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나는 멀어지는 봉고차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밀려있던 분리수거를 한 듯 시원한 기분이었다.
“후…….”
민지용이 경찰에 잡혔고, 분명 몸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될 거다.
그럼 놈의 아버지인 민정수석에게도 당연히 영향이 간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상류층 자제들이 무더기로 엮였다면 청문회까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민정수석이 뒤를 봐줘서 이런 마약 파티가 열린 게 아닌가 의심할 테니까.
뭐가 됐든 민정수석이란 놈을 수면 위로 끌어낼 수 있단 말이다.
‘일명, [아버지의 골프채] 작전이지.’
슬슬 마무리되는 분위기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부장님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철수합시다.] [오케이.]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싶어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리조트 메인 건물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사이렌이 조명을 번쩍이고 있었고, 익숙한 얼굴의 남녀가 차례대로 경찰차에 입장하는 게 보였다.
‘쟤는?’
예전의 동아극장에 있던 약쟁이 명단.
거기 있는 애새끼들 집안에서 돈을 좀 뜯었었는데,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이 파티까지 참석한 모양이다.
“쯧쯧.”
경찰차 안에 있는 한심한 놈들을 잠시 쳐다보다 걸음을 옮겼다.
이 건은 우리 송 과장님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 나는 내 볼일을 보러 가야겠다.
탁.
핸드폰을 꺼내 열어 보니, 또 문자가 와 있었다.
[민수진 – 그럼 내일 보자.]아직 11시인데, 혹시 자고 있으려나?
[주소 불러. 내일 점심에 간다.]문자를 보내고 잠시 기다리자,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우리 집으로 온다고?] [ㅇㅇ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니?] [주소나 불러.] [……강남구 대치동…….]민수진은 얌전히 자기 집 주소를 보냈다.
‘경계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냐?’
내가 무슨 짓을 꾸밀 줄 알고 자기 집 위치를 이렇게 오픈해?
나는 헛웃음을 짓고서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민수진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긴 한데, 자기 오빠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응이 궁금하네.
뭐 어쨌든, 내일 만나면 민수진이 알고 있는 정보나 싹 다 털어 봐야겠다.
원래는 좀 더 천천히 접근하려고 했지만, 민수진한테 그 냄새를 맡아 버렸거든.
씨익.
아주 짙은 호구의 냄새를 말이야.
.
.
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우재성의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역시 일찍 출근했구만.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우재성이 보였다.
휴가라도 좀 줘야 하나.
볼 때마다 일만 하고 있으니 왠지 우리가 블랙 기업이 된 것 같잖아?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바빠요?”
“아뇨. 정보 정리 중이었습니다.”
우재성이 나를 올려다봤다.
“부탁할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예. 미국 기업에 투자를 좀 하고 싶어서요.”
“미국이요? 어떤 기업 말입니까?”
그 물음에 씩 웃으며 답했다.
“오데오.”
오데오(Odeo).
2005년 설립된 팟캐스트 서비스업체로, CEO와 직원들은 회사의 어려운 상황에 한 가지 서비스를 생각해낸다.
그건 바로, 훗날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는 트휘터(Thitter)다.
이게 내가 생각해놓은 굵직한 투자 상품 중 하나다.
내 말을 들은 우재성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오데오라고요?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조만간 제가 예전에 언급했던 서비스를 내놓을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우재성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혹시 그때 말씀하셨던 1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입니까?”
“이번엔 후자입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 건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우재성은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하다 멈칫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대표님. 그런 서비스가 출시될 거란 사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가요?”
“계속 바쁘셨을 텐데, 미국의 회사 상황까지 어떻게 알아보신 건지 궁금해서요.”
아, 하긴 그렇게 생각할 만하네.
계속 선생이다 뭐다 하면서 뛰어다니던 놈이, 갑자기 미국의 한 회사에 투자하라고 하니 의아할 거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는 없으니 대충 둘러댔다.
“요 일주일 동안 시간 내서 조사 좀 했습니다.”
“아, 그래요?”
우재성이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긴 했지만, 녀석 성격상 계속 마음에 담아 두긴 할 거다.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굳이 캐묻지 않을 뿐이지.
“아, 대표님이 말씀하신 주소는 확인해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민수진의 집 주소를 받고 바로 우재성에게 조사를 부탁했었다.
만에 하나 함정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뭐 나온 거 있습니까?”
“거기 출입한 사람은 민수진과 가정부로 보이는 여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이거, 진짜로 아무 대비도 안 해 놓은 건가?
너무 무방비한 거 아냐?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만.’
그 집에 민수진밖에 없다면, 내 마음대로 거길 뒤져 볼 수 있겠지.
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슬슬 민수진도 보낼 때가 됐지?’
***
그 시각, 민수진은 머리에 수건을 말아 놓은 채로 아침 댓바람부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줌마. 저것도 치워야죠. 그리고 조금만 더 빨리할 수 없어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청소 도우미를 닦달하던 민수진은 이내 안방으로 들어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이주혁의 가정방문 선언에 정신이 없었다.
머리의 수건을 푼 민수진이 머리띠를 끼고 얼굴에 기초화장품을 빠르게 바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꾸미던 와중, 화장대에 놔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뭐야?”
[아빠 부인]수신인은 민기형의 아내, 서윤희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보던 민수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수진아. 혹시 전화 되니?
“바쁘니까 용건만 빨리 말해 주세요.”
민수진이 거울을 보고 아이라인을 그리며 답했다.
그에 서윤희가 전화 너머로 말했다.
-지용이 있잖니.
그 이름에 민수진이 인상을 확 찌푸리려다 화장이 접힐까 봐 멈칫했다.
“그 인간은 왜요?”
-소식 못 들었구나.
“관심도 없어서요. 혹시 또 사고 쳤어요?”
대수롭지 않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단다.
“예? 구속이요? 뭔 짓을 해도 잘 살던 놈이 이번엔 어떻게 잡혔대요?”
민수진의 물음에 서윤희는 착잡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건수가 큰 모양이야. 어디 리조트에 모여서 파티를 하다가 잡혔대. 현행범으로 체포된 게 수십 명이 넘는 것 같더라고.
그걸 들은 민수진이 혀를 찼다.
원래도 마음에 드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죗값 치르겠네요.”
-수진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니야. 너희 아버지도 화가 많이 나셨다. 민정수석 자리가 위태로울지도 몰라.
“뭐, 아빠는 늘 하던 대로 잘 해결하시겠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지 않을까요?”
-수진아.
“이제 진짜 바빠서요. 이만 끊을게요.”
뚝.
아빠건 민지용 그 새끼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오빠라는 놈은 허구한 날 여자나 만나는 약쟁이 쓰레기고 아빠는 자기한테 관심도 없는 사람이니까.
민수진은 무표정하게 전화를 끊고 마저 화장을 이어 갔다.
“아, 맞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아줌마-! 반찬도 사 놔요!”
***
정갈한 집무실 안.
한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순호 기자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김순호 기자?
-김순호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재벌 2세들의 마약 파티가 있었던 리조트에 도착했습니다. 현장에는 각종 호화스러운 술과 음식들이…….
화면으로 현장을 보던 민정수석, 민기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
그의 마음을 모르는 앵커의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용의자 중, 현 민정수석비서관 민기형 씨의 장남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평소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던 민기형 수석의…….
꽈악.
민기형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히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대체 이 일로 얼마나 상황이 엿같이 돌아갈지 눈에 선했다.
호시탐탐 민기형을 노리던 정적들이 이때다 싶어 달려들 테고, VIP는 물론 전 민정수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거다.
그렇게 민기형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던 그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허겁지겁 들어온 사람은 민기형의 밑에서 일하는 비서였다.
“이, 이걸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민기형은 다급한 비서의 표정을 보며 그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거기 적힌 내용을 읽던 민기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꽈득.
[……상기의 이유로 민정수석비서관 민기형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구함.]민기형은 손에서 구겨진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이주혁, 이 개자식……!”
***
나는 민수진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2층까지 있는 걸 보니 되게 넓은 것 같은데, 여기 민수진 혼자 산다고?
공간을 다 쓸 수 있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높은 담장을 구경하며 대문 옆에 붙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집 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인터폰에서 민수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안. 잠깐만 기다려 줄래?
“얼마나?”
-5분.
“쯧. 알았다.”
한숨을 내쉬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대체 안에서 뭔 짓을 하길래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나 모르겠네.
이랬는데 별거 아니기만 해 봐라.
슥.
나는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꺼내 송 과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그런데 송 과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음.”
하긴, 더럽게 바쁘긴 하겠지.
내가 폭탄 주머니를 강남서에 던져 버렸으니까.
지금쯤 잡혀간 망나니들 부모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고생하고 있을 게 눈에 보였다.
아니면 어떻게든 뇌물을 찔러 자식을 풀려나게 하려는 부모의 돈을 열심히 거절하고 있든가.
현행범으로 잡힌 놈들 집안 하나하나가 워낙에 빡세다 보니, 이 사건은 강남경찰서 한 곳에서만 처리하진 못할 거다.
아마 다른 경찰서들과 연계하며 일을 처리하느라 내 전화를 받지 못하는 듯싶었다.
‘뭐, 보고는 나중에 들으면 되니까.’
다시 핸드폰을 집어넣던 그때, 삑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드디어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저벅.
나는 건조한 분위기의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쿵쿵쿵.
-들어와.
그 말에 문을 열자, 안쪽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된장국과 각종 반찬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뭐지?’
점심시간이라고 밥이라도 준비해 놨나?
의아한 마음에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하니, 웬 커다란 상차림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민수진이 손을 살짝 들며 인사했다.
“왔어?”
“이게 다 뭐야?”
내 물음에 민수진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온다길래 준비했지.”
“아, 그러냐?”
테이블에는 된장찌개를 포함해 불고기와 각종 나물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이걸 다 네가 했다고?”
“당연하지. 나도 요리 꽤 잘하거든.”
그냥 반찬가게에서 사 온 거 같은데.
의심스럽긴 했지만, 또 굳이 따질 것까진 없었다.
“예상외네…….”
그럼,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할까.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민수진의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동그란 금색 펜던트에 검은색 점이 이리저리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점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양이었다.
‘……저건?’
그 모양이 뭔지 깨달은 나는 표정을 굳혔다.
‘천칭……!’
공리회의 표식, 천칭자리였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