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 버렸다.
“참 잘 만든 반지군요.”
비아냥거리는 의미도 있었으나 정말 희귀할 만큼 강력한 반지이긴 했다.
이게 왜 요보힐데 공작가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이 솔직하게 말해야 할 때였다. 요이델은 맘을 다지고 그의 눈을 바로 직면했다.
“생각한 곧이곧대로 말해도 되나요?”
“얼마든지.”
“우선, 성하랑 한 입맞춤은 좋았어요!”
율리시스는 그 당찬 말에 잠시 고민했다. 기뻐해야 하는 말인가? 슬프진 않은데 좋아하기도 꼴이 우습다.
“후한 평가 감사드립니다.”
그는 답하고도 어딘지 기분이 미묘했다.
“그리고 또 동시에 성하가 무서워요.”
씩씩하게 상처 주는 말에 율리시스가 순간 굳어 버렸다.
“아! 무섭다가 그 무섭다가 아니에요. 그건 오해예요!”
“마치 저랑 한 입맞춤은 좋고, 저는 싫으시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네?”
“저에게서 특정 부분만 취하고 싶으시다는 과감한 발언은 아니길 바랍니다.”
“절대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오해를! 요이델은 급하게 팔을 흔들었다. 그런 뜻은 정말 아니었다.
“성하가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입 맞추실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다만 조금…….”
요이델도 여러 번 고민했다. 그런데도 속내를 전하려니 식은땀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고 목소리가 떨렸다.
“성하가 가진 것들이 두려워요. 성하의 연인이 된다는 건, 성후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함부로 수락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가 아니잖아요.”
그건 요이델의 말이 맞았다. 두 원로가 벌써 미래 계획을 완료했을 정도로, 율리시스에게는 신분적인 한계가 있었으므로.
“장난처럼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절대 성하로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저도 싫…… 싫지는 않았고, 계속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볍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어요.”
그를 바라보는 요이델의 눈빛이 똘망똘망 빛났다. 얼굴은 불타는 당근이 된 채로.
“그러니까 말라서 죽으시면 안 돼요.”
“누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그건…… 책이요.”
요이델은 열심히 책을 읽었다. 제 상황을 아는 사람이 없어 도움을 청하기 어려우니까.
그때 하일이 요청한 적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싱글벙글한 얼굴로 나타나 불온서적을 빌려주었다.
“저, 열심히 할게요!”
울다가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본 율리시스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힘껏 다른 생각을 했다.
저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선언하다니. 누가 보면 전쟁터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그는 얼굴을 가렸다.
“우세요?!”
“네.”
“뭐예요, 웃잖아요!”
요이델이 그의 손을 붙잡고 내리자 미소를 참는 듯한 얼굴이 보였다.
척 봐도 즐거운 듯한 모습에 요이델의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나는 겨우 진심을 말했는데 웃다니. 저렇게 웃다니!
“저, 저는 다 말했어요. 이제 갈래요.”
“동정심으로 노력하는 마음은 싫습니다.”
그때 율리시스가 그녀를 붙잡았다.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동정하는 거 아니에요.”
“말씀 잘하셨습니다. 저도 당신을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좋은 겁니다.”
사랑해 주는 게 아니라 마땅히 그런 것뿐이다.
“저는 당신이 좋고, 귀엽습니다.”
“그, 그런 말씀을 자꾸 갑자기 하시면…….”
“요이델 님이 생각하셔야 하는 건 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당신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율리시스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게 좋은 방향이길 원합니다.”
“압박인가요?”
“소원이라고 미화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점차 낮아졌다.
“더 솔직하자면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말씀은 못 드립니다.”
“명심할게요! 언제까지죠?”
요이델은 펜을 들고 메모하려고 했다.
누가 들으면 조약이라도 맺는 줄 알겠다. 율리시스는 웃음을 참으며 요이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위를 향했다.
물끄러미 직시하는 눈빛엔 욕망이 흘렀다. 결코 숨겨지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리면 매달릴 거니까.”
율리시스는 시선을 떼지 않고 요이델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나 좀 사랑해 달라고.”
━━━━⊱⋆⊰━━━━
“성하가 무슨 짓을 했길래 애가 녹아서 와?”
휘스테론은 멍하니 생각에 잠긴 요이델을 슬쩍 바라보고 서재의 문을 다시 닫았다. 그는 라이오스를 힐끔 쳐다봤다.
“아 맞다, 너 델 좀 좋아했지. 미안.”
“…….”
“괜히 아픈 데를 들쑤셨네. 근데 너 인기 많잖아. 까놓고 말해서 연애도 좀 했고. 우리 델은 안 돼. 야, 내 생각에 너는― 아악!”
퍽!
휘스테론은 정강이를 얻어맞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 소동에도 서재에서 홀로 생각하던 요이델은 바깥의 소란은 듣지 못했다.
‘흐윽, 자네, 아니 요이델 군, 아니 요이델 님의 세례 기록은 없으십니다. 몇 번씩 다시 봤는데도 그렇더군요.’
아직도 이상하게 말을 버벅거리는 하일은 요이델의 세례 기록을 찾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이 세례를 받은 기록은 없었다.
‘요보힐데 공작가는 황제의 최측근이니까, 황제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했겠지.’
그런데 황제는 뭘 위해서 그렇게 성국을 괴롭히는 걸까?
“음…… 이해가 안 돼.”
“어떤 점이 그렇죠?”
“꺅! 파멜라!”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요이델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언제 왔어요?”
“벌써 5시예요. 요이델 신관님이 로사리움으로 와 달라고 했잖아요.”
“아, 미안해요. 거기 소파에 앉아요.”
파멜라는 즐거운 얼굴로 요이델의 옆으로 소파를 번쩍 들고 와 앉았다. 말을 잘못 이해한 듯했다.
“원로님께 들었어요. 요이델 님께서 세례 신관이 되시기로 했다고요. 실질적으로 남관이 선택받았다면서 기뻐하셨죠.”
“소문이 벌써 퍼졌어요? 마르셀리나 님도 아시나요?”
“이미 저희 측 원로 예하와 싸우고 돌아가셨어요.”
요이델이 놀라 입을 벌리자, 주위를 돌아본 파멜라가 조심스레 귓속말을 했다.
“사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셨어요. 물론 하일 원로 예하께서요.”
요이델은 작게 한숨 쉬었다.
하일의 태도도 ‘요이델 님’이라고 하는 둥 좀 이상했지만, 마르셀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감격에 찬 듯했다.
‘두 분 다 왜 그러실까?’
드르륵.
파멜라는 남관 테라스에 앉은 요이델의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파멜라, 사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뭘까요?”
“지난번에 일부러 제게 힌트를 준 거죠? 지오르베니가 비밀 도서관에 데리고 갔다는 수련신관이요.”
“으응, 아뇨. 흘려들으세요, 요이델 님도 아시잖아요, 제 소문.”
그녀는 별칭 광기의 파멜라라고 불렸다. 예지 능력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고.
옛날에는 미쳤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이델은 그를 믿지 않았다.
자신이 본 파멜라는 아주 똑똑했으니까.
“그럼 내게 소중한 분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는 뭐였나요?”
파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싱긋 웃었다.
“그거야, 요이델 님이 성하의 반려시니까요.”
턱, 파리해진 요이델이 떨리는 손으로 파멜라의 입을 막았다.
파멜라는 여전히 생긋 웃으며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닌데요?”
“정말 아니에요.”
“콩고물 떨어질 만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사실인데요, 그거. 그래서 동관에서 남관으로 옮겼고, 요이델 님을 좋아하죠.”
파멜라가 짓궂게 웃으며 요이델의 손으로부터 고개를 뗐다.
요이델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물론 적중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약간, 아주 조금, 먹고살 만하게 응용하는 정도죠.”
“……대단하네요, 파멜라.”
“하지만 요이델 신관님처럼 정의감은 없어서, 이 능력은 제 앞날을 위해 써요.”
조금 툴툴거리듯 방어하는 파멜라를 보며 뭔가 떠올랐다.
“지오르베니의 과거 부정 행각 증거품을 보내 준 익명의 사람이 파멜라였군요.”
눈에 띄게 화들짝 놀란 파멜라는 관자놀이를 긁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오탈자가 많았어요, 스펠링도 틀리고요.”
“다 검수하고 보냈는데요?!”
파멜라가 경악하며 쿠당탕,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는 씩 웃는 요이델을 보면서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당했네요!”
“그것 봐요, 파멜라는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에요. 아주 정직하고요.”
“다들 저더러 괴짜라고 하던데.”
일부 신관들이 ‘파멜라는 이상하니까 거리를 두세요.’라고 했었지만, 요이델은 듣지 않았다.
“저는 괴짜 좋아해요.”
요이델이 진지하게 말하자, 파멜라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얼굴을 붉히고 우물거렸다.
“저도 요이델 님이 좋아요. 아, 걱정 마세요. 성하의 연적이 되겠단 건 아니니까요.”
파멜라는 마른 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움을 탔다.
“그리고 세례식 얘기를 한 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거든요. 미래에 일렁이는 붉은 빛이 보여요.”
“붉은색이요?”
“불길해서 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거 있죠.”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파멜라는 지난 세례식을 봐 왔죠? 세례식에 사용되는 물은 어디서 끌어오나요?”
“축복 마법과 함께 사용되는 물은 이슬을 모아 만들거나, 진짜 성수를 희석하여 사용해요.”
“파테라에도 물이 가득 차오르죠?”
“아! 맞네요. 그건 늘 평범하게 수로의 물을 이용해요.”
세례는 거대한 접시처럼 생긴 예배당에서 이루어진다. 당일에는 그곳에 얕고 넓게 물이 깔린다.
세례를 내리는 이도 받는 이도 다른 무구나 장신구 없이 하얀 정복을 걸치고 참여하는 물의 의식.
‘……바로 그거야. 맑은 물.’
원작의 그 장면.
역시 브리칼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