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신수라…….”
황제는 갈등하면서도 눈을 번뜩였다. 그에게도 분명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으리라.
“그래. 좋다.”
서걱.
줄이 잘려 나가 요이델의 손목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플로테스만 부르면―
“안 됩니다, 폐하!”
“공작?”
그때 요보힐데 공작 부부가 급하게 돌아왔다.
왜 하필 이런 때.
요이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어린애의 농간에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신수를 정말 부를 수 있는지 아닌지 무슨 수로 압니까? 이 애는 성황의 반려입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신수를 불러온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그대들이 감히 내 결정에 첨언 따위를 달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황제는 그들에게 분노했다.
신수의 쓸모가 공작 부부보다 더 우위 가치를 점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정신이 없다지만 공작 부부는 조금 더 이성적이지.’
요이델은 재빠르게 파악했다. 그들의 말이 맞다.
왜냐하면 플로테스가 와 줄 거라는 장담이 아예 없었으니까. 율리시스 님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을 찾아 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황제와 공작 부부를 떨어뜨릴 수는 있지.’
“제 말씀은 못 믿어 주시겠다는 건가요?”
요이델이 공작에게 물었다.
“그래, 차라리 백치로 살던 시절이 나았겠군. 여기가 어디라고 폐하의 앞에서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느냐.”
공작의 충심은 대단한 듯했다.
물론 그렇게 ‘보이기만’ 했다. 요이델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제가 백치로 살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들으셨겠죠.”
“그래서 반성과 사과라도 원하나?”
“아니요. 미안하다는 말은 과거 시엔델에게서 들었던 걸로 충분해요.”
요이델의 대답에 요보힐데 공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시엔델이 공작님의 아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으셨겠죠.”
“그 얘기를 하려는 거냐.”
“잠시간이지만 제 아버지셨으니 안타까워서요. 황제도 아는 걸 공작님만 모르셨으니까요.”
“……뭐라고?”
순간 공작과 공작 부인 모두 얼어 버렸다.
“공작 당신은 불임이고, 황제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얘, 너!”
공작 부인조차 굳어서 비명만 질렀다. 요이델은 황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만든 건 황제 폐하니까요. 핏줄을 다 죽였는데 친척인 공작가를 측근으로 살려 둔 이유가 뭔 줄 알았나요? 단순히 아끼는 측근이라서?”
친자 검사를 위해 지니고 있던 공작의 신체 일부. 얼마 전 그걸로 분석을 의뢰했다.
바로 요보힐데 공작의 불임 여부를.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건 요보힐데 공작가가 제대로 된 후계자를 갖지 못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운이 좋아서 공작가가 살아남은 게 아니에요. 측근으로 선택당한 거죠.”
공작가에 끌려갔을 때 공작에게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건 바로 다년간 숙성시킨 마솅트 진액의 향.
‘이건 남관의 예하께 좋은 피로 회복제이긴 하지만 오래된 진액의 사용은 조심해야 해, 아가씨. 자칫하다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거든. 항상 체취 후 1년 이내의 진액을 써야 안전해.’
각지를 떠돌며 여행했던 아슈레오 씨는 차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그는 요이델이 하일에게 타 주었던 차를 보고 추가로 유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요이델은 황제와 공작을 이간질시켜 떨어뜨릴 셈이었다.
공작은 분노로 덜덜 떨었지만 예상만큼 놀라진 않았다. 이미 그의 마음도 황제에게서 떠났다는 뜻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그럼요. 폐하께서 얼마나 똑똑한 분이신데요.”
요이델이 공경하듯 말하자 황제는 불쾌해하긴커녕 잠자코 있었다.
“폐하께서는 공작 부인의 정부인 프란츠 카터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어요. 오래전부터요.”
“…….”
“그 사람에게 브리칼트의 누명을 씌워 처리하려던 것도, 본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그러려던 것 아닌가요?”
“……하하.”
황제는 잠시 이마를 짚더니 손을 슥 내렸다.
짝짝짝, 그는 감탄하며 박수 쳤다.
“똑똑하군. 나를 아주 잘 알고 있어.”
“폐하!”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누누이 경고를 주었을 텐데, 공작.”
황제가 한심한 듯 손사래 쳤다.
“그게 큰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차피 그대는 나의 충신. 내가 대륙을 통일한 황제가 되면 영생을 나눠 주겠네. 그런데 후계가 왜 필요한가?”
오히려 의문인 듯했다.
“공작가가 물갈이되면 오히려 귀찮아져. 후임에게 알려 줄 것도 많지.”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아아, 하지만 그때 그대들은 건강한 아이를 원했고 나는 메디아에 있다는 소원의 돌을 원하지 않았나? 수지 타산에 안 맞는 이야기가 아니지.”
공작 부부는 하얗게 질린 반면, 황제의 낯에는 귀찮음이 서렸다.
“메디아의 강한 정기를 받아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게 그대들의 뜻 아니었는가? 몰래 내 뒤에서 그딴 수를 쓰고 있는 앙큼한 자들인 줄은 몰랐지만.”
“…….”
“그대가 원한 건 건강한 아이의 탄생이지, 공의 핏줄을 이을 아이가 아니었어. 내 말이 틀렸는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느라 요이델을 신경 쓰지 못한 사이, 그녀는 재빠르게 발목의 속박을 풀었다.
황제가 공작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공, 그대만 모르면 문제가 없던 일이야. 지금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 자네의 가짜 아이들은 이미 죽지 않았나? 오히려 왕녀가 더 똑똑하니 쓸모가 있겠군.”
공작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황제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공작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 구식 원한은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일을 도모해 봐야지. 안 그런가?”
탁!
그러나 공작은 황제의 손을 매섭게 짝 소리가 나도록 뿌리쳤다. 황제가 헛웃음을 터뜨린 순간.
‘지금이야!’
시전자의 마음 동요로 결계가 흐트러진 이때. 요이델은 재빠르게 소환 마법진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플로!’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요보힐데 공작이 황제 너머 요이델을 향해 눈을 번뜩였다.
그가 걸음을 재촉해 다가온 그때.
“감히 이…….”
쿠구구―
쾅!
동굴이 무너질 듯 흔들리더니 은백색 신수가 퐁! 튀어나왔다.
플로테스는 몸으로 돌벽을 부수고 직진해서 요이델을 보호하듯 안았다.
“플로?!”
“우웅, 뇨이엥 목도리. 목또리.”
“정말 와 준 거야, 플로? 말은 언제 이렇게 늘었어?”
성공했어! 그런데 진짜 성공할 줄은 몰랐다. 플로테스가 훌쩍거리며 뒤를 바라본 순간.
공간 안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숨 막힐 듯한 정적 후.
“신수가 왔는가!”
황제가 기쁘게 외치며 손을 뻗었다.
플로테스는 마치 그에게 가듯 날개를 파닥파닥 펄럭거렸다.
황제에게 닿을 듯하던 그때, 플로테스는 방향을 급격히 선회해 돌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누구도 플로테스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하압―”
플로테스는 제 몸의 다섯 배는 되는 거대한 비석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꿀꺽.
“어?”
“끄윽―”
비석이 플로테스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악! 내 보물이! 안 돼! 이 신수가 제정신인가! 당장 돌려내지 못하겠나!”
사라진 기운을 감지한 황제가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쿵!
그때 땅이 진동했다.
“어? 이게 무슨, 플로! 이리 와, 플로!”
“…….”
“플로?”
플로테스는 경직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쿵, 쿠르릉, 쿵! 쿵!
돌무더기가 우르르 떨어지고 플로테스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신수의 작은 몸이 중력처럼 강력한 힘을 내뿜어 주위를 끌어당겼다.
“플로! 꺄악!”
-크와아아악!
쾅!
신수의 포효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무너져 버린 지하 은신처.
딱딱한 동굴을 뚫은 은백색 신수가산보다도 넓은 날개를 휘두르자 건물이 쓸려 갔다.
비석을 삼키고 급성장한 성체 신수는 희번덕거리는 눈알을 아래로 굴렸다.
황제를 발견하고 시선이 날카로워진 순간.
-카아악!
플로테스의 거대한 아귀가 동굴처럼 벌어졌다.
━━━━⊱⋆⊰━━━━
쾅―!
허공에서 거대한 하얀 빛이 터졌다.
“저쪽입니다!”
브리칼트의 본성.
황제의 은거지를 샅샅이 뒤지던 각국의 기사와 마법사, 신관 등은 이상 기운을 감지했다.
아연 해질 정도의 거대한 힘이었다.
“지진이다!”
“아닙니다,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에요!”
거대한 뭔가가 땅을 박차고 올라오더니 지상에 화염 같은 빛기둥을 내리꽂았다.
“빛?”
눈이 멀 정도의 강한 빛이었다.
“성스러운 힘이다. 아, 아니, 저건…… 신수님?!”
“성하! 요이델이 저기 있는 게 분명―”
그러나 휘스테론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율리시스는 이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요이델은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헉, 헉, 허억…… 콜록!”
목이 칼칼하고 아플 정도로 숨이 찼다.
‘플로가 어떻게 저렇게 성장한 거지?’
순식간에 성체가 된 플로테스는 황제와 요보힐데 공작가를 소멸시킬 듯 빛을 내뿜었다.
그때 요이델은 탈출했다.
탁!
“크흑! 이보게, 왕녀여. 그대가 나를 그리 쉽게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가?!”
“악!”
그때 요이델을 바짝 뒤쫓아 온 황제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었다.
시선을 둘 곳 모르고 흔들리는 황제에게서 광기 어린 미소가 흘렀다.
“그대의 말에 잠깐이라도 흔들린 내가 우매했군. 왕녀여, 그대의 짐승이 내 소원의 돌을 삼켰어! 이를 어찌할 텐가! 어?! 아아아악!”
황제가 요이델을 잡고 흔들며 비명을 악 질렀다. 고통에 미칠 것 같던 요이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파, 팔목이 부러질 것 같아!’
촥―!
“으아아아아악!”
바로 그때, 고통이 사라지고 짐승이 발악을 토하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악! 끄윽, 끄아악! 흐어억, 내, 내 손! 내 팔! 아아악!”
자신을 감싸는 익숙한 향기. 너른 품과 사람의 체온.
그리고 눈앞에서 흩날리는 아름다운 은발…….
챙그랑!
내던져진 검의 모양도 익숙했다.
요이델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 주는 손길이 있었다.
너른 등에 손을 올려 힘껏 끌어안은 요이델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흑, 흐윽, 흐아앙, 내, 내가 얼마나, 기, 기다렸는지 알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요이델을 끌어안았다.
율리시스의 안색이 하루 새 무섭도록 서늘해지고 야위었다. 단번에 눈에 들어온 변화가 안쓰러워 요이델은 더 눈물 흘렸다.
“안, 안 늦었어요. 그런데 너무 보고 싶었어요…….”
긴장이 풀리자 엉엉 울음이 쏟아졌다. 요이델은 그의 앞에서 모든 무장을 풀고 마음을 토로했다.
“당신은 언제나…….”
나직한 목소리가 그녀를 지켰다.
요이델에게만 보여 주는 그의 미소가 다정하고 잔잔했다.
“제가 당해 낼 수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