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요이델은 쭈뼛거리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를 보는 율리시스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다 갈피를 잡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실례합니다, 성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성국의 일에 관해서예요.”
순간 쓴웃음을 지은 율리시스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말씀하십시오.”
“엘타샤의 성수에 대해서예요.”
성수는 매해 2월, 딱 한 달만 수집한다.
1년에 한 번 파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고도 남았고, 성수의 질 유지와 희귀성을 위한 물량 조절이기도 했다.
성수는 일반 귀족 가문과는 거래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라 간의 거래 품목이며, 이례적으로 화친을 위한 선물로서 건넬 때도 있었다.
‘그런 성수가 말라 버릴 위기야. 이건 꼭 성하께 알려야 해.’
성수를 사기 위해서는 족히 10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
이제 와서 성수가 말랐으니 공급이 불가하다는 선포는 할 수 없다.
요이델은 그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손끝을 매만졌다.
집무실 안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급하게 왔지만 정말 눈앞에 그가 있는 현실에 입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서, 성하께서 저를…… 과거에 살려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아요. 예지 능력 때문이었죠.”
“…….”
“엘타샤 숲의 성수가 말라 버릴 거예요. 성수를 만드는 보석의 도난 사건으로 인해서요. 곧 연락이 올 거예요.”
말을 하는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성수를 만들 수 없으면 오히려 저희 쪽에서 타국에 배상을 해 줘야 할 거예요.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해요.”
요이델은 떨리지만 꿋꿋하게 말했다. 차가운 눈빛을 한 율리시스도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정확하군.’
방금 전 통신구로 연락을 주고받던 이는 바로 엘타샤의 주교인 르를타였다.
요이델을 보는 율리시아의 파란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그대의 말대로 엘타샤에서 큰 이변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미 일어나 버렸구나.
요이델은 한발 늦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정찰을 떠날 예정이니 요이델 님께서도 준비를 하십시오.”
“…….”
“설마 제가 그런 이유로 당신을 업무에서 내치기라도 할 줄 아셨습니까.”
그는 평탄한 어조로 말했으나 웃는 모습은 더없이 차가웠다.
“나가 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이 집무실에 자유로이 드나드는 일은 없으셔야 할 겁니다.”
달칵.
문이 닫히고 나서야 율리시스는 제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요이델이 나간 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들이치는 자괴감에 펜을 집어 치웠다.
그가 마련해 주었던 로사리움으로 돌아간 요이델은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훌쩍였다.
오해가 깊어지는 밤이었다.
━━━━⊱⋆⊰━━━━
시간은 흘러 흘러 정화의 숲, 엘타샤에 도착했다.
햇볕조차 따스한 노란색으로 부서지는 아름다운 녹음의 향연.
계절을 비껴간 정화의 숲 엘타샤는 사방이 넝쿨과 나무, 꽃과 풀로 둘러싸여 오래전 잠든 환상 속의 동산처럼 보였다.
“신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야, 없어.”
“……음, 네 말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델, 엘타샤에는 넝쿨을 엮어 만든 그네가 있대. 신기하지? 밀어 줄까?”
두 호위기사는 부쩍 멍하고 차분해진 요이델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간 호위기사들은 요이델을 지키는 일에 방심할 수 없었다.
벽에 ‘쾅!’ 하고 부딪치질 않나, 별 사고가 다 일어날 뻔했다.
‘으아아! 델! 거기는 계단이야, 굴러떨어져!’
‘차가운 물이 아니라 온수입니다. 자칫 화상을 입으실 뻔했습니다, 신관님.’
그간 요이델이 들었던 경고들이었다.
요이델은 자신을 걱정하는 호위기사들에게 웃어 주며 마차에서 내렸다. 신선한 바람이 몸을 감싸 몸을 정화하는 듯했다.
“여기가 엘타샤구나.”
“그런가 봐. 우리도 처음 와 봤는데, 신기하게 고향이랑 비슷한 느낌이 드네. 그렇지 않냐, 라이오스.”
수십의 마차들이 멈추어 서자 엘타샤의 신관들은 일렬로 서서 외부 사람들을 환영했다.
“거룩하신 창공의 주인, 성황 성하를 뵙습니다.”
엘타샤의 신관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머무는 신관과 기사, 시종들은 총 백여 명 남짓으로, 그리 큰 신전은 아니었다.
신전은 본 건물을 두고 뒤로 네 채의 건물을 뒀는데 이 주위를 원형의 호수가 물길을 내듯 빙 두르고 있어서 해자를 지닌 일반적인 성의 형태와 비슷했다.
그러나 건물의 몇 배는 될 듯한 거대한 산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엘타샤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주신의 신실한 종, 엘타샤의 주교 르를타라고 합니다.”
가장 선두에 선 백금발의 노인이 말했다. 저 사람이구나. 이곳의 책임자가.
눈은 총기가 가득한 갈색이었다. 그런데 저 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입니다, 르를타 주교.”
“성하의 방문을 받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바로 신전으로 드시지요.”
르를타는 엘타샤의 신관들에게 손님들을 대접하라고 명령한 후 자리를 떴다.
주교가 아랫사람에게 책망받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으니, 독대부터 하겠다는 일종의 배려였다.
샘에서 성수를 생산하는 보석을 잃어버린 건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엘타샤의 신전 사람들도 분위기가 안 좋았고, 전체적으로 적막이 웃돌았다.
‘성하가 어떤 결정을 하시기 전까지는 할 게 없으니까…….’
요이델은 신전 정원의 한편에 놓인 그네를 탔다. 휘스테론이 밀어 주겠다던 그 넝쿨 그네였다.
“앗, 따가워.”
“왜 그러십니까, 신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벌레에 물리셨습니까? 당장 약을 받아 오겠습니다.”
“뭐? 델, 다쳤어?!”
“아니야, 진정해 둘 다.”
통증이 갈까 봐 급히 치유 마법을 썼다.
“넝쿨 관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나 봐. 그래서 가시가 박힌 것뿐이야.”
“그러네, 그네도 거의 끊어지겠어. 간신히 버티고 있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엘타샤는 왜 이런 보수도 안 하는 거야.”
“어린아이가 거의 없는 곳이니까, 그네를 쓸 일이 잘 없는 걸 거야.”
요이델은 괜히 그네에 분풀이하는 휘스테론을 달랬다.
그넷줄을 보니 끊어질 듯 껍질 내부가 보이고 앙상하게 늘어난 부분이 있었다.
저런 건 타지 않는 게 좋다. 무리해서 충격을 가했다가는 그네 타다가 휙 날아가 버리기 딱 좋았으니까.
“……잠깐.”
“무슨 일이야, 델?”
“아냐, 아무것도.”
“피곤해 보이십니다. 무리가 가지 않도록 쉬는 게 어떠십니까.”
요이델은 설마, 하고 머리를 스친 생각에 저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샘은 신전 건물 내부에 있지 않다. 저쪽에 있지.
하지만 자신이 혼자서 확인해 보긴 무리였다. 성하에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그는…….
‘말씀을 드리면 안 들어 주실 분은 아니야. 하지만 말을 걸 상황이 아닌걸. 어떻게 얘기하지?’
번쩍.
그때 돌연 요이델의 몸이 붕 떠올랐다.
“휘스? 뭐, 뭐 하는 거야?”
“너 아파 보여. 어차피 여기서 며칠 있어야 하니까 방도 배정돼 있을 거야. 들어가서 좀 쉬어, 델.”
요이델이 그렇게 안긴 채로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엘타샤의 신관이 곤란한 얼굴로 상급자를 불렀다.
“아, 대신전의 신관님들. 죄송하지만 지금 머무실 방을 확인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엘타샤에서 손님을 맞기 위한 준비도 미리 해 놓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휘스테론의 표정이 드물게 험악해졌다.
“무슨 일인가.”
실랑이가 일어나려는 그때, 대담을 마친 르를타 주교와 율리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르를타 주교님…… 그것이…….”
엘타샤의 신관이 곤란한 얼굴로 르를타의 귀에 속삭였다. 그는 혀를 찼다.
“방의 복구가 아직도 덜 이루어졌다니, 난감하군요.”
르를타는 조심스럽게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방이 부족하단 말씀입니까.”
“죄송합니다, 성하. 얼마 전 산이 덮쳐 건물 일부가 파손되어 복구하였습니다만, 아직 벽지가 다 마르지 않아 모든 신관과 기사님들이 묵기엔 곤란한 상태라고 합니다.”
르를타는 난감한 듯 율리시스를 응시했다.
“그리하여 개개인이 방을 각자 쓰는 것은 힘들고 방을 합하여야 할 듯한데…….”
주교는 말을 끌며 인원을 가늠했다.
“손님들께서는 전부 남성이시니 두세 분 정도 같은 방을 쓰시면 될 듯합니다.”
그 순간 율리시스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신전 사람들의 합숙은 훈련이나 출장 시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성이 있다.
“저희가 요이델 신관님의 호위이니 셋이 같은 방을 쓰겠습니다, 성하.”
“그렇습니다. 호위로서 명을 따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다급해진 건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요이델이 다른 놈들과 같은 방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본인들과 같은 방을 쓴다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훈련을 핑계 대고 나가면 되지만, 요이델은 안 된다.
“마침 엘타샤의 시종도 부족하다 했지 않습니까, 르를타 신관.”
그때 율리시스가 차분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아, 예…… 안타깝게도 그렇지만, 원하신다면 불편함 없으시도록 바로 구해 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외부 하인보다는 가까운 이를 두는 게 낫겠습니다.”
“신관님들 중에서 말씀이십니까?”
“모두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데 혼자 독방을 쓸 수는 없는 일.”
율리시스는 보좌신관에게 조용히 언질을 주었다.
다시 말을 전달받은 르를타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
‘잠이 안 와.’
요이델은 베개를 끌어안고 말똥말똥한 눈을 깜빡였다.
남자들과 같은 방을 쓸 곤란을 면하게 해 준 건 감사했다.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성하와 같은 방이라니.
커다랗고 넓은 방. 두 개의 침대.
요이델은 침대를 북북 끌어 방 안의 가장자리에 두었다. 율리시스의 침대와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내일은 숲속의 샘에 들어가야 하니 몸에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뿐입니다.’
율리시스는 냉담하게 말하고 대욕탕에 가기 위해 방을 나갔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성하께 보석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게 됐잖아? 같은 방이니까, 말도 듣기 싫다고 나가 버리진 않으실 거야.’
그의 성격이면 정말 나가 버릴 수도 있지만, 일단 최악은 가정하지 말자.
“일단 나도 세수라도 해야겠어.”
마차를 오래 타고 와서 찝찝했다. 요이델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나섰다.
엘타샤 신전의 복도는 어두웠다.
방과 연결된 욕실이 있었지만 괜히 불편했다. 요이델은 크리온 광물로 빛을 밝혀 조심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끼익.
어쩐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타다다닥.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걸음은 당연히 아니었다.
‘사람들이 깨어 있나 봐.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수상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아래쪽에서 어떤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무리입니다.”
“책임을…….”
이게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