본인인 이정이 앞에 있던 말던 제 말만 하는 그의 모습에 손웅이 곤란한 듯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 PD의 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PD님!”
“아, 깜짝이야! 심 연출!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이이정 씨도 알건 알아야지. 한참 중요한 시기잖아? 아니면 뭐, 저쪽이 먼저 미팅하자고 했다는 것도 뻥이야 설마?”
아무래도 회귀 전 의 촬영이 시작되고 이정의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지, 당장 끌고 나가도 할 말 없는 무례함에도 세 사람 모두 입술만 깨물 뿐 별다른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 관련으로 제가 먼저 미팅 약속을 잡은 것은 맞습니다. 누구시죠?”
정확히는 1:1 오디션 요청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 PD는 그들이 캐스팅에 실패한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어, 그게….”
이정이 먼저 나서서 확실하게 제가 먼저 연락한 것이라 못을 박자 줄곧 회의실의 스태프들을 비웃던 이 PD가 말을 더듬었다.
“아까 말씀하셨던 총괄 PD님이신가요?”
“아, 아뇨. 이분은 같은 드라마국 소속 이상욱 PD님이세요.”
그가 PD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묻자 손웅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소개했다.
“오늘 미팅은 드라마 관련해서만 뵙기로 했었던 것 같은데 다른 PD님이 어쩐 일로…?”
상황이 이상하다는 게 뻔히 보이니 우재 역시 일부러 모르는 척 이 PD에게 물었다.
“큼, 내가 맡게 될 수도 있는 거라….”
“캐스팅만 맞추면 제가 맡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이 PD의 말에 가만히 있던 정 PD가 결국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다.
‘촬영 직전에 PD가 바뀌었던 건가? 돌아가는 꼴이 좀 이상한데.’
분명 은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 차지할 만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당시 배우들도 지금의 이정보다도 못한 신인, 혹은 중고 신인 수준이었고 드라마의 연출 역시 그리 호평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칭찬받았던 것이 극본이었는데 이 역시 초반 몇 화 이후로는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너져 결국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망했을 드라마라고 평가받곤 했다.
“두 분 다 배우님도 계시는데 여기서 언성 높이지 마시고….”
“큼, 그러게 정 PD는 예의도 없어.”
“하아…. 죄송합니다. 이이정 씨.”
게다가 제작 전에 스태프가 바뀌는 일은 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지 이렇게 캐스팅이 확정되지도 않은 배우 앞에서 소리 높여 싸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정에게도 뻔히 보이는 것을 우재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의 대본이 마음에 든다는 저희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 잡은 미팅 자리에서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우재가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한 대접까진 필요 없지만, 차분히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상황도 안되는 것 같네요.”
이정은 회귀 전 그가 알고 있던 정보와 지금 눈앞의 상황을 끼워 맞춰보느라 그들의 무례함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우재는 단순히 예의 없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현 상황이 굉장히 불쾌한 듯했다.
“죄송하지만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꾸벅 인사한 우재가 이정을 끌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이 드라마 마음에 안 든다고 했…!”
“형 잠깐만. 여기 보는 눈 많아.”
아름이 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도 안쪽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형편없는 방음이었다.
그 말인즉, 이정이 있다고 해서 그 방음이 갑자기 효과가 좋아질 리가 없으니 이 복도를 지나가는 모두가 안의 대화를 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휴…. 그래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그리고 이정의 말대로 복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이정과 우재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매니저님, 이정 씨!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