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7
146화
성자의 수첩을 찾아낸 건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선생 놈이 미래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스윽.
일단 난 주머니에 수첩을 넣고 출구를 향해 달렸다.
지금 시급한 건 성자의 포획. 놈을 놓치면 많은 단서가 사라지게 되기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통로를 한창 이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덩치 녀석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행님!
“무슨 일이야?”
-아우, 아파라. 머리 허연 임마 맞지예? 저희가 잡았심더!
머리 허연 임마? 설마 성자를 말하는 건가?
“뭐? 누굴 잡았다고?”
-말씀하신 성자예!
분명 아까 전화로는 시간만 끌어 달라고 했는데?
게다가 총을 들고 있을 놈을 이 세 녀석이 잡았다니.
믿기 힘든 말에 나는 핸드폰에 대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성자를 잡았다고? 너희들이?”
-예. 차로 튈라 카길래, 그냥 갖다 박아 뿟십니더.
“하!”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설마 녀석들이 성자를 잡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다친 덴 없고?”
-좀 긁히긴 했는데, 뭐 멀쩡합니더. 행님들도
“일단 알았다. 금방 갈 테니까, 그놈 잘 붙잡고 기다려.”
-예!
시간만 끌어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팀원들도 그쪽으로 보냈는데, 이 녀석들이 잡아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발을 재촉해 출구로 향했다.
.
.
출구는 기도원의 뒤편 주차장과 이어져 있었다.
바깥으로 나온 나는 후배 녀석들의 피투성이가 된 몰골을 보고는…….
‘그냥 긁혔다면서?’
깜짝 놀라 달려갔다.
“너희, 괜찮은 거냐?”
내 걱정 섞인 말에 덩치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코 밑을 슥 닦으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좀 긁힜십니더.”
“좀 긁힌 게 아닌데?”
온몸이 피칠갑을 한 채, 서 있기도 힘든 건지 팔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진짜 괜찮심더. 하나도 안 아파예.”
안 아프기는 개뿔.
아파 죽을 것 같은 표정하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는 녀석들에 한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이야기했다.
“차에 응급 키트 있지? 거기서 붕대 꺼내서 감고 있어. 그리고 너흰 회사 말고 병원으로 가고.”
“저희 멀쩡합니더.”
“까불지 말고 가. 새끼들아. 안 가면 다음 작전은 무조건 뺄 거다.”
내 엄포에 녀석들은 군말 없이 상처를 대충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프긴 아픈지 붕대를 감으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왜 위험한 짓을 하고 그러냐.
너희들은 죽거나 다치면 안 돼. 그럼 선생 놈한테 내가 지는 게 돼 버린다고.
욕심인 줄 알지만, 난 선생 놈을 상대하면서 내 사람 중 그 누구도 잃을 생각이 없었다.
부웅-.
그런 그때, 저 멀리서 밴 두 대와 세단 하나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여기 올 때 우리가 타고 온 대포차들이었다.
끼익.
우리 앞에 선 밴의 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 안에서 백기준이 머리를 쭉 빼며 물었다.
“잡았냐?”
“잡았다.”
“그럼 빨리 타! 튀자! 총소리에 자동차 사고까지 있어서 금방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야.”
하긴, 대한민국에서 총성이 들렸는 데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하지.
아직 상황이 어수선하니, 이대로 빠져나간다면 별 탈 없이 몸을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교회 놈들이 알아서 정리하겠지.
성자가 없어진 거지, 정 목사 같은 간부들은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려고 할 테니까.
끄덕.
백기준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기절해 있는 성자의 뒷덜미를 잡아 밴으로 끌고갔다.
성자를 넣으려고 차 안을 보니, 덩치가 산만 한 정 목사가 맨 뒤에 들어가 있었다.
이거, 성자는 어디 놔야 돼?
잠시 고민하다 차 뒤로 향해 트렁크를 열었다.
덜컥. 쿵!
다행히 덩치가 별로 안 커서 크기는 딱 맞네.
축 늘어진 성자를 트렁크 안에 대충 구겨 넣은 뒤 뒷좌석에 탔다.
“너희는 부장님 차 타고 와.”
“예! 행님!”
후배 녀석들이 다른 밴에 타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부웅-.
“간다.”
핸들을 잡은 배상훈이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
“야. 근데 저 새끼를 쟤네들이 잡을 줄은 몰랐네.”
“나도 몰랐다. 미친놈들이야. 그냥 벨트만 매고 꼬라박았던데.”
역시 깡 하나는 보통이 아닌 놈들이다.
나는 슬슬 심문을 시작하기 위해 정 목사의 입에서 테이프를 뜯었다.
찌익-.
“컥! 이, 이 미친놈들. 21세기에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놈이 헛소리 시동을 걸길래 뒤통수를 한 대 후렸다.
딱!
“억!”
“닥쳐. 사기꾼 새끼야. 머리 안 돌아가지?”
정 목사는 내 살벌한 눈빛을 보고서 뭐라 말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저 꼴 나기 싫으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알았어?”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확인한 정 목사가 몸을 흠칫 떨었다.
뒷좌석 너머 트렁크에, 피투성이가 된 성자가 축 늘어진 채 실려 있는 걸 본 탓이었다.
나는 정 목사가 조용해진 걸 확인하고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
“설마, 처음부터 이러려고 접근한 거냐?”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하지 않았나? 기준아.”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기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여기 이 친구가 고문 전문가거든? 너 같은 사기꾼도 꽤 많이 만져 봤어.”
“…….”
“뭐냐고. 이름.”
잠시 침묵하던 정 목사가 입을 열었다.
“없다.”
“뭐?”
“고아라 호적에도 안 올라갔고, 다들 정 씨라고만 불렀다.”
무적(無籍)자라 이름이 없다는 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지랄하네. 목사 짓 할 때도 정 씨입니다, 이랬냐? 서류 작성할 때나, 대외적으로 활동할 때 썼던 이름이 있을 거 아냐. 누가 네 진짜 이름이 궁금하대?”
말 그대로였다.
아무리 호적에 이름이 없다 해도, 이런 식으로 인맥을 쌓으며 사기를 치는 타입은 자신의 대외적 신분을 하나 만든다.
우리 회사의 사발 이사도 본명은 추현국이지만, 이현수라는 가짜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 목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수.”
“정민수? 확실하지? 찾아봤는데 나오는 거 없으면 평생 숟가락 못 잡을 줄 알아.”
“그래…….”
정민수라. 아무래도 이게 정 목사의 이름인가 보네.
이걸 이용하면 자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쉬워질 거다.
나는 이어 성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정민수. 성자랑 꽤 가까운 사이 같던데, 저놈 이름이 진용현 맞나?”
“…….”
정 목사, 정민수가 잠시 머뭇거렸다.
“아닌가 보네? 설마 이제 와서 의리를 지킬 생각은 아니지?”
“전용갑이다. 진용현이 아니라.”
“그 새끼도 가명이었어?”
“그래. 예전에 한번 빵에 갔다 왔거든.”
“전과가 있다는 거지? 그럼 더 편하겠네.”
일단 본명을 알아냈으니 조사하긴 더 편해질 거다.
“좋아. 나머지는 도착해서 이야기하자고.”
“……어디로 가는 거냐?”
“우리 회사.”
지하실이라고, 사람들 묶어놓고 정보 빼내는 데 효과가 좋은 공간이 있거든.
정 목사는 그 말을 듣고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미래를 실감한 걸까.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무는 게 보였다.
“기준아. 이 새끼들 입안에 또 뭐 있는지 확인해 봐.”
“아까 봤는데, 저번처럼 그런 건 없었다.”
백기준이 정 목사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 자존심이 있지, 또 그 지랄 나게 두고 볼 거 같냐?”
“하긴, 이런 세속적인 새끼들이 스스로 죽을 리가 없지. 난 일단 검사님부터 만나 봐야겠다.”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라. 호구조사 정도는 내가 미리 해 놓을 테니까.”
“오케이. 근데 성자는 괜찮은 거냐? 꽤 많이 다친 것 같던데.”
내 물음에 백기준이 피식 웃었다.
“저 새끼 기절한 척하는 거야.”
움찔!
트렁크에 있던 성자의 몸이 움직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놈을 쳐다봤다.
“진짜네. 안 아프냐? 그 꼴로 잘도 버티고 있네.”
독하다 독해. 역시 사기꾼이라 그런가, 차에 치인 와중에도 탈출할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다.
탁탁.
배상훈이 앉은 운전석의 시트를 치며 말했다.
“난 여기서 내릴 테니까, 눈에 띄지 않게 이놈들 지하실에 잘 처박아 놔.”
“알았다.”
배상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세웠다.
그에 난 문을 열고 내리며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나 때문에 계속 구르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신호음이 올리고, 서해결 검사가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주혁 씨, 이 시간엔 어쩐 일입니까?
조금은 까칠한 서해결 검사의 말투에 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서 검사님.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시간이라…… 또 무슨 일 있습니까?
“네. 꽤 큰 사건이 굴러들어 왔거든요.”
-후, 이주혁 씨가 엮인 것 중에 크지 않은 사건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번엔 어떤 사건입니까?
체념한 듯 이야기하는 서해결 검사의 물음에 난 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씨익.
“대형 종교 단체의 실체……라고 할까요?”
-……이번엔 종교입니까?
“네. 검사님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이렇게 연락 드렸습니다.”
이 두 놈을 나 혼자 처리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기려는 선생 놈한테 몇 번 엿을 먹었지.
이번엔 신변 보호도 신청하고, 정당한 재판을 통해 이놈들이 죗값을 치를 수 있게 할 생각이다.
그냥 뒈지는 건 저지른 짓에 비해 너무 편하잖아?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 제 사무실로 방문할 수 있으십니까?
“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품 안에서 누구 건지 모를 계좌번호들이 적혀 있는 정 목사의 수첩을 꺼냈다.
성자 놈의 미래 정보가 담긴 수첩도 중요하지만, 일단 여기 적힌 계좌부터.
일단 난 성자의 돈줄부터 막을 생각이었다.
씨익.
원래 전쟁에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게 상대의 밥줄을 끊어 내는 거거든.
그렇게 난 성자의 밥줄을 끊기 위해서 서해결 검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
나는 정 목사의 수첩을 들고 중앙지검을 찾아갔다.
똑똑.
서해결 검사의 개인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달칵.
그 말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검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건네니, 눈 밑이 시커메진 서해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예. 이주혁 씨가 넘겨주신 사건 덕에 날밤을 새우며 지냈습니다.”
강북에서 깽판을 치던 왕후성 패거리를 잡아다 준 거 말인가.
이거, 어째 말에 뼈가 들어있네.
“그래도 이게 다 서울의 치안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그건 맞습니다. 그렇게 범죄를 일삼는 족속들은 경찰도 무서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쩌면 애꿎은 경찰들이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서해결 검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고마워하실 거 없습니다. 저흰 그저 의뢰를 받고 움직였을 뿐이니까요. 일단 제가 들고 온 건에 대해서 이야기부터 하시죠.”
“아, 무슨 종교 단체와 관련된 일이라고…….”
“네. 새사람 교회라고,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내 물음에 서해결 검사가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굴렸다.
서해결 검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어디서 들어 봤나 했더니, 남부교도소 사건 범인들의 소지품에서 관련된 물건이 나왔습니다.”
“남부교도소요? 거기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서울남부교도소. 서울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교도소로, 여기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대부분 남부교도소에 수감되는 편이다.
강남파 놈들이나 기타 등등 내가 잡은 깡패들은 거의 다 거기 있다고 볼 수 있다.
내 물음에 서해결 검사가 그 사건에 관해 설명했다.
“어제 교도소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살인미수요?”
“네. 흉기를 든 수감자 일곱 명이 두 명의 수감자를 습격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한 명이 크게 다쳐서 혼수상태라고 합니다.”
허. 혼수상태라고? 심각한 사건이었나 보네.
“그런데 가해자들도 중상이나 의식불명 상태라, 사건을 마무리 짓기가 복잡한 상황입니다.”
“가해자도 의식불명이란 말입니까?”
“예. 피해자 중 한 명이 남상민이라고, 강남파의 행동대장 격 인물이었습니다.”
“남 실장?”
“아는 사람이십니까?”
“잘 알죠.”
모를 리가 있나. 내가 직접 자수하라고 협박한 놈인데.
그런데 그놈이 감방 안에서 살해 위협을 당했다니.
아무래도 상황이 진정되면 면회나 한번 가 봐야겠어.
“그래서, 새사람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설명을 하자면 긴데, 일단 이것부터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난 정 목사가 흘렸던 수첩을 서 검사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곳에 적힌 계좌번호를 추적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불법 자금이 그 계좌를 통해 이동한 것 같아서요.”
이런 나의 말에 수첩을 확인하던 서 검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대표님 말대로라면…… 이 계좌들이 전부…….”
그런 서 검사의 이야기에 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이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네, 이걸 조사해 보면, 교회 헌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정계라던가, 아님 검경 쪽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런 나의 말에 수첩을 바라보던 서해결 검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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