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
002화
그새 일주일이 지났다.
난 내게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2005년 7월 15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일장을 치른 후, 어영부영 제대한 그 날로 돌아왔다.
어떻게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그것도 십수 년을 거슬러서 이때로.
내가 할 수 있는 추측은 하나뿐이다.
‘아버지.’
분명히 나중에 보자고 하셨다.
그것도 한참이나 나중에.
내가 죽기 전에 본 아버지의 형상이 헛것이 아니라 진짜였다면?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과거로 보내 준 거라면?
미친 얘기이지만, 지금은 이 가능성이 유일하다.
아버지는 12명을 살린 의인이자, 영웅이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의인 팻말을 들고 프리패스로 천국에 갈 만한 인물인 거지.
아버지가 천사라도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시간을 거슬러 나를 여기로 보내지 않았을까?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2005년으로 돌아온 내게는 이 추측만이 유일했다.
실제로 돌아왔고, 난 살아 있으니까.
통장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정부에서 준 1억.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받은 1억.
이 시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 거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무슨 1억을 받냐고 말이다.
내 출신이 특별해서 그렇다.
HID. 일명 북파공작원.
육군 산하에 존재하는 수많은 북파 공작 부대 중의 하나이자, 특수 임무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부대.
아버지 덕분에 덩치도 좋고 키도 제법 컸다.
흔히들 말하는 역삼각형 몸매가 난 태어날 때부터 장착되어 있었다.
그 덕에 또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 상태와 힘을 자랑했다.
내가 군대에 간 시기는 IMF와 카드 대란으로 한창 대한민국이 고통받던 때였다.
아버지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군대로 향했고 특출났던 몸 상태 덕분에 특수부대로 차출될 수 있었다.
‘덕분에라는 말은 좀…….’
아버지가 다시 돌려보내 준 시기가 군대 복무 기간인 4년이 지난 후라서 다행이다.
난 입대 후에 단 한 번도 부대를 나와 본 적이 없다.
아버지를 본 것도 돌아가신 후에 영안실에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었고, 하루에 16시간을 훈련만 하던 미친 부대였다.
제대 후 1억이라는 탐스러운 열매가 아른거리지 않았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곳이 HID다.
공수 훈련으로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폭발물 제작과 실제 폭파 훈련과 탈출, 납치, 사살 훈련에 도둑질 훈련까지.
진짜 미친 훈련이란 훈련은 다 받는다.
그러다 고문 훈련 중에 실제로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으…….’하며 치를 떤 나는 통장과 집안을 번갈아 봤다.
“2억 하고 전셋집. 이게 지금 내가 가진 전부네.”
송파구 번화가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빌라 3층.
여기 전셋집이 내가 비밀 임무를 맡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지금……. 아니, 미래에 내가 땅을 치고 후회한 게 여기 집주인이 1억 5천에 팔 테니 사라고 한 거였다.
그때는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라, 살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내가 미쳤지.
빌라가 아파트가 되고 1억 5천이, 25억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여긴 천천히 매입하기로 하고.”
이전 생에서 이 시기의 난 허망한 시간을 보냈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매일 술로 하루를 낭비하는 게 전부였다.
그 생활을 1년 넘게 하고, 통장의 잔고가 나날이 비어 갈 때쯤 이렇게 살다 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욕 한 바가지 얻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문뜩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이후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국가유공자 대우와 특수부대 가산점이 있기에, 박 터지는 노량진에서도 나름 유리한 위치를 선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만에 시험에 붙었고, 경찰 교육 기간이 끝나갈 때쯤.
‘송 과장을 만났지.’
나도 이름을 모르는 인물이다.
통칭 송 과장. 경찰 내부에서 은밀한 임무를 주도하는 사람.
송씨도 가명일 확률이 높다.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었으니까.
진급도 하지 않았었다. 내가 죽을 뻔했던 그 순간에도 송 과장은 송 과장이었다.
생각의 정리하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깨끗하게 샤워하고 말끔하게 머리를 정돈했다.
“우선, 나가자.”
일주일이나 이곳에 틀어박혀 있었더니, 정신이 더 혼미해지는 거 같다.
시원한 밤공기에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 봐야겠다.
***
“기억 그대로네.”
아버지와 자주 가던 매생이 국밥집.
주꾸미 향이 밖으로 퍼져 나오던 주꾸미 집.
20살 기념으로 아버지와 처음 술을 마셨던 파전집까지.
내 기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거리는 회상과 상념에 잡히게 만들었다.
더 걷고 걸었다.
아버지가 공사장에 일하셔서 자주 지역을 이동했지만, 여기에선 제법 오래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와서 비밀 임무를 맡기 전까지 살았으니까 한 8년 살았나?
2, 3년마다 이사해야 했던 내겐 이 지역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노래방도 그대로구나.”
지하 1층에 있는 ‘생생노래방’.
군대 가기 전까지 잠깐 아르바이트했었는데,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었단 기억이 있다.
술을 팔지 않는 건전한 노래방이었고, 아르바이트도 꽤 편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비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줬고, 굶고 다니지 말라고 사모님이 챙겨 준 반찬도 자주 얻어먹었었다.
‘가 볼까?’
당시를 추억하며 들어가 보려다가, 이내 발걸음을 틀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15년이나 비밀 임무를 수행한 나를 어떤 인간이 밀정으로 고발한 건지.
앞으로 암흑가를 주름잡을 DG그룹은 어떻게 해야 할 건지.
아니면……. 과거로 돌아온 기억을 바탕으로 호의호식하며 살 건지.
사실 마지막이 가장 당기기는 하는데…….
“뭐라카노?! 씨발! 노래방에 왜 술을 안 판다꼬?”
“?!!”
노랫소리가 나와야 하는 노래방에서 고성이 퍼져 나왔다.
귀청을 괴롭히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지하로 서서히 내려갔다.
“저희는 노래연습장업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술은 팔지 않습니다.”
“지랄하네. 우리 동네에서는 다 팔았다. 우리가 촌에서 왔다고 무시하나?”
“그게, 등록된 업종마다 다릅니다. 술을 팔 수 있는 곳이 있고 아닌 곳도……. 어억!”
우당탕!
사장님의 변명 이후에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깡패놈들 아래에서 비밀 임무를 하긴 했지만, 경찰이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내 정체성을 의심한 적이 없다.
난 경찰이다. 아니, 경찰이었다.
그 사명감만큼은 내 가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 안에서 쓰러져 있는 사장님과 맞은 편에 있는 젊은 남자 셋이 보인다.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는지, 사장님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허리를 붙잡고 계셨다.
설마 이 새끼들이 사장님을?
“인마는 뭐고? 나가라 이 새끼야. 어른들 대화 중인 거 안 비나?”
“넌 뭐냐?”
“하! 이거 보소. 제법 깡다구는 있다이.”
덩치가 큰 놈이 내 앞에 선다.
190이 조금 안 될 거 같은 키인데, 몸이 뒤룩뒤룩하다.
무서워 보이려고 잔뜩 인상을 쓰고 모습이…….
‘귀엽네.’
내겐 귀엽게만 보였다.
기껏해야 20대 초반.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딱 그런 부류의 놈이다.
난 피식 웃고는 사장님과 덩치들을 번갈아 봤다.
사장님이 바닥에 누운 채 끙끙대며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안 그래도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시던 분인데, 하필이면 뒤로 넘어지신 것 같았다.
빨리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보였다.
“너희 좀 맞자.”
“뭐?”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데, 너희들이 가만히 놔둘 거 같지 않아서 말이야. 맞고 시작하자.”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쉑……. 켁!”
곧바로 울대를 쳐 버렸다.
실전 무술이라면 지겹도록 익힌 몸이다.
게다가, 지금은 전역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
내 생각보다 주먹이 훨씬 빨랐다.
“이 개새……. 크윽!”
달려오는 놈의 낭심을 걷어차 버리고…….
“씨…….”
상대적으로 작은놈은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꽂아 버렸다.
실전 무술은 실전에 특화된 거다.
인간의 약한 부분만 노려 확실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기술의 여파로 세 명의 덩치들은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난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119를 눌렀다.
“여기 송파구 가락동 생생노래방입니다. 허리디스크 환자가 뒤로 넘어져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빨리 와 주세요.”
전화를 끊고 사장님을 평평한 곳에 잘 눕혔다.
“주, 주혁이니?”
“네. 사장님.”
“어떻게 네가 여기에……?”
“말하지 마세요. 움직이지도 마시고. 크게 심호흡하세요. 구급차 금방 올 거예요.”
“……고, 고맙다.”
고맙긴요. 제가 더 고마웠죠.
.
.
노래방 빈방에서 아까 그 덩치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번 맞아보면 느낌이 온다.
부딪혀서라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아예 상대도 할 수 없는 인간인지.
그들에게 난 후자에 속했다.
정신을 차리고 몇 번 더 덤빈 이 녀석들을 한 수에 제압해 주니 그렇게 되었다.
“어떻게 변상할 거야?”
“예?”
“내가 너희를 왜 경찰서로 안 보냈는지 모르겠냐? 경찰서 가 봐야 폭행으로 벌금 몇 푼 내면 나올 건데, 내가 왜 보내겠어?”
게다가 나이대를 봤을 때, 초범일 확률이 높다.
아니더라도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사건이었다.
그것보다 난 확실한 변상을 원했다.
사장님이 받은 고통과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할 만한 무언가.
당연히 그 무언가는 돈이다.
그래서 구급대원에게 사고라고 얼버무렸고 이놈들은 노래방 안에 가둬 놨다.
이대로 보내면, 이놈들에게는 무용담이 된다.
말 안 듣는 노래방 사장 새끼 대갈통 깼다. 따위의 가십거리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다.
난 그 꼴은 못 본다.
“치료비 전액은 기본이고, 합의금으로 한 놈당 1,200만원 씩. 심리 보상금으로 두당 1,200만 원씩.”
“예에?”
“한 놈당 2,400만 원씩만 준비해. 도합 7,200만 원이면 사장님도 마음의 안정을 찾으실 테니까.”
“저희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언제까지 준비할래?”
“…….”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너희가 해답을 못 찾는 거 같으니까 내가 알려 줄게.”
“……?”
“이 앞에 아파트 짓는 공사장이 있다. 거기 반장님하고 내가 좀 아는 사이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 친구분이지.
“빡빡하게 근무하면 하루 일당이 10만 원은 받을 수 있다. 주 6일 일해서 한 달 채우면 240만 원이고.”
“그게 무슨 말씀인지…….”
“10개월만 일해라. 240만 원에 10개월이면 2,400만 원. 합의금하고 보상금으로 딱 맞아떨어지잖아. 어때?”
애매하게 합의금과 보상금을 부른 이유가 이거다.
공사판에서 10개월만 굴러 봐라. 너희가 얼마나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아서 이딴 짓을 한 건지 알게 될 테니까.
“야. 너희들.”
“……예.”
난 이들에게 인생의 진리를 알려 줬다.
“인생은 실전이다. 이 존만 한 새끼들아.”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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