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나는 유나 씨와 그동안 밀렸던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부장님과 정태섭을 놓고 회사로 돌아왔다.
유나 씨한테 혹시 풍원요정 시절에 아버지가 뭔가 남기신 게 있냐고 물어볼까 고민했지만, 굳이 고민거리를 던져 주는 꼴이 될까 봐 그러진 않았다.
탁.
“어우. 움직이니까 확 올라오네.”
백기준이 대련실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꽤 늦었기에 다른 팀원들은 회사 내의 숙소로 들어갔지만, 백기준은 굳이 나를 따라왔다.
강유찬이랑 대화나 좀 하려 했는데, 자기 담당이라면서 꼭 같이 가야 된단다.
백기준은 비틀대면서도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은 잘 내려갔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묶인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강유찬이 보였다.
아니, 입을 다물진 못하고 있지.
마우스피스를 끼우고 입에 천까지 묶어 놨으니까.
바닥을 보고 있던 강유찬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강유찬.”
나는 의자를 들고 놈에게 다가가 앞에 털썩 앉았다.
“난 널 고문하지 않을 거야.”
“뭐? 진짜냐?”
백기준이 당황했지만, 난 녀석을 조용히 시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네가 선생 놈의 충실한 노예 새끼고, 뭔가를 불 바엔 혀를 깨물 거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슥.
내가 놈의 입에 묶여 있던 천을 풀자 백기준이 물었다.
“풀어도 되는 거냐? 이빨 다 뽑아 줄까? 취해서 피 좀 날 수도 있는데.”
“됐어. 그럼 말을 못 하잖아.”
“야. 내가 그런 작업을 안 해 봤겠냐? 윗니만 몇 개 뽑아 주면 혀 못 깨문다. 보여 줘?”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특수 제작한 마우스피스를 믿고 천을 완전히 제거했다.
저걸 차고 있으면 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도 자해는 불가능할 거다.
“강유찬. 몸은 좀 어떠냐?”
“…….”
대답이 없길래 강유찬의 옷을 들어 직접 확인했다.
“오우. 시퍼렇네 아주.”
고무탄 난사를 맞은 탓인지, 놈의 배에는 선명한 피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초연한 강유찬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손가락으로 피멍을 쿡 찔렀다.
“윽.”
인상을 찌푸리는 강유찬을 보며 생각했다.
이놈은 선생의 오른팔 수준의 최측근이다.
내가 만약 선생이라면, 이런 중요한 위치엔 정보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사람을 앉혀 놓을 거다.
그러니 강유찬이 입을 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아무리 백기준이 고문에 일가견이 있다지만…….
“…….”
저렇게 결연한 눈빛을 한 놈에게선 유의미한 정보를 뽑아내기 힘들다.
“강유찬. ‘선생 개새끼’ 해 봐.”
“그냥 죽여라!”
“아잇, 이 밤에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강유찬은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채로 날 노려봤다.
“이주혁.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한테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거다.”
“그래?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보자.”
“…….”
“싸움은 누가 가르쳐 줬냐? 꽤 전문적으로 배운 것 같던데.”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는지 강유찬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에 나는 뻔뻔한 미소를 지었다.
“야. 이 정도도 안 알려 줄 거냐? 야박하네. 주제를 바꿀까? 한인석의 비밀 금고. 사실 내가 얻었다.”
“……역시 네놈이었나.”
강유찬이 분한 듯 이빨을 꽉 깨물었다.
“마종석, 강예원, 황성빈……. 세 사람을 전부 포섭한 거냐?”
“오, 어떻게 아셨대?”
“처음엔 네가 그것들을 통해 거짓 정보를 흘린 줄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뒤통수 맞고 나서? 혹은 안 났고?”
부글부글 끓는 눈빛을 보내던 강유찬이 묶여 있는 몸을 거칠게 들썩이며 소리쳤다.
“그 버러지들이! 감히 선생님을 배신해!”
이거 완전 맛탱이가 갔네.
짝!
“억.”
발광하는 강유찬의 뺨을 후려갈기자, 놈의 얼굴이 반대쪽으로 홱 돌아갔다.
나도 모르게 좀 세게 쳤는데, 다행히 마우스피스 덕에 강냉이는 안 털렸나 보다.
“강유찬. 그게 아니지.”
“……뭐?”
“마종석은 뭐 그렇다 치고…… 강예원, 황성빈 두 사람은 선생을 배신한 게 아니야.”
“개소리를……!”
쿡.
“널 배신한 거다.”
강유찬의 가슴팍을 찌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
“네가 잘 구슬리면서 케어했으면 프락치 짓 계속 잘해 줬을지도 모르지. 근데 두 사람은 널 배신했어.”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드는 강유찬에게 이죽거리며 선언했다.
“한마디로, 네 능력 부족 때문에 선생 놈한테 피해가 갔다는 거다.”
“……!”
“네가 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쉽네. 그러게, 누가 고작 금고 하나 가지러 서울로 올라가래? 날 확실히 죽이고 갔어야지.”
“이, 이……!”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왜 그러냐? 스파이는 시킬 만한 놈한테 시키는 거야. 넌 사람을 잘못 선택했어.”
강유찬은 턱에 힘이 들어갈 만큼 이를 꽉 깨물더니, 더 이상 반응하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럼 슬슬 본론을 꺼내 볼까.
“그래서 그 비밀 금고 있잖냐. 그걸 좀 조사해 봤는데…… 한 사람이 딱 나오더라고.”
“…….”
“민기형 수석. 혹시 아나?”
나는 그 순간 강유찬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놈은 눈빛이 흔들리지도 않았고, 근육이 긴장하지도 않았다.
“흠……. 모르나 보네.”
하지만 그건 좋지 못한 선택이다.
이렇게까지 티를 안 내면 오히려 티가 나는 법이거든.
그리고 민기형이라는 타겟이 정해진 이상, 어차피 드러나게 돼 있다.
강유찬이 여기서 입을 꾹 다물고 버틴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단 말이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축 처져 있던 백기준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뭐야. 끝났냐?”
“어. 더 있어 봐야 나올 것도 없고, 네가 죽지만 않게 잘 관리해.”
그 말에 백기준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 새로운 먹이를 가지고 놀 수 있겠구만.”
“적당히 말랑말랑하게만 만들어 놔.”
“걱정하지 마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래. 나 먼저 간다.”
“어. 가라. 크큭.”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백기준은 그 자리에 냉큼 앉으며 히죽거렸다.
“이거, 간만에 오래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생겼네.”
달칵.
그렇게 지하실을 뒤로하고 다시 대련실로 올라오니, 뜬금없이 황성빈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음?”
“아, 대표님.”
“훔쳐 들으려고?”
황성빈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잠도 안 오고 해서 운동이나 할까…… 했습니다.”
흠. 아무리 봐도 강유찬이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와 본 느낌인데.
“얌전히 운동만 해. 괜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예.”
나도 슬슬 잠자리에 들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다, 한 가지가 생각나서 황성빈을 돌아봤다.
“그거 알아?”
“예?”
“내가 왜 굳이 너한테 강유찬 뒤통수를 갈기라고 시켰는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황성빈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네가 날 배신하고 다시 선생한테 붙는 짓은 못할 테니까.”
내 말에 황성빈이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생각 없었습니다.”
“알지. 그냥 알아 두라고.”
툭.
어깨에 손을 올리자 황성빈이 흠칫했다.
“원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거든.”
“…….”
“수고해라.”
끼익.
대련실을 나서며 황성빈을 힐끗 돌아봤다.
여기서 저 녀석의 운명이 갈리겠네.
내 협박이 담긴 말에 아예 도망가 버릴 수도 있고, 배신할까 고민하던 마음을 접을 수도 있겠지.
씨익.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너한테는 지옥일 거다.
잘 생각해라. 황성빈.
적어도 내 쪽에 서면 죽진 않으니까.
***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차를 타고 풍원한정식으로 향했다.
오늘은 월요일. 민기형이 풍원한정식에 들르는 날이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있는 강예원이 눈에 들어왔다.
강예원은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포스기를 닫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 일찍 왔네?”
“볼 일이 좀 있어서. 집안일은 잘 마무리됐냐?”
원래는 어제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던 강예원한테도 회식에 참석하라고 했는데, 집에 일이 있다면서 혼자 빠졌었다.
내 물음에 강예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그냥 엄마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응급실 다녀왔어.”
“뭐? 괜찮으신 거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내용은 심각했다.
“예전부터 간질 발작이 있으셨거든. 요 몇 년간은 안 그러다가 갑자기 이러네.”
“응급실 영수증 가져와.”
“음? 왜? 아……. 아냐. 괜찮아.”
“가져와. 직원 복지니까.”
강예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내가 그걸 받아 품에 넣자 강예원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신세지는 것 같아서…….”
“신세는 무슨. 나 부자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럼 수고해.”
“고마워. 정말.”
민망한 마음에 대충 손을 흔들어 주고 유나 씨가 있을 사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장실 쪽으로 향하는데, 유나 씨는 이미 복도에 나와서 원소주가 가득 든 박스 여러 개를 옮기고 있었다.
“아, 주혁 씨!”
그걸 본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부장님은 대체 저런 일 안 도와주고 뭐 하는 거야?
내가 성큼성큼 다가가 박스 옮기는 걸 도와주려 하자, 유나 씨가 손을 내저었다.
“안 도와주셔도 돼요.”
“이걸 왜 사장이 다 옮기고 있어요? 직원들 시키지.”
그 물음에 유나 씨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사실, 이것도 라세흠 부장님이 시키신 거예요.”
“네? 왜요?”
“제가 신체 밸런스나 근육의 유연성은 좋은데, 절대적인 근육량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육량이요?”
“네. 기술의 파괴력을 높이는 데는 증량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래요. 그래서 일과 중에도 근육을 틈틈이 자극하고 있는 거예요.”
유나 씨의 설명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응? 근육을…… 키운다고?
나는 머릿속으로 유나 씨의 몸이 근육으로 우락부락해진 걸 상상했다.
“음…….”
유나 씨의 근육 버전이라.
생각보다 괜찮은가? 아닌가?
내가 눈을 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상자를 내려놓은 유나 씨가 날 보며 물었다.
“근데 아침부터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거예요?”
“아.”
그래, 지금 근육이 중요한 게 아니지.
“혹시, 가게에 카메라랑 도청 장치를 좀 설치해도 될까요?”
“네?”
내 말에 유나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누가 자기 가게에 그런 수상한 것들을 설치한다고 하면 나라도 놀랄 거다.
“카메라……랑 도청 장치는 어디 쓰시려고요? 설마 또 제 가게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유나 씨는 허구한 날 자기 가게에서 사건이 터지니 불안한 눈치였다.
“안심하세요. 이번엔 그냥 조사만 하는 거니까요.”
“아, 그래요?”
아직까진 말이지.
나는 결국 유나 씨의 허락을 받아 내고 가게의 벽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민기형이 자주 앉는다는 자리의 책상 아래에 도청 장치를 붙였다.
“다 하신 거예요?”
“끝났어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요. 그동안 도와주신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요.”
“하하…….”
“그럼 전 오픈 준비하러 가 볼게요. 나중에 또 얘기해요.”
유나 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짐을 옮기기 위해 총총 달려갔다.
누가 저걸 보고 예전의 그 차갑던 유나 씨를 떠올릴 수 있을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이제 다시 내 사무실로 이동해 민기형이 여기서 뭘 하는지만 지켜보면 된다.
나는 차로 이동하기 위해 가게를 나섰다.
딸랑.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점심 시간이됐다.
민기형이 슬슬 올 테니 나도 준비해야겠지.
나는 대충 점심을 때우고 컴퓨터가 놓인 자리에 앉았다.
딸깍.
컴퓨터를 조작해 카메라로 촬영 중인 가게 안의 상황을 내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헤드폰까지 준비를 마치자,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가게 내부의 소리가 도청 장치를 통해 들려왔다.
“언제쯤 오려나…….”
의자 뒤로 기댄 채 잠시 기다리던 그때.
턱.
내가 작업해 놓은 자리로 한 가족이 다가가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저 남자가 바로.
‘민정수석 민기형…….’
뉴스에서만 보던 얼굴이, 정말 풍원한정식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놈의 얼굴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이 개새끼, 드디어 얼굴 한번 보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