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유나 씨와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인적 드문 건물에 도착했다.
주철수한테 도청장치를 달기 위해선 배상훈이 꼭 필요한데, 혹시 의심받을까 봐 공개된 장소로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날 일이 있으면 이 건물에서 보자고 했었지.
그런데 굳이 만날 일이 없어서 나도 여긴 처음 와 본다.
“어우, 먼지.”
손을 휘휘 저으며 계단을 올라가 닫혀 있는 문을 열었다.
끼익-.
“음?”
분명히 약속한 시간은 오후 2시였는데, 아직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표를 기다리게 만들어? 이거 아주 단단히…….
후웅-!
“뭣.”
퍼억!
날아드는 하이킥을 황급히 팔을 교차해 막았다.
강한 충격에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졌다.
‘무슨 힘이……!’
쾅!
등이 벽에 부딪혔다.
기습인가? 설마 이 장소가 발각된 건가?
“후.”
보통이 아닌 듯한 실력에 몸을 세우고 자세를 잡자, 익숙한 얼굴이 달려드는 게 보였다.
“이 미친.”
쇄액!
배상훈이 몸을 낮추며 돌진해 주먹을 날렸다.
손으로 다급하게 주먹을 쳐내는 날 보며 배상훈이 울분을 토했다.
탁! 탁!
“야 이 개새끼야! 똥통에 처박아 놓고 연락도 안 하는 게 사람 새끼가 할 짓이냐!”
“아니, 알아서 잘하고 있었으면서, 뭘…….”
“이런 X발!”
팡-!
나는 위협적인 배상훈의 옆차기를 옆으로 돌아 피했다.
원래 킥복싱 선출에다가, 라세흠 교관의 발기술을 제대로 흡수한 놈이라 그런지 적당히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야. 이제 2주 뒤에 끝이야. 좀만 참으면 성과급 빵빵하게 꽂아 줄게.”
“지랄! 이제 와서……!”
“3억. 작전 성공하면 2억 더.”
멈칫.
좁혀져 있던 녀석의 미간이 쭉 펴졌다.
“5억?”
“어. 5억.”
배상훈이 어지럽혀진 방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먼지가 쌓인 의자 두 개를 가져와 툭툭 털고 마주 보게 놔뒀다.
“대표님. 앉으시죠.”
태세 전환 봐라.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자, 배상훈이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드륵.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건데?”
“주철수랑은 좀 친해졌어?”
“친해지긴 개뿔. 말도 섞기 싫다. 그 미친놈이랑.”
“어쨌든. 네 성격에 접근할 정도로는 비벼 놨을 거 아냐.”
“경호팀장까지는 시켜 주더라. ‘경호실장’이라는 놈은 아직 못 보긴 했는데, 주철수가 자주 데리고 다니는 게 내 팀이긴 해.”
경호팀장이라. 배상훈 정도면 머리도 꽤 쓸 만했을 텐데, 완전히 무력 쪽으로 빼 버렸나 보네.
“뭐, 주철수랑 단둘이 이야기할 정도는 된다.”
“그래? 잘됐네.”
“음?”
“주철수한테 도청장치를 달아야 하거든.”
내 말에 배상훈이 피식 웃었다.
“그게 가능해? 주철수가 병신도 아니고 그걸 모를까?”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한 거지. 주철수가 보고 있는 데서는 불가능하고, 자리를 비웠을 때 옷에 달거나 책상 아래 같은 곳에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음. 일단 알았다. 기한은?”
“최대한 빨리. 주철수가 통화하는 걸 잡아야 돼.”
“통화라. 그런데 지금까지는 안 하다가 갑자기 도청은 왜 하는 거냐?”
“자세히 설명하기엔 길고, 일 다 마무리하면 정리해서 말해 줄게.”
배상훈은 내가 건넨 도청장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네가 다 생각이 있겠지.”
“일단 찢어지자고.”
“알았다. 안 그래도 주철수 이 새끼가 나 의심하고 있거든.”
“조심해라. 그거 사용법 까먹고 그런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몸을 돌려 나가려던 배상훈이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멈춰 섰다.
“맞다. 야. 이주혁.”
“왜.”
배상훈이 고개를 홱 돌리고 얼굴을 구겼다.
“나 빼고 애들이랑 미국 갔다며. 이 개새끼야.”
“에이 씨. 일 때문에 간 거야. 다음에 따로 보내 줄게.”
“오! 나 혼자 보내 주는 거냐? 오케이. 혼자 가서 미국 여자들이나 꼬셔야지. X발. 깡패 새끼들이랑 눅눅한 방에서 지내느라 미치는 줄 알았는데 미국 가서 스트레스 풀어야겠다.”
“영어도 못 하는 새끼가 여자는 무슨.”
“꺼져.”
“네가 꺼져.”
중지를 올린 녀석이 방을 나갔다.
일단 할 건 다 끝냈으니, 우재성이 써 놓은 보고서나 확인해 봐야겠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과연 주철수가 누구랑 연락할지 기대되네.
***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동안 도청되는 내용이 없어 실패했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거사 전날 밤에 한 가지가 잡혔다.
-예. 참석할 생각입니다.
-&%*%^&^&&^$
-그렇습니까?
-%^$^%$%&^#&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었군요.
-@#^&$^%&#@
-알겠습니다. 그럼 참석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
-저도 생각한 게 있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통화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주철수가 말하는 내용으로도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회의실에서 같이 도청 파일을 듣던 우재성이 팔짱을 끼며 의자 뒤로 기댔다.
“이러면 곽환성은 확실히 아니겠지만, 정보가 없으니 아직 누군지는 모르겠군요.”
일단 주철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 존재가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으니, 성과가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주혁아.”
회의실에 같이 앉아 있던 라세흠 부장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전국의 깡패들이 다 몰려오는 게 오늘이라는 거지?”
“네. 대신 주철수 패거리 말고 다른 놈들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쯧. 아쉽네. 알겠다.”
드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작전을 함께할 인원들을 돌아봤다.
인간계 최강의 라세흠 부장과 작전팀 팀원들. 그리고 통영 후배 녀석들까지.
괜히 다 모아서 데려가면 혼전 중에 챙기기가 힘들기에, 정예 인원밖에 데려갈 수밖에 없다.
2주 동안 부장님 밑에서 구른 덩치, 돼지, 난쟁이의 눈에서 독기가 보였다.
얘네는 데려갈까 말까 조금 고민했는데, 이 정도 눈빛이면 발목을 잡진 않을 거다.
“잔치는 신라연회장에서 진행될 겁니다. 건물 구조는 다 숙지해 두셨죠?”
“어.”
“예.”
“밤새가 달달 외웠으예.”
“오케이. 그럼 출발하자.”
의자에 걸쳐 놨던 재킷을 걸쳤다.
“상대는 제압만. 날붙이는 금지입니다.”
라세흠 부장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어차피 쓸 생각도 없었다. 주철수는 네가 맡을 거지?”
“당연하죠.”
“행님. 똘마니들은 저희한테 맡기시지예.”
덩치가 호기롭게 말했다.
“주철수가 똘마니들을 데려오진 않을 거다. 직속 경호팀은 하나하나의 실력이 조직 간부급이니까.”
내 말에 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전에 클럽으로 강남파 똘마니들이 왔을 때는 깡다구 좋게 맞서긴 했지만, 막상 깡패 소굴로 들어간다니 그래도 좀 긴장이 되나 보네.
툭툭.
“걱정하지 마라. 애들이 다 뒤에서 봐줄 테니까.”
“예, 행님!”
“가자.”
주철수 잡으러.
***
슥-.
강북의 주류 유통으로 장난질하다가 라세흠에게 잡혀 왔던 동식이파의 보스, 지동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X발…….”
이주혁이 대주주로 있는 부해양조. 거기서 나온 주류만 유통하는 건 좋았다.
그 악마 같은 놈한테 돈은 다 뺏겼어도 어찌 됐든 다시 모을 기회는 생긴 거니까.
전성기때 벌던 만큼은 불가능해도 충분히 재기할 정도는 될 거다.
하지만, 가장 좆같은 건 따로 있었다.
“이 X발 새끼들. 일을 시켰으면 가만히 놔두지, 왜 자꾸 불러서 청소를 시키는 거야?”
안 그래도 일하느라 바쁜데 자꾸 쓸데없이 불러서 건물 청소를 시킨다.
엿 같아서 조금만 버티다 중요할 때 뒤통수를 쳐 버릴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작전팀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보고선 그 마음이 쏙 들어갔다.
-똥식아. 바닥 좀 닦아라.
-똥식아. 물!
대련하는 걸 보니 다들 실력이 그 괴물 새끼랑 비슷해 보이는 게, 함부로 덤볐다간 숨질 가능성이 유력했다.
사실 지동식도 무력으로 따지면 강남파의 간부 정도는 된다.
하지만 라세흠에게 개 맞듯이 맞은 기억 때문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슥삭.
“음?”
대련실 바닥을 청소하던 지동식이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철봉에서 풀업을 하고 있던 강남파의 전 이사, 마종석이 구석의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마 형. 식사하는 거요?”
“어.”
정리되지 않은 수염 탓에 얼굴이 조금 초췌해지긴 했지만, 이전의 잘생긴 얼굴은 그대로였다.
‘이 양반은 저번에 봤는데도 좀 불편하네.’
대련실을 사용하던 인원이 대부분 무슨 작전에 투입돼서 둘만 남은 상황.
저번에 미국 출장 갈 때였나.
청소하다 마주쳐서 단둘이 이런저런 신세 한탄 겸 대화를 좀 나누긴 했는데, 리액션도 별로 없고 감정 변화도 크게 없어서 아직 조금 어색하달까.
저번에는 왜 탈출해서 강남파로 안 돌아가고 여기 남아 있냐고 물어봤었다.
-용병 계약 기간은 끝났다. 그리고 더 이상 돈도 제공하지 않는 강남파에 다시 돌아갈 이유는 없지.
-그럼, 다른 의뢰 받으러 가는 게 낫지 않나? 이 땀내 나는 데 왜 있는 거요?
-얻어 가는 게 있으니까.
‘아예 눌러앉아서 폐관 수련을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종석을 보던 지동식은 그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마 형. 이번에 이주혁이 그 새끼, 주철수 치러 간 거 아쇼?”
마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혁이 될까 모르겠네. 주철수가 아무리 이빨이 좀 빠졌대도 서울에서 왕 같은 인간이었는데. 습……. 그래도 이주혁이 옆에는 그 괴물 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마 형은 어떻게 생각하쇼.”
“주철수가 이길 거다.”
“오. 왜 그런 거요?”
“애초에 정말 주철수가 거기 나타난다면, 그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이주혁 사단의 무력으로 강남파의 머리를 잘라 낼 순 있어도, 그 이상으로는 불가능해. 주철수는 상상 이상으로 이 서울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거든.”
지동식은 마종석의 말을 들으니 괜히 불안해졌다.
‘이거 X발, 이주혁이가 지면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지동식이 관리하는 주류 유통 라인은 현재 SA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주혁이 혹시 거기서 뒈져 버리기라도 하면…….
‘바로 튀어야지.’
지동식의 표정이 굳어 있자, 마종석이 어느새 다 비운 접시를 놓으며 말했다.
“애초에 주철수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전쟁?”
“그래. 강남을 넘어 서울의 패권을 완전히 쥐기 위한 전쟁. 작년에 전국에서 조직원들을 모은 것도 전쟁에 쓰일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서였고.”
“그럼 설마……. 주철수가 그놈들을 생일잔치에 싹 다 끌고 가는 거요?”
마종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지만, 아마 주철수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테니…… 적당히 데리고 오진 않았을 거다.”
“…….”
“판을 뒤집을 만한 변수가 없다면, 이 싸움에선 주철수가 이길 거다.”
하지만 마종석은 이 말을 내뱉으면서도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주혁.’
실력이든, 생각이든.
일부러 여길 떠나지 않으며 놈을 지켜봤는데,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놈이었다.
라세흠도 충분히 괴물이었지만…… 이주혁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과연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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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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