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요이델은 바깥 상황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암살자나 침입자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레일루스, 이리 와.
그의 당부대로 마법으로 레일루스를 불러들였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 달라고 했으니까…… 여긴가?
그래도 침실에 조랑말을 데려오는 건 아닌가?
“너는 이상하게 말은 잘 듣는군.”
“언제 깼어요?”
“히이잉!”
그때 레일루스가 요이델에게 다가와 툭, 머리를 기댔다.
“네가 시끄럽게 굴어서 잠이 안 와.”
“에취!”
“알러지가 있나?”
“야생 동물한테요. 레일루스는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야생에서 데려온 게 맞으니까.”
그는 선물받았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부모를 보면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살가워 보이지 않기는 했다.
“죽어 가던 걸 데려왔지. 너처럼 무리에서 떨어진 어린 말이었다.”
“전 자진해서 떨어진 거라니까요!”
발끈했지만 한편 감탄했다. 자기보다 더 어린 말을 돌보는 작은 성하라니.
그때는 설명하기 싫어서 선물받았다고 했나 보다. 어쩐지 너무 솔직한 어린 성하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방에는 약품이 꽤 많았다.
‘플로테스가 아팠을 때도 말했었어. 성하도 어릴 때는 자주 아팠다고.’
그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그런데 너, 아까 한 마법. 그게 무엇이지?”
“아, 세례용 축복 마법이요?”
“세례? 자격은 있나? 내게 해될 짓을 한 건 아니겠지.”
“휴, 들켰네요. 사실 착해지게 하는 마법을 걸었어요.”
그 말에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이델을 째려봤다.
“세례 마법의 근원은 뭐지?”
“축복 마법이에요. 신관이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 해 주는 거요. 저도 받았죠.”
“너도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들 중 하나였군.”
“성하가 거기 대장이시거든요?”
“뭐?”
율리시스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무리 들어도 믿기지 않아. 내가 그런 걸 왜 해?”
“왜냐하면…….”
요이델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키베르크는 성하가 ‘부모를 죽이고 대신전을 세웠다’고 했으니까.
“아니에요, 그보다 푹 쉬세요.”
이불을 걷어찬 그에게 다시 이불을 돌돌 말아 주었다.
“내가 연약해 보이나.”
“강해도 아플 때 쉬는 건 당연하죠, 뭐가 이상해요.”
“우스운 위로 따위 하지 마라. 나를 싫어하는 이들은 나를 반쪽짜리라고 부르는 거, 나도 알아.”
휙!
요이델은 그의 고개를 잡고 돌렸다.
“누가 그런 나쁜 소리를 해요?”
“다들.”
“성하…….”
“너도 그렇지 않나.”
“아니에요! 성하가 왜 반쪽이에요. 성하는…….”
챙!
그 순간 유리가 깨지고 살기가 느껴졌다.
―끼애액!
마수?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괴상하게 생긴 마수는 커다란 날개로 밀고 들어와 율리시스의 머리를 노렸다.
팡!
재빨리 판단한 요이델은 그를 안고 굴러 몸을 피했다.
“위험해요!”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익숙한 일인 듯 무표정했다.
저런 마수가 자주 습격하는 삶이면 성격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잖아. 율리시스의 안전을 확인한 요이델은 마수가 끼애액, 하며 일어나는 걸 봤다.
“레일루스, 이리 와!”
“히이잉!”
순식간에 마법진을 친 요이델은 레일루스에게 향하던 마수의 발톱을 무참히 부숴 버렸다.
-끼애액! 캬악!
더 크게 분노한 마수가 눈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켰다. 쉴 틈도 없이 바로 그들을 향해 돌진한 그 순간―
촥!
“하아, 하…….”
재빠르게 마법을 날린 요이델의 움직임으로 마수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괜찮나?”
“성하는, 다친 곳 없어요?”
다행히 그는 멀쩡해 보였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
숨이 찼다. 그래도 레일루스가 죽지는 않았어.
요이델은 두 명의 목숨줄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했다. 저도 모르게 손이 벌벌 떨렸다.
“너는 남을 죽여 본 적은 별로 없구나. 떨고 있어.”
“그런 건 제 담당은 아니에요.”
“그렇게 생겼다.”
숨을 몰아쉰 요이델은 자신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이 옅어지고 있어!’
돌아갈 시간이 된 건가? 요이델의 손을 본 율리시스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넌 정말 외부의 인간인가?”
“성하.”
요이델은 급하게 그를 불렀다. 마법이 끝나기 전에 그를 깨워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성하의 잘못만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미래에 어떤 소문이 흘러도 말이다.
“그리고 왜 반쪽이에요, 성하는 성하인데. 누구보다도 완전하다고요.”
“…….”
“성격은…… 타고난 기질이 크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반쪽도 아니고요. 세상에는 인간 외 종족이랑 사는 사람도 많고, 타국 사람들과 아이를 낳거나 다른 가문이랑 엮이기도 하는걸요. 다 반반이 섞이지, 순혈이 어디 있어요? 그게 더 이상하다고요.”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기분을 잔잔하게 만들 치유 마법을 걸었다.
“이거 나쁜 마법 아니에요!”
그가 싫어하기 전에 재빠르게 말했다. 율리시스는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성하는 절대, 절대로 반쪽이 아니에요. 저에게 이런 마법도 알려 주셨는걸요.”
“내가, 너에게?”
“당연하죠. 치유 마법을 재정의하고 정비한 것도 전부 성하가 한 거예요. 그리고 착한 일도 꾸준히 한다고요. 비록 대예배당에서 흡연은 하지만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군.”
“칭찬이에요.”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성하가 없었으면 저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성하는 몇 번이나 저를 살려 주신걸요.”
율리시스는 침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구길래 모르는 인간 주제에 멋대로 안아 주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심장 소리가 두근두근 들리는 게, 꽤 나쁘지 않은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의 심장 소리를 듣긴 처음이었다. 이렇게 안아 준 누군가가 없었으니까.
“원래 인간들은 너처럼 따뜻한가?”
“네?”
“아닐 텐데. 보통 인간들은 욕심이 많아.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 것처럼.”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시무룩하게 잦아들었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가족을 원망했어. 그것만 아니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그는 피식 웃더니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사랑이란 건 멍청한 생각이야. 네가 보기엔 어떻지? 어머니의 옛 연인이 정말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어리다고 보기에는 어른보다도 냉정하고 지독할 만큼 무서운 낯빛이었다.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아서 섬뜩했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만큼인 거다. 어머니도 그 연인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가문의 압박을 저버리고 도망가지는 못했어. 그 남자도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지.”
“…….”
“그들도 그걸 알아. 하지만 그 하잘것없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탓하며, 사랑의 방해꾼만 없었다면 완벽히 이루어졌을 서사라고 착각을 하지. 우스워. 모든 것을 포기하기는커녕, 그 하나를 얻고자 저버려야 했던 것들을 두려워한 거다. 그런 주제에 남 탓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유약하지.”
냉정하게 평가한 그는 시선을 천천히 요이델에게로 옮겼다. 그는 삐뚜름하게 요이델을 올려다봤다.
“결국 사랑이라는 건 그 정도의 감정이다.”
“…….”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줬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율리시스의 노기가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그는 또 상처받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했다.
“나는 아버지 같은 부류는 되지 않을 거다. 그도 똑같아. 굳이 필요 없는 혈육이라면 애초부터 남기질 말았어야지.”
새파란 눈에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가득했다.
“절대 그런 아비는 되지 않을 거야. 피를 남겨야 하는 의무감에 결혼하지도 않을 거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율리시스의 무의식 공간이 무너졌다.
“아니에요, 성하. 특별한 피 때문이 아니더라도 성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요.”
“웃기네. 너도 나를 성하라고 부르잖아.”
“그건, 성하가 성하셔서…….”
작은 율리시스는 분한 듯 묘하게 슬픈 눈으로 요이델을 붙잡았다.
옷자락을 쥐고 어쩌지도 못하고 올려다보는 모습이 그저 어린아이 같아서, 요이델은 그를 뿌리칠 수 없었다.
“성하 싫어. 왜 나만 성하야. 넌 다른 사람한테는 이름 불러 주면서, 애칭까지 짓고 하하호호 재밌지? 그런데 왜 나만 성하라고 하냐고. 그게 내 이름인 건 아니잖아.”
그는 요이델을 붙잡고 말하다 문득 멈칫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애칭?”
율리시스의 무의식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스스로 혼란스러운 듯했다.
아직 과거의 비중이 큰 무의식 속 세계였으니까. 이렇게 어리니까.
“네 말대로 내가 성하고 신관들의 왕이면, 그러면 어차피 다들 내 부모의 피만 보고 숭상한다는 거 아니야. 나는 커서도 혈통만 소용 있는 사람인 거야?”
율리시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너도 다른 인간들이랑 똑같아. 내 피를 원하는 거지.”
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저는 그냥 율리시스 님이라서 좋아요.”
“…….”
“별로 착하지 않은데 성직자인 것도 율리시스 님답고, 내키지 않은데 천 년 넘게 성국을 유지해 온 끈기도 존경해요.”
요이델은 그를 바라보며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러니까, 저랑 밖으로 나가요.”
“…….”
“밖에 성하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핏줄 때문이 아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성하를 좋아해요.”
“…….”
“저랑 가요, 율리시스 님.”
요이델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던 율리시스는…….
그 손을 맞잡았다.
━━━━⊱⋆⊰━━━━
“왜 깨어나시지 않는 건지…….”
밖에 있던 신관들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지 반나절이나 됐다. 강제로 마법을 해제해야 하는가? 둘 다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바로 그때.
쾅!
강한 빛이 터지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신관들은 눈을 감았다.
그 힘을 느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성궁 밖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목도했다.
“아, 아니, 무슨 일이지?”
“성하께서 계신 성궁에서 빛이 폭발했다! 위험해! 당장 저쪽으로 가 봐!”
“그렇지 않아. 이건 위험하기보다는…… 무척 신성한 힘 같습니다만…….”
“다들 느꼈군요.”
대신전 내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성궁을 향해 다가갔다.
“어머나, 저게 무슨 빛이지?”
때마침 대신전에 올라온 인상 좋은 백발의 노인도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올가 님! 가방을 놓고 가셨습니다!”
“아, 내 정신.”
올가라 불린 여자는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그 와중에도 어쩐지 아까 그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세례식이 완전히 폐회되지 않아서 아직 머무르던 외부 사람들도 그 모습을 봤다.
그러나 가장 놀란 건 율리시스의 곁을 지키고 있던 원로들이었다. 그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경악보다는 경외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성하…….”
신관들이 그를 부르자 율리시스가 평온한 낯을 들어 이전과 똑같은 얼굴로 좌중을 훑었다.
“그분은 누구십니까?”
“혹시…….”
율리시스는 지쳐서 잠든 사람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돌보기라도 하듯이.
“방금 그것은 분명한 반려의 파장이었습니다!”
원로들이 숨기던 걸 다른 신관이 입 밖에 냈다. 그들조차 느낄 정도로 강렬한 힘이었다.
힘이 터질 때 절로 부서진 유리창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율리시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잠든 요이델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그의 손에는 조각나서 깨진 요이델의 환각 마법 반지가 들려 있었다.
완전히 망가졌다.
그리고 그의 마음으로 요이델의 기분이 느껴졌다. 페어링을 통해 감정까지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한 단계 더 깊어졌다.
그래서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단순히 수면 중이란 걸 알았다.
“머리가 왜…….”
“방금까지 요이델 신관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 골격은 마치…….”
모두들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율리시스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기에.
“반려시여.”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신관들이 파도처럼 앞에서부터 엎드려 머리를 숙였다.
또 한 명의 주인에게 하는 복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