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산다는 건 실수로라도 알린 적 없다.
그렇다는 건 그 스스로 알아냈다는 뜻이 되는데.
‘요보힐데 공작 가문을 조사한 건가?’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도 않지만, 그에겐 페넘브라가 있었으니까.
성국의 그림자 부대 페넘브라는 의뢰비가 어마어마한 정보 길드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어디까지 아시는 걸까?’
자신에게 쌍둥이 남자애가 존재했다는 사실까지 전부?
흔들리는 눈빛을 본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얼굴을 살며시 들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눈빛이 심해처럼 깊었다.
“당신이 아는 것 전부, 알고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전부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남자 형제까지 전부. 공작 부인의 출산 시기를 추정하면 쌍둥이였을 겁니다.”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요이델은 침구를 꽉 움켜쥐었다.
몸이 벌벌 떨리고 얼굴이 붉어져 그에게서 조금씩 물러났다.
“언제부터 모른 척해 주셨던 거예요?!”
“당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진실로 몰랐습니다. 다만.”
그건 율리시스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점이었다.
“때때로 여자로 보일 때가 있어서 당황한 적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헛것이라 여겼지만.”
“제 환각 마법이 푸, 풀렸었나요?”
저도 모르게 말이 버벅거렸다. 이 마법이 풀렸을 때가 또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요이델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말씀드리지 못해서.”
“물론 그대는 사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수도 없었던 것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푸른 눈이 극도로 고요했다.
얼핏 감정 없어 보이는 얼굴이, 사실은 많은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을 함부로 오해하도록 두진 마셨어야 합니다.”
“…….”
“제게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보힐데 공작가를 몰랐다면, 그 오해를 전부 당신의 자의라고 알 수도 있던 일입니다.”
요이델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숙였다. 그러자 율리시스가 고개를 못 숙이게 고정시켰다. 또다, 또 저런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우는 얼굴이 붕어 같으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싫다고 했잖아요! 이잇, 놔주세요!”
“바로 반박하는 게 훨씬 더 당신답군요.”
“꾸우…….”
그때 플로테스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요이델은 플로테스에게 다시 한번 힘껏 치유 마법을 걸어 줘서 열을 떨어뜨렸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에게서 플로테스를 넘겨받았다.
“당신의 힘을 나눠 받을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신수는 제가 돌볼 테니 주무십시오. 한 시간도 못 주무신 것 압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게 아니라, 혹시라도 플로를 마구 대하시면 안 돼요.”
“……주무십시오.”
걱정과 다르게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솔솔 쏟아졌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황당하다는 듯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플로테스가 아프니까 구박하시진 않겠지…….
그는 침대 끝에 앉아 플로테스를 토닥였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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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몇 시야?”
요이델은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평균적인 기상 시간은 5시. 하지만 플로테스를 돌보려다가, 아니 조금만 자려다가 벌써…….
반쯤 뜬 눈을 허둥거리다가 옆을 더듬었다.
“푸로…… 어디갔어, 하아암.”
그러나 요이델의 손에는 빈 시트만 잡혔다. 다시 눈을 비비고 앞을 본 그 순간.
“어?”
요이델은 보고도 믿기지 않아 계속 눈을 비볐다.
침대에는 율리시스도 함께 누워 있었다.
플로테스를 사이에 두고 요이델의 반대쪽에 있던 그는, 품에 플로테스가 아닌 다른 걸 안고 있었다.
“아므앙―”
정확히 말하면 ‘다른 거’라기보다는 다른 사람.
모르는 아기가 성하의 품에 포옥 안겨서 은발을 만지작거리고 입으로 우물거렸다. 성하는 안정된 잠에 빠져 그 아기를 안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얼핏 보면 부자지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잠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성하께서 언제 출산을…… 아니, 그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다시 생각해 보자, 성하께서 아이를 낳, 낳을…….
‘낳아 오셨어?!’
시간이 있었나? 일만 했던 거 아니야?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데 충격으로 머리가 굳어서 사고가 잘되지 않았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갔다.
침대 위로 흐트러진 아름다운 은발.
잠든 와중에도 고귀함을 잃지 않는 율리시스의 수려한 얼굴은 간밤에 천사가 소원을 이뤄 주러 강림했다가 그대로 머무른 것 같았다. 대천사인 그와 아기 천사…… 아기! 정말 왜 아기가 여기 있는 거야!
‘게다가 이 아기, 성하랑 똑같이 생겼어!’
똑같은 은발이었다. 아기 쪽이 조금 더 흰색 느낌이 돌았지만.
포동포동 사랑스러운 분홍빛 뺨과 볼살에 눌려 세모꼴로 완성된 입, 오뚝한 코.
이목구비도 묘하게 그를 닮아서 벌써부터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품에 있어야 할 플로테스가 안 보였다.
“플로!”
잠시 한눈판 사이에 플로가 아예 사라져 버리다니. 눈물이 펑펑 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로 잠들지 않는 건데. 납치인가? 아니면 가출? 아니면 설마 열이 심해서 녹아…….
과해지는 상상에 고개를 저었다.
‘플로, 어디로 가 버린 거야? 플로.’
잠깐만.
그때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곤히 잠든 성하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숨 쉬는 작은 아기. 저 아기의 머리 색도 은발…… 은백색이야.
플로테스의 몸도 은백색이다.
‘상식적으로 없던 아기가 뿅! 하고 생길 리가 없잖아.’
요이델은 살금살금 푹신한 침대 위를 기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작은 아기를 빤히 쳐다봤다.
“플로?”
하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역시 그럼 그렇지. 플로테스는 작은 아기 드래곤인데 어떻게 벌써 인간화를 하겠어.
인간의 언어를 익히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데.
그래도 알 수 없는 느낌에 다시 돌아본 순간, 낯선 아기는 요이델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플로?”
설마설마했지만 결국 말했다.
요이델의 말에 아기는 잠시 조그만 입을 옹알거리더니 방싯 웃었다.
“웅!”
“저, 정말 플로야?”
“우움…… 아!”
요이델이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가까운 소란을 느낀 율리시스가 잠에서 깼다.
“무슨 일입니까.”
“늉!”
“……이건 뭡니까?”
율리시스조차 일순간 굳어 버렸다.
그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제 품 안의 이 아기는 뭐고, 기절 직전의 저 여자는 뭔지.
“뭉니!”
“성하의 이름인가 봐요!”
“몽.”
그리고 요이델을 부르며 방긋 웃었다.
율리시스는 얼떨떨한 얼굴로 품 안에서 꼬물거리며 제 얼굴을 찰싹 치는 아기를 바라봤다.
“혹시 이것이 신수입니까?”
“뭉니!”
콱.
플로테스는 ‘이거’라고 지칭되자마자 율리시스를 깨물었다.
“아얏!”
“그 신수가 맞군요. 제 주인까지 아프게 하는 행동을 거듭 망각하는 걸 보면.”
“늉니, 부브!”
이 표정은 확실히 플로테스였다. 완벽한 인간화였다. 본래 시기보다 훨씬 이르지만 완벽했다.
인간화와 언어 습득까지 동시에 이뤄 낸 것이다.
“플로! 정말 플로야? 플로!”
“방금 그 신수가 제게 바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잠에서 깬 율리시스는 침대에 팔을 대고 서서히 윗몸을 일으켰다.
방해받은 휴식에 눈을 잠시 감았던 그는 곧 온화한 시선을 내비쳤다.
“으바.”
그 순간 율리시스의 눈이 바로 뜨였다.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방금 이 신수가…….”
“플로?!”
“움마.”
플로테스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다가 뒤로 폭 넘어갔다.
푹신한 침대에 기분이 좋은 듯 방긋방긋 웃고 신기한 듯 제 팔다리를 꼬물거렸다.
“마.”
“프, 플로 나한테 엄마라고 한 거야?”
“마아!”
방싯 웃은 금색 눈의 아기는 안아 달라는 듯 요이델과 율리시스를 향해 팔을 뻗었다.
“움마, 아부으.”
조그만 입 주위가 침으로 흥건해졌다. 아기 드래곤일 때만큼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율리시스는 제 소매로 한 줄기 침을 닦아 주었다.
“아브아.”
“신수가 저를 아비로 인정하는 듯합니다.”
“그러면 안 돼, 플로.”
요이델은 플로테스를 번쩍 들어 올리고 단호히 주의를 줬다.
“성하는 아빠가 아니야.”
“…….”
“마아.”
“나는 엄마라고 불러도 되지만, 성하에게는 하면 안 돼. 아빠가 아니니까.”
“바.”
“성하는 성하야. 아빠가 될 수 없어.”
플로테스는 입을 꿍 다물며 반항의 눈빛을 했다.
“그러면 안 돼.”
“마앙!”
“성하께 실례야.”
요이델은 인간화된 플로테스에게 집중한 나머지 율리시스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플로, 하지만 밖에선 나도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
그러자 플로테스가 그건 이해한다는 듯 방긋 웃었다.
“플로, 너무 귀여워……!”
요이델이 플로테스를 안고 기쁨을 만끽하던 그때.
두두두두.
쾅!
“요이델 씨!”
땅을 진동시키며 달려온 곰 한 마리가 문을 열어젖혔다.
“흐, 허어억, 우웩.”
헛구역질을 한 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손에는 웬 지도를 둘둘 만 채.
“아슈레오 씨?!”
“허억, 신, 신수님의 건강은― 확실히 성장 단계라서가 맞고, 우욱, 성장 직전에 신수님들은 한 번 큰 고열을 앓지. 뼈와 근육이 급격히 자라나기 때문에, 허억, 어서 이 약을!”
그러나 아슈레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으잉?”
갈색 눈이 충격으로 깜빡였다.
침대에서 같이 잔 듯한 두 사람과 한 명의 아기.
플로테스는 짐승처럼 헉헉대는 아슈레오를 지켜보다가 방싯거렸다.
“서, 설마…….”
아슈레오는 아기의 뒤에 있는 율리시스와 요이델을 향해 삿대질했다.
“두 분의 아기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