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라나는 플로테스에게 이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쾅!
“플로!”
방 안에는 이미 도착한 의료신관들이 있었고, 걱정스러운 안색의 시종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몇 분 전부터 서서히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플로테스는 눈도 뜨지 못하고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치유 마법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수에게는 좀 더 다른 마법이 필요한 걸까?
잠을 많이 잔 적은 있어도, 아픈 건 처음이었다.
“지금으로선 명확한 이유를 알기 힘드네.”
곧이어 찾아온 하일조차 제대로 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 성국 내에서 제일가는 의료신관인 그가 모를 정도의 일이라면 누가 알 수 있지?
요이델은 그래도 혹시 몰라 물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나도 신수님은 처음이라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지는 않았어요. 약도 그렇고, 행동반경도 똑같았어요. 독이나 유해한 풀이라도 잘못 먹은 걸까요?”
플로테스는 박하 잎을 제일 좋아했지만 겨울엔 찾기가 힘들어 때때로 꽃잎을 뜯어 먹기도 했다.
독성이 있는 꽃들도 있으니까 혹시 한눈판 사이에 먹어 버렸나?
“그건 아닐세. 배탈도 아니고, 독극물 반응도 없어. 이건 신체적인 문제 같은데…… 혹은 정신이거나.”
요이델도 살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안절부절못하던 다른 의료신관이 침통하게 눈을 감았다.
“신수님께서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신다면…….”
“언행 조심하십시오, 신관님.”
“하지만 만에 하나 의식을 잃으시고 오래 깨어나지 못하신다면 테레오를 걸어야 합니다.”
“최악의 수를 가정하지 말게나!”
테레오는 신체 보존 마법으로, 심각한 치료가 필요한 이의 몸을 급속으로 냉각시켜 손상 없이 보존시키는 고난도의 궁극 마법이었다.
잠자코 듣던 하일도 고개를 저었다.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쪽이 좋습니다. 신수님은 어리고, 그건 더는 육체의 존속이 무리라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방법 아닙니까?”
하일마저 고개를 젓자 장내는 더 고요해졌다.
잠시 후 사람들이 빠지고 조용해진 신수의 방 안.
“요이델 신관님도 조금 주무세요.”
“맞아요, 그러다 병나셔요. 두 분이 함께 병이 나시면 정말 큰일이에요.”
하지만 요이델은 플로테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탈수가 올 것 같았다.
자그마한 은백색 몸이 시뻘건 불꽃으로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원래도 플로테스의 체온은 사람보다 따뜻한 편이었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이상 체온이었다.
아주 옛날에 존재했던 신수들은 대부분 성체로 나타나서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있는 것이 아슈레오의 기록서.
“아슈레오 씨!”
그때 불현듯 해답이 떠올랐다.
자신보다 신수에 대해 해박한 아슈레오라면 분명히 답을 알고 있을 거다.
요이델은 푸석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당장 편지를 썼다.
“빨리 보셔야 할 텐데.”
발을 동동 구르며 그와 소통하던 아티팩트 통신구로 편지를 전송했다.
‘아슈레오 씨는 잠이 많아서 빨리 확인하지 못하니까, 이번에도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런데 그날 새벽, 아슈레오 씨의 답장이 돌아왔다.
━━━━⊱⋆⊰━━━━
요이델은 아슈레오의 편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그렇지만 어린 신수에 대한 연구 자료는 드물어. 하지만 여기에 남아 있는 신수의 혼령들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저번에 봤던 그 아기 신수들을 말하는 듯했다.
[신관님께서 다녀간 이후로 나도 가끔이지만 신수님들을 볼 수 있게 됐어. 언어도 희한하게 뜻이 통할 만큼 들려. 그런데 잦지는 않으니까, 계속 시도해 보고 알려 줄게. 신관님, 힘들겠지만 밥 잘 챙겨 먹고 기운 내야 해. 걱정이 되는구만.]편지는 그런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플로…….”
“……후우.”
평소처럼 꾸, 도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알아들은 듯 자그마한 몸을 있는 힘껏 움직여 요이델 쪽으로 몸을 틀었다.
달칵.
그때 방의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식사는 나중에 할게요.”
“지금 하십시오.”
깜짝 놀란 요이델은 단숨에 뒤를 돌아보았다.
성하? 성하가 왜 여기에?
당연히 시종인 줄 알았다.
이미 몇 차례 식사를 거절했으니까.
“그리 붙어서 보신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기지만 신수의 핏줄입니다. 웬만한 일로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율리시스는 식사 거리를 가지고 와 직접 테이블에 놓아 주었다.
“신수가 당신이 해쓱하게 있는 걸 보면 기뻐할 것 같습니까.”
“……제가 플로테스에게 소홀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소홀해서 아픈 거라면 세상의 들꽃들은 모두 말라 스러졌을 겁니다. 이 신수도 당신의 관심에 좌우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한 율리시스는 묵묵히 침대 위로 다시 식사를 옮겨 주었다.
부드럽게 갈아 놓은 오트밀 죽과 편하게 넘기기 좋은 차였다.
식사를 걸러서 부담이 된 위에 자극을 덜 주기 위한 식사인 듯했다.
“먹여 드려야 식사하시겠습니까.”
“아! 아, 아뇨. 괜찮아요.”
요이델은 얼른 수프를 후후 불어 먹었다.
이렇게 있으니, 그와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던 게 꿈속의 일 같았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식사를 전부 마친 모습을 본 후에야 시선을 뗐다.
“그리고 소홀하지 않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이 핏줄을 가지고 종종 아팠으니.”
“성하께서요?”
“그 눈빛은 뭡니까. 저는 아픈 적 없을 것 같단 눈으로 보시는군요.”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때 감기 기운이 있는 걸 봐 놓고도, 그와 연약함은 어딘지 괴리감이 들었으니까.
다칠 수 있고 아플 수 있는 건 알지만, 가끔 낯설다.
“질병이나 질환이 아니라면 성장통일 겁니다.”
율리시스는 침착한 눈길로 플로테스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성장통이라면…… 신체가 자라면서 몸이 아파 오는 통증이잖아요?”
“인간이 언제 가장 활발한 신체 변화를 겪는지 아십니까.”
그는 플로테스에게 또 한 번의 치유 마법을 걸어 주었다.
과연 능숙한 힘은 달라서 플로테스의 표정이 확연히 누그러졌다.
“바로 이때. 태어난 이후부터 신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그럼 플로가 많이 아픈 건 아니겠죠? 몸이 욱신욱신, 그 정도겠죠?”
“아니요.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한번 바라보고 어린 신수를 돌아보았다.
“제 주인을 괴롭힐까 봐 노심초사하던 충성스러운 동물이,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 있으니 언짢군요.”
말과 다르게 손짓은 부드러웠다.
곧은 손에서 신성한 빛이 나와 스미는 게 거듭될수록 플로테스의 표정은 풀어졌다.
“후…….”
그러나 그는 순간 눈을 찌푸렸다.
“아프세요?”
“신수는 저와 비등한 존재라, 조그만 몸에 비해 많은 신성력을 잡아먹는 것뿐입니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현기증이 인 듯했다.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그럴 만하다.
요이델은 그의 팔을 잡았다.
“무슨…….”
율리시스의 표정이 곤혹스러워졌다. 반면 요이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똑바로 직시했다.
“제 힘을 가져가세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순 있어도, 그래도 페어링으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율리시스는 그녀의 작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가 당신의 힘을 가져갈 정도로 약해 보이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어지러움을 느끼셨잖아요. 플로테스를 치료해 주기 위해서 힘을 쓰셨고요.”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수를 치료해 준 대가다?”
“대가는 아니고, 플로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에요.”
“같은 말씀 아닙니까.”
율리시스는 손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완강한 거부 의사였다.
“아, 아니면 말고요…….”
요이델은 머쓱해서 손을 거뒀다.
“아프신 건 오히려 당신입니다. 본인에게 열이 끓는 건 모르셨습니까.”
그의 표정이 질책하듯 가라앉았다.
어쩐지 조금 몸이 춥다 했더니, 내가 열이 나고 있는 거였구나. 요이델은 옷을 더 꽁꽁 감쌌다.
“쉬십시오.”
“……성하!”
율리시스가 플로테스를 넘겨받으려던 때, 요이델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혹시, 이제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그러나 요이델의 말을 들은 율리시스는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냉정했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용서라.”
그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쾌해 보였다.
“잘못 알고 계십니다.”
시선이 말투만큼이나 차분하고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율리시스는 자신의 감정을 바로잡았다. 저 입에서 용서를 구하는 말 따위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녀를 학대한 요보힐데 공작 부부와 자신이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만들려던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미숙함을 통제하며 서서히 말을 꺼냈다. 이제는 그래야 할 때였다.
더 늦어서는 안 됐다.
“당신은 부모의 압박으로 타인을 대체하는 삶을 살았던 것 아닙니까.”
“…….”
“남자로 살았던 건 그래서라고.”
그의 말에 요이델은 놀라 입을 벌렸다. 그가 어떻게…….
율리시스의 눈이 알 수 없는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그런데 왜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제게 말씀을 안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