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이건 어떻습니까?”
성에 도착한 휘르무트는 성을 안내해 주겠다며 정신없이 요이델을 끌고 다녔다. 그는 마치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처럼 들떠 보였다.
“올가 님, 차기 수장님은 고향에 온 게 무척 기쁘신가 봐요.”
“저도 저분이 집을 이렇게까지 좋아하시는 줄 몰랐군요…….”
요이델이 몰래 속삭이자 올가도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그들은 메디아의 비경이라고 불리는 왕성 내 숲에 있었다. 이상한 건 그가 직접 안내를 한다는 점이었다.
성은 숲과 산을 끼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광활하고 띄엄띄엄하게 지어져서 각 성 사이의 거리가 굉장했다.
휘르무트는 차기 수장인 만큼 분가하지 않고 성에 살았지만 그의 거처와 본성이 너무 멀어서 웬만한 일이 아니면 본성에 잘 가지도 않았다.
사실 성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에 본인의 성에도 잘 머물지 않았고.
그런데 자처해서 안내라니.
“혹시 수장님들은 이곳에 안 계시는 건가요?”
그때 요이델이 궁금한 듯 살짝 물었다.
“수장님을 보고 싶으세요, 아가씨?”
“저는 아가씨가 아니라니까요, 올가…….”
“제 일생일대의 부탁입니다, 아가씨.”
“네?”
“실은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답니다. 그런데 신관님께서 제 옛 기억 속의 누군가와 닮아서, 이렇게 아가씨라고 조금씩 불러 보면 더 많은 게 생각날 것 같은데…….”
올가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이해하기 힘드신 부탁인 것은 알지만, 부디 아가씨라고 부르는 걸 허락해 주시길 바라요.”
“정말 이런 걸로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무척 되고 말고요.”
잠시 고민하던 요이델은 밝게 웃었다.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아가씨라고 불러 주세요. 저는 좋아요! 올가님에게 부담이 되지만 않는다면요!”
“기억이 퍼뜩 돌아올 것 같아 힘이 생기는군요.”
올가는 요이델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여전히 마음씨가 상냥한 아가씨. 정말 잘 자라서 다행이다.
예전처럼 앙상하지도 않고 피부도 좋았다. 멍할 때가 많거나 말이 조금 느리다거나 하지 않고, 병난 곳도 없어 보이고 표정도 밝다.
기특함에 목이 메었다.
“저, 올가 님? 죄송한데 손을 너무 꽉 잡으시는 것 같아요.”
“아이고 세상에, 제 정신 좀 봐요.”
요이델은 요즘 올가의 눈빛을 보고 의문을 느꼈다. 그녀가 왜 자신만 보면 가엾다는 눈빛을 할까?
얼마 전, 자신과의 티타임 자리에서 기억을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뭐냐고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성하는 남의 기억을 보는 게 가능하다고.
‘그런데 그 이후로 특이해지셨어. 기억이 조금씩 나면서 성격도 바뀌시는 걸까?’
“메디아의 토끼입니다!”
그때 들린 큰 외침에 화들짝 놀라 앞을 보았다. 휘르무트는 흰색과 분홍색 털이 섞인 귀여운 토끼를 안고 요이델에게 보여 주었다.
“에취! 메디아에는 신기한 동물들이 많습니다. 어떠십니까?”
“콜록, 지, 진짜 토끼네요.”
“……이제는 별로 안 좋아하십니까?”
눈이 충혈된 휘르무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눈썹이 처진 그는 무척 실망한 기색이었다.
“이제는, 이라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다 큰 성인이시니 이런 소동물에게 관심이 없는가 하는 뜻입니다. 워낙 여성분들의 마음을 모르고 스스로 말하기 멋쩍지만 숫기가 없는 편이라……. 제가 아는 분이라고는 요이델 님뿐이셔서 궁금했습니다.”
“아아, 아니에요! 귀여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걸요. 그냥 제가 알레르기가…… 에취, 있어서 표정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재채기를 번갈아서 하며 둘은 코를 빨갛게 물들였다.
‘음?’
올가는 그를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숫기가 없는 사람은 저런 말을 못 한다. 게다가 그를 스쳐 지나간 연인을 세면 양손이 넘어가는데 무슨 말이지? 뭘 모른다고요?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성격이 바뀐다던데…….
도련님, 혹시 곧 죽을 예정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는 안 된다.
아가씨의 짝을 굳이, 꼭, 어쩔 수 없이 찾는다면 난봉꾼보다는 지나치게 절개를 지킨 성하 쪽이 낫다.
올가는 눈을 홉떴다.
“그런데요, 저희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요이델이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까부터 계속 비슷한 곳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인데, 그렇지 않나요? 여기도 숲이고 저기도 숲인데 저희는 한참 걸어왔잖아요.”
“아하하, 아가씨. 이곳이 전부 성이니까 당연하지요.”
“네? 숲 입구에서부터 한참 걸어왔는데 아직이요?”
요이델의 경악에 토끼가 깜짝 놀라 깡충깡충 숲으로 뛰어가 버렸다.
“성국의 일행분들이 계신 곳은 본성이고, 이쪽은 휘르무트 님의 거처로 가는 길인 셈이지요. 원래는 걸어가기 힘들어서 마차를 타고 다니지만요.”
“아, 그래서 저쪽에…….”
요이델은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거기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따라오는 휘르무트의 부하들이 보였다.
“구경시켜 주시려고 데려와 주신 건가요? 괜찮으니까 마차를 타도 돼요.”
“마차?”
그때 휘르무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리가 아픕니까? 생각을 못 했군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숨기지 말고 제대로 말해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무릎이 아픕니까? 아니면 발목? 혹시 찌릿한 통증은 없습니까? 걸을 때마다 관절에서 어긋나는 소리가 난다든가, 발바닥이 아프다든가, 아니면…….”
줄줄 내뱉은 그는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당장 마차는 없으니 일단 안고 가겠습니다.”
“꺄악! 아니에요, 그런 건 정말 필요 없어요!”
“……그럼 목마?”
“네? 무,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이상하다……. 분명히 목마를 좋아했는데.”
휘르무트는 중얼거리며 요이델을 올려다봤다. 제법 체격이 장대하고 차갑게 생긴 그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시무룩하게 앉았다.
그는 이마를 쓸면서 한숨 쉬었다.
“좋아했던 게 또 뭐가 있지……. 맞는데, 토끼랑 목마랑 산책이랑 다 좋아했는데. 왜지…….”
‘이상한 사람 같아.’
요이델은 흠칫 뒤로 물러났다. 나쁜 건 아닌데 어쩐지 특이하다.
처음 만났을 때, 즉 자신을 구해 줬을 때도 이미 범상치는 않았지만.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좀 다른 사람 같기도 해. 상냥한 사람은 아닌데 상냥해 보여.’
실은 요이델도 봤다. 차기 수장님이 휘스나 라이를 포함한 부하들을 어떤 이유로 혼내는 모습을.
그때 떠올렸다. 어느 책이나 그림 속에 나오는 마귀의 모습을.
요이델이 곰곰이 생각하던 순간.
번쩍.
어떤 빛이 벼락처럼 눈앞을 비추었다. 주위의 숲은 사라지고 아름답게 펼쳐진 들판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워프 마법이군요! 아니, 도련님. 이걸 쓸 수 있으면서 왜 걸어서 본성에서 도련님 거처까지 가려고 했어요?”
“좋아할 줄 알았지.”
휘르무트는 문득 요이델을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벌레는 언제 물린 겁니까?”
“네? 아, 정말이네요? 언제 물렸지…… 걸어오면서 물렸나 봐요. 조금 간지럽네요.”
요이델의 뺨에 빨갛게 벌레 물린 자국이 올라왔다.
“의료 마법사! 의원! 궁의! 지금 당장 이곳으로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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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너무 큰 상처에 놀라서 그만.”
휘르무트는 또다시 시무룩하게 서서 요이델의 눈치를 봤다.
“환대와 마음은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이 정도는 제가 스스로 치료할 수 있어요. 치료를 안 해도 되고요.”
“벌써 다 컸군요.”
요이델을 알 수 없이 깊은 눈으로 보던 그는 미소 지으며 방을 하나씩 안내했다. 마치 집을 파는 중개사처럼 말이다.
“메디아의 모든 성에서 저 거대한 산이 보일 것 같아요.”
“사시사철 녹음이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숲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저걸 그림으로 그리곤 합니다.”
달칵.
그가 어떤 방문을 열자 유독 환한 햇살이 들어왔다.
“아이의 방이네요…….”
마구 낙서한 듯한 그림이 벽면에 각을 이루어 촘촘히 걸려 있었다.
그 아래 메모에는 어른의 필체로 날짜와 무엇을 그렸는지가 적혀 있었다. 수십 장의 도화지가 전부 그랬다.
[10월 15일. 아마도 코끼리를 그린 작품] [11월 20일. 괴수를 그렸나? 본인은 토끼라고 했던 것 같지만 말도 안 된다.]핀잔과 애정이 섞인 글이었다.
“휘르무트 님의 작품인가요?”
“제 동생의 것입니다. 놀러 왔을 때 멋대로 어지르고 자주 잠에 빠져 버리던 말썽쟁이라서 아예 방 하나를 내줬죠. 그 아이가 쓰던 방입니다.”
“아.”
요이델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동생이 이곳에 없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함부로 말을 했다간 실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조심해야겠어.
“무척 잘 그렸네요.”
“솔직히 못 그렸습니다.”
“네? 아, 아니, 그게…… 괜찮은, 음, 그래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못나도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이 이전과는 아예 달라 보였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걸 제게 보여 주셔도 되나요?”
어쩌면 진짜 수장의 딸을 찾는 데에 좋은 단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요이델은 더욱 가까이 가서 방을 살폈다.
“괜찮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 성에서는 제 마음대로 못 할 게 없어서.”
“수장님들이 안 계시나요?”
“정기적으로 깊은 곳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나오시는데, 지금이 그 시기라서 연락이 잘 닿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삼대륙 회의는 알고 계시나요?”
“제가 차기 수장이라 상관없습니다. 두 분이 안 계실 때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게 의무라서.”
모르고 있다는 거잖아.
정말 그래도 되나? 황당함에 몸을 돌리던 그때, 팍! 팔이 벽에 부딪혔다.
“아얏, 아파라…….”
그때 벽이 덜컹이더니 숨겨진 방문이 끼익 열렸다.
그곳에는 즐비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작은 옷부터 큰 옷까지. 모든 나이의 드레스와 연미복, 승마복, 종류를 가리지 않는 의복들이 드넓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건…….”
요이델은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그건 보면 안 될 것이었기에.
보통 왕족씩이나 되는 사람들은 옷을 미리 맞춰 놓을 필요가 없다.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저 방의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몸이 저절로 조금 떨렸다.
‘요이델, 누가 함부로 나와서 돌아다녀도 된다고 했지? 이 흙은 또 뭐야. 이따위 꼴을 보여서 가문에 먹칠을 하고 싶니?’
이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몰래 저택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방문을 열어 봤고, 그 사실을 들켰을 때. 어린 시절에 학습된 공포가 성인이 된 자신에게도 남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자리를 비켜라.”
휘르무트는 주변인과 시종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은 명령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올가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아가씨……!”
“올가 너에게도 예외는 없다. 나가.”
휘르무트가 차가운 목소리로 모두를 내보내자 요이델은 조금 긴장했다.
국제 문제로 삼으려나? 큰 결례였을까?
온갖 걱정이 터진 둑처럼 쏟아지던 그 순간.
“마침 저조차도 잊었던 방인데 신관님 덕분에 발견했군요.”
휘르무트가 부드럽게 말하며 요이델의 고개를 들게 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예상 못 한 큰 행운을 발견한 기분이라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요이델을 안아 주려는 듯 하다가 멈칫했다.
“습관이 무섭군요.”
“……네?”
“그것보다는 신관님의 마음이 불편해 보이는데, 그럼 이렇게 하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휘르무트의 표정이 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