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그 시각 한국.
한광철은 자신의 은사이자 前 민정수석 김우천을 다시 한번 찾아갔다.
덜컹.
대문을 넘어 들어가자, 정원에 호스로 물을 뿌리던 김우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또 뭐야?”
“또 뭐냐뇨. 말씀을 섭섭하게 하십니다.”
한광철이 너스레를 떠는 걸 보며 김우천이 호스의 물을 껐다.
“별것도 아닌 늙은이 보려고 귀하신 몸 행차하신 건 아닐 테고, 이번엔 무슨 일이고?”
“쩝. 사람 민망하게 참…….”
입맛을 다신 한광철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건지 안부 차 들른 건지는 귀신같이 구별하는 양반이다.
그만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민기형이 말입니다.”
“……그놈아는 와?”
“이번에 커리어에 빨간 줄 쫙 그어졌잖습니까.”
“그래. 소식 들었다.”
김우천에 한숨을 팍 내쉬었다.
“자식 농사가 쉽지 않지.”
슥.
호스를 정리한 김우천이 일어나 뒷짐을 지며 물었다.
“그래서, 민기형이는 와? 이참에 네가 민정수석 해 볼라꼬?”
“아뇨. 민기형이를 끌어내리는 건 너무 시기상조인 것 같고…… 어르신이 그놈 영향력을 좀 줄여 주셨으면 합니다.”
“참내. 언젠간 끌어내린단 소리 아이가. 그리고 뒷방 늙은이가 어떻게 민정수석 영향력을 건드리노? 쉰 소리 마라.”
“어르신도 아시잖습니까. 이 나라에 거대한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 저는 그 주인을 민기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허…….”
김우천도 대강 눈치채고 있었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그놈을 막을 만한 사람이 어르신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최측근이 그런 놈인데, 대통령이라고 그놈한테 안 넘어갔겠습니까?”
“그건 너무 비약 아이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자는 겁니다. 어르신.”
“쯧.”
잠시 고민하던 김우천이 손을 휘휘 저었다.
“생각해 볼 테니까, 니는 인제 가라.”
“예? 식사나 같이 하시죠.”
“됐다. 일없다.”
“거참…….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한광철이 떠나고, 한참을 정원에 서 있던 김우천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나라 꼴이 우째 돌아갈라는지…….”
* * *
하루가 지나고, 고상미는 혼자서 어디론가 향했다.
러시아 용병 출신이지만, 한국에 넘어오기 직전에는 잠시 동남아에서 활동했었다.
그녀는 그때 알게 된 인연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여긴 총이 막 돌아다니는 곳.
고상미에 비해 약한 부하들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눈에 익은 골목길로 들어가던 고상미는 한 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끼익-.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내부가 눈에 보였다.
고상미가 그 안으로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철컥.
머리 옆에 총이 겨눠졌다.
하지만 고상미는 이 상황을 예상하였다는 듯, 몸을 순식간에 틀며 상대가 들고 있던 권총을 뺏어 들었다.
파박!
“이런 X바……! 어?”
당황하며 황급히 칼을 꺼내 들던 남자가 깜짝 놀랐다.
“상미 누님?”
“이 새끼. 나한테 총을 막 겨누네.”
“아니, 오햅니다.”
깔끔하게 수염을 기른 남자, 춘식이 반갑게 웃었다.
필리핀에 있는 한국인 조직의 리더로, 갱이라기보단 용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근데 어쩐 일이에요? 다신 안 올 것처럼 그러더니.”
“일이 있어서 잠깐 넘어온 거다.”
“무슨 일이요? 이젠 의뢰 안 받으신다면서.”
“너희들한테 의뢰하려고.”
“예?”
그 말에 남자가 괴상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누님이 저희한테 의뢰를 왜 합니까? 본인이 직접 하는 게 더 빠를 텐데.”
“건수가 좀 커서. 보수는 나랑 같이 일하는 대표가 줄 거다.”
“가, 같이 일하는 대표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고상미의 성격을 아는 춘식으로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누님을 데리고 일을 한다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춘식은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일인데요?”
그 말에 고상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여기 카지노 사장이 마약도 같이 파는데, 거길 박살 낼 거란다.”
“예?”
그걸 들은 춘식이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고상미는 그걸 보며 미간을 좁혔다.
“왜. 뭐 아는 거 있냐?”
“아, 예. 알긴 알죠. 솔라 호텔에 있는 그 카지노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맞을걸?”
“씁…….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거기서 몇 번 일을 받아서 처리한 적이 있거든요.”
춘식의 태도에 고상미가 주먹을 들었다.
“그래서. 안 한다고?”
“그럴 리가요.”
곧 일어날 일을 직감한 춘식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입장이 있잖습니까. 이 바닥에서 그쪽이랑 척지면 입에 풀칠도 못 합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그 대표 부자니까 잘 챙겨 줄 거다.”
“두둑이 챙겨 준다면야……. 뭐, 생각해 볼 순 있죠.”
마닐라 바닥에서 활동하긴 좀 힘들어지겠지만, 고상미와의 의리도 있고 보수도 넉넉하게 준다니 다른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가면 그만이다.
“애들한테 연락 돌리겠습니다. 누님 오신 거 알면 좋아할 겁니다.”
“큭. 걔네가?”
말 안 들을 때마다 대련을 빙자해 두들겨 팼으니 반기는 게 더 이상하다.
고상미는 흉터로 가득한 춘식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근데 어째 눈빛에서 독기가 좀 빠졌다?”
“예? 갑자기요?”
“처음 만났을 때는 애가 악에 받쳐 있었는데, 요새 살기 편한가 봐?”
“에이. 저희가 마약을 안 다루니까 불러 주는 데도 많이 없고, 요새 돈이 골칩니다. 골치.”
“그래?”
하지만 고상미가 물어본 목적은 진짜 그게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럼, 한 번 확인해 봐야겠네.”
“……네?”
“아직 그때 감이 살아 있는지.”
“아, 누님. 잠깐만…….”
입꼬리를 올린 고상미가 춘식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 * *
배상훈은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라세흠을 따라갔다.
“저기 뭐라도 있는 거예요?”
“따라와 봐.”
두 사람은 건물 사이로 들어섰다.
화려한 번화가 느낌이던 바깥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와. 무슨 분위기가…… 진짜 사람 하나 죽어도 모르겠는데요.”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바닥에 앉아 멍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던 배상훈이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아까 그 소매치기 때문이에요?”
“그래. 애들을 때리는 건 참을 수 없지.”
“그래요. 뭐 갑시다. 어차피 그놈들 족치다 보면 윗대가리도 나오겠죠.”
솔직히 좀 귀찮긴 했지만, 어차피 뭐가 튀어나와도 빡친 라세흠이 앞장서 처리할 거다.
그리 생각한 배상훈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이거 들리냐?”
앞에서 걸어가던 라세흠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들려요?”
“누가 맞는 소리 같은데.”
“어? 그렇네요. 가봅시다.”
라세흠이 가는 곳으로 이동하다 보니, 그의 말대로 뭔가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깊숙한 골목까지 들어가자, 저 멀리 웬 남자가 작은 체구의 소년을 마구 밟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까 라세흠의 가방을 노렸던 소매치기였다.
“좀 전에 걘데요?”
“이 새끼들이…….”
그걸 본 라세흠이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아니, 거…….”
말릴 새도 없이 돌진한 라세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년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을 때려눕혔다.
“끄악…….”
털썩.
“아 유 오케이?”
소년은 손을 내미는 라세흠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절뚝대며 도망쳤다.
“어.”
“큭. 부장님 얼굴이 어지간히 험악해야죠.”
“…….”
사실 이런 짓이 저 소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빈곤한 소년이 길거리에서 먹고 살 방법이 또 뭐가 있겠는가.
앵벌이, 혹은 소매치기.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착취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린치당하는 소년을 두고 볼 수도 없었다.
착잡한 기분의 라세흠을 배상훈이 툭툭 쳤다.
“우울하신 건 알겠는데요.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 될 거 같습니다.”
그 말에 주변을 돌아보니, 소란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두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의를 끈 것 같아서요.”
“그러면 오히려 좋지. 약쟁이들 찾으러 갈 건데.”
“아. 뭐, 그렇긴 하네요.”
잠시 기다리자, 사람들을 뚫고 험상궂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맨 앞에서 걸어오던 민소매를 입은 남자가 마체테를 어깨에 턱 걸치며 뭐라 소리쳤다.
“#$! %$#!”
“영어 좀 할 줄 알지?”
“조금요.”
“그럼, 저 새끼들한테 전해.”
턱.
라세흠은 가방을 벗어 내려놓으며 사납게 미소 지었다.
“데려올 수 있는 놈들 싹 다 데려오라고.”
* * *
딜러가 주사위가 든 통을 열었다.
“5, 6.”
“아! 너무 아까운데?”
내가 6, 6에 걸었던 칩을 딜러가 회수해 갔다.
오늘도 순조롭게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있었다.
어제 딴 금액의 거의 세 배를 날려 먹으니 조금 아깝긴 했지만,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메소드 연기를 장착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며 뒤에서 지켜보던 직원에게 말했다.
“여기 돈은 안 빌려줍니까? 5만 불. 아니, 3만 불만 빌립시다.”
그러자 직원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카지노에선 돈을 빌려드리진 않습니다.”
“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송구한 듯 고개를 숙이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대신 돈을 빌려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릴 순 있습니다.”
“소개해 준다고요? 너무 좋습니다. 어딨죠?”
나는 벌게진 눈으로 직원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진 않지만, 정 필요하시다면 소개해 드리는 겁니다.”
“오. 부탁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은 잠시 떨어져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마치고 다가와 물었다.
“손님. 소개해 드리는 대신 카지노 측에서 손님에 대한 보증을 서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호텔을 예약할 때 남겨 놓으신 개인 정보가 필요해서요. 저희 측에서 개인 정보를 보관해도 될까요? 상환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예, 예. 상관없어요. 어디로 가면 돈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제가 연락해 뒀으니, 바깥의 게임장으로 나가시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VIP룸을 나오자, 앞에서 사납게 생긴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돈 빌린다는 게 형씨인가?”
“아, 예. 그렇습니다.”
남자는 여유롭게 웃더니, 들고 온 서류 가방을 나한테 넘겨줬다.
“여기. 정확히 5만 불.”
“오, 고마워.”
“고맙긴. 빌려주는 건데.”
피식 웃은 남자가 날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근데 얼마나 잃었나? 얼굴이 영 별론데.”
“음. 한 100만 불 정도…….”
“큭. 열심히 베팅해야겠어. 잘해 보라고.”
웃음을 짓던 사채업자가 권총집이 달린 자신의 허리춤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대신 다 잃으면 곤란해. 나도 비즈니스맨이라 떼 먹히면 상황이 난감해지거든.”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첫날에는 엄청나게 땄어.”
“그게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길 빌지.”
툭툭.
사채업자는 자신의 품을 두드리며 나를 은근히 위협했다.
“그럼 한 달 뒤에 보자고. 내가 먼저 찾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씨익.
먼저 찾아가는 건, 네가 아니라 나일 테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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