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삼합회 홍콩지부장 장쉬안.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연락이 없군.’
스가와라의 암살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아직도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항상 연락은 제때 하던 녀석인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리 생각하던 장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당했을 리가 없다.’
장룡은 몸을 빼내는 것 하나는 잘하는 녀석이다.
그 능력과 짧게 배운 무술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만큼 말이다.
장쉬안은 일단 믿고 보고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똑똑!
“들어오게.”
벌컥!
비서가 황급히 사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무슨 일이길래 그리 다급하게 들어오나.”
“인터넷에 명운제약에 관련된 글이 올라왔는데……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길래?”
타닥.
장쉬안은 컴퓨터로 명운제약을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뜨는 기사를 클릭했다.
딸깍.
“명운제약의 실체…… 불법적인 일을 일삼는 범죄 기업. 이게 뭔가?”
“한 시간 전에 갑자기 인터넷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흠. 제대로 된 증거도 없고, 단순히 얼기설기 짜 맞춘 이런 기사를 누가.”
사람들이 단 댓글을 확인한 장쉬안이 멈칫했다.
“이런 우매한 것들…….”
댓글은 그의 예상과 달리 명운제약을 성토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 기사 쓴 놈, 당장 누군지 알아내.”
“예.”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사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런 기사가 확산되면 명운제약의 인식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들은 자극적인 내용을 좇는 법이니까.
장쉬안은 우선 이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를 찾아봤다.
“음?”
하지만 나오는 건 영앙가 없는 정보밖에 없었다.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허…….”
의자 뒤로 기댄 장쉬안이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누군가의 장난질인가.’
갑자기 떠오른 이런 악의적인 기사도, 거기 작성된 여론 조작성의 댓글들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명운제약은 높으신 분들의 지갑을 채워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기사를 쓰는 게 허락될 리가 없단 뜻이다.
‘이런 짓거리를 해서 얻을 게 있나?’
그저 명운제약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잠시 후, 기자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던 비서가 다시 돌아왔다.
“저, 사장님.”
“그래. 뭣 좀 나왔나?”
“그게…….”
비서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 기자,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뭐? 하나도 없단 말인가?”
“예. 대체 어떤 경로로 기사를 작성했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언론사 또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허, 참.”
두 사람은 몰랐지만, 사실 이 기사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시스템 해킹을 통해 강제로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표적이 된 건 명운제약만이 아니었다.
삼합회 청도지부의 사업체, 중산무역.
그곳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도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중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명운제약과는 달리, 중산무역은 실제로 사기 계약과 납품 비리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지? 단순한 장난 수준은 아닌데.’
그러나 돈독한 관계인 청도지부에게 신경을 쓰기엔, 장쉬안은 명운제약을 겨냥한 기사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그 탓에 명운제약에 비해 힘이 부족한 중산무역은 제대로 된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작업당한 것이다.
“…….”
장쉬안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이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했다.
* * *
“후우.”
고상미의 동생, 고세운은 굳어진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며 팔을 들어 올렸다.
뚜둑.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하고 있었더니 눈이 뻑뻑했다.
“이주혁 이 개X끼…….”
갑자기 중국에 있는 회사들을 음해하는 기사를 써 달라니.
다행히 고세운이 만든 해커 집단에 그런 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고상미가 다가오며 물었다.
“뭐야. 끝났냐?”
“어.”
“고생했다.”
짝!
고세운은 등짝을 얻어맞고 비명을 질렀다.
“끄악!”
“하여튼 엄살은.”
털썩.
잠시 끙끙대던 고세운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고상미를 돌아봤다.
“누나.”
“어?”
“왜 그놈을 그렇게 신뢰해?”
그 물음에 고상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뢰?”
“그래. 이주혁이 무슨 명령을 하든 따르잖아. 원래 그런 성격 아닌 거 다 아는데 말이야.”
“새끼가. 명령은 무슨. 내가 누구 명령을 따를 사람이냐?”
“그럼 뭔데. 지금 상황을 눈감아 주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거 누나도 알잖아.”
“눈감아 주긴.”
고상미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인마. 지금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쪽이 누군지 몰라서 그러냐? 굽혀야 되는 건 우리야.”
“굽히긴 뭘 굽혀?”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 네가 생각할 땐 우리만으로 그놈들한테 복수할 수 있을 것 같아?”
“…….”
잠시 고민하던 고세운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불가능하다고는 생각 안 해. 누나랑 그 미친 인간들, 거기다 과거 연이 있던 용병들까지 고용하면 무력적인 측면에선 충분하지. 그리고 정보는 내 조직을 이용해서 찾으면 돼.”
“용병들이 우리를 도와주겠냐? 걔네 윗대가리가 다 선생이랑 한패라는데.”
“…….”
“그리고 솔직히 너는 그 뭐시냐, 사이버 공간? 거기 있는 것들만 빼낼 수 있잖아. 발로 뛸 수가 없으니까.”
“그건 동의해. 하지만…….”
“동맹.”
고상미가 눈을 좁혔다.
“이주혁이 선생이랑 손잡은 게 불만인 거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고세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는 그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새끼. 나라고 화가 안 나겠냐? 부모님 원수를 당분간 두고 봐야 하는데.”
고세운의 어깨를 잡은 고상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나라고 당장 쳐들어가서 안 죽이고 싶겠냐?”
“…….”
“근데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돼. 그 새끼 하나 죽인다고 우리 복수가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툭툭.
“일단 믿고 기다리는 거야. 나보단 똑똑하고, 너보단 실행력이 좋은 녀석이니까.”
바닥을 쳐다보고 있던 고세운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알았어.”
“걔가 시키는 것도 잘 좀 하고 인마.”
“잘하고 있어.”
“맨날 틱틱댄다 그러던데.”
뿌득.
“공짜로 사람 부려먹으면서, 이 개 같은 자식이…….”
“큭.”
고상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어쨌든, 우리가 이주혁이 따까리는 아니니까 너무 기죽지는 말고.”
“기죽은 적 없다.”
“너무 기 살지도 말고.”
“아, 그냥 나가!”
낄낄대던 고상미가 후다닥 방을 나갔다.
고세운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것도 누나라고…….”
속으로 이런저런 쌍욕을 뱉었지지만, 그래도 마음은 확실히 전보다 편해져 있었다.
* * *
“정말 이렇게만 해도 되는 건가?”
대화를 위해 내 사무실로 찾아온 스가와라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선전포고라길래 나는 좀 더 본격적일 거라고 생각했다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된다.
“스가와라 씨.”
“음?”
“당신은 야쿠자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지?”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군.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스미요시카이, 주길회라고 들어 봤나?”
“3대 야쿠자 조직 중 하나 아닌가? 당신도 거기 소속이고.”
끄덕.
“우리 스미요시카이는 다른 곳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회장이 아니라 산하 조직의 두목들에게 권력이 분산된 형태지.”
“특이하네.”
“다만 회의 부두목인 나는 회장의 신뢰를 받고 있기에 꽤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 덕에 회장에게 한국에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 여기까지 넘어온 거지.”
“성공적으로 정착해 세를 불리면 위상이 높아지겠군.”
기존에도 두목이 신임하는 녀석인데, 거기다 산하 조직까지 만든다?
다른 부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다.
그런 내 말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대비해 회장은 나를 한국으로 보낸 거다. 그래야 다른 두목들이 날 견제하지 않을 테니까.”
“돈독한 사인가 봐?”
“그렇지. 회장이 부두목이던 시절부터 내가 곁에서 보좌했으니 말이다.”
“그럼 당신이 칼침 맞았다는 소식도 그쪽 귀에 들어갔나?”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좋아.”
나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그럼 당신네 회장한테는 조금 부풀려서 전달하자고.”
“어떻게 말이지?”
“당신이 아주 심하게 다쳤고, 그 범인은 삼합회.”
“사실 아닌가?”
“대신, 그 타깃을 정확히 알려 주는 거다.”
스가와라가 미간을 슬쩍 좁히며 물었다.
“우리 회를 방패로 내세울 생각인 것 같진 않고…… 무슨 생각이지?”
“동맹이다.”
“동맹이라……. 나를 뜻하는 건 아닌 듯한데, 설마 우리 회 말인가?”
“그래. 뜻을 같이하는 건 아니지만, ‘복수를 도와준다’라는 명목으로 당신과 함께하는 거다.”
내 말을 들은 스가와라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는 자네가 무슨 계획인지 잘 모르겠네.”
“간단해. 나한테는 삼합회의 청도지부를 공격할 명분이 마땅치 않지.”
애초에 그놈들한테 칼 맞은 건 내가 아니라 스가와라다.
내가 얘네랑 몇 번 같이 놀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쳐들어가는 건 스미요시카이 쪽이 보기엔 조금 그림이 이상하단 말이지.
그래서 이참에 내 존재를 알려 주는 거다.
“하긴, 이쪽 세계는 명분이 없으면 눈총을 받는 법.”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덤으로 미리 약이나 좀 치고.’
선생의 뒤를 이어 나는 모임을 이어받아 운영할 생각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정계까지 깊게 관여하는 야쿠자들과 연을 맺는다면 당분간 꽤나 도움이 될 거다.
“일단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더 도와줄 건 없나?”
더 도와줄 거?
“그냥 조심히 다니기나 하셔. 한 번 더 칼 맞으면 이번엔 진짜로 골로 간다.”
“……걱정 고맙군.”
탁.
나는 스가와라를 돌려보낸 뒤, 컴퓨터를 켜고 상황을 확인했다.
딸깍.
중국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삼합회 청도지부의 사업체인 중산무역이 실시간으로 공격당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타닥. 탁.
그동안 저질러 왔던 비리도 터지고, 삼합회의 운영 자금을 벌어다 주는 곳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 사람들에게 돌을 맞고 있었다.
이놈들도 그런 쪽으로 대비하고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기밀이 한순간에 다 털려 버렸으니 당황해서 쉽사리 대처하지 못했을 거다.
이제 가서 정신없는 놈들을 밀어 버리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서 대놓고 찾아가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어쨌든 야쿠자들 쪽에서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돼.’
삼합회는 이번 공격이 내가 아닌 야쿠자들의 공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린 어디까지나 야쿠자들을 돕는 스탠스를 취해야 된다는 말.
‘서클’이 이 일을 알게 됐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슬슬 보여 줘야지.’
서클에 속한 놈들을 없애 버리는 것. 민지훈과 일치하는 나의 목표 중 하나다.
그걸 위해선 우선 내가 선생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민지훈에게 듣자 하니, ‘서클’ 내부에서도 가끔 분쟁이 일어나곤 한다던데.
지금으로선 외부인인 내가 삼합회 지부 하나 족친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똑똑.
“들어오세요.”
사무실 문이 열리고, 사발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지인한테 이야기해 봤는데, 떨어지는 것만 좀 있으면 그쪽 안내는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답니다.”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해외 출장, 다시 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