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저 계단 아래의 으슥한 작은 공간 아래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요이델은 은신 마법을 이용해 기척을 숨겼다.
스윽―
“아무튼…… 성하께서 오셨으니 보통 일은 아니지요. 대비를 해 놨어야 하는데 대체할 보석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확 깨져 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요.”
“주교님도 참, 예전에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버티려고만 하셨는지…….”
엘타샤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혀를 쯧쯧 차면서 깊이 한숨 쉬었다.
‘버텨? 뭐를 버티려고 한 건데?’
요이델은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성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한 것 아닙니까.”
“하기야, 진작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요. 성하께서 오실 때만 힘을 다해 복구시켜 놓고……. 언젠가 이 사달이 날 줄은 알았습니다.”
“도난은 누구의 소행으로 정했습니까?”
“외부 마을이나 알 수 없는 자들의 소행으로 하자고 말을 맞췄지만 과연 성하께서 모르실까 초조합니다. 그리고 성하를 기만하는 짓 아닙니까? 저희가 아무리 주교님을 위한다고 한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간 들키고 말 터이니 지금이라도 순순히 털어놓는 게 좋을지도…….”
한 신관의 말에 다른 신관이 그를 저지했다.
“그럼 주교님은 최소 처형입니다! 그렇게 두겠단 말입니까!”
“당연히 주교님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성국의 신관입니다. 그게 먼저라고 생각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엘타샤의 신관들끼리도 마음이 잘 안 맞는 듯했다.
“그만들 하세요. 주교님이 하셨든 아니든 엘타샤의 일이지요. 우리 모두 처벌받을 거라고요. 지난날 우리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잖습니까?”
요이델은 그들의 말에 입을 막았다.
엘타샤는 외부의 침입은 물론, 위치를 찾아내는 것조차 어려운 오지였다.
마법으로 찾으려고 해도 경로가 시시때때로 바뀌는 곳.
성하가 직접 친 강력한 결계가 숲과 엘타샤 전체를 비호했다.
‘보석에도 내구성이 존재해. 충격을 받으면 깨질 수 있어.’
아까 그네를 보고 생각했다. 아무리 튼튼한 것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특별한 보석이라도 결국 광물이기에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면 예전 사람들이 했었어야지. 무조건 외부의 소행이어야 해. 주교님이 경질을 당하시게 둘 수는 없어.”
예상과 틀리지 않은 반응에 요이델은 입을 막았다.
‘역시 그랬어!’
도난이 아니라 그들이 관리를 잘못한 거였다.
하지만 내구성이 있다 한들 성수를 만드는 보석. 아무리 오랜 충격이어도 쉽게 깨질 리 없는데, 왜일까?
바로 그 순간.
투두둑. 팅그르르―
요이델의 몸에서 뱃지가 떨어졌다.
“거기 누구야!”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저 계단 위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그 무슨……!”
‘들켰어!’
그때 수상한 기색을 알아챈 그들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누구 있나?”
“방금 우리 뭐라고 했었지? 대화가 들린 거 아니야?”
“작게 말했는데 설마…….”
그들은 다급히 그녀 쪽으로 움직였다.
요이델도 당장 다른 쪽으로 달렸으나 길눈이 어두워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너무 어둡다. 여긴 어디지? 왜 이렇게 막막할까. 앞이 안 보여.
“아윽…….”
연무장에 갇혔던 그 날처럼 무거운 압박감이 심장을 두드렸다.
요이델은 겨우겨우 걸어 빛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아하하, 그래서 그때…….”
꺄아악! 왜 여기가 대욕탕인 건데!
하필이면 이런 곳으로 잘못 들어와 버렸다. 요이델은 고개를 팍 숙이고 뒤로 돌았다.
그런데 수증기가 가득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그녀는 쓰러질 듯 말 듯 더듬더듬 걸었다.
숨 막혀, 너무 어지러워. 어디로 가야 길이…….
휙―
그 순간 요이델의 등이 안쪽으로 훅 당겨졌다.
몸을 감싸 안는 따스하고 너른 품.
‘성하?’
율리시스는 시선을 내리고 쉿, 하며 그의 입가에 손을 댔다.
고개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강인한 푸른 눈. 그의 머리카락도 물기로 젖어 있었다.
‘성하도 대욕탕에 가신댔지.’
은발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한층 색이 짙었다. 요이델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성하의 뺨이 붉은 건 처음 봤다.
그에게서는 방금 막 씻은 듯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느껴졌다.
열로 인해 자연스럽게 혈색이 도는 낯선 얼굴빛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요이델의 조막만 한 심장이 콩콩 뛰었다.
대욕탕에는 증기와 훈기가 가득해서 가만히 숨만 들이쉬어도 목이 턱 막혔다.
습한 공기는 들이켜면 숨이 막혀오고 또 금방 차가워졌다. 마치 성하처럼.
안락했지만 한편으론 노곤하고, 탕 밖의 공기는 차가워서 그 간극에 목이 바싹 말랐다.
귀빈용 대욕탕은 따로 있었다.
일반 대욕탕 바로 옆.
‘설마 이곳까지 확인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가면 이 바로 옆인 일반 대욕탕에서 마주치고 말겠지.
―죄송해요, 성하.
씻는 중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요이델의 사과에 시선을 내렸다.
‘앗.’
무심히 바라보는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위로 든 시선과 아래로 내리깐 그의 눈이 맞물린다는 건 좀 묘한 느낌이었다.
―쫓기듯 저를 찾으신 이유가 뭡니까.
그를 찾아서 온 게 아니라 도망치다 보니 여기였다.
그에게 숨겨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폐를 끼친다고 오해했을까?
―아니에요. 성하를 찾으려고 한 게 아니라 세수를 하려고 했어요.
―방 안에 욕실이 있을 텐데요.
―그건…… 조금 신경이 쓰여서 쓰지 않았어요. 원래 성하의 방이니까요.
―그대가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게 허락을 맡으셔야 할 이유도, 당신의 편의를 주저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율리시스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혹시 성하께서 들어오실까 봐…….
―지금의 모습은 그 반대로 보입니다만. 찾아든 건 저입니까, 당신입니까?
가까운 몸을 인식하자 요이델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그, 그게 아니라요!
―그대가 불편하실까 자리를 비워드린 것뿐입니다. 당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특별히 무례하게 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쩐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아직 마음속 대화가 유지되는구나.
이제 신뢰가 깨져서 안 될 줄 알았는데.
―그저 당신도 저 없이 편히 쉬기를 바랐습니다.
율리시스는 젖은 은발을 대충 쓸어 정리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인해 단단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요이델은 눈 둘 곳을 몰라 시선을 옆으로 굴렸다.
―저를 불편하게 느끼시는 건 요이델 님 아니십니까.
―아니, 그 불편한 게 그게 아니라요 지금은 그, 조금…….
―쉿.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등 뒤로 숨겼다.
“성하, 늦은 밤 실례지만 혹 이곳에서 수상한 자를 목격하진 않으셨습니까?”
요이델을 찾던 엘타샤의 신관들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그들은 이곳에 함부로 출입할 수 없어서 목소리만이 꺾여 있는 문가에서 들려왔다.
“저, 성하…….”
“그만.”
그들이 발걸음을 떼자 율리시스가 서늘하게 제재했다. 문으로 모습을 드러내려던 이들은 황급히 물러섰다.
“그대들이 이곳에 들어와도 좋다 허한 적 없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성황이시여! 저희는 단지 성황 성하의 안전이 염려되어…….”
“까닭을 묻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엘타샤의 신관들은 처음 마주하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성하의 진노를 절감했다.
“허락 없이 무례한 침입을 하는 엘타샤의 사람은 그대들이면 충분하니 그만 물러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성하!”
타다닥.
그들은 뒤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이제 다음은 당신입니다.”
“아, 죄송해요. 어서 가―”
“그 뜻이 아닙니다.”
그는 요이델을 붙잡았다.
“당신은 왜 저들을 피해 이곳까지 오시게 된 겁니까.”
“성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쫓아내지 않고 제대로 들어줄 거라고.
요이델은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까치발 떴다.
“엘타샤의 신관들이 수상해요. 보석은 정말로 잃어버린 게 아닐지도 몰라요.”
맞닿은 품 사이로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조심히 올려다보니 율리시스는 평소처럼 무감정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내 심장 소리가 왜 이렇게 크지? 요이델은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성하, 보석은―”
고개를 젖힌 순간 율리시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숨이 닿을 듯한 거리였다.
“아, 어…… 저희 너무 가까운데…….”
“…….”
“떠, 떨어질까요?”
요이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율리시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허락이라 생각하고 몸을 일으킨 순간, 자신의 등을 받친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하?”
그러나 순간의 착각인 듯, 그는 금방 요이델을 바로 일으켜 주었다.
“아, 맞아요. 성하, 엘타샤 신관들의 말에 따르면 도난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미 짐작했던 것처럼.
“혹시 아까 주교님과 무슨 대화를 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별다를 건 없었습니다. 다만 르를타의 말이 계속 달라지더군요.”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요?”
“결계는 파괴된 흔적이 없었고, 그 정도로 강력하다면 제게도 영향을 미쳤어야 합니다.”
“혹시 보석이 파손됐을 확률은 없나요?”
율리시스는 미약하게 놀란 얼굴로 멈칫했다. 역시 있나 보다.
“보석에도 내구성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특수한 보석이라면 훨씬 견고하겠지만, 파손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할 거예요.”
요이델은 그를 설득했다.
“성하, 성수는 정화의 샘에서 만들어지죠? 엘타샤의 상위 신관들은 돌아가며 그걸 지키고요. 왜 돌아가면서 지켰을까요? 보석을 지켜보는 사람은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로 한정하는 게 더 안전했을 텐데요.”
보석에 균열이 생긴 게 오래됐다고 치자. 하지만 성수는 여태껏 잘 생산되어 왔다.
‘신관들이 힘을 모아 보석의 균열을 한계까지 유지시켰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엘타샤의 신관들은 악역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국에 충성한다. 그런 그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르를타 주교일 거다. 지형 특성상 폐쇄적인 엘타샤의 지도자니까.
“성하, 그들을 다그치지 마시고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 주세요.”
“성수의 생산 중단은 큰 문제입니다.”
“저희에게도 굉장한 보석이 있잖아요?”
율리시스는 잠시 시선을 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올렸다.
“그건 당신이 부여받은 선물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하죠.”
요이델은 씩 웃었다.
신수가 준 보석, 그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