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미켈레 씨의 나이는 40대 정도였다. 그렇다면 수련신관 시절과 일치한다.
“당시 저는 떨치고 싶지 않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권유였다고는 하나, 성하를 실망시킬 일임을 알고도 죄를 저질렀습니다.”
“…….”
율리시스는 말없이 르를타를 지켜봤다.
“보석의 균열은 20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파손이었고,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저지른 일인 게 맞습니다.”
짐작했던 것과 같았다. 르를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렸다.
“성수의 취득 기간이 끝난 직후, 저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다시 한번 성수의 보석을 가동했습니다. 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그러나 무리였습니다. 무리한 힘을 짜낸 탓에 보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이 맞았어.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그는 계속해 보라는 듯 묵묵히 들어 주었다.
“중간에 수습을 하셔서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던 거군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왜 그런 일을 저지르셨죠?”
“당시 제 아들은 외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율리시스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그에게 보고가 올라오지 않은 일이었다.
아슈레오는 일이 힘들어 나간 것으로 보고되었다.
“저는 엘타샤를 떠날 수 없었고, 저만큼이나 고집이 강한 레오는 엘타샤로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친구를 하나 사귄 것 같아서 안심했으나, 몰래 알아보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더군요. 그리고 그때.”
르를타는 괴롭게 한숨 쉬었다.
“높으신 신관님께서 제의를 하셨습니다.”
한 교구의 장인 주교는 최고위신관의 직위에 해당한다.
요이델보다 한 단계 높고 대신관보다 한 단계 낮은 위치.
그런 그가 ‘높다’고 표현한다는 건 즉―
“지오르베니입니까.”
율리시스의 입에서 먼저 이름이 나왔다. 요이델과 같은 생각이었다.
르를타는 가까스로 미소 짓다 울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떨궜다.
“맞습니다.”
함축하자면 그랬다.
당황하여 바로 그만두었으나 이미 보석은 훼손된 뒤.
그때 취득한 성수를 가져간 지오르베니는 만족스럽다는 답을 들려줬지만 아슈레오의 편의를 봐주지는 않았고, 아슈레오는 수도를 떠났다고 한다.
‘지오르베니는 그때도 이미 뿌리 깊은 배신자인 거였어.’
성수는 나라 간의 거래 품목이다. 단, 브리칼트 제국에는 판매하지 않는다.
브리칼트는 쉬쉬하면서도 금기 마법을 다루는 나라였고, 관련 사고가 이미 수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성수는 마나의 힘을 극도로 끌어 올려 마법 성공률을 높여 준다. 한계치에 다다르는, 이른바 ‘궁극 마법’일수록 효과가 뛰어나다.
즉,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브리칼트는 성수 소지를 금지당했다. 수많은 나라 중 유일하게 제재당한 국가였다.
당시 브리칼트 황실은 크게 발악했었다고 전해진다.
‘브리칼트에게 가져다준 거야. 몰래 얻어 내야 하니까 직접 이곳으로 온 거고.’
어쩐지 석연찮은 기분이었다. 아슈레오 씨가 따돌림을 당해서 사람이 싫은 거면 충분히 말이 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이게 다 우연일까?’
하필이면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마침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성수 관리자의 아들, 마침 필요했던 성수, 마침 도와줄 수 있던 지오르베니의 권력.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어쩌면 미켈레 씨와 아슈레오 씨의 일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요이델은 따돌림이 자연적 탄생이 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요이델은 대신전으로 돌아오고 난 후 계속 갈등했다.
‘아슈레오 씨가 이 소식을 알면 슬퍼할 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게 할 수도 없어. 어떡하지?’
재판 결과 르를타는 종신형의 처분을 받았다. 판결에 번복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엘타샤의 주교였기에 더 큰 처벌을 받았다.
최고위신관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었다.
‘엘타샤의 주교로서 성수를 밀반출하고 샘을 훼손한 죄를 저질렀으니 가벼운 형벌을 받긴 힘들 겁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 사안에 자비를 청하실 수 없습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말을 걸기도 전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알고 있던 일이지만 아슈레오 씨에게 말을 해야 맞는 건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섰다.
르를타가 잘한 건 아니었다. 동정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과거에 지오르베니가 성수를 얻어서 뭘 하려고 했는지도 알아내야 했다.
“신관님, 무슨 걱정 있으세요?”
“얼굴색이 안 좋으세요.”
시종들은 요이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슬픈 표정을 했다.
요이델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눈빛이 슬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요이델을 짠하게 지켜보는 건 비단 시종들뿐만이 아니었다.
하일과 마르셀리나는 로사리움의 문을 서성이며 요이델을 지켜보았다.
‘아직도 성하와의 사이가 회복되지 않았나 보군요, 요이델 양.’
마르셀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요이델이 시무룩한 게 율리시스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의 그들은 냉랭해 보였으니까.
‘차라리 잘됐어. 이 기회에 우리 가문으로 끌어들이면 돼.’
“뭔지 몰라도 허튼 생각을 하는군, 자네.”
“……네가 날 아니?”
“알고 싶지 않지만 그 희한한 웃음은 잘 안다네. 말도 안 되는 수를 쓸 때 짓는 표정인 게지.”
나이 들더니 관찰력만 늘어났군. 마르셀리나는 하일을 흘겨보았다.
“너도 알겠지만 요즘 요이델 신관이 특히 쓸쓸해 보여.”
“자네가 눈치챈 걸 내가 모를 리 없지. 내 제자니까.”
“내 제자야.”
“나일세.”
“나야. 아무튼, 내 제자는 좀 더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해.”
“모자라진 않아 보이네만.”
“네가 어떻게 알아?”
“그야 성하…….”
짜증 가득하게 대답하던 하일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마르셀리나도 똑똑히 들었다. 저 방정덩어리가 성하라고 했다!
“너, 알고 있었어?!”
“마르셀리나, 자네도 알고 있었나?”
“설마 너도?”
“언제부터!”
둘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이 터졌다. 마르셀리나는 하일의 멱살을 쥐고 재빨리 숲으로 들어가 결계를 쳤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설마 싶은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알게 된 지는 얼마나 된 겐가, 자네는?”
“몇 달 정도.”
“큰 차이는 없겠군. 자네는 둘 사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어떤 둘?”
“방금까지 말하지 않았나, 그.”
하일은 몸짓으로 긴 머리를 표현했다. 그건 성하라는 뜻.
마르셀리나는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하일은 어깨 기장의 머리를 그리며 빵긋 웃었다.
“알아들었어.”
마르셀리나는 그만하라고 눈을 감았다. 성하는 그렇다 쳐도 귀여운 요이델을 표현하는 하일을 보자니 속이 거북했다.
“너도 요이델 신관의 비밀을 알고 있었구나.”
“아마 자네보다 먼저 알았을 걸세.”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이 여자인 줄 아느냐고 묻는 거였다. 하지만 하일은 요이델이 반려인 걸 아느냐는 물음으로 해석했다.
둘은 목적어를 빼놓고 아주 잘 소통했다.
“성하께서도 알고 계셔?”
“그야 물론이지. 당사자 둘 아닌가.”
“그럼 성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런데 숨기고 계셨다고?”
규율 위반은 아니지만 신분 위장은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미 알고도 감싸 주시고 곁에 두신다는 건, 성하의 마음에도 들었다는 뜻.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큰 분이니, 요이델의 능력을 대신전에 묶어 두려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르셀리나는 현기증에 이마를 짚었다.
추측하기로 요이델 양은 성하를 짝사랑한다. 큰 뜻이 있더라도 너무 비도덕적인 처사였다.
“……이럴 순 없어. 너무한 처사야.”
“진정하게, 마르셀리나.”
“진정하게 생겼어?!”
우리 요이델 양이 큰 상처를 받을 게 뻔한데 어떻게 진정을 하라는 거지? 마르셀리나는 하일을 노려봤다.
얼굴 모를 반려님보다는 자신이 아는 요이델의 상처가 더욱 중요했다.
‘설마 두 번째로 들이시려는 건…… 아니겠지? 성하께서 그런 분일 리가 없어.’
과거 숱한 황제와 왕이 혈통 유지를 위해 아내를 여럿 들였다지만 성국은 다르다.
애초에 두 명의 아내를 갖는 게 불가능했다. 정부의 자식은 당연히 사생아로 살게 된다.
“진정하게, 마르셀리나. 물론 연인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네. 그동안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성하셨으니 안식이 된다면 원로로서도 좋은 일이지 않겠나? 놀란 건 이해하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왜?”
“요이델 신관과 같은 입장으로서.”
“언제부터 자네가 요이델 신관과 입장이 같았나?”
“태어날 때부터지. 당연한 거 아냐?”
하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햇병아리 요이델 군과 마르셀리나 사이에 닮은 점이 있던가?
물론 요이델 군이 옛 마르셀리나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해박하긴 하다.
그런데 그것 외에 그다지 닮은 점은 없는 것 같은데.
요이델 군은 소심한 반면 마르셀리나는 예전부터 대범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원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서는 자신과 닮은 면을 찾으며 동질감을 느끼기 마련이지. 마르셀리나는 요이델 신관이 퍽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래도 마르셀리나와 요이델은 안 닮았다. 적어도 대신전의 광룡이라는 비밀 별명은 붙지 않으니까.
하일은 마르셀리나에게 맞은 이후 몇 년간 성서 표지만 봐도 두근거리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나는 대원로로서 반대할 거야, 하일.”
“그건 마르셀리나 자네라도 관여할 일이 아니야. 인간으로서 두 사람 사이의 일이지.”
“넌 너무 불온서적을 많이 봐서 그래! 윤리적으로 말이 되는 일이니?”
“딱히 안 될 건 뭔가?”
“그게 신관으로서 할 말이니?”
숲의 나무들이 마르셀리나의 분노에 의해 좌우로 진동했다.
“네가 연구 비용을 명목으로 불온서적을 몰래 사들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건 불온하지 않네!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네!”
“다물어. 제한 없는 사랑은 아름답지 않아.”
마르셀리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요이델 양에게 성하보다 훨씬 좋은 짝을 찾아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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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 신관님, 찾으시던 게 이 책인가요?”
“맞아요. 고마워요, 파멜라. 그런데 정말 다른 관의 기록지를 훔쳐 와도 괜찮아요?”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렵게 공수한 거니까 그냥 보세요. 들키면 까짓것 또 다른 관으로 가면 되죠, 뭐. 괜찮아요, 천천히 보세요.”
요이델은 남관 신관에게서 동관의 자료를 몰래 건네받았다.
그건 지오르베니가 역임하던 시절 그가 직접 썼던 기록지의 일부였다.
‘훼손되어 있어.’
방대한 기록 중 아슈레오가 떠났을 시기쯤을 살폈다. 그런데 기록이 좀 이상했다. 제대로 적히지 않았다. 성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신관님, 시, 신관님!”
“라나?”
요이델은 라나의 등장에 깜짝 놀라 서둘러 기록지를 숨겼다. 라나는 땀을 흘리며 헉헉거렸다.
“신수님께서…… 지금, 신수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