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8)
78화
“허니.”
“네…….”
“대답했군. 역시 우리 왕국으로 같이 가서 나랑 살까.”
멍하게 있던 요이델은 화들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빨간 눈이 평소의 요이델답지 않게 사납게 바뀌자 아카코스는 웃으며 한 발 물러났다.
“나 또 때리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신관님이 반말도 안 해 주고 친구 자리에서 제명해서 마음이 아픈걸. 이 몸은 어디서 잃어버린 첫사랑을 되찾지?”
아카코스는 뻔뻔하게 요이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분홍색 머리카락은 뱃지 위치 정도의 길이라 입 맞추기 힘들었으나 안간힘을 썼다.
탁!
요이델은 단호하게 그를 쳐 냈다.
“왕자님의 나라로 돌아가서 채우세요.”
“그러니까, 가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멍하게 있어. 신관님이 눈에 밟혀서 두고 돌아가지도 못하게.”
“아니에요, 대답한 거. 그리고 원래 왕자님이랑 떠날 생각은 없었어요!”
아카코스는 키득 웃었다.
아직 그의 남장, 아니 본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는 정식 제복의 휘장을 바로 하고 요이델을 바라봤다.
여장을 했을 때도 매혹적이었던 아카코스는 남자의 모습을 하니 더 뇌쇄적이었다.
그는 아쉬운 듯 입을 삐죽였다.
“계속 차이네.”
오늘은 성국과 라보르비치 간의 새로운 협약을 위해 잠시 창공 대륙으로 올라왔던 아카코스가 떠나는 날이었다.
워프게이트가 준비되는 동안, 요이델은 다른 신관들과 다 함께 아카코스를 마중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아카코스는 라보르비치의 국왕이 된다.
아카코스는 요이델의 귓가에 속삭였다.
“왕이 되어서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아뇨?”
“거짓말은. 눈빛이 그런데 뭘. 근데 혹시 성황과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뇨?”
“아닌 게 아니네, 영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배웅하는 행렬에 성황은 없었다.
‘국격 차이가 난다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고.’
그날의 살벌함을 자신만 목격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 미친놈이라면 분명히 저 신전들이나 궁 어딘가에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지.
자신의 목을 조르면서까지 찾던 요이델과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나 보다. 나 때문인가? 그럼 좋고.
아카코스는 시무룩한 요이델을 보며 씩 웃었다.
“요이델.”
이름을 부른 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순간, 시야에 커다란 연분홍색 장미 다발이 가득 찼다.
요이델에게 꽃을 바친 아카코스는 주위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앗, 으, 아니, 저게 무엇인가!”
“라보르비치의 국왕이…… 어찌하여……?”
그 자리의 모든 목격자가 입과 눈을 커다랗게 벌렸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도 다급히 둘 사이를 갈라놓았으나 아카코스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누군가가 다 늙어서 오늘내일할 때 난 아주 젊고 파릇파릇할 예정이거든.”
아카코스는 대놓고 율리시스를 저격했다. 길게 보면 그가 본인보다 수명도 젊음도 월등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까 질리면 나한테 와.”
“…….”
“내가 너보다도 어려.”
아카코스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널 울상 짓게 하진 않아. 대신 그땐 친구 안 하니까 그건 알고 오고.”
쾅!
그때 아카코스가 있던 자리에 낙뢰가 쳤다.
“……와, 이런 미친.”
급히 피한 아카코스는 새까맣게 그을린 자리를 바라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신관과 라보르비치 측 사람들이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비가 오려고 하는가?”
“희한하군. 천둥도 비도 없이 번개라니.”
아카코스는 성궁 쪽을 바라보았다. 이딴 게 자연 현상일 리가 있나. 죽으라고 내리친 거지. 자애는커녕,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시동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시지요, 왕자님.”
아카코스는 너털웃음을 짓곤 마법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안녕! 또 봐, 요이델! 사랑해! 난 진심이야!”
━━━━⊱⋆⊰━━━━
소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대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의 최대 안건은 원로원의 공석이었다.
“원로원의 세 자리 중 하나가 비었으니 이를 어찌 채울지요…….”
“최고위신관들 중 한 사람을 올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현재 그다지 적합한 신관이 없어서 큰일입니다.”
원로원의 좌석은 총 셋.
그중 하나를 차지하던 이가 크나큰 배신으로 인해 사라졌다.
“그처럼 사후에 말이 많이 나온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듣자 하니 사생아가 한 명도 아니더군요. 낯부끄러워서 말도 안 나오니 참.”
“다음 대 원로 선정은 더욱 신중을 기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죽은 원로…… 아니, 민간인도 대신전 내에서의 생활은 아주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신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이 장내에서 의외로 마르셀리나만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도 율리시스만큼이나 배신이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성하께 언질받은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성하께서는 왜 기분이 저조해 보이실까?’
그가 자비롭기는 해도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는 사람은 아니다. 지오르베니의 일 때문은 아니겠지.
그 순간, 율리시스의 시선이 움직이는 찰나를 포착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시나?’
그는 분명히 요이델을 봤다.
그런데 잘 보니 둘의 표정이 똑같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랬어. 라보르비치에서 돌아온 이후 성하와 요이델 양은 이상하리만큼 냉랭해 보였지.’
그들이 돌아온 이후 사건의 전말이 알려졌다. 하필 라보르비치의 100주년을 겸하는 건국 기념제라 말은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브리칼트도 결코 추문을 피해 갈 수 없다.
실제로 브리칼트는 초조해져서 라보르비치와의 소통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라보르비치 내에 잔류하던 브리칼트 측 앞잡이들은 전원 적출. 왕세자는 처형되고 왕권도 바뀌었다.
브리칼트의 협조나 지원은 없어지나, 그 자리를 성국이 대체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는 브리칼트의 만행을 참아 주었으나 더는 두고 봐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2의 지오르베니를 배출시켜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성하! 브리칼트를 개박살…… 콜록, 가만히 두지 말아 주십시오. 저들은 유전자에 파렴치가 각인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진정들 하십시오.”
원형으로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는 계단형 좌석들, 의장은 그 원형의 중앙에 서서 봉을 두드렸다.
“다시 원로 선출에 대해 의견을 내주십시오.”
“명예롭긴 하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후보군을 추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득표해야 임명되는 자리가 아닙니까. 전대 원로였던 민간인으로 인해 의심이 쉽게 쌓이는 터라 난관이 있을 듯합니다.”
원로는 일정 신성력, 나이, 기타 능력과 공로도 등을 모두 갖춰야 했다.
게다가 지금 비어 있는 건 지오르베니가 맡았던 동관의 장.
동관은 학문과 서적, 역사의 기록 등을 연구하는 보다 학술적인 곳이다.
현재 동관에는 최고위신관들의 수가 적었고, 성향상 조용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이 대다수라 지원자마저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기사들의 북관을 제외한 동관, 서관, 남관에는 모두 원로가 존재한다.
‘학문……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만, 절대 하지 않겠지.’
요이델도 속으로 한숨 쉬었다.
원로의 일도 그렇고 회의장에는 율리시스의 모습까지 보이니 한결 마음이 불편했다.
라보르비치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지만, 말을 걸지도 않았다. 알현도 모두 거절당했다.
‘페어링을 풀지 말라는 말…… 어쩌면 좋지.’
그는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요이델은 1년 뒤에도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내게 징계를 내리시지 않는 걸까.’
언젠가 들키게 될 때를 생각하고 각오했던 일이었다.
원작 속 배신자를 찾아 거래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요이델도 이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애쓰지만은 않았다. 성국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들킨 사실보다 허망하게 보였던 율리시스의 표정이 더 신경 쓰였다.
“……네.”
“…….”
“요이델, 자네!”
회의가 끝나고 멍하게 앉아 있던 요이델을 깨운 건 하일이었다.
“무슨 근심 걱정이 있나 보군. 내게 말 못 할 걱정인 게야? 회의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네! 이만 돌아가 쉬어야지 않겠나.”
“아, 아…… 정말이네요. 고맙습니다.”
눈에 띄게 표정이 안 좋은 소년을 보던 하일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에잉, 저렇게 힘이 없어서야. 도저히 보기 거슬려서 안 되겠다.
툭.
그는 달콤한 캐러멜 꾸러미를 건네고, 그중 하나를 까서 쏙 넣어 주었다.
요이델의 안색이 갑자기 환해졌다.
“엄청 달아요!”
“그렇지? 기력 회복에 효과가 탁월한 거지. 요정의 결정일세. 이것 말고도 내가 특이한 걸 많이 사 왔으니 기대하게나.”
하일은 외부의 나라들을 돌면서 정찰할 때, 기념품들을 아티팩트에 조금씩 수집해 와서 요이델에게 건네주었다.
“그…… 봤나?”
“네? 뭘요?”
“크흠, 선물 있잖나……?”
왜 그런 걸 사 왔는지 모르겠지만 선물이란 대부분 이상했다.
각국의 마수상이라든가, 괴상한 치료술 표본들, 보기 드문 꽃과 지나치게 커다랗고 희한한 보석들, 고대 보배 같은 나름대로 온갖 진귀한 것들이었다.
“조, 조금 특이하지만…… 맛있고 아름다워요. 그런 특이한 것들은 처음 봤거든요.”
“그래? 마음에 드나?”
“……네! 정말 유용…… 해요.”
“마르셀리나가 준 선물보다 마음에 드나?”
“네?”
하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주 조용히 쭈그러들어 말했다.
“마르셀리나는 잘 움직이질 않아서 선물을 줘 봤자 하잘것없는 것들뿐이네. 알겠나? 내 선물이 더 귀하지.”
하일은 민망한 듯 다시 헛기침했다.
“그리고 나도 돌아왔으니 시간이 많네. 조금 한가하니 정 원한다면 이것저것 물어봐도 다 알려 줄 수 있고…….”
즉 마르셀리나 말고 자신과도 놀아 달라는 얘기였다.
뜻을 알아들은 요이델이 조금 웃음을 흘리자 하일은 서류 뭉치를 요이델에게 떠넘겼다.
“크흠! 아무튼 됐고, 이거나 나 대신 성하께 좀 전해 주시게!”
“네? 하일 님, 안 돼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각났어! 그럼 부탁하네!”
하일은 속마음을 들킨 게 창피해서 서둘러 회의장 밖으로 가 버렸다.
‘이걸 어쩌지?’
결국 요이델은 고민하다 그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부쩍 소심해진 요이델은 문지기를 바라보며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돌아섰다.
“성하께 전해 주세요. 하일 예하의 부탁이 있으셨어요.”
“직접 드리지 않으십니까?”
“네…… 못 드릴 것 같아요.”
문지기들도 풀 죽은 요이델의 얼굴에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문 안쪽에서 다 듣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시선 끝에는 한 서류가 있었다.
[요보힐데 공작가의 장남, 요이델 요보힐데를…….]바로 브리칼트에서 전달한 공문이었다.
[……그에 따라 본국 송환을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