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
019화
‘바다스토리’의 사행성을 파악하고 며칠 후.
“덩치야. 영상 가져왔냐?”
“예! 행님.”
“좋아. 그럼, 집에서 기다려라.”
“저하고 같이 안 가고예?”
“같이 가서 좋을 게 없어. 그 사람. 그런 거 싫어하거든.”
“누구 만나러 가시는데예?”
“있어. 그런 사람이.”
적당히 둘러대고 난 밖으로 나왔다.
차를 타고 한강대교를 넘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내 눈에 들어왔다.
“늦게 마치겠지?”
차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앞에 주차할 곳도 없는데, 그냥 서서 기다리련다.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만나 주겠지.
내가 만나려는 사람은 서해결 검사다.
이름처럼 맡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청렴결백하며 정의를 위해 불도저처럼 달려드는 사람.
비리로 물든 몇몇 검사와는 다르게, 부정과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는다.
이래서 어른들이 이름을 잘 지으라고 하나 보다.
서 검사는 자기 이름과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어우. 다리야.”
짙은 어둠이 깔렸는데도 서해결 검사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이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거였다.
이제 슬슬 막차 끊길 시간이 됐는데, 안 나오……. 어? 나왔다.
40대 중반. 깡마른 몸에 두꺼운 안경.
사법 고시생을 방불케 하는 인물이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서해결 검사님이시죠?”
“어? 저를 아세요?”
청렴결백한 거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다.
미래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검찰총장까지 오르는 인물이니까.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대화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무슨 일 때문이신지……?”
“신고할 게 있어서요.”
“아……. 그거라면, 수사과나 경찰서를 찾아가셔서 신고하시면 됩니다. 늦게까지 기다리신 거 같은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사건 청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서요.”
서해결 검사가 몸을 휙 돌리던 때였다.
난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바다스토리 관련 건입니다.”
“……?!”
“경찰이나 수사과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어디에 신고해도 사건은 덮일 겁니다. 이건, 검사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는 거잖습니까?”
“바다스토리…… 라고 했습니까?”
“네.”
서 검사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키는 게 보인다.
역시 내가 기억하는 게 맞았다.
2020년인가? 그때, 뉴스에서 청문회한 걸 본 기억이 있다.
서해결 검사가 처리하지 못한 사건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바다스토리’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처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사건 수사에 들어가자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일선에서 손 떼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조치였다.
이 사람은 그때,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었다.
바다스토리 사건을 빨리 처리할 수 있었다면, 수만 명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 진심 어린 눈물이었다.
그래서 난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다.
조직에서 언더커버로 활동할 당시, 마음 줄 사람이 없었거든. 존경할 인물도 없었고.
그런 내게 감명을 준 사람이다.
‘눈빛을 보니, 이미 ‘바다스토리’ 수사를 시작하고 있네.’
아마, 올해 말쯤에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할 거다.
그래도 어느 정도 밑바탕은 이미 그려 놨을 테니, 대화하긴 편하겠네.
“가면서 얘기할까요? 마지막 버스 시간이라…….”
“제 차로 가시죠. 보여 드릴 것도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서해결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이게 뭡니까?”
“보시죠.”
노트북을 들이밀고 영상 하나를 틀었다.
영상 안에서는 풍비박산 난 가정의 아이가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아빠가 그 이상한 게임만 안 했어도…….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엄마가 도망가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저랑 동생이 고모 집에서 눈치 보면서 사는 일도 없었을 거고요. 저 그 게임 싫어요. 바다스토린지 뭔지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진짜……. 너무 싫어요.
아이가 울면서 말하는 영상이었다.
덩치를 시켜 ‘바다스토리’ 때문에 풍비박산 난 사례를 가져오라고 했다.
인터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게임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을 따라가면, 이런 집은 한두 군데는 나온다.
그게 작금의 실태였고.
“후…….”
서 검사가 넥타이를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겠지. 누가 봐도 사행성이고, 조금만 조사해도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전하는 도박장인 걸 아는데, 당장 조치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저한테 이걸 보여 주는 이유가 뭡니까?”
“잡아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잡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니까요.”
그래. 당신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문제는 혼자서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지.
똑같은 과거가 되풀이될 테니까.
“혼자 잡으실 수 있습니까?”
“해 봐야죠. 법의 허점을 이용해 사행성 오락장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 멈추게 만들어야죠.”
“정의감이 넘치는 검사가 혼자서 부딪힌다고 될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바다스토리는 경찰, 검찰, 국회의원……. 수많은 권력자들이 얽혀 있습니다.”
“……?!”
서 검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 그렇게 놀라시나?
내가 불법으로 성인 오락실도 몇 개 돌려서 알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한 히스토리를.
“거대한 권력이 카르텔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스토리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득을 불법으로 편취하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있습니다. 그 성을 혼자서 허물어트리시겠다고요? 아무리 검사님이라도 힘들지 않을까요? 성이 너무 견고해서 검사 한 명이 부수기엔 어려울 텐데요.”
“그럼, 어쩌라는 말입니까?”
“아군을 만드셔야죠. 똑같이 힘이 있는 아군을요.”
“……?”
“현재 여권 유력 인사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쪽에서 같은 편을 만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논리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
여당이란 적이 있다면, 야당이라는 상대편이 있다.
그들이 서 검사의 아군으로 맹활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야당 인사를 포섭해서 진행해 봐라……. 이거군요.”
“네.”
머리를 끄덕인 서 검사가 나를 바라봤다.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걸 안 물어봤군요. 당신은 누구죠?”
본인 소개를 하라는데 해야지.
창조한 슬픈 사연과 함께.
“일반인입니다. 저도 똑같이 바다스토리로 고통받은 사람이고요.”
“……?”
“좋아하던 사람이 이 게임에 빠졌습니다. 한 방이라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끊질 못하더군요.”
“아…….”
“경찰에 신고도 하고 별짓을 다 해 봤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합법이라고요. 도저히 말이 안 되잖습니까? 이게 합법일 리가 있습니까? 상품권을 현금처럼 쓸 수 있고, 1,000배, 10,000배의 잭팟이 터지는 사행성 게임이 어떻게 합법입니까? 그래서 조사했습니다. 법의 구멍이 뭔지, 어떻게 우리나라가 불법 게임의 온상이 된 건지, 제 모든 걸 걸고 조사했습니다.”
어라? 나 연기 좀 되네.
이 기세를 이어 가야지.
난 서 검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발, 불법 사행성 게임을 뿌리 뽑아 주십시오. 다시는 좋아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영상에서 나온 아이처럼, 아빠가 도박 빚으로 목숨을 끊는 그런 비극은 이제 끝났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하죠.”
연기가 통한다.
전생에 이런 비극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감정이입도 잘되고.
이러든 저러든 통했다.
‘바다스토리’를 노리고 있던 검사와 선량한(?) 시민의 콜라보가 이뤄진 거다.
이제 서해결 검사의 노력에 달려있다.
전국에 사행성 게임을 뿌리 뽑고, 주철수의 자금줄을 막아 버릴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정의의 사도다.
***
다음 날.
사무실을 찾아가자, 진풍경이 펼쳐졌다.
“느그들 뭐꼬?! 강남파에서 왔나?”
“뎀비라! 다 뎀비라!”
“고마 쎄리마. 죽어 보자!”
덩치, 돼지, 난쟁이가 사무실 안을 채운 15명의 남자를 보고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야. 너희 그러다 죽어.
쟤네들이 어떤 인간인데.
“그만해. 같이 일할 직원이야.”
“예? 직원예?”
“응.”
통영 후배 셋을 진정시키는 사이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 새끼. 오랜만이네.
“이주혁이. 살아 있었네.”
“그럼, 죽었겠냐?”
아. 아닌가? 한번 죽고 살아나긴 했지.
오랜 시간 함께한 군대 동기.
전우란 말이 아깝지 않은 놈이다.
“오랜만이다. 배상훈. 너도 취업 안 돼서 온 거야.”
“져서 왔어.”
“응?”
“교관님한테 져서 왔다고. X바. 공무원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 그러냐?”
뒤에 서 있는 애들도 쳐다보며 눈인사를 나눴다.
몇몇은 안면이 있고, 몇몇은 동기다. 나머지는 처음 보고.
이들 전부 호랑이 교관 밑에서 훈련을 받은 HID 출신들이다.
“다들 얼굴은 멀쩡한데?”
“호랑이 교관이 얼굴 패는 거 봤냐?”
그렇게 말하며, 상의를 들어 올렸다.
피멍이 시커멓게 들어있다.
으……. 아프겠네.
“그러게 왜 싸웠어?”
“보자마자 주먹부터 나가더라. 제대만 하면 그 인간 죽인다고 속으로 다짐했었거든.”
“발차기에 당했냐?”
“어. 하……. 그 인간 발차기는 녹슬지 않네. 아직 팔팔해.”
“훗.”
그럼, 우릴 가르친 교관인데, 맞겠어?
어떤 공격이 날아올지 뻔히 보이겠지.
호랑이 교관이 괴물인 것도 있고.
“근데, 부장님은?”
“부장님? 아……. 라 교관 뻗었어. 우리들 상대하고 몸살 났다더라. 큭. 발차기는 좋은데, 나이는 못 속여. 체력은 별로인가 보더라고.”
그야 너희들을 전부 다 상대했을 텐데, 몸살 났겠지.
특전사를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야?”
“부장님이 안 가르쳐 줬어? 여기 경호회사야. 당연히 경호해야지.”
“누굴?”
“음……. 우선은 나부터?”
“너? 너를? 야. 훈장이란 훈장은 다 싹쓸이한 너를 우리가 왜 경호해? 너 혼자서도 충분하잖아?”
“그 정도 사이즈라는 거지.”
강남 제일의 조직폭력배를 나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지.
일당백의 너희들이 나를 보호해 줘야 해.
“일거리는 늘어날 거야. 아직은 신생이라 일이 많이 없지만, 나중엔 눈 붙이기도 힘들 거다.”
난 배상훈과 뒤쪽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연봉은 6,000만 원부터 시작이다. 성과금은 따로고 매년 연봉 10% 이상 인상은 약속한다. 연차와 휴가도 챙겨 주고 4대 보험도 당연히 들어간다. 할 사람은 여기 남고, 교관한테 억지로 잡혀 온 사람은 나가도 돼.”
난 시계를 들여다봤다.
“5분 준다. 결정해.”
“…….”
침묵이 흐른 것도 잠시.
5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 당시 연봉 1위인 SK텔레콤이 3,300만 원이다.
두 배의 가까운 연봉을 준다는데, 눈이 돌아가지.
“할게.”
“하겠습니다.”
“나도.”
“저도요.”
여기저기서 오케이 사인이 튀어나왔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 돈만 한 게 없다.
“좋아. 다들 하는 걸로 알게.”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
그것도 특전사 출신의 15명이.
깡패놈들의 아구창을 시원하게 갈겨줄 스페셜리스트들이 말이다.
난 곧장 난쟁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태원 클럽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리모델링 끝났슴니더. 내일 오픈 행사에 연예인들 대거 참석하기로 했고예. 미국에서 잘 나가는 DJ도 데리고 왔응께 게임 끝났다고 봐야됩니더.”
주철수한테 받은 현금다발을 들고 인수한 이태원 클럽.
그곳이 이제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될 거다.
청담동 JS클럽은 파리가 날아다닐 거고.
‘조만간 눈치채겠네.’
주철수 같은 빠꼼이가 내가 짠 계략을 모를 리 없다.
속이 뒤집히겠지. 헛돈 날아가서 분노의 일갈을 날릴 거고.
그래 봐야 화병만 커질 거다.
나를 제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 거거든.
‘여기 인간 병기 15명이 있으니까.’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 봐.
지옥이 뭔지 보여 줄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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