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8
017화
며칠 후, 남상민 실장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떡대들 없이 혼자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 얼굴 때린 기억은 없는데.”
“큼. 큼.”
헛기침하기는.
누구한테 맞았을지 뻔하지.
주철수, 그 새끼는 꼭 티 나게 얼굴을 때리더라.
“40대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회복이 느리신가? 다리도 계속 절뚝거리네.”
“헛소리 집어치우고. 사업 얘기나 하지.”
“뭐, 그러지.”
그렇게 말하며 뒤쪽을 쳐다봤다.
“덩치야. 여기 커피하고 과일 좀 내와라.”
“예! 행님.”
미리 준비라도 된 것처럼, 커피 두 잔과 과일이 세팅됐다.
왜 하필 어울리지 않게 과일이냐고? 이러려고.
휙. 휙.
난 포크를 몇 번 돌리다가, 멜론 조각 하나를 집었다.
그걸 보던 남상민 실장이 부르르 떨었다.
‘그래. 평생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어라.’
넌 앞으로 두 번 다시 포크는 쳐다도 안 볼 거다.
레스토랑에서도 젓가락질이나 하겠지.
“크음……. 그, 그러니까.”
“말해.”
난 일부러 포크를 들었다 놓으며 놈을 건드렸다.
남 실장의 시선은 오직 포크를 향해 있다.
조그만 포크가 다시 허벅지를 찌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거다.
그래. 그렇게 두려움에 떨어야 내가 협상하기 편하지.
“답답하게 더듬는 거 보니까 내가 먼저 말할게. 2,000억은 준비됐어?”
“그……. 2,000억까지는 무리인 거 같다. 조율이 필요할 거 같다.”
“그래?”
난 포크를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2,000억이 무리한 액수는 아닌 거 같은데? 압구정에 JS클럽 2호점 낼 거고, 강남역에 3호점 낼 거라고 터도 봐 놨어. 남 실장. 난 여기 청당동 클럽만 파는 게 아니야. 3개 지점을 한꺼번에 파는 거지. 잘 나가는 클럽 3개를 한 번에 파는데, 2,000억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
이게 말로만 듣던 창조경제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클럽을 미리 가져다 파는 거지.
“그래도 2,000억은 감당하기 힘든 액수야. 조율할 순 없겠나?”
“얼마로?”
“그……. 500억 정도…….”
“가.”
“뭐?”
“가라고. 쇼부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500억이 뭐야? 미친 깡패야? 아……. 맞다. 너 깡패 맞지. 아무튼 그냥 가라.”
휘적이던 포크를 잡고는 그를 노려봤다.
“오른쪽 다리도 절고 싶은 거 아니면, 그냥 가.”
“…….”
2,000억을 불렀으면, 최소 1,000억부터 시작해야지.
이것들이 나를 호구 병신으로 아나?
“혹시라도 뒤통수칠 생각은 하지 마라. 경찰이 24시간 주변을 순찰하고 신변 보호 요청도 해 뒀으니까 그럴 생각은 하지 마. 호적에 빨간 줄 늘리기 싫으면.”
“하…….”
남 실장의 한숨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 정도로 깊다.
이놈도 상황을 알고 있는 거겠지.
강남 일대에 갑자기 강북서 경찰과 형사들이 들락거리고, 자기네들 사업장에 와서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주의도 주고 가고.
이것 때문에 강남서에 뒤봐 주고 있는 놈한테 연락하니, 조용히 넘어가라고 했을 테고.
내가 너희 밑에서 15년이나 있어서 잘 안다.
“사업장 하나에 500억.”
“응?”
“네 말대로 사업장이 3개잖아. 2호점 내는 거 우리한테 넘기고, 3호점 터 봐 놓은 곳도 우리한테 넘겨라.”
“그럼, 1,500억?”
“그래. 그 이상은 못 준다. 거기까지가 한계야.”
오호. 창조경제가 먹혔네.
JS클럽을 인수하는 데 200억이 들었다.
사실 이걸 500억에 팔아도 남는 장사긴 하다.
거기에 만들지도 않은 클럽 2개를 묶어서 파는 데 ‘콜!’을 외치고 있다.
‘이것들이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지.’
주변 유흥업소에서 올라오는 상납금이 줄어들어서 손해를 입었을 거다.
손해 본 상납금을 원상복구하기는 힘들 테니, 여길 인수해서 마이너스 난 걸 채우려고 하는 의도다.
그만큼 장사가 잘되니까.
그리고 압구정과 강남역에 클럽을 오픈하면 더 잘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충분히 손해를 복구할 만큼.
‘주철수의 계산기에서 1,500억까지 나왔다는 건데…….’
나쁘지 않네. 200억이 1,500억이 되는 기적을 몇 달 만에 만들어 냈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해 둬야지. 구차한 방법은 못 쓰게.
“알겠다. 1,500억에 거래하지.”
“그, 그래?”
“대신, 조건이 있어.”
“……?”
“지분 나눠 준다, 부동산으로 준다, 이딴 소리 하지 말고 현금으로 준비해라. 빳빳한 현찰, 아니면 무기명 채권. 그거 아니면 안 받는다.”
“!!”
재산을 담보 잡아서 나한테 줄 생각하지 마.
내가 이 클럽을 파는 본질적인 이유는 너희 자금줄을 마르게 하는 거거든.
아무리 천하의 주철수라도 현금 1,500억이 빠져나가면, 계획이 틀어질 테니까.
“그건…….”
“왜? 힘들어? 그럼, 없던 일로 하지 뭐. 나야 장사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면 그만이니까.”
난 괜스레 뒤를 보며 외쳤다.
“손님 나가신단다. 안내해 드려라.”
“예! 행님.”
“아, 아니. 잠깐만.”
남 실장이 손사래를 치며 막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건 내 선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줘. 전화 한 통만 할게.”
“뭐, 좋을 대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건다.
난 그 순간, 번호를 캐치했다.
‘저게 주철수 전화번호구나.’
남 실장하고 연락하는 번호면 다이렉트 번호일 가능성이 크다.
언제 써먹을지 모르지만, 직통 연락처 하나는 알아놔야지.
머릿속에 번호를 심어 두고 잠시 기다릴 때였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사장님.”
자초지종을 말한 남상민 실장이 한참 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주철수는 절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의 지갑에서 1,500억이란 돈이 나가도 괜찮을지, 앞으로 강북을 치는 시간이 얼마나 지연될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대입하고 있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나를 쳐다봤다.
야. 울 거 같은 표정 짓지 마라.
냉혹한 칼잡이가 1,500억에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지.
“500억은 현금. 500억은 무기명 채권. 나머지는……. 석 달 뒤에 주는 걸로 하면…….”
“꺼져.”
신용으로 거래하고 싶은가 본데, 난 너희한테 일말의 신용도 없어.
나한테 너희는 신용등급 9등급, 10등급이야.
그러니까 줄 돈은 시원하게 주라.
“1,500억. 나중에 준다는 개소리는 애견센터 앞에서 지껄이고. 1,000억 현금, 무기명 채권 500억. 아니면, 그냥 가.”
“석 달 뒤에 준다니까! 우리 강남파야. 약속을 어길 거라고 생각해?”
“너희가 강남파든 상화파든 상관없어.”
“뭐? 상화파? 거긴 또 어디야?”
이런……. 강남하고 빙상 여제 이상화가 결혼하거든.
드립이 너무 미래지향적이었구나.
“나중에 받는 건 의미가 없지. 나중에 너희들이 돈 대신 칼을 들고 올지 어떻게 알아?”
“하……. 우리 강남파는…….”
“아니, 싫다니까. 파는 사람이 싫다는데, 뭔 계속 강남파 타령이야?”
석 달 뒤에 돈을 주긴 줄 거다.
주철수가 다른 건 몰라도 계산은 칼 같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조직의 체면 때문에라도 돈을 줄 수밖에 없다.
500억 떼먹고 나른 양아치라는 소문이 나면, 그때부터는 조직의 가오가 떨어진다.
가오 빼면 시체인 저놈들한테는 절대 나서는 안 되는 소문이다.
이러든 저러든,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내가 진짜 사업하는 사람이면,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는 돈이지만, 지금 난 그런 목적이 아니거든.
‘현금을 말려야 해.’
강남파가 커지는 걸 막으려면, 당장 그놈의 두둑한 지갑을 얇게 만들어야 한다.
“아오! 썅!”
“소리 지르지 마. 귀 아파.”
“하……. 하…….”
“한숨도 적당히 쉬고. 아까부터 네 입 냄새 참고 있다.”
“X발…….”
“욕할 거면 그냥 가라. 슬슬 청소 끝내고 오픈 준비해야 하니까 꺼져 줘.”
두 눈을 부릅뜨고 쌍심지를 켜고 있다.
에헤이. 그러지 마. 평생 봉사로 살 거 아니면.
“꼭 그렇게 다 받아 가야겠냐?”
“응. 내가 좀 확고한 스타일이라서. 바뀔 생각은 없어.”
“후……. 알겠다. 현금하고 무기명 채권으로 조율해 보겠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JS클럽 오너가 가긴 어딜 가겠어? 여기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돈이나 가져와. 아! 늦을수록 손해인 건 알지? 강북 쪽에 돈 많은 아저씨들이 여기를 노리고 있더라고. 알지? 명동에 큰손들. 그분들이 거나하게 부르면 그쪽에 팔 거야. 서둘러라.”
“……알았다.”
남 실장이 절뚝거리는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거칠게 클럽을 나갔다.
명동의 큰손들? 연락도 안 왔다.
그런데, 이런 뻥카가 중요한 거거든.
상대를 압박하기에 명동이라는 대명사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고.
“며칠이나 걸리려나?”
이왕이면 빨리 싸 들고 와라.
스케줄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 주기 힘들다.
***
딱 3일이 지나자, 남상민 실장이 다시 클럽으로 찾아왔다.
얼굴이 더 부어 있네. 아주 작정하고 팼구나.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로 자동차 키 4개를 던졌다.
“트럭 4대. 사과 박스에 만 원권 2만 5천 장씩. 총 400박스다.”
이야. 2002년엔 나온 차떼기를 여기서 보는구나.
트럭에 사과 박스로 100박스씩 4대. 총 1,000억이다.
“그리고 이건.”
남 실장이 007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무기명 채권 1억짜리, 500장. 500억이다.”
“깔끔하네.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면서 시간은 왜 질질 끌었대?”
“후…….”
“땡큐. 잘 받아 간다.”
난 차 키를 잡아 덩치, 돼지, 난쟁이한테 하나씩 던졌다.
그러고는 나도 하나를 차 키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007 가방을 챙겼다.
“서류는 사무실에 다 구비해 놨으니까 클럽 이전 문제는 알아서 해.”
“…….”
“그럼, 이만.”
우리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남상민 실장의 저음이 동굴처럼 울린다.
“항상 목 씻고 다녀라. 네 목은 내가 반드시 따 줄 테니까.”
“지랄하네. 가서 사과나 따.”
넌 다시 칼 잡는 일 없을 거야.
내가 조만간 감방으로 안내해 줄 거거든.
한차례 비웃어 주고는 클럽을 나왔다.
남 실장의 분노를 제대로 자극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성이 없어지고 막 나가거든.
막 나가는 놈일수록 감방과 가까워질 테고.
.
.
“행님. 트럭 타고 집으로 갈까예?”
“아니.”
“……?”
내 계획은 이제 시작인데, 어딜 가?
“돼지는 나하고 강북에 마련해 둔 사무실로 간다.”
“그럼, 우리는예?”
“덩치하고 난쟁이는 트럭 타고 이태원하고 홍대 돌면서 클럽 오너들 만나 봐.”
“예?”
“돈을 벌었으면 써야지. 몇 달 만에 7배 넘게 먹었는데, 써야 하지 않겠어? 클럽 팔겠다는 곳 있으면 현금으로 바로 사들여. 사이즈는 우리가 운영하던 JS클럽만 한 수준으로. 너무 작으면 의미 없으니까 그런 곳은 거르고.”
덩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행님. 기껏 클럽 팔았는데, 또 클럽을 할라고예?”
“해야지. 그래야, 주철수가 물 먹거든.”
“예? 그……. 행님. 제가 대가리가 나빠가 믄 말인지 모르겠으예…….”
“간단해. 강북 클럽의 퀄리티를 올리면 JS클럽의 손님은 줄어들 거야. DJ들 다시 데리고 오고, 클럽으로 출근하던 연예인들 강북으로 오게 만들면 끝.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예. 손님 빼묵자. 이말이네예?”
“맞아. 가게는 팔아도 손님까지 뺏길 수는 없잖아? 우리 손님은 우리가 맞이해야지.”
주철수. 넌 빈 껍데기뿐인 클럽을 1,500억에 인수한 거야.
압구정하고 강남역에 2호점, 3호점을 내면 더 파리만 날릴 거고.
내가 클럽을 문화를 다시 강북으로 옮길 거거든.
‘그나저나, JS클럽의 뜻을 얘기 안 해 줬네.’
이건 좀 아쉽다.
‘주철수 개X끼’라는 아름다운 뜻을 알려 줘야 하는데.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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