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카페로 이동한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메리카노만 덜렁 주문했지만, 유나 씨는 딸기 셰이크와 딸기 조각 케이크까지 주문했다.
“딸기 좋아하시나 봐요?”
“아, 네…….”
유나 씨가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
지금 보니까, 커피 한 잔만 딱 놓여있는 나와는 다르게 유나 씨 쪽 테이블은 알록달록했다.
쪽.
“음. 맛있다.”
“맛있어요?”
나는 슬쩍 눈치를 보다 물었다.
“한입 먹어봐도 될까요?”
“아, 네! 당연하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유나 씨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떻…….”
푹!
아직 쓰지 않은 빨대를 딸기 셰이크에 꽂자 유나 씨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쪽 빨아먹고 빨대를 꺼냈다.
“크흠. 맛있네요.”
“그, 그, 그렇죠?”
유나 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점심부터 와인을 마셔서 그런가, 나도 열이 확 오르는 걸 느끼고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했다.
‘후.’
모르는 척 뻔뻔하게 다시 내 커피를 마시자, 유나 씨도 말이 없어진 채 셰이크를 홀짝거렸다.
그러던 유나 씨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 태섭 씨 있잖아요. 당분간 저희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 하시던데, 괜찮은 건가요?”
“태섭이요? 괜찮아요. 당분간 저희 애들 전부 휴가라서요.”
그동안 24시간 가까이 경호 일을 하느라 고생했을 테니, 잠잠할 때 좀 쉬라고 했다.
배상훈은 나한테 조언을 남기고 집안일과 연애 사업을 위해 떠났고, 백기준은 제대로 취미 생활을 좀 즐기겠다며 사라졌다.
윤건한은 다니던 가라데 도장을 찾아가서 더 수련한다더라.
그 와중에 정태섭은 요리하는 게 적성에 맞는다면서 풍원한정식에서 일한다고 했다.
쉬라 했더니 그동안 못 해본 일을 한다라. 솔직히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다.
“걔 실력은 어때요?”
“최근에 와서 드신 것 중에 태섭 씨가 한 것도 꽤 많을걸요?”
“정말요?”
“네. 안 그래도 원래 일하시던 주방장님이 태섭 씨 실력 좋다고 되게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이야. 그 정도란 말이에요?”
군대에서 썼던 재료가 냉동식품에 전투식량이라 별로 티가 안 났던 건가. 정태섭은 내 생각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다 드셨어요?”
“네. 잘 먹었어요.”
“그럼 이제…….”
내가 품에서 티켓 두 장을 꺼내자 유나 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같이 뮤지컬이나 보러 가시죠.”
“정말요?”
“당연하죠. 요새 재밌다고 소문 자자한 걸로 구해왔어요.”
내 호언장담에 유나 씨가 미소를 지었다.
“기대해도 되죠?”
“물론이죠.”
뮤지컬 좀 안다는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괜찮은 작품을 찾아냈다.
“갑시다. 30분 뒤에 시작이에요.”
“네! 빨리 가요.”
이거, 내 회심의 수가 잘 먹혀들어 간 모양이구만.
드륵-.
나는 텐션이 올라간 유나 씨와 함께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이동했다.
* * *
“와. 정말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잘 하는 걸까요?”
“그러게요.”
“심지어 노래도 잘하잖아요.”
우리는 뮤지컬을 보고 감상을 나눴다.
“내용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엔딩도 속이 시원하고요.”
끄덕끄덕.
“확실히 그렇긴 하죠.”
솔직히 요 몇 달 동안 뮤지컬보다 스펙타클한 상황을 많이 겪어서 큰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노래는 잘 감상했기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극장 로비에 앉아 한참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좀 걸을까요?”
“좋아요.”
나는 유나 씨와 길거리를 걸으며 붕어빵 같은 간식도 사 먹고, 근처에 잘 돼 있는 공원도 들러서 산책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됐다.
마침 유나 씨도 그걸 느꼈는지 나를 향해 물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혹시 배고프진 않으세요?”
“아, 조금요. 걷느라 소화가 다 돼버렸네요. 하하.”
“주혁 씨가 점심 대접해주셨으니까, 저녁은 제가 해도 될까요?”
그 말에 나는 저녁 식사 장소 리스트를 머릿속에서 파기했다.
“좋습니다.”
“그럼… 집으로 가요. 제가 직접 만들어 드릴게요.”
“지, 집이요?”
설마 지금 본인 집에 날 초대하는 건가?
‘크흑.’
차오르는 감격에 순간 입에 주먹을 물 뻔했다.
유나 씨의 집에 들어가는 건 사실 두 번째다.
처음에는 유나 씨가 한 의뢰를 마치고 보수 문제로 들렀었지.
그때는 솔직히 가까운 사이도 아니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조언 같은 걸 해줬던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순전히 인간 대 인간으로 유나 씨의 집에 가는 거다.
“유나 씨가 만들어주시는 겁니까? 이거 기대되는데요.”
“네. 직접 해드릴게요. 준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지금 가요.”
날 보며 말하던 유나 씨가 살짝 멈칫했다.
“아, 혹시 다른 데 예약해두신 건…….”
“아니에요. 저녁은 원래 같이 고르려고 했거든요.”
“다행이네요.”
유나 씨가 안심한 듯 웃었다.
나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식사 얘기를 안 꺼내서 다행이야.’
유나 씨 성격에, 예약한 장소가 있으니 거기 가자고 했으면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겠지.
“갈 때는 걸어갈까요?”
“좋아요.”
일부러 유나 씨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코스를 짰기에 여기서 걸어가도 금방 간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유나 씨. 지금 집에 가사 도우미분 계시지 않나요?”
저번에 왔을 땐 분명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 제가 며칠 쉬라고 말씀드렸어요.”
대답과 함께 유나 씨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럼, 빨리 갑시다.”
이건 못 참지.
.
.
.
탁.
널찍한 테이블 위에 오늘의 메인 요리, 갈비찜이 놓였다.
“이야. 냄새며, 때깔이며. 역시 한정식집 사장님이시라 그런가, 솜씨가 기가 막히시네요.”
“과찬이에요.”
과찬이 아니다.
유나 씨 표 갈비찜은 어지간한 고급 식당 음식만큼이나 먹음직스러웠다.
그 옆의 다른 반찬들도 마찬가지.
알록달록한 자태에 군침이 싹 돌았다.
“드셔보세요.”
“잘 먹겠습니다!”
촤악.
젓가락으로 살점을 크게 뜯어 입에 넣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마, 맛이 이상한가요?”
나는 당황한 유나 씨를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떻게 천상의 맛을 구현하신 겁니까……?”
“아, 깜짝이야. 하…….”
유나 씨가 허탈한 듯 헛웃음을 지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랐잖아요. 실패한 줄 알고.”
“그럴 리가요. 정말 맛있습니다.”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그 외에도 전어구이, 맑은 소고기뭇국과 각종 나물을 집어 먹었다.
깨작대던 유나 씨는 내가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드시니까 뿌듯하네요.”
찌익.
잘 익은 김치를 젓가락으로 들며 말없이 엄지를 올렸다.
“다행이네요.”
그렇게 고급 레스토랑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차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주제도 나왔다.
“저……. 주혁 씨.”
“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어떤 거요?”
후룩.
“주혁 씨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풉.”
음. 훅 들어오네. 차를 뿜을 뻔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유나 씨가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얼굴은 어느새 붉어져 터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솔직히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아니, 티는 났겠지만…… 어쨌든 직접 말은 꺼내지 못했단 말이지.
잠시 대답을 고르고 있자니, 유나 씨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대답하기 힘드시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네?”
내 단도직입적인 선언에 유나 씨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유나 씨를 앞으로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
유나 씨는 저렇게까지 빨개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여기서 대화를 나눴을 때부터 쭉.”
“유나 씨.”
드르륵-.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우리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 * *
유나 씨의 집에서 나온 후, 나는 괜스레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흐. 흐흣흐흐.”
헤벌쭉.
괜히 자꾸 웃음이 튀어나왔다.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흠. 큼.”
표정을 간신히 관리하며 골목길로 차를 몰고 들어왔다.
이제 얼굴 마주칠 애들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일 수야 없지.
끼익-.
나는 차에서 내려 눈앞의 주택을 올려다봤다.
“후…….”
서울 올라오고 나서, 입대 전까지 아버지와 둘이 쭉 살던 집.
여기도 오랜만이네.
그동안 샤워실까지 있는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느라 잘 들어올 일이 없었다.
여긴 후배 녀석들 지내라고 월세 받고 내준 탓에 더 안 들어오기도 했으니까. 같이 지내면 정신이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나가라고 했지.’
이제 굳이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할 필요는 없으니, 이젠 내가 이 집에서 살 생각이다.
아늑하고 꽤 괜찮은 집일뿐더러,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있다.
물론 후배 녀석들에게는 새로운 숙소를 구해줬다. 세 명이 함께 지내도 좁지 않을 정도로.
대신 여기서 지냈으니 청소와 이삿짐을 옮기는 건 전적으로 맡겼다.
끼익-.
익숙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직 어수선한 내부가 눈에 보였다.
“아, 행님! 오셨네예.”
“오셨다고?”
목장갑을 끼고 짐을 옮기던 덩치와 돼지, 난쟁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반갑게 인사했다.
“행님. 안 그래도 정리 중이었십니더.”
“그래?”
“저희 물건은 진작에 다 뺐고예. 행님 짐은 별로 없어가 진작에 옮기놨십니더. 지금은 마무리하고 청소 중이고예.”
“잘했네.”
슬쩍 둘러봤는데, 바닥과 창문을 열심히 닦았는지 광이 나고 있었다.
“이제 가봐.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에이.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지예.”
“됐다. 니들도 놀러 가라. 통영에 부모님도 오랜만에 뵙고 오고.”
“예. 그라믄 그러겠십니더.”
“고생 많았다. 다녀와서 보자.”
내 말에 녀석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해, 행님.”
“빨리 가.”
“감사합니더!”
시커먼 남자 놈들의 눈망울이 글썽거리는 건 참 못 볼 꼴이었다.
녀석들이 떠나고, 나는 아버지의 방으로 직행했다.
그러자 전생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나는 어영부영 전역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쩌다 경찰이 되었지만, 조폭 기업에 잠입해 들키지 않으려고 각종 범죄를 묵인하며 살았다.
‘그땐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힘도 있고, 돈도 있고, 인맥도 있다.
또 날 좋아해 주는 사람도 생겼다. 전생에선 제대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었어도, 이번엔 다르단 말이지.
씨익.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서랍장 위에 올려진 아버지의 사진에 손을 얹었다.
과거로 돌아온 게 정말 아버지가 도와주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내가 죽고 나서 눈앞에 나타나시진 않았겠지.
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던 그때, 품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음?”
꺼내서 확인해 보니 우재성의 전화였다.
우재성에게도 휴가를 내줬는데, 녀석은 투자 은행 설립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인지 자기 사무실에서 계속 일을 보고 있었다.
“여보세요?”
-예. 대표님. 바쁘십니까?
우재성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집인데, 무슨 일 있어요?”
내 물음에 전화 너머로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회사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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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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