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73
073화
그렇게 두 배의 회의 시간과 두 배의 예산을 얻어낸 이정은 민영과 혜원의 환호를 받으며 자리로 복귀했다.
“와, 막내 작가님이 신기록 세우셨을 때만 해도 어떡하지 싶었는데 그걸 이겼네요. 대단해요. 이정 씨.”
“그러니까요. 손 몇 번 휘리릭 하니까 큐브가 짠! 너무 신기해요.”
“오랜만에 만진 거라 생각보다 기록 안 나왔는걸요.”
“이겼으면 됐죠!”
이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판매할 물품을 정하고 재료를 사러 가는 것.
“아, 참고로 두 팀이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건 안 됩니다~ 먼저 정하시는 팀이 선점하는 거예요.”
“헉, 빨리 정해요. 우리!”
이정과 혜원, 민정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영찬 팀은 이미 회의를 시작했기에 그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뜨개질 같은 건 힘들겠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제 곧 날씨도 따듯해지잖아요.”
“수세미는 어때요? 손에 익기만 하면 빨리 만들 수 있다는데.”
“그것도 괜찮은데 좀 다른 건 없을까요?”
세 사람은 미리 생각해왔던 제품들을 비교하며 제작 난이도나 시간 등을 따져보았지만, 확실히 이거다 싶은 제품은 없었다.
“5분 남았습니다!”
스태프의 신호에 그들은 결국 이제껏 나열했던 것 중에서 만들 제품을 고르기로 했다.
“이정 씨 생각은 어때요? 뭐가 제일 나을 거 같아요?”
“꼭 한 가지만 만들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여러 개 선택해서 조금씩 다양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요? 타겟층도 넓히고, 한 손님이 여러 개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좋네요.”
이정의 말에 그들은 최종 후보였던 다섯 가지 중 세 가지를 골라 판매 물품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이렇게 세 개 어떠세요. 다들?”
“좋아요.”
“좋아요. 그걸로 해요.”
“회의 시간 종료! 팀장들은 각자 종이에 판매할 물품을 적어서 내주세요!”
때마침 회의 시간이 종료되고 이정은 재빨리 종이에 물품을 적어 제출했다.
“두 팀 겹치는 건 없네요. 이제 준비된 차량 타고 각자 재료 사러 출발하세요.”
메모를 쓱 읽은 윤 PD가 얼른 출발하라며 그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가요?”
“예예, 출발해서 가는 길에 VJ들한테 설명 듣고, 진행하고, 알아서 퇴근들 하세요. 저는 그럼 스튜디오 촬영본 편집하러 갑니다~”
영찬이 이렇게 앞뒤 없이 출발하냐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윤 PD는 편집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스튜디오를 떠날 채비를 했다.
“아, 그래도 아까 이정 씨가 분위기 좀 살려줘서 스튜디오 컷 좀 더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예 오프닝만 따야하나 했는데. 수고했어요. 이정 씨.”
스튜디오를 떠나려던 윤 PD가 몸을 돌려 이정에게 감사를 표했다.
“막내 작가님 덕분인걸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큐브 만지느라 즐거웠습니다.”
이정이 막내 작가에게 슬쩍 눈인사하자 그녀가 화답했다. 만약 그녀가 큐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예 성사될 수 없는 그림이었으니 사실상 공로는 그녀의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혜원 씨, 아까 화내서 미안해. 그쪽 PD놈 제멋대로 순서 바꾸고 그러는 거 뻔히 아는데 아깐 순간 짜증이 확 났네.”
“아니에요. 제가 늦은 게 맞는걸요. 아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사과도 못 드렸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잠깐 언성을 높였던 혜원에게 직접 사과하며 꽤 누그러졌던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역시 윤 PD. 내가 그래서 윤 PD를 좋아한다니까?”
“저 진짜 바빠요. 갑니다.”
영찬이 윤 PD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자 그는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윤 PD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렇지 선후 관계가 확실해서 다짜고짜 뭐라 하는 경우는 잘 없어. 사람이 참 괜찮거든.”
영찬은 그 탓에 이렇게 스페셜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것 아니겠냐며 윤 PD를 칭찬했다.
“우리도 이제 가 볼까요? 흰색 차는 우리 팀이 탈 테니까 검은 차는 이정 씨 팀이 타요.”
“네.”
다시 MC모드로 돌아온 영찬이 그들을 이끌었다. 그의 말대로 스튜디오 밖 주차장에는 팀이 나눠서 탈 수 있을 만한 밴이 준비되어있었다.
“어…. 그런데, 면허 있으신 분?”
자연스럽게 영찬이 운전대를 잡은 영찬 팀과 달리 우선 이쪽 팀의 리더인 이정은 면허가 없었다.
“이정 씨 면허 없어요?”
“네. 전엔 필요가 없었고 근래엔 시간이 없어서….”
운전지식은 충분하니 날 잡아 시험만 보면 되는 일임에도 근래엔 계속 우재가 운전하는 차만 타고 다니는 바람에 면허를 따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고 있었다.
‘ 시작 전에는 꼭 따야지. 꼭.’
“그럼 제가 운전할게요.”
“운전 괜찮으세요?”
“엄청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혜원 씨도 면허 없죠?”
“네. 저 아직 나이가 안 돼서.”
“진짜 어리구나. 부럽다.”
결국 이정 팀의 운전은 민영이 맡게 되었다. 민영이 운전석, 이정은 조수석, 그리고 혜원을 비롯한 VJ가 뒷좌석.
모두가 차에 타고 가장 가까운 도매상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재료 사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혜원의 물음에 VJ가 엽서만 한 카드 몇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우선 설명하기 전에, 이 규칙 카드부터 뽑아주세요.”
“그냥 사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
“네. 아닙니다.”
혜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지만 그들의 담당 VJ는 단호하게 X자를 그렸다.
“물품 구매할 때 뽑은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무슨 페널티요?”
“규칙 카드에 쓰여있으니 읽어보세요.”
혜원이 민영과 이정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냥 혜원 씨가 뽑아요.”
“맞아요. 저는 운전 중이고 이정 씨는 안전벨트 매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뽑아요.”
“혜원 씨의 운을 믿을게요.”
이정의 말에 혜원은 더욱 부담이 된다며 손을 떨었다.
“저 완전 똥손이라 이런 거 뽑으면 꼭 최악인 거 뽑는데 진짜 괜찮을까요?”
“그것도 재미죠 뭐.”
이정의 태연자약한 반응에 혜원이 용기를 얻고 카드를 뽑았다.
“악!”
“왜요? 뭔데? 뭔데?”
“이럴 줄 알았어요. 완전 큰일 났는데 어떡하죠?”
“안보이니까 읽어줘요.”
힐끗힐끗 룸미러를 쳐다보던 민영이 혜원의 이어진 말에 경악했다.
“재료를 구매하러 간 상점에선 15분 내로 나올 것. 한번 들어간 상점에는 재방문 금지.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이 여러 개일 경우 품목당 네 상점 이상 방문 금지.”
“혜원 씨 진짜 똥손이구나.”
“제가 말했잖아요!”
“어떡하냐. 이정 씨가 벌어다 준 돈 다 쓰지도 못하겠네.”
그들이 고른 제품은 3가지. 단순 계산으로 더해봐도 3가지 상품의 재료 모두를 구매하는데 3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으악 진짜 죄송해요.”
혜원의 석고대죄에 이정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요? 괜찮은데?”
“괜찮다고요?”
“네. 딱히 문제가 될 거 없지 않아요?”
순간 빨간불에 차가 멈춰서고 세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
“음?”
“예에?”
뭔가 대화가 맞지 않는 느낌에 이정이 둘을 둘러보자 역시나 둘은 얼굴 한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두 분 다 가서 쇼핑하실 생각이셨어요?”
“그럼요…?”
“가서 보고 살 거 아니었어요?”
실제 예능의 장면이었다면 물음표가 미친 듯이 떠다닐법한 모습이었다.
이정은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그들에게 한마디를 더했다.
“핸드폰으로 보고 가서 찾아오기만 하면 되잖아요?”
“아?”
“재료는 최대한 빨리 고르고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니까 저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정이 보여준 화면에는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도매상가의 온라인 쇼핑몰이 떠 있었다.
그 속에는 그들이 사야 하는 여러 부자재가 카테고리별로 묶여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아까부터 그거 보고 있었던 거에요?”
“네.”
차에 탄 직후부터 죽 핸드폰만 보고 있던 그에게 의문을 가졌던 민영이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다른 도매상까지 가려면 시간 분배도 잘해야 하고, 이왕이면 오늘 세 가지 제품 다 만들어보는 게 좋잖아요.”
“오늘 만들어보기까지 할 거였어요?”
혜원까지 이정의 계획을 놀라워했다. 이정이 그런 그들의 반응에 본인이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생각했나 싶어 의아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매번 만나서 만들 수도 없고 판매 날까지 대부분 각자 떨어져서 만들어야 하잖아요.”
제조의 초짜들이지만 가장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분업. 이정은 그중에서도 서로가 그나마 잘하는 제품을 맡는 것이 가장 능률이 높을 거라 예상했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몰아주려면 일단 뭘 잘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건 그렇네요.”
“이정 씨 방금 뭔가 큐브 휘리릭 할 때랑 비슷했어요.”
운전 중인 민영은 차마 이정을 바라보지 못하고 칭찬했다.
“어쨌든, 15분 룰은 방문만 포함되는 거니까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픽업하는 건 제외죠?”
“어, 그게, 카드 내용으로만 보면 그렇긴 한데.”
온라인 주문은 택배만 생각했던 VJ가 식은땀을 흘렸다.
규칙 카드에 쓰여있는 것은 가격을 직접 묻지 않기, 사장님이 특정 단어를 이야기할 경우 무조건 사기 등 여러 제약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상점 방문 시간을 제약하는 건 혜원이 뽑은 카드가 유일, 즉 꽝 중에서도 꽝인 아이템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저희 도매상 근처에서 잠깐 뭐 좀 먹으면서 고르죠. 핸드폰마다 색감이 좀 다를 수 있으니까 제 핸드폰 말고 다른 거로도 확인해 봐야 하거든요.”
이정과 민영, 혜원은 그렇게 도매상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핸드폰으로 색감을 비교해 부재료를 선택했다.
“이 색보단 이게 더 나을 거 같지 않아요?”
“이게 올해의 컬러라서 그런 쪽으로 홍보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럼 그 색으로 하고, 다른 색도 하나 더 고르죠.”
회의 때 미처 정하지 못했던 색상 등도 핸드폰 속 사진을 보니 좀 더 쉽게 고를 수 있었다.
“금방 준비된다고 연락 주신대요.”
“세 번째 제품 재료도 구매 완료. 1시간 뒤에 찾으러 오래요.”
“여기서 재료 받고 넘어가면 딱 맞겠다.”
이정 팀의 주문이 확정되고, 바쁘게 그들을 쫓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담당 VJ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를 만끽했다.
프로그램이 갑작스레 조기종영하게 되고 며칠 동안 밤을 새웠던 그에게는 꿀 같은 휴식이었다.
“VJ님 뭐 더 드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러면 이정 팀 분량이 너무 적지 않을까요?”
“저희는 만드는 게 더 재미있으실걸요?”
졸지에 연예인들 대신 분량 걱정을 하던 VJ는 이정의 말에 슬쩍 그들이 주문한 주문목록을 살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뭐 만드실 건데요?”
“비밀입니다!”
“어, 찾으러 오래요!”
“이제 저희 규칙 지키나 안 지키나 잘 보세요.”
이정 팀은 그렇게 상점당 10분도 머무르지 않고서도 알뜰하게 서비스까지 챙겨 점포를 나왔다.
“재료 쇼핑 끝!”
운전 두 시간, 카페에서 한 시간 반, 그리고 물건을 받는데 걸린 시간 총 30분.
도합 4시간 만에 이정 팀은 세 가지 재료를 모두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정 팀은 벌써 끝났다고요?”
영찬 팀이 만들기로 한 두 가지 제품 중 한 가지 제품의 재료를 겨우 다 구매했을 때 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