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9
148화
풍원한정식의 알바생, 강예원.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였지만, 그녀는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탁.
“하…….”
강예원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붙이던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요일에 일할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해.’
지금껏 풍원한정식은 일주일 내내 풀로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휴업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유는 임유나의 훈련 때문이었으나, 강예원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대신 월급은 똑같이 주신다고 하긴 하셨는데…… 그래도 놀고 있을 순 없어.’
다음 주부턴 일요일 알바도 꼭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예원이 다시 인형을 집어 들었다.
그때 강예원의 집 대문이 열렸다.
끼익-.
오래된 대문의 경첩 소리와 함께, 강예원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강예원은 뭐라 중얼거리며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인사했다.
“엄마. 왔어?”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선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기도회는 잘 갔다 왔어?”
그래도 말을 붙이기 위해 강예원이 애써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강예원의 어머니, 정숙자는 침울한 얼굴로 겉옷을 벗고 털썩 주저앉았다.
“성자님이 왜 그냥 가셨을까…….”
“무슨 일 있었어?”
강예원이 계속해서 질문하자, 정숙자는 말없이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헌금이 부족했던 거야. 헌금이.”
“엄마. 무슨 일인데.”
“예원아. 너 돈 얼마나 있니?”
“뭐?”
정숙자가 퀭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은행 가서 현금 좀 뽑아와.”
그 말에 강예원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엄마. 이번 달 식비도 부족해. 그거 엄마가 교회에 갖다 바친 거 기억 안 나?”
“갖다 바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이제 돈 없어.”
“없으면 벌어와야 할 거 아냐!”
얼굴을 구기며 말하는 정숙자에게 강예원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돈이 내고 싶으면 엄마가 직접 벌어서 내!”
“뭐? 지금껏 키워준 게 얼만데…….”
“키우긴 무슨. 이렇게 키울 거면 낳질 말던가!”
그 말에 정숙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원이 너…….”
강예원은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조금 심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숙자의 말에 강예원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사탄 들렸구나.”
“……!”
“사탄이 들린 거야!”
강예원은 후다닥 일어나 서랍을 뒤지는 정숙자를 보고서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저런 상태가 되면 정숙자가 얼마나 광인(狂人)이 되는지 몸으로 느껴본 탓이었다.
타닷-.
신발을 신고 나온 강예원이 집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미처 겉옷을 챙기지 못해 찬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
강예원은 집이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구겨진 신발을 고쳐 신었다.
“씨…….”
자신의 상황이 비참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찔끔 나오던 눈물은 추위에 금세 들어가 버렸다.
‘그래. 울 시간이 어딨어?’
그럴 시간에 돈을 벌 방법을 하나라도 찾아보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다.
마음을 다잡은 강예원이 일 관련 이야기로 임유나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때.
“강예원 씨?”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강예원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골목 입구에 한 남자가 선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데 절 아세요?”
경계가 가득 섞인 강예원의 물음에 남자가 두 손을 들었다.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풍원한정식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강예원 씨 맞으시죠?”
“아닌데요.”
강예원은 본능적으로 나온 거짓말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넘긴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남자는 분명 미남이었지만, 왜인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하하. 수상하게 보이는 것도 이해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강예원 씨를 찾아온 거니까요.”
“제안이요?”
“아주 쉽게 큰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려는데,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큰돈이라는 말에 강예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얘기만 들어볼게요.”
***
변수가 나타났다라. 나는 성자의 그 말을 듣고 기억을 더듬었다.
몇 주 전 주철수와 연회장에서 한판 붙던 날, 똑같은 단어를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릴 염탐하다 잡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놈. 그놈이 분명 누군가와 통화하며 날 ‘변수’라고 이야기했었지.
이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네.
놈이 아는 미래를 비틀어버린 사람. 그게 바로 나였던 거다.
“그래서, 그 정보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현혹이라니. 그냥 비즈니스였어.”
“지랄하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여서 등쳐먹는 게 비즈니스냐?”
내 말에 성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알 만큼 다 아는 사람이 왜 이제 와서 위선이냐.”
“뭐?”
“너도 알잖아. 남들을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이 X 같은 세상 밑바닥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
“같잖은 핑계 대지 마라. 넌 그냥 남들한테 피해만 끼치는 사회의 악일 뿐이야.”
세상 사람들이 어렵다고 다 저놈처럼 살았으면, 이 나라는 진작에 개판이 났을 거다.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고 사는데, 꼭 저런 놈들이 자기 범죄를 정당화하려 한단 말이지.
“…….”
“하던 얘기나 계속해보자고. 선생이 너희한테 어떻게 접근한 거야?”
묶여 있는 탓인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정 목사가 내 질문을 듣고 입을 열었다.
“강 권사라는 놈을 통해 접근했어.”
“강 권사? 그건 또 뭐야?”
“선생의 연락책이다. 선생한테 말을 전하려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놈이지.”
“본명은 모르고?”
“그래. 명목상 권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서 강 권사라고 부르는 놈이다.”
말을 잇던 정 목사가 치를 떨었다.
“그놈이야말로 진짜 선생의 광신도라고 할 수 있어.”
“그럼 그 강 권사라는 놈이 선생 놈의 오른팔 격이란 건가?”
“오른팔? 글쎄다. 선생 옆에 그런 놈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던데.”
뭐, 당연히 그렇겠지.
세력이 어지간히 큰 게 아닐 테니까.
일단 이 두 놈에게 대충 정보를 얻었으니, 송 과장을 만나서 이놈들을 처넣을 준비부터 해놔야겠다.
그러고 보니 박민구 서장이 죽은 탓에 아직 어수선할 텐데, 새로운 서장은 누가 되려나?
“다 썼냐?”
“어.”
나는 백기준이 지금까지 들은 증언을 기록한 걸 확인한 뒤, 묶여 있는 두 놈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자 성자와 정 목사가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 이렇게 묶여 있으라고?”
“협조한다는 사람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다 니들을 위한 거니까 여기 처박혀 있어라.”
나가봤자 기다리는 건 우리 팀원들뿐이니, 여기 있는 게 여러모로 신상에 좋을 거다.
나는 지하실을 나와 대련실로 올라왔다.
끼익-.
문을 열고 나가니, 병원에서 벌써 치료받고 왔는지 후배 녀석들이 뭐라 떠들고 있었다.
“내가 악셀 밟았잖아.”
“지랄하네. 니 쫄아가 망설이는 거 내가 재촉했다 아이가.”
“아이디어는 내가 냈구만 둘 다 뭐라카노?”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녀석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친 데는 좀 괜찮냐?”
“아, 행님!”
“괜찮십니더.”
“근데 뭔 토론을 그렇게 하고 있어?”
내 물음에 덩치 녀석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냥, 성자 금마 잡는 데 누구 공이 젤 큰가 얘기 중이었으예.”
참나. 뭔 일로 목소리를 높이나 했는데, 별 쓸데없는 거였네.
“다 잘했으니까 괜히 힘 빼지 마라. 다음에도 그렇게만 해. 대신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옙!”
우렁차게 대답한 녀석들이 뿌듯한지 코를 슥 훑고 실실 웃었다.
칭찬 한번 해준 게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일단 볼일이 있기에 나는 녀석들을 지나치며 어깨를 툭툭 쳤다.
“상처 덧나지 않게 푹 쉬어라.”
“행님! 감사합니더!”
“감사는 무슨…….”
이것들이 부담스럽게 또 이러네.
깡패처럼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녀석들을 지나쳐 로비로 향했다.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데, 텅 빈 프론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회사 특성상 주말에도 계속 사람이 돌아다니는데, 로비를 봐줄 직원이 없으니까 좀 그렇네.
생각해 보니 주말에 일할 직원도 한번 구해봐야겠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꾹.
나는 송태석 과장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이거 어째, 항상 사건만 일어나면 이 양반한테 연락하는 것 같단 말이지.
뚜르르-.
한참 신호음이 울리고, 전화 너머로 송태석 과장이 툭 뱉었다.
-뭡니까?
“말투에 날이 서 있으시네. 밖입니까?”
경찰서가 아니라 바깥에 나와 있는 건지, 송 과장의 목소리와 함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예.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박민구 서장 사건, 아직 수사 중이거든요.
“아, 그렇겠네요. 뭐 좀 나왔습니까?”
-아주 당연한 듯이 내부 정보를 물으십니다.
왜 매번 이렇게 날이 서 있는 걸까.
난 까탈스럽게 이야기하는 송 과장의 태도에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한배를 탄 사이에 꼭 그렇게까지 선을 그어야겠습니까?”
-…….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저 만나고 하는 일 다 잘된 거 같은데. 아닌가요?”
이건 송 과장 본인이 더 잘 알 거다.
-하…….
할 말이 없을 거다.
전생에 내가 언더커버였던 시절, 송 과장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소리였거든.
내 말만 들으면 다 잘 될 거다.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해라.
하지만 지금은 송 과장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괜히 송 과장한테 이것저것 시켜 먹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송 과장한테 말했다.
“거기 계속 있으실 거죠? 제가 일단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잠깐만 시간 내주십쇼.”
-알겠습니다. 그 근처에 도착해서 연락 주시면,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오케이. 그래도 정보는 얻을 수 있겠어.
송태석이 아무리 강짜를 놓으려 해도, 녀석은 한 가정의 가장.
내가 송 과장이 뇌물을 받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내 요구를 무시할 순 없을 거다.
괜히 수틀렸다가 공무원 생활 끝나면,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라 송 과장이거든.
결국엔 나랑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단 말이지.
끼익.
나는 로비의 정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왔다. 저녁 공기가 쌀쌀하다.
일단 현장 쪽으로 가서 박민구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나 좀 알아보고, 지하실에 있는 두 놈 짬 때릴 준비나 좀 해야겠어.
자꾸 굴리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긴 한데, 송 과장. 너도 전생에 나 많이 부려먹었잖아?
덜컥.
정문 앞 도로가에 주차돼있던 내 차에 타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내가 물어다 주는 사건이 다 자기 실적인데, 열심히 해줘야 수지가 맞는 일 아닌가?
그래도 이번 사건 잘 해결하면 좀 여유를 줘야겠다.
전생 탓에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주철수나 다른 깡패들처럼 적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딱히 아니니까.
물론, 그건 송 과장이 성자와 정 목사의 신변을 잘 보호했을 때 이야기겠지.
부웅-.
나는 송 과장과 만나기 위해 박민구 서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 움직였다.
***
서울남부교도소의 병실.
중상 탓에 의식을 잃고 있던 한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
아직 살아있는 건가?
강남파의 전 행동대장, 남상민은 자신의 몸을 만져보려 했다. 하지만 양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으나, 다행히 신경이 망가진 느낌은 아니었기에 남상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 실장님?”
그에 남상민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 침대에 똑같이 누워 있는 한인석 변호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 변호사님? 무사하셨…… 윽.”
“말하지 마세요. 자상이 많아서 무리하면 터질 겁니다.”
“후…….”
남상민이 욱신거리는 고통에 숨을 고르자, 한인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는데, 다행히 저는 주요 장기가 심하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2cm만 오른쪽으로 비껴갔다면 죽었을 거라더군요.”
“그거…… 다행입니다.”
“남 실장님도 다행히 요양만 하면 충분히 회복하실 수 있답니다. 단련된 몸이 장기의 치명상을 막은 덕분이라네요.”
그 말에 남상민이 피식 웃다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꾸준히 운동하길 잘했네요.”
그렇게 두 사람이 모두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던 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덜컥.
빼꼼 고개를 들이민 교도관이 의아해하는 둘에게 말했다.
“두 사람, 면회다.”
“네? 여기서 말입니까? 병실에서 면회를 한다고요?”
한인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교도관은 그 말을 무시하며 문을 열어 놓고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그 문으로 휠체어를 탄 노인이 들어왔다.
그걸 본 남상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그 물음에 노인, 곽환성이 슬쩍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같은 적을 두게 된 것 같아서 말이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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