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요이델의 본국 송환 요청 따위는 물론 즉각 거절했다.
‘개가 짖는군.’
율리시스는 턱을 괴고 브리칼트 제국의 인장이 찍힌 공문을 쳐다봤다.
대신전의 신관들은 각지에서 모여든다. 따라서 이전의 국적을 유지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국적이 특별히 심각한 걸림돌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전의 정식신관이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명예라, 이곳을 떠나려는 신관도 극히 드물었고.
‘그런데 본국의 즉각 송환 요청이라.’
요이델의 송환을 요청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요이델이 대귀족의 자식이니 국가적 기밀이 새어 나가 외교에 큰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나머지는 도서관에 대한 것이고.’
지오르베니의 처단 때 언급되었던 마탑의 도서관.
‘클레멘타인 요보힐데가 그 마탑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점을 다시 한번 이용하겠다는 말인가.’
공문에 따르면 전 대륙적으로 브리칼트 제국에 대한 오해가 불거지고 있어서 정정해야 한다고 했다.
지오르베니는 자신들과 상관이 없으며, 마탑은 요이델 요보힐데가 어릴 적에 어머니와 출입한 적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니 오히려 성국은 요이델 요보힐데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하지만 요보힐데 공작 부부가 요이델은 당시에 어린아이였을 뿐이라 아무것도 몰랐을 거라 주장하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요보힐데의 공자를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어떻게든 브리칼트에는 죄가 없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말은 송환 요청이지만, 이대로 돌려보내면 반드시 죽는다.’
좋은 곳에 간다고 해도 아쉬운데, 감히 사지로 넘겨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들의 오만함에 율리시스의 표정이 차츰 싸늘해졌다.
똑똑.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성하, 요이델 신관님께서 하일 예하가 전달을 부탁하셨다며 서류를 놓고 가셨습니다.”
“들었습니다.”
“협탁에 놓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것.”
브리칼트의 인장이 보이는 종이였다. 기사는 율리시스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서 방 안에는 벽난로 속 장작들이 훈훈하게 타다닥 타오르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성하께서 피곤하실까 염려됩니다. 당장 방 안의 온도를 조절하겠습니다.”
화르륵.
기사는 깍듯이 인사한 후 벽난로에 공문을 쓰레기 태우듯 집어넣었다.
종이는 금세 새까맣게 탔다.
우선 브리칼트가 더는 요이델을 혈연과 출신으로 건드릴 수 없도록 고리를 끊는 게 급선무였다.
방법은 단 하나.
브리칼트 국적을 박탈시키는 것.
대신전의 고위신관이니 성국 팔라디움의 국적을 주는 건 쉽다. 문제는 거머리 같은 브리칼트였다. 그들은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승인하도록 만들 수밖에.’
그에게는 감지 마법이 실행 가능한 공작 내외의 신체 일부가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요이델의 일부.
‘친자가 맞는지 확인할 것.’
그의 감이었다.
높은 확률로 그들은 친부모가 아닐 것이다.
━━━━⊱⋆⊰━━━━
“무슨 일 있으세요, 신관님?”
화들짝 놀란 요이델은 라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꼼지락거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라나. 라나라면 누군가한테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라나는 으음, 하며 오랫동안 고민했다.
“사과해야겠죠?”
“만약 상대가 얼굴도 안 보고 싶어 한다면요?”
“저런, 그럼 심각한 일이네요. 혹시 아예 마주칠 일 없는 사이가 됐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럼 더 곤란하겠군요.”
라나는 안쓰럽게 웃으며 요이델의 빗자루를 바로 고쳐 주었다.
“그래서 요이델 님의 표정이 좋지 않으셨군요. 빗자루질도 마구 하시고.”
“알고 있었어요?”
“보통 새벽같이 일어나 빗자루질을 하진 않으니까요. 이건 제 생각인데, 신관님께선 걱정거리가 있으면 청소를 하시는 것 같아요.”
“앗.”
“맞혔군요? 후후, 사실 신관님께서 꽤나 침울해 보이셔서 모두 걱정했어요. 요이델 신관님께 무슨 큰일이 생겼나…… 하고요.”
라나의 말이 맞다.
요이델이 물끄러미 쳐다보면 율리시스는 그녀가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무시했다.
용기 내어 말을 걸려고 하면, 보좌신관들과 함께 어디론가 찬바람 쌩쌩 내며 가 버렸다.
“요이델 신관님은 성하와 화해하고 싶으신 거죠?”
“……어, 어떻게 알았어요, 라나?”
“감이랄까요.”
정말 귀신같은 감이었다.
“성하께서 정말 요이델 신관님을 꺼리셨다면 브리칼트의 요청을 바로 거절하진 않으셨을 거예요.”
“요청이요?”
라나는 순간 곤란한 표정을 했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어머나……. 제가 얼마 전 성하께서 요이델 님을 송환해 달라는 브리칼트의 요청을 받으셨는데, 즉각 거절하셨다는 얘기를 실수로 해 버렸나요?”
“방금 되게 술술 말했는데요……?”
라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맙소사, 하며 손부채질했다.
“요이델 님의 귀에는 절대 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만 말이 헛나와 버렸네요. 민망해라.”
그런 일이 있었던 줄 몰랐다.
역시 지오르베니의 일로 브리칼트의 악행이 밝혀져서 그런 걸까?
대신전의 높은 직위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신전의 권위가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오히려 그 사건을 기회로 바꾸어 브리칼트의 악행을 밝혔다.
그래서 현재 브리칼트는 여러 나라로부터 진상 규명을 요청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그런데 자신에게는 송환 요청을 하다니. 마치 그녀를 이용해서 빠져나가려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성국에 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때 라나가 요이델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 주었다.
“날이 춥죠, 신관님.”
“라나…….”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다면, 그러지 마세요. 요이델 신관님은 저희의 신관님이신 거예요.”
“맞아요, 송환 요청은 거절하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성하께서 이미 하셨고요!”
“아니면 브리칼트의 국적을 포기하시는 건 어떠세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라나의 말을 거들었다.
그건 요이델도 생각지 못한 방법이었다.
‘국적 포기라…….’
━━━━⊱⋆⊰━━━━
“휘스테론 님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수련을 끝낸 휘스테론은 땀에 젖은 옷을 던지고 종기사를 바라보았다.
“누구한테서?”
“어, 그게…… 숲속의 꾀꼬리 님이십니다.”
“아, 젠장. 내 거 맞아.”
휘스테론은 종기사로부터 편지를 건네받았다.
황금색 밀랍으로 봉한 편지지.
‘어차피 마법도 걸어 놨으면서 웬 인장?’
하여튼 형식적인 거 좋아한다니까.
휘스테론은 늘 가지고 다니는 통신구는 잠잠한 것을 보며 질색했다. 굳이 편지를 쓸 건 뭐람.
하지만 벅찬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서 손이 덜덜 떨렸다.
‘기분이 이상해. 왜인지 확신이 든다고.’
그는 얼마 전 메디아에 편지를 부쳤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답장이 왔다.
“오늘 숲속 연무장에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네?!”
“아무튼, 나 급해!”
그는 로사리움으로 가지 않고 한적한 숲으로 뛰어 들어가 홀로 편지를 뜯어 보았다.
사실 휘스테론은 요이델의 추측을 듣고 무척 놀랐다.
메디아가 찾는 게 사람이 아닐까, 라고 말한 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인지, 아니면 뭔가가 새어 나간 건지 몰라도 결국 진실이었으니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만.’
라이오스와 함께 메디아를 나온 지도 꽤 됐다. 그들은 메디아와 성국 사이의 거래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보내졌으니까.
‘지금까지는 단서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깝긴커녕, 모두에게 반감이 들게 하는 요보힐데 공작가의 공자, 아니 공녀.
그 분홍 머리 여자애는 조금 달랐다.
남장을 한 여자애를 처음 보긴 했다. 꼭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추론해 내는 능력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성하의 반려다.
‘그래, 반려. 만일 짐작이 사실이면…… 사이가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거친 피부를 오돌토돌한 닭살이 뒤덮고 오한이 등줄기를 훑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당사자한테도 좋은 일이겠지만…… 하지만 나라끼리…… 괜찮나?’
설렘 반 공포 반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우선 까 보자.
추측만 하면 소용없으니까.
휘스테론은 편지 봉투를 뜯었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나이는 25세.]이건 휘스테론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범주에 맞는 여자들을 찾아다녔으니까.
작은 게 닮더라도 좋았다.
하물며 수장과 같은 버릇이 있다거나, 식성이 비슷하다든가, 기타 등등의 사소한 접점이 있는 여성들까지도 조사했다.
그런데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어떤 형태로 있을지 알 수 없다.’
메디아가 교역로를 닫고 극도의 폐쇄성을 보인 건 그 때문이었다.
‘잠에 빠진 수장의 딸.’
어느 날 갑자기 잠에 빠져서 눈을 뜨지 못했다. 수십, 수백 일을 겨우 매달려 알아낸 결과 진단명은 영혼의 소실.
지금 메디아 왕녀님의 몸은 빈껍데기였다.
그런 일이 갑자기 일어날 리 없다. 누군가 일부러 저지른 소행일 터.
빠져나간 영혼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나, 목적이 분명하다면 신체도 노릴 게 분명했으니 위기 사실을 숨겨야 했다.
살아 있던 시절 영특하기로 소문나 촉망받던 사람이었으니, 자칫 실험의 대상으로 신체마저 도난당할 수 있다.
그러니 현 상태가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됐다.
‘성하께서도 모르시는 일이지.’
메디아에 어떤 사정이 있어 두 성기사가 밖에 맡겨졌음만 알 뿐, 자세한 내막까지 발설하진 않았다.
휘스테론은 편지를 마저 읽었다.
[네가 말한 여자애는 스물이라며. 뭐 하냐? 아, 생일은 안 지났으니까 열아홉이네. 그럼 곧 스물이 되는 애잖아. 범주에 안 맞는다고.]여전히 차기 수장의 말투는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답장한 걸 보면 희망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뭐, 네놈이 추측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힘을 담아서 가져와.]휘스테론은 눈을 의심하며 다시 읽었다.
[영혼은 피로도, 신체로도 감지 못 해. 영혼이 가진 능력을 보는 게 가장 정확해. 확보되면 편지 말고 통신구로 연락하라고. 편지는 너무 늦게 오잖아. 느려 터져 가지고. 너 돌아오면 훈련 난이도를 확 높여 버려서…….]대충 읽고 편지를 태운 휘스테론의 안색이 곤란해졌다.
능력을 어디다 담아 오라는 건지.
다짜고짜 가서 “델, 네 신성력 조금만 덜어 줄 수 있어?” 같은 질문을 하는 미친놈이 세상 어디 있을까.
그랬다가는 요이델에게 의심이나 미움을 사 버릴지도 모른다.
도저히 안 된다.
“……곤란하네.”
일단 라이오스에게 말해 봐야겠다. 자신만 미움받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나쁜 역할은 라이오스가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