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
018화
강북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든다.
난 그 터전을 용산구로 잡았다.
서울에 수많은 행정구 중에 용산으로 정한 이유는 명확했다.
‘길목을 막는다.’
전술 교본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적의 길목을 막고 봉쇄하는 전술.
주철수는 강남에서 세력을 모아 강북으로 쳐들어올 거고, 가장 먼저 접수하는 곳이 용산이다.
이태원이라는 꿀단지가 이곳에 있기도 했고 뭣보다 다리 건너면 바로 용산이니까.
군대 용어로 하자면,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난 용산에 사무실을 냈다.
“이야. 제법 크다?”
“쓸 만하죠? 1층에 300평 수준이니, 안에만 제대로 꾸미면 무난하게 경호회사 하나쯤은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네. 설비도 완비되어 있고 좋네.”
라세흠 교관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저기, 교관님. 목 빠지겠어요. 너무 둘러보는 거 아닙니까?
“여기다 데스크 세팅하고 저쪽에 체력단련장 만들고. 아! 빈 공간이 많구나. 스파링 공간도 만들 수 있겠다.”
“교관님.”
“응?”
“너무 신나 보이는 건 제 착각이겠죠?”
“큭. 신난 거 맞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보인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반년 동안 취업 안 돼서 부모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어. 몸에 좀이 쑤시고 앞날이 막막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안 즐겁고 배기겠냐? 여기를 어떻게 꾸밀지, 내가 맡은 부서는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근데, 그거 알아? 그 생각이 너무 즐겁다.”
이 양반.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네.
“원래 그렇게 솔직한 타입이셨습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는 숨기지 않는 타입이지. 전우조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냐?”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순식간에 아까의 해맑던 얼굴은 사라졌다.
뭐야? 야누스야?
“그러니까 말해 봐. 네가 왜 갑자기 경호회사를 차리려는 건지.”
“솔직하게 전부 말합니까? 아니면, 걸러서 말할까요?”
“하나도 빠짐없이 진실만. 그래야 나 너 믿고 일할 수 있다. 나를 제대로 활용하고 싶으면, 있는 그대로 말해라.”
나를 노려보는 눈이 옛날에 그 호랑이 교관을 떠오르게 한다.
이 사람한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지.
어중간한 거짓으로 일관하다간 조만간 걸릴 테니까.
“보셔서 알겠지만, 로또 됐다고 살 수 있는 사무실이 아닙니다. 제가 로또 당첨된 것도 아니고요.”
“그건 알아. 나도 대충 계산해 봤는데, 1등 걸려도 살 수 없겠더라고.”
“여긴 제가 투자하고 사업해서 번 돈으로 매입한 겁니다. 최근에 사업체를 목돈 받고 팔았거든요.”
“아……. 그러냐? 의외네. 네가 사업에 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지.
“강남에 클럽을 내고, 그걸 강남파에 주철수한테 덤핑해서 팔았습니다.”
“뭐? 강남파는 뭐고 주철수는 누구야? 혹시……. 깡패 같은 거야?”
“맞습니다. 강남을 대표하는 조직폭력배. 그 인간한테 팔았습니다.”
“야!”
라세흠 교관의 목청이 높아졌다.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해? 검은돈은 건드리는 거 아니야. 그런 짓 하다가 다쳐.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으려고 만드는 겁니다.”
“뭐?”
“경호회사의 본질을 따르는 거죠. 사람을 경호하는 게 경호회사잖습니까? 저는 이 회사를 통해서 저를 경호할 겁니다. 회사를 설립한 사람이자, 최초 경호 대상이 되는 거죠.”
“……!”
난 지금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사시미로 무장한 수백, 수천의 깡패들을 상대해야 하는 위험한 일을.
언제 어디서 칼침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 나 자신을 지켜야지.
‘SA시큐리티’는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다.
혼자 조심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인력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니까.
특히 특수공작부대원 같은 스페셜리스트들이 경호하면 더 안전하지.
“저만 경호할 건 아닙니다. 강북을 중심으로 다수의 인원을 경호하고 지켜 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만드는 회사입니다.”
“흠……. 너 뭔가 냄새가 난다. 위험한 일을 하려는 냄새가 나.”
“개코시네요.”
“뭐? 인마?”
“맞습니다. 이 일은 위험합니다. 강남 깡패들과 척져야 하고 강북을 사수해야 하죠. 그것도 강남파라는 거대 조직에 맞서서 말입니다.”
라세흠 교관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혁아. 너 왜 이런 일을 하려는 거냐? 여기 사무실까지 낼 정도면 돈도 꽤 벌었을 거 같은데,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려는 거야?”
“해야 하니까요. 안 그러면, 펼쳐질 미래가 시궁창이 되거든요.”
“……?”
“교관님. 조직폭력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
“나야, 군대에만 있었으니까 잘 모르지.”
“쓰레기 같은 짓만 골라서 합니다. 인신매매, 성매매 알선, 사채, 불법 장기거래 뭐……. 이거 말고도 불법이란 불법을 다 저지르죠.”
“…….”
“여기까지면, 경찰이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경찰도 가만히 손 놓고 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그놈들이 지능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불법만 저지르는 게 아니라, 기업으로 탈바꿈시켜서 회사처럼 운영하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법으로 잡을 수 없게 교묘하게 피해 다니면서요.”
실제로 주철수가 이랬다.
대형 로펌을 끼고, MBA 출신 인수합병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것도 모자라, 국내 최대 회계 법인까지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깡패 주철수는 회장 주철수로 진화한다.
DG그룹이란 사명 아래, 국내 3위의 대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쓸 도리가 없다.
대기업 회장이란 타이틀이 가지는 힘과 권력.
정치인들에게 로비해서 자기 발아래로 만들어 뒷배경까지 만들면, 내가 파고들 틈이 없다.
그 전에 주철수를 무너트려야 한다.
사회악을 뿌리 뽑고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룰 거다.
“교관님.”
“……?”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정하셔야 합니다. 저랑 같이 위험한 일에 발을 담글지, 아니면, 이제라도 나가서 새로운 인생을 사실지를요. 강요는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라세흠 교관이 창밖을 바라봤다.
“너 그거 기억나냐? 이라크 파병 갔을 때, 미군 막사에서 폭탄 터진 거?”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미군 애들 수십 명이 죽어 나갔잖습니까.”
“그래. 그 사건. 그거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폭탄이 우리 진지에서 터졌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그게 좀 허무할 거 같더라고. 싸우다가 총 맞아 죽는 건 상관이 없는데, 폭탄 한 방에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는 건, 죽어서도 한이 될 거 같았어.”
라세흠 교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여기서는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해 보마. 그래 봐야 덩치 큰 양아치 놈들 아니냐? 두들겨 패다 보면 언젠간 다 처리되겠지.”
“훗. 네.”
그래. 라세흠 교관의 말대로 두들겨 패다 보면, 정리될 일이다.
“이제부터는 부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직책을 가졌으니, 맞춰서 불러야죠.”
“좋아. 아! 근데, 네 직급은 뭐야? 네가 사장이면, 이제부터 존대를 해야 하는 건가?”
“아니요. 전 직급이 없습니다. 그냥 평소대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래?”
“네. 편하게 대해 주세요.”
직급을 가지기엔 할 일이 많다.
지금은 자유롭게 활동할 때다.
주철수의 또 다른 자금줄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라세흠 부장님.”
“아……. 이렇게 들으니까 어색하네. 큭.”
“적응하셔야죠.”
“알겠다.”
“이제부터 부장님 밑에서 배운 스페셜리스트들을 영입해 주십시오.”
“음……. 올까? 걔네 나한테 악감정이 장난이 아닐 텐데?”
“반드시 올 겁니다.”
확실히 온다. 왜냐하면…….
“애정보다 깊은 게 애증이거든요.”
당신에 대한 애증이 어마어마하거든.
***
“행님. 요기서 게임만 하몬 된다꼬예?”
“응. 마음껏 즐겨.”
“시키니까 하긴 하는디……. 이기 중독성이 심하다 카던데예.”
“그냥 즐겨 봐. 시스템은 알아야지.”
나와 덩치는 강남의 한 오락장에 와있다.
성인 오락실이자, 불법 오락실.
일명, ‘바다스토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행성 도박게임의 진원지인 곳이다.
그리고 주철수의 또 다른 자금줄이다.
입구에서 상품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스토리’는 일종의 파칭코 게임이다.
버튼을 눌러서 같은 그림이 나오면 당첨금을 받는……. 한마디로 도박이다.
내가 살던 시대에야 음지에서 이런 게임이 행해지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다스토리’ 쇼크가 터지기 전까지 이 게임은 수많은 병폐를 만들어 낸다.
“해, 행님! 상어가 일자로 줄줄이 섰으예! 대박입니더. 대박!”
덩치가 환호성을 질렀다.
바다 생물이 빙빙 돌다가 일렬로 서는 게 그렇게 재밌냐?
하긴, 그것 때문에 재밌는 게 아니지.
“이기 얼마고? 5, 50만 원? 와따마. 2천 원 넣었는데 50만 원짜리 상품권이 터지 뿟네예.”
“좋아?”
“기분 째지지예. 이라몬 이기 몇 배고?”
“250배.”
“예?”
“2천 원 넣어서 50만 원 땄으면, 250배지.”
“와따. 노났네예.”
이 중독성. 한 번 터질 때 미친 듯한 수익률을 안겨 주는 쾌감.
이것 때문에 ‘바다스토리’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덩치야. 너 이때까지 얼마나 넣었냐?”
“저예? 음……. 볼게예.”
게임기 위에 올린 상품권을 확인했다.
“므고? 50만 원 환전했는데, 왜 5만 원삐 없노?”
이게 도박의 중독성을 올리는 거다.
원금이 얼마나 나갔는지 모르고 터진 것만 생각하거든.
한 방만 터지면, 인생 역전이 가능할 거라는 환상을 주니까.
근데, 그럴 일은 없다.
여기 있는 모든 게임기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다.
“나가자. 원금보다 5만 원 더 땄으니, 끝내야지.”
“벌써예? 행님. 조금만 더 돌리……. 으윽!”
이것도 도박에 손대면 안 되겠네.
집문서 날려 먹을 자식이야.
덩치의 귀를 잡고 밖으로 나갔다.
밖엔 봉고차 한 대가 주차되어있고, 똑똑 두드리자 손이 나온다.
상품권을 달라는 말이다.
가지고 있던 상품권을 전부 건네주자, 곧장 현금으로 교환해 줬다.
‘시스템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네.’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환전소.
여긴 작은 카지노라고 생각하면 된다.
상품권은 일종의 칩이다. 칩을 넣고 도박을 하는 도박장인 거다.
“차근차근 무너트리자.”
수많은 병폐를 낳고 수십 명이 생을 달리할 정도로 사회적인 악이 되는 ‘바다스토리.’
이제 이걸 무너트릴 거다.
돈을 받고 나를 따라오던 덩치가 물었다.
“행님. 근데, 어떻게 무너트릴라꼬예? 이거 합법적으로 하는 거 아입니까? 요도 바다스토리, 저기도 바다스토린데, 이기 불법은 아이잖아예?”
“합법이 불법이야.”
“예? 그게 믄 말입니꺼?”
“너 오늘 250배 벌었지?”
“그랬지예.”
“그게 합법적인 불법이란 거야. 시스템상으로 250배가 나올 수가 없거든. 최고 당첨 배수는 200배야. 그걸 넘긴다는 건, 허점이 있다는 거지.”
허점을 파고들어 줘야지.
상품권을 사행성으로 허용해 준 문화관광부나, 이딴 게임물의 심의를 통과해 준 영상물등급위원회나, 여기에 관련된 국회의원까지.
원래 ‘바다스토리’는 2006년 후반이나 되어야 파국을 맞는다.
그 시기를 좀 앞당겨야겠다.
주철수가 파국을 맞이할 수 있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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