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2
201화
“헉……. 헉…….”
필리핀의 한국인 용병, 춘식이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누님 실력은 여전하시네.”
“당연하지. 얼마나 됐다고.”
턱.
고상미의 손을 잡고 일어난 춘식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실력은 다 확인하셨어요?”
“여전히 약하네.”
“누님이 규격 외인 겁니다. 하……. 그래도 우리 애들 앞에서 안 처맞은 게 다행이네요.”
“아, 애들은 지금 뭐 하는데 하나도 안 보이냐?”
꾸욱.
춘식은 얼얼한 팔뚝을 주물렀다.
“다 돈 벌러 갔죠. 요샌 일이 없어서 알바도 뜁니다.”
“그래? 내가 대표한테 잘 말해 줘야겠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려던 그때.
-아악!
-죽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들은 춘식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어떤 새끼들이 이 구역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뭐야? 내가 처리해 줘?”
“괜찮습니다. 이 정도도 해결 못 하는 놈은 아닙니다.”
끼익.
고상미는 문을 열고 나가는 춘식의 뒤를 따라 나갔다.
퍽! 콰앙-!
“끄아악!”
“엥?”
총을 꺼내 들던 춘식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웬 근육질의 남자가 맨손으로 무기를 든 여러 명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걸 본 고상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 놔둬.”
“예?”
“우리 편이다.”
“아, 그래요?”
퍽! 퍽!
“왜! 말을! 못 해!”
라세흠은 소리치면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밟았다.
“무슨 일이야?”
“어?”
그러던 그는 고상미가 다가가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네가 왜 여깄냐?”
“볼일이 좀 있어서 왔는데…… 이것들은 또 뭐야?”
그 물음에 라세흠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범죄 조직의 꽁무니를 잡기 위해 말단부터 사냥하고 있단 말이군요.”
“그렇지.”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이다 자신의 설명을 요약하는 춘식을 보며 물었다.
“근데 넌 뭐야?”
“아, 예전에 필리핀에 있을 때 알던 놈.”
“그래?”
“춘식이라고 합니다.”
“라세흠이다.”
고상미가 지인이 있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느새 합류한 배상훈이 춘식을 보며 물었다.
“근데 아저씨.”
“아저씨? 나 스물다섯이다.”
“엥? 뭔 소리야. 서른은 넘어 보이는구만.”
미간을 구긴 춘식이 라세흠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어쨌든,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가?”
“예. 누님이랑 같은 편이면 저도 같은 편이죠.”
춘식은 씩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쪽 대표님이 돈이 많으시다면서요? 보수만 넉넉하게 챙겨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뭘 도와줄 수 있는데?”
라세흠의 물음에 춘식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 근처는 제가 빠삭합니다. 어떤 놈들이 약을 파는지, 그쪽에서 찾는 범죄 조직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단 소립니다.”
“그래? 그럼 대표한테는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까, 뭐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 봐.”
그렇게 춘식의 설명이 시작됐다.
라세흠이 상대하던 건 아이들을 이용한 앵벌이와 소매치기로 돈을 버는 집단.
이 근처에서 자주 돌아다니긴 하지만, 그 구성원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나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집단의 리더를 제외한 다른 간부들도 소매치기로 돈을 벌던 애들이 성장한 결과.
즉, 라세흠의 목표에는 조금 벗어났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쪽은 마약을 다루고, 카지노와도 연결고리가 있는 조직을 찾아야 한단 뜻이죠. 음……. 마침 제가 그런 놈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좋아. 안내해.”
“잠깐. 그렇게 막 쳐들어갈 만한 놈들은 아닙니다. 총으로 무장도 했고 인원도 많아요.”
“흠.”
라세흠은 잠시 고민했다.
총을 들었든 인원이 많든 크게 상관은 없지만, 혹시라도 다치게 되면 앞으로의 작전에서 빠져야 한다.
아직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고작 갱단 하나 잡는다고 무리할 것까진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저희 애들을 부르겠습니다. 나름 구를 대로 구른 놈들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오케이. 그러자.”
씨익.
춘식이 미소를 지었다.
“대신, 일한 만큼 챙겨 주셔야 합니다.”
* * *
끼익-.
복면을 쓴 백기준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여기는 이주혁에게 돈을 빌려준 남자가 지내는 모텔.
팀원들이 남자를 추적해 지내는 곳을 알아냈고, 백기준은 그를 잡아 족치기 위해 혼자 찾아온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 봤자 눈에만 띌 뿐이다.
스윽.
남자가 지내는 호실 앞에 도착한 백기준은 자신이 애용하는 도구인 ‘만능열쇠’를 꺼내 들었다.
얇고 긴 쇳덩이를 자물쇠의 구멍에 천천히 찔러 넣고, 손끝으로 감각을 느끼며 조금씩 감을 잡았다.
그리고 살짝 힘을 주자.
철컥.
문의 잠금이 풀렸다.
그렇게 방 안으로 돌입하려는데, 아래 주차장에 검은색 밴 한 대가 도착했다.
거기서 정장을 입은 남자 여섯 명이 우르르 내렸다.
왠지 이쪽으로 올 것 같은 느낌에 백기준이 혀를 찼다.
남자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빠르게 난간을 넘어 건물 외부에 매달렸다.
그러고 잠시 기다리자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마주칠 뻔했어.’
찾아온 사람 중 하나가 남자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보스. 저희 왔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숙소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보스라 불린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문을 안 잠갔던가?”
“열려 있긴 했습니다.”
“흠……. 일단 들어와.”
백기준은 난간에 매달린 채 소리로 상황을 살폈다.
다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한 놈은 복도에 남아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놈이 난간에 몸을 기대며 연기를 뿜었다.
사삭.
난간을 타고 몰래 복도로 올라온 백기준은 발소리를 죽이고 놈의 뒤로 다가갔다.
“후…….”
그리고 남자가 입에서 담배를 떼는 순간,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졸랐다.
“끕!”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백기준은 남자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지 않게 붙잡아 복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리고 숙소 안쪽에 귀를 기울였다.
-…….
-……지.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다.
백기준은 다시 숙소 문을 딴 뒤, 조용히 문을 열었다.
살짝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한 놈이 입구 쪽 화장실로 향했다.
탁.
안으로 들어선 백기준이 남자가 들어간 화장실로 다가갔다.
달칵.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 와이어를 꺼낸 후, 한창 액체를 배출 중인 남자의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남자는 전혀 백기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익!
바지춤을 추스르던 남자의 목에 와이어가 걸렸다.
“컥……!”
남자는 버둥거리며 저항하려 했지만, 목에 와이어가 매인 탓에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끅.”
한 명을 더 눕힌 백기준이 화장실 밖으로 나가던 순간.
“흡!”
머리 쪽으로 떨어지는 칼날에 황급히 뒤로 한 바퀴를 굴렀다.
콱!
화장실의 문간에서 마체테를 뽑아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
그 뒤로 칼을 든 나머지 세 사람도 화장실 안으로 진입했다.
이주혁에게 돈을 빌려준 남자, 마크는 그 바깥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쥐새끼가 들어와 있었군. 내가 문을 잠갔는지도 기억 못 할 줄 알았나?”
“끄악!”
“으아아!”
난투가 일어나던 화장실의 문이 누군가의 몸과 부딪혀 쾅 닫혔다.
그 안에서는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콰직! 퍽!
-크학!
-죽여……!
마크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베테랑 넷이서 고작 한 놈 처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어이, 왜 이렇게…….”
안쪽을 향해 뭐라 말하려던 순간, 닫혀 있던 화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쾅!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마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뭣…….”
화장실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있는 건 마크의 부하들이었다.
“후…….”
복면도 벗겨진 채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백기준이 소매로 눈가를 슥 닦았다.
“그냥 다른 애들이랑 올걸. X팔…….”
마크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를 보며 황급히 권총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백기준의 예상 안에 있었다.
백기준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마크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칼이 마크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푹!
“크악!”
그사이 다가온 백기준이 어떻게든 총을 겨누려는 손을 붙잡고 손목을 내리쳤다.
총이 떨어뜨린 뒤, 팔꿈치로 마크의 턱을 돌려 버렸다.
“컥!”
다리에 힘이 풀린 마크의 얼굴에 백기준의 주먹이 꽂혔다.
퍼억-!
“끕.”
한 대는 버텨 내는 데 성공했지만.
퍽! 퍽! 퍽!
이어지는 주먹질에 마크는 의식을 잃고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쿵.
“하…….”
툭툭.
확실히 의식을 잃은 걸 확인한 뒤, 백기준은 주변에 있는 팀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이놈은 챙겨야 하는데, 이 상태로 혼자 들고 가긴 무리였다.
“어. 와서 포장 좀 해 가라.”
* * *
“이야, 주식으로 수익을 그렇게 많이 올리시다니, 시장 보는 눈이 대단하시네요.”
“운이 좋았죠.”
턱.
“……그런데 지금은 그 운을 다 썼나 봅니다.”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쭉 들이켜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지노의 중간 관리인 필립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원래 초보자분들은 잃으면서 배우고들 합니다. 미스터 리도 오늘은 꽤 따지 않으셨나요?”
“후. 그동안 잃은 거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죠.”
“그래도 미스터 리는 한국에 막대한 자금이 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본전은 꼭 찾고 싶달까요. 마음 같아선 한국 계좌의 돈까지 가지고 와서 카드를 치고 싶네요.”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하는 말에 필립의 눈이 순간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하하. 그건 안 될 말이죠. 게임은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거니까요.”
“그렇죠…….”
“그나저나, 저 사람 보셨습니까?”
필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포커 테이블에서 한 동양인 남자가 껄껄 웃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또 따 버렸네. 하하…….”
혼자 중얼거리며 칩을 쓸어 담던 남자, 전직 사기꾼 사발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눈을 찡긋했다.
내가 카지노에서 계속 잃는 역할이라면, 사발은 계속 따는 역할이다.
사발이 히죽거리며 딜러가 나눠 주는 패를 슬쩍 확인했다.
어제 저 딜러를 매수해 놨으니, 사발은 계속 중간 이상의 패를 받을 거다.
“자자. 이번엔 뭐가 뜨려나……. 에이스. 제발 에이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열 받는 말투였다.
같은 테이블의 외국인들도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마 저렇게 계속 따다 보면, 분명 카지노 측에서 작업을 치려고 하겠지.
팀원들과 고상미. 그리고 나와 사발까지.
마테오라는 놈이 꼭꼭 숨은 채 얼굴도 비추지 않으니, 최대한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 볼 생각이었다.
그때, 혼자 사채업자 놈을 잡으러 간 백기준에게서 문자가 왔다.
[잡아 놨다.] [ㅇㅋ]“전 먼저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아뇨. 잠시 일행과 만날 일이 있어서요. 본전 찾으려면 다시 와야죠.”
내 말에 필립이 웃으며 날 배웅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네.”
.
.
.
백기준이 보내 준 주소로 향하니, 외진 곳에 있는 창고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사람 몇 명 죽어 나가도 모르겠는데?
덜컹.
철로 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습한 공기가 확 느껴졌다.
어디서 이런 데를 또 찾은 거야?
저벅.
“어, 왔냐?”
백기준의 뒤편에 한 남자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얼굴을 살펴보니 나한테 돈을 빌려준 그놈이 맞았다.
놈은 인기척에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충혈된 눈을 크게 치떴다.
“으, 으읍!”
나는 테이프로 입이 막힌 놈의 머리채를 잡고 입꼬리를 올렸다.
히죽.
“또 만나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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