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
001화
집을 나서는 순간엔 언제나 긴장이 함께한다.
15년간 반복한 출근길이지만, 항상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가자, 검은 정장의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 나를 반긴다.
“나오셨습니까. 부장님!”
마흔 살에 부장.
오너가 아들이 아니고서야 이런 직책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난 오너 아들이 아니다.
회사의 시스템과 몇 가지 이유로 초고속 승진을 경험한 인간에 불과했다.
“부장님. 정 상무님이 모시고 오라십니다. 차에 타시죠.”
“정 상무님이? 어디로?”
“베라튼 호텔입니다.”
“왜? 미팅이라도 있어?”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모시고 오라는 전달만 받았습니다.”
젠장. 이럴 때가 제일 불안하다.
항상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엔 이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까라면 까는 거다.
일반적인 회사라면야 보고 시스템이나 스케줄이 짜여 있겠지만, DG그룹에서 그딴 건 찾아볼 수 없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지.”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지?
이제 그만 불러 줄 때도 되지 않았나?
속으로 답답함을 억누르고 있을 때였다.
왜인지 창밖의 풍경이 조금 다르다.
여기가 베라튼 호텔로 가는 길인가?
아닌 거 같은데…….
‘?!’
뭔가 잘못된 걸 직감하고 고개를 틀자, 미세한 흰 연기가 자동차 환풍구를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럴 때는 앞뒤 안 재고 도망가야 한다.
털컥!
젠장. 차에서 뛰어내릴 생각이었는데 뒷문이 열리지 않는다.
앞을 보니 운전자와 동승자가 필터가 달린 마스크를 쓰고 있다.
개새끼들.
내가 이렇게 죽을 거 같아?
빡!
숨을 참고 운전자의 뒤통수를 발로 차 버렸다.
있는 힘껏.
심한 충격을 받은 운전자는 순간 휘청거리더니 운전대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다.
아무리 S클래스라도 지그재그가 심해지자, 차선을 휘저어갔다.
동승자 놈이 애써 핸들을 잡아 컨트롤해 보려고 하지만 안 되지.
내가 살 길은 어떻게든 차를 세워서 도망가는 거다.
세우는 방식이 일반적인 방식과 조금 다르더라도 말이다.
퍽! 퍽! 퍽!
감기는 눈을 참고 핸드폰을 들어 동승자의 뒤통수를 갈겼다.
앞뒤 가릴 새가 없다.
차에서 잠드는 순간, 내 목숨은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끼이익. 끼이이익.
바퀴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이리저리 돌기 시작했다.
내가 살려면 너희가 죽어야지.
두 사람의 안전벨트를 풀었고, 뒷좌석에서 내 안전벨트를 끼웠다.
딸깍하며 내 안전벨트가 채워진 순간.
몸이 붕 뜨는 것이 느껴지며, 지상을 달려야 하는 차가 하늘 위를 날았다.
***
“이 부장. 나 진짜 이 부장 존경한다. 어떻게 그 순간에도 두 놈을 골로 보내냐?”
눈을 떴을 때는 정 상무라는 인간이 내 앞에 있었다.
몸은 결박된 체였고, 뒤로는 과장, 대리, 사원 따위의 직급을 쓰는 깡패 놈들이 있다.
그래. 깡패들.
재계 3위까지 올라간 DG그룹은 깡패들이 만들어 낸 전국구 깡패 집단이었다.
지역 관리나 하는 놈들이 뭉쳐서 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들을 규합해 거대한 전국구 조직이 탄생했다.
그리고 DG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기업을 만들더니, 어둠에서 흘러 들어온 자금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수합병과 기업공개를 거쳐 재계 3위까지 발을 들인 것이다.
내 앞에 정 상무라는 새끼도 깡패 출신이다.
충청식구파 보스 출신인 악당 그 자체인 새끼.
“대단해. 마지막까지 발악하는 거 보면, 진짜 존경할 만하다니까.”
“읍. 읍.”
입에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어서 말이 안 나온다.
그걸 보고 정 상무가 뒤를 보며 고개를 까닥했다.
찌익.
에이씨. 아파라. 좀 살살 뜯어라.
“왜 이러는 겁니까?”
“알잖아. 왜 이러는지.”
“제가 상무님한테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지. 나한테 잘못한 게 아니지.”
그가 대충 쭈그려 앉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네가 15년 동안 우리 모두한테 잘못한 거지. 이 씨부레 경찰 새끼야.”
어떻게 안 걸까?
장장 15년을 안 들켰는데, 왜 이제 들킨 거지.
“하. 역시 이 부장은 클라스가 달라. 짭새라고 대놓고 말해도 눈도 깜짝 안 하네.”
들키지 않았다면, 너희가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 테니까.
“야. 넌 뒤지는 게 안 무섭냐?”
무섭지. 무섭긴 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도 있다.
매일 아침이 지옥이었거든.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내 정체가 들키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온몸이 떨렸어.
지금처럼 들키지 않을까, 매일 불안에 떨었다.
퉤!
정 상무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씨부레 새끼가 테이프 풀어 줬더니 입 다물고 지랄이야.”
정 상무야. 담배 좀 그만 피워라.
침에서도 담배 냄새난다.
“누가 밀고했냐?”
“내가 어떻게 알아? 위에서 오더 내려온 거지.”
내 물음에 정 상무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너나 나나 뭘 알 수 있겠어?
우린 어차피 돌아가는 쳇바퀴 중의 하나일 뿐인데.
정 상무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얌마. 회장님이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15년이나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냐? 어? 아니지. 처음에 속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런데, 너 졸라 열심히 했잖아. 우리 DG그룹이 성장할 때 네가 뒤치다꺼리를 얼마나 열심히 했어? 그럼, 그냥 경찰 때려치우고 회사에 들어오지, 개좃빤다고 거기 계속 있었냐? 어?”
경찰을 그만두고 ‘나 경찰이었는데, 이제 깡패 할랍니다.’ 하면 너희가 받아 줬겠어?
“공무원 연봉이 다 거기서 거기더구만. 네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거 듣고 놀랐다. 그런 푼돈 벌려고 15년이나 회장님 밑에서 일한 거냐?”
꼬여서 그렇지. 인생이 단단히 꼬여 버렸으니까 경찰도 되지 못하고 깡패도 되지 못했지.
한쪽은 비리 명단 작성하라고 난리, 다른 한쪽은 실적 내라고 난리.
고래 싸움에 등이 수백 번은 터져 나간 거 같다.
정 상무가 내 눈을 바라봤다.
“그래도 내가 너 아껴서 주둥이 좀 털었다. 네가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씁. 암튼 인제 그만 가자. 가기 전에 할 말은 없냐? 어디 누구한테 전할 말이라도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 정도 선심은 써 줄 수 있어.”
“주철수 회장한테…….”
“응? 회장님한테 뭐?”
“……빨리 좀 뒤지라고 말해 줘.”
“하! 하하! 푸하하하!!”
정 상무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큭. 그렇지. 회장님이 참 건강하시지. 요즘은 뭐, 100세는 기본으로 산다고 한다더만. 내가 봤을 때, 앞으로도 무병장수하실 거 같다.”
정 상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흘깃 봤다.
“잘 가라.”
그 말이 끝나자, 조폭 놈들이 나를 차에 태우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옆자리 아래에 연탄을 피운다.
자살로 위장하는 거야? 아……. 이 새끼들, 고전적인 수법 쓰네.
텅.
문이 닫히고 연기가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였다.
이미 죽음은 예상하고 있으니 두렵지는 않다.
그것보다, 왜? 어떻게 들킨 걸까?
경찰과 검찰 몇몇 수뇌부만 내 존재를 알고 있다.
요즘은 해킹으로 뭐든 조사해 버리는 시대라 전산상에 내가 경찰이었던 흔적은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송 과장? 박 국장? 윤 검사?
이것들이 나발을 분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사람들도 DG그룹의 싹을 뽑고 싶어서 난리 블루스를 추던 인간들이다.
내 정체를 까발릴 사람은 없을 텐데…….
‘아니야.’
열 길 물속을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뒤로 돌아섰고 내 정체를 밀고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기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진 않았겠지.
정신이 흐릿해져 가던 와중에 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불렀다.
“……아버지.”
이렇게 죽으면,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건가?
사후 세계에서 아버지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내게 아버지는 둘도 없는 영웅이다.
실제로 현충원에 기념비까지 세워진 인물이었다.
깡패 조직에 밀정으로 들어간 것도 아버지라는 영웅의 발꿈치라도 쫓아가고 싶어서였다.
죽을 때가 되니, 주마등이 흐른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임신중독증이 심하셨다고 했는데,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기에, 내게 큰 의미를 가지진 않는다.
대신, 나한테는 아버지가 어머니였고 또한 기둥이었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낸 자식을 원망할 법도 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누구보다 나를 열심히 키우셨고, 사람의 됨됨이나 지켜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셨다.
자상하면서도 엄격하고, 단단하게 키우면서도 따듯하게 안아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내가 군대에 입대하고 말년이 다 되었을 때, 세상을 등지셨다.
[1명의 의인이 12명의 생명을 살리다.]이런 거창한 타이틀이 달리긴 했지만, 내겐 12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건 의미가 없다.
1명의 의인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더 큰 의미를 가졌다.
2005년. 당시 지하철 승강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안전바도 설치되지 않았던 시기.
스크린도어도 없던 그런 시기였다.
그때, 약에 미친 인간이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밀쳤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보이는 족족 밀어 버린 미친 행각.
그렇게 떨어진 사람이 총 13명이었고, 신문을 보던 아버지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때. 아버지는 충분히 혼자서 올라올 수 있었다.
나의 건장한 체격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으니, 승강장을 올라가는 것 따윈 일도 아니지.
그런데, 문제는 떨어진 사람 중에는 노인부터 어린아이, 여자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패닉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때,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떨어진 사람들만큼은 반드시 살릴 수 있는 결단을.
저 멀리 달려오는 지하철을 향해 아버지는 손을 휘저으며 뛰어가셨고 멈추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도망가기도 바쁜 그 시간에 오히려 아버지는 지하철이 오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떨어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은 승강장에 들어오기 전에 멈췄다고 한다.
대신, 한 명의 목숨은 가지고 가야 했다.
아버지의 희생.
그게 없었다면, 12명의 남녀노소는 남은 여생을 보내지 못했을 거다.
“……보고 싶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사후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만나 기나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바람을 하며, 눈이 감기던 순간이었다.
-주혁아.
“……?”
-우리 아들.
연탄가스 때문인가?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형상이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우리 나중에 만나자.
“……예?”
-네가 이루지 못한 걸, 모두 이루거라. 그리고……. 아주 나중에 보자꾸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중에, 라니?
궁금함을 물어볼 새도 없이 눈이 감긴다.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
삐! 삐! 삐! 삐! 거리며 거친 알람음이 울린다.
오래된 팬택의 슬라이드폰.
2005년에나 쓸 법한 핸드폰이 나를 깨우고 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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