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성하, 여쭐 말씀이 있어요!”
요이델은 외부의 일로 나갔던 율리시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귀갓길에 그녀를 본 율리시스의 얼굴이 미미하게 밝아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딱 붙어 있던 하일은 알았다.
‘웃으신다! 두 분의 사이가 좋아지셨어. 결혼식은 올해 안으로 준비해야 하나?’
하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율리시스를 재촉했다.
“아아! 요이델 님…… 아니, 요이델 신관이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나 봅니다. 반드시 귀 기울여 들으셔야 합니다. 저희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신관들 중 하나가 말했다.
“아, 아니, 원로님. 성하와 아직 회의가 남은……”
“조용히 하시게. 자네들은 나랑 볼일이 있지 않나?”
“예에? 아뇨, 없는……!”
깜짝 놀란 얼굴을 한 하일이 다급히 다른 신관들을 이끌고 먼저 사라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피곤해 보이던 율리시스가 미소 지으며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세례식 관련해서 말인데요.”
“이야기하십시오.”
“성하께 세례를 받을 사람들의 명단은 이미 모아진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뚜렷한 기준 없이 선발하기 때문에 발표 이후 암암리에 세례받을 권리를 사고파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직전에 발표합니다.”
요이델은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진 눈빛으로 율리시스를 응시했다.
“그럼 혹시, 저도 세례를 받을 수 있나요?”
“요이델 님께서는 이미 고위 성직자이십니다. 대신전의 사람이니 받고 아니고 할 것이 없습니다.”
“세례를 내려 줄 수 있는 신관이 되려면, 성하께 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어요.”
뺨이 수줍게 붉어졌다.
아마 요이델은 모를 것이다. 그녀가 율리시스를 어떤 반짝임으로 보는지.
“세례 신관은 왜…….”
그 순간 율리시스는 깨달았다.
요이델은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씩 웃었다.
“왜냐하면, 세례를 내릴 수 있는 자격을 얻으면 브리칼트에서 함부로 제 송환 요청을 하진 못할 테니까요.”
세례 신관은 특별했다.
주신 시엘로를 섬기는 삼 대륙의 사람들. 그중 가장 거대한 교단인 성국의 대신전.
이곳에서 세례 신관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나라를 막론하고 세례를 내릴 수 있었다. 직급과 무관하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세례를 내릴 수 있는 신관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반면 세례 신관을 초청하려는 국가는 많았다. 이들은 일종의 외교관 역할도 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다른 나라와의 이해관계도 얽히게 되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브리칼트가 쉽게 건들기 어려워지니까.’
“좋습니다. 공부가 필요하겠군요.”
“네! 그렇죠!”
요이델은 투지를 불태웠다. 그 모습에 율리시스도 싱그럽게 웃었다.
“축복 마법은 대상이 필요합니다.”
“아! 그러네요. 그냥 허공에 하면 상대에게 마법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겠죠?”
“맞습니다.”
율리시스는 아주 훌륭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휘었다.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그는 돌연 몸을 낮추고 요이델의 손을 끌어 자신의 이마에 댔다.
“제게 당신의 은혜를 내려 주세요, 신관님.”
율리시스가 순종하듯 위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네? 네, 네?! 네에?”
잡힌 손이 부르르 떨렸다.
요이델의 얼굴은 당근과 토마토를 넘어 활화산이 될 지경이었다.
“이런 식이라는 뜻입니다.”
“아, 저는 또……. 깜짝 놀랐어요.”
작은 심장이 아직도 쾅, 쾅! 뛰었다.
“일전의 축복 마법, 기억하십니까.”
“아― 연무장에서 있던 일이요?”
율리시스는 일어나서 요이델의 이마에 차분히 손을 대었다.
“세례를 할 때에는 그 축복 마법을 미약하게 변형하시면 됩니다.”
“변형이라면, 더 가볍게요?”
“가벼우나 더 화려하게 보이도록.”
“본질은 똑같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세례 마법은 보통 날을 잡고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므로, 이전처럼 남발하셨다간 쓰러지실 겁니다.”
이전에 거의 탈진 상태에 다다랐지.
그때 느낀 기운은 빈혈이나 저혈압 상태와 비슷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힘이 빠지고. 그런 걸 두 번이나 겪고 싶진 않았다.
“요이델 님께서는 보유한 신성력이 많아서 그 정도였으나, 보통이라면 쓰러지고도 남았을 겁니다.”
“맞아요, 저는 신기하게 멀쩡했어요. 오히려 더 기운이 났는데…….”
그러고 보니 왜일까?
“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아, 네. 뭔가요?”
“연무장에서 요이델 님을 최초로 발견한 건 저였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요이델이 끄덕이자 율리시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그리고 여기에 입을 맞췄습니다.”
“네?!”
깜짝 놀라 이마를 가린 요이델은 파바밧 뒤로 물러섰다. 율리시스의 표정은 어딘지 미묘해 보였다.
“그대로 두면 몇 주나 기절해 있을지 몰라서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 그건, 그…….”
격한 혼란을 느꼈다.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구해 주신 건 고마운데, 그런데…… 성하께서 왜요? 그때는 절 싫어하셨잖아요.”
“싫어한 적은 없습니다만.”
요이델이 빤히 쳐다보자 율리시스는 마침내 인정했다.
“꺼리긴 했습니다만 싫었던 건 아닙니다. 저도 했고 당신도 했으니 비긴 걸로 합시다.”
“……아니에요, 성하.”
그의 말을 잠자코 듣던 요이델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성하가 두 번 하셨고, 전 한 번이에요.”
“…….”
“…….”
기절했을 때 한 번, 골목에서 두 번.
요이델의 정확한 계산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
이른 새벽 대예배당 안.
율리시스는 늘 요이델보다 한발 먼저 일어났다.
아침 산책을 나와 쓰레기를 잔뜩 수거하는 등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는 요이델을 구경하기 위해서.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른 이유로 대예배당을 찾았다.
대예배당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던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미치겠군.’
혼란스러운 속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그는 연기를 뻑뻑 피워 댔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쳐다봤다.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 용으로 달고 산 지 꽤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없어도 살 만했다.
침입자들을 베며 지루함을 해소하지 않아도 현 상태로도 좋았다.
‘성하!’
요이델의 목소리 하나가 그 무엇보다도 달았다.
‘미친놈 같은 생각만 하는 건가.’
율리시스는 씁쓸함에 천천히 눈을 떴다. 새파란 눈은 반쯤 공허했고, 반은 격동으로 씨름했다.
“후우…….”
기나긴 연기가 한숨처럼 흘렀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성스럽기 그지없는 공간 안에서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가진 남자가 고뇌했다.
지금까지 남에게 흡연을 들킨 적은 없었다.
‘그것도 그 사람은 예외였군.’
대예배당에서의 그날. 어떻게 알았는지 갖은 일로 골머리를 앓던 그에게 그녀는 선물처럼 찾아왔었다.
비록 대원로를 피해 도망 온 거긴 하지만.
“…….”
그때 모습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참 여러 번 제 품으로 굴러 들어왔다. 요이델 본인에게는 득일지 실일지 몰라도, 그렇게 여러 번 율리시스의 감정을 건드렸다.
그는 연기를 흘리다 말고 자신의 체내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호흡이나 여타 문제는 없었다.
‘키스할 때 곤란한가.’
그는 피우던 것을 땅에 처박았다.
이제 끊는 게 좋겠다.
미련은 없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미리 예방하는 편이 좋았으므로.
처음 이 감정을 깨달았을 때의 짐작대로였다. 그 작은 아지랑이가 거대한 화마의 전조였던 것이다.
‘성하께서 만들어 주신 장미 밭이 아주 예뻐요.’
그는 대예배당의 장미 장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게 아름다운가? 한 번도 그리 여겨 본 적 없다.
한데 다시 보니 제법 예쁜 듯도 했다.
그래도 그는 장미보다 백합이 좋았다. 요이델이 준 최초의 선물이.
“하.”
율리시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없는 듯 허탈한 웃음이 연신 가볍게 흘렀다.
얼굴을 쓸어내린 그는 이마를 짚었다.
이거였나, 이런 마음이었나.
‘네 꼴이 끔찍해. 왜 네 아버지만 닮았니? 웃지도 않아, 울지도 않아. 어쩌라는 거니. 응? 내가 왜 네 어머니야. 나를 아니? 넌 누구야?’
옛 기억 속, 자신을 낳은 이는 그를 끔찍해했다.
만일 제게도 요이델이 아닌 다른 여자와 의무적으로 혼례를 치르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라 한다면…….
율리시스는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같은 대상이 생겨 보니 알겠다.
물론 생물적 부모의 삶과 자신의 삶은 별개였기에 그 폭언들을 이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안다, 그뿐이었다.
그의 옆모습에 고요한 그늘이 졌다.
“…….”
요이델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어두운 눈으로 다시 한번 친자 감별 마법 결과지를 훑었다.
[A- 99.999퍼센트의 확률로 불일치]A번 결과지는 크리스토프 요보힐데를 뜻했다.
즉 요이델은 요보힐데 공작의 친자가 아니다.
그러나 B, 클레멘타인 요보힐데 공작 부인, 그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