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8
147화
서해결 검사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그런 검은돈이 한두 명에게만 흘러갔을 리가 없겠죠.”
서해결 검사는 막막하다는 듯 고개를 들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내가 알아낸 정보들을 쭉 말해줬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있던 불상사나, 성자나 정 목사의 위치는 비밀로 한 채로.
내 이야기를 듣던 서해결 검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피해자의 수가 어마어마하겠는데요.”
“그렇죠. 전국에서 신자들이 몰려올 정도니까요.”
요약한 내 이야기를 들은 서해결 검사가 탄식을 내뱉었다.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그런 짓을…… 그 성자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지금 추적 중입니다. 파악하는 대로 바로 경찰에 인계할 예정입니다.”
“후……. 빨리 잡혔으면 좋겠군요. 이대로 놓치면 어디서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동자들은 이미 우리 회사 지하실에 있으니까.
“단순히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주혁 씨 말대로 세뇌 같은 게 있었다면 수사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죠. 진술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세상을 망가뜨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젭니다.”
“허…….”
깊게 한숨을 내쉰 서해결 검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지금까지 이주혁 씨가 가져오신 사건과는 궤가 다른 건이네요. 이건 제 선에선 감당하기 힘든 사안입니다.”
“이해합니다. 대신 서 검사님이 주도권은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어째서죠?”
“같은 검사라고 다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미 선생 놈의 편에 붙은 검사가 무조건 있을 거다.
의미심장한 내 말에 서해결 검사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내 말에 화를 내거나 불쾌해하진 않았다.
서해결도 그동안 검사 생활하면서 더러운 꼴, 못 볼 꼴 다 봤기 때문이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서해결 검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주혁 씨가 가져오신 정보 덕분에 수사가 한층 쉬워지겠군요.”
“아, 그리고 교회의 수뇌부를 잡게 되면 확실히 신변 보호를 해 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선생 놈이 둘을 죽여서 입을 막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
서해결도 서민들을 착취하던 성자에게 분노한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책상 위에 올려진 정 목사의 수첩을 보자 다시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긴, 거기 적힌 계좌를 다 추적하려면 고생 좀 할 거다.
나는 중앙지검을 빠져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다.
아까 서 검사에게 말한 것처럼, 대외적으로 난 아직 성자를 붙잡지 못한 상황.
일단 심문으로 정보를 탈탈 털어 버린 다음, 강남서 송 과장을 통해 빵에 처넣을 생각이다.
‘잘하고 있으려나.’
우선 회사로 돌아가서 어디까지 진행됐나 확인해 봐야겠다.
***
지하실로 가기 위해 대련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역시나 서로 투닥거리고 있는 팀원들이 보였다.
작전하고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쌈박질이야?
나는 옆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 배상훈에게 다가가 물었다.
“애들은? 병원 보냈냐?”
“애들? 아, 걔네? 부장님이 직접 병원에 데려다 놨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걱정은 무슨.”
“걱정하는 거 맞구만 뭘.”
“됐다.”
대충 손을 내젓고 지하실로 가는 문을 연 뒤 아래로 내려갔다.
음산한 계단을 지나가던 중,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그만……!
-다 말한다고 했……!
아직 한창 재미 보고 있나 보네.
끼익.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공간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보였다.
차에 한 번 치였던 성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골골대고 있었고, 정 목사는 들어온 날 보고 투실투실한 턱살을 푸들대며 소리쳤다.
“혀, 형제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갑자기 왜 이 지랄이래? 뭔 짓을 한 거야?”
의자에 기대앉아 있는 백기준에게 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정 목사에게서 나왔다.
정 목사는 비지땀을 흘리며 울상을 지었다.
“제발 이런 짓을 할 거면 뭐라도 물어보면서 하든가! 아무 말도 없이 고통만 주는 게 고문이야?!”
아무래도 백기준이 심심했는지 좀 괴롭히고 있던 모양이다.
히죽 웃은 기준이 녀석이 날 툭 치며 말했다.
“중요한 정보는 네가 듣는 게 나아서 시간 좀 때우고 있었다.”
“그러냐?”
“어떻게, 자리 비켜 줘?”
“아니. 기록 좀 부탁하자.”
내 말에 백기준이 고문 도구가 나열된 책상에서 노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문하면서 얻어 낸 정보를 기록하는 노트였다.
나는 의자를 하나 끌고 와 나란히 묶여 있는 두 놈 앞에 앉았다.
“지금부터 질문을 할 테니까, 성실하게 답변에 임해 주길 바란다.”
내 말에 깔끔하던 백발이 산발이 되어 버린 성자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살려줄 거냐?”
“살려 주다니. 누가 들으면 내가 막 사람 죽이는 사람인 줄 알겠어.”
“사람을 납치하고 고문하는 건 괜찮고?”
“혓바닥이 기네. 정 목사. 내가 아까 뭐라고 했었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전용갑 성자님. 들으셨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고문 도구 하나를 대충 집어 들고 흔들었다.
“손톱 몇 개는 없어져도 티 안 난다. 생각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딱딱.
펜치같이 생긴 걸 열었다 닫았다 하자, 성자는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옆에 묶여 있는 정 목사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이 새끼, 그새 불어?”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니냐.”
“의리 없는 새끼…….”
“혼자 비밀 통로로 튄 새끼가 의리는 염병…….”
“병신같이 작업 들어온 걸 그대로 나한테까지 물고 온 게 누군데?”
“뭐? 병신?”
이것들은 왜 지네들끼리 싸우고 있어?
“둘 다 닥치고, 말했듯이 묻는 말에만 대답해. 우선 정 목사.”
내가 이름을 부르자 정 목사가 몸을 움찔 떨었다.
“네 수첩을 하나 주웠어. 계좌번호가 잔뜩 적혀 있는 수첩.”
“…….”
“그거, 누구한테 돈 뿌린 거야?”
정 목사는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안 되겠네, 이거.
“후, 오케이.”
내가 한숨을 쉬고 펜치를 백기준에게 넘기려 하자, 정 목사가 기겁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 정말 나도 다는 몰라! 정말이라고!”
“다는 모른다고? 그럼 아는 게 없진 않다는 거네?”
“그래. 몇몇 놈은 직접 만나서 아는데, 대부분은 위에서 보내준 계좌번호만 적어 놓은 거야.”
“네가 전부 다 아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 그래.”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성자 쪽을 턱짓했다.
“그럼 성자는 알겠네?”
“그럴지도 모르지.”
정 목사의 한마디를 들은 성자가 핏발이 선 눈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이 미친 새끼야! 그 장부 관리한 건 너면서 왜 나한테 덮어씌워!”
“덮어씌우긴 개뿔이. 내가 모르면 알 사람이 너밖에 더 있어?”
“나도 몰라! 나라고 그 새끼가 다 말해 줄 것 같냐?”
이대로 두면 싸우겠다, 야.
나는 격해지려는 분위기에 손을 내저었다.
“둘 다 진정하고. 성자가 말한 ‘그 새끼’가 선생 새끼 맞지?”
움찔.
내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두 사람이 흠칫했다.
입에서 피를 탁 뱉은 성자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너, 대체 어디서 보낸 놈이냐? 처음엔 선생이 우릴 숙청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경찰은 절대 아닌데.”
“음……. 뭐, 선생 놈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날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협조하겠다.”
“음?”
아까까지만 해도 혓바닥이 길더니, 지금은 또 시원하게 나오네.
성자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의아해하자, 녀석이 굳은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넌 이 사건을 공론화할 생각이겠지? 새사람 교회는 완전히 해산시킬 거고.”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은데.”
“그럼 우린 선생한테 죽은 목숨이다. 돈을 쓸어 담던 사업체가 박살 나 버렸는데, 그놈 성격상 가만히 있겠어?”
“무조건 죽이려고 하겠지.”
“그래! X발. 그러니까 협조한다는 거다. 우리 신변을 확실히 보호해 준다고 약속하면, 그놈에 대해 아는 걸 최대한 털어놓을게. 어때? 괜찮은 거래 아닌가?”
여기서 바로 덥석 받아들이는 건 좋지 못한 선택이다.
나는 괜히 한번 뜸을 들였다.
“글쎄. 네가 내놓는 정보가 도움이 크게 안 되면 내 손해 아닌가?”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네가 마음에 안 들면 우릴 보호해 주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음……. 좋아. 딜이다.”
내가 선뜻 고개를 끄덕이자 성자와 정 목사의 표정이 환해졌다.
선생 놈한테 꼼짝없이 죽을 목숨이었는데, 빠져나갈 구멍 하나가 생겼단 사실에 희망을 얻었겠지.
하지만 놈들의 상상대로 한국을 뜨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희들 신변은 검찰에서 보호해 줄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안심하고 싹 다 불면 돼.
.
.
성자와 정 목사의 얘기는 꽤 길뻔했다.
불우했던 과거사부터, 부모 없는 고아가 어떻게 월에 몇 억씩 만지는 위치까지 올라갔는지.
뭐 그런 이야기는 다 잘라 버렸고, 나는 선생 놈과 관련된 핵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짜 무당행세를 하던 성자와 옥장판을 팔아먹던 정 목사에게 어느 날 선생이 전화로 접근해 일을 맡겼단다.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종교 단체를 하나 만들 건데, 거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맡아 달라고 말이다.
야망이 그득하던 둘은 낼름 그 제안을 받았고, 선생이 틀만 잡아 놓은 사업 형태를 자신들이 상세하게 조직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회를 만든다고 사람들이 갑자기 모일 리가 없지.’
그래서 선생 놈은 생각한 거다.
원래 교주 자리에 앉힐 생각이었던 전용갑을, ‘성자’라는 영적 존재로 만들어 버리자고.
“그때부터 선생 놈이 너한테 ‘예언’을 던져 주기 시작했다?”
내 물음에 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처음엔 나도 그게 진짜 예언인지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신할 수 있었지.”
“예언을?”
“맞다. 그놈이 진짜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때부터 전용갑은 자신을 완벽한 ‘성자’의 모습으로 꾸몄고, 선생 놈의 예언을 이용해 부가적인 이득을 취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예언을 듣고 한 분야에 투자한 성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
그 일은 바로 바다이야기의 몰락.
분명 다음 해까지는 굳건하게 버틸 예정이었던 사업이, 중간에 정의로운 누군가가 깽판을 놔서 망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된 이후로 난 선생을 처음으로 직접 찾아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 위해서. 하지만 선생은 날 만나주지도 않았어. 아마 그놈도 꽤 큰 타격을 입은 걸 수습하고 있던 거겠지.”
아마 그랬을 거다. 놈이 조종하던 주철수가 그 일로 수천억을 날려 버렸으니까.
“놈은 만나지 않고 나와 전화로만 대책을 상의했어.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선생이 이런 말을 했었다.”
이어 성자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단어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예언에 변수가 나타났다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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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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