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
029화
나까무라는 일본의 성씨를 뜻하는 단어고, 나까마는 일본어로 ‘중개인’이나 ‘동업자’를 뜻하는 단어다.
일본어인 건 같은데, 뜻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인이 한국어 써야지. 인마. 작전명에 일본어를 붙이면 어떡하냐? 최소한 간지 나게 영어로 된 작전명이라도 붙여야지.”
라세흠 부장님. 간지도 일본어 같습니다만…….
저라고 일본어로 붙이고 싶었겠습니까?
이놈의 깡패놈들은 왜 그리 일본어에 유창한지 불법적인 일을 만들어 내면, 거기다 일본어를 붙여 버리는 걸 어떡합니까.
“조폭 놈들이 통상적으로 나까마라고 써서 그러는 겁니다. 보통 이 작전을 하는 놈들을 나까마하는 애들이라고 부르거든요.”
“거참. 마음에 안 드네. 그래서? 그건 어떤 작전인데? 누굴 패면 되는 거야?”
그만 좀 패요.
요즘 손맛이 올라서 애들 팰 생각부터 하네.
“이번 작전을 싸움으로 해결하는 거 아닙니다.”
“어? 그래? 쳇. 재미없겠네.”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어딜 가. 이 양반아.
“이번 작전에 필요한 인원이 우리 직원 전부예요. 그 총괄을 맡고 있는 부장님이 빠지면 어떡합니까?”
“우리 애들 다 풀어야 한다고? 조직 하나 더 없애는 거야?”
“부장님. 차근차근 들어줄 생각은 없어요?”
“큼. 알겠다. 들어 보자.”
내가 너무 몸만 쓰는 일을 시켜서 그런가?
도통 싸우고 싶어서 궁둥이를 못 붙이네.
세상은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머리로도 싸워야 하는 게 21세기죠.
물론, 이 잔소리는 속으로 삼켰다.
괜히 꺼냈다가 라세흠 부장과 스파링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규격 외 인간과 붙는 건 사양이다.
“나까마라는 게 특정한 물건을 한 번에 많이 사들여서 가격을 높이고, 비싼 값에 물건을 풀어버리는 걸 말합니다.”
“고가로 덤핑을 한다는 거냐?”
“비슷하죠. 시세를 변동시킨 다음에 높아진 시세로 팔아 버리는 거니까요.”
주식으로 따지면, 작전주를 떠올리면 된다.
한 종목의 가격을 올리고, 올린 가격에 물량을 털어 버리는 방식.
이걸 현물. 즉, 실제로 만져지는 물건으로 하는 거다.
이러니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사들이고 옮겨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 명이 아쉽다.
“뭘 사서, 가격을 올릴 건데?”
“램(RAM)이요.”
“램?”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모리 아시죠? 128MB 메모리, 256MB 메모리, 512MB 메모리. 이런 거요.”
“그 정도는 알지.”
“그게 램이에요. 정확하게는 D램이라고 하죠.”
한국을 먹여 살리는 효자상품이 되는 D램.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이 램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따라붙었다.
찾는 사람이 많은 데 물건이 없으면 가격이 비싸고, 찾는 사람은 없는데 물건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램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
이유를 따지자면 많지만, 한국을 한정해서 보자면 PC방의 수가 늘어나고 유통되는 게임이 요구하는 램 용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PC에서 램(메모리)은 가장 업그레이드하기 쉬운 품목이다.
용산전자상가 같은 곳에서 램을 사고, PC케이스를 열어 꽂으면 끝이니까.
이 때문에 램의 수요는 많아지고 있다.
반대로 공급은 한정되어 있으니,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이다.
“램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가격을 올릴 겁니다. 나까마들이 하는 작전을 그대로 실행하는 거죠.”
“……그건 나쁜 짓 아니냐? 전체적으로 시장 가격을 조율할 거라는 말이잖아? 한 개인이 시장의 판도를 움직이는 건, 잘못된 일 같은데……. 아니냐?”
“맞습니다. 그러면 안 되죠. 자칫하면 일반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요.”
“뭐? 그건 안 돼. 소비자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피해를 줘.”
“그래서 단숨에 이 작전을 실행하고 끝내야 합니다. ‘저격’이란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은밀하게 기다렸다가 한 방에 끝내야죠.”
“……?”
“딱 하루. 하루 만에 끝낼 겁니다.”
이 작전이 길어지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난 하루 만에 나까마 작전을 끝낼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 건데?”
“상세한 건, 한 명 더 영입하고 나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놈이 있어야 가능한 작전이거든요.“
“그놈?”
“네. 사발 제대로 푸는 놈 있습니다. 그놈이 필요해요.”
입만 열었다 하면 구라인 놈이 있다.
내가 주철수 밑에 있던 시기에 ‘사발’이란 별명으로 불린 놈인데, 이놈의 입담이 보통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사발의 말을 들으면, 지갑을 열고 내 돈을 가져가라고 외칠 정도로.
한마디로 말 잘하는 사기꾼이다.
그놈은 내가 확보하면 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용산전자상가로 들어가는 램 유통을 확보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건 제가 난쟁이한테 알려 두죠. 그놈이 머리가 좋아서 단번에 이해할 겁니다.”
“너……. 말하는 게 꼭 내 머리는 나쁘다는 거 같다?”
“에이. 설마요. 부장님은 똑똑하죠. 전술이나 암기 쪽에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 거죠. 잔머리는 난쟁이가 최고거든요.”
“흠……. 알았다.”
라세흠 부장도 나쁜 머리가 아니지만, 빙빙 돌려야 하는 잔머리는 난쟁이가 훨씬 더 뛰어나다.
이번 작전은 정석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서, 난쟁이가 적임자다.
“난쟁이한테 램 도매상을 매수하라고 할 겁니다. 우리나라 유통 구조 복잡한 거 아시죠? 그 구조를 이용할 겁니다. 중간에서 소매상한테 가야 하는 램을 대량으로 사들이라고 하려고요.”
제조자, 도매상, 중간 도매상,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 구조.
우리가 사는 물건의 가격은 이런 구조 때문에 비싸지는 거다.
특히나 전자제품의 경우엔 더 심한 프리미엄이 붙곤 했다.
이게 다, 유통을 가지고 장난쳐서 그런 거다.
“사들인 다음엔?”
“가지고 있을 겁니다. 시장에 안 풀고 그대로 묶어 두는 거죠.”
“그럼, 램 가격이 올라가겠네.”
“그렇죠. 딱 하루. 하루 동안만 가격을 올리고 풀어 버릴 겁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필요하다.
대량의 램을 사들인 후에 보관하는 건 사람이 해야 하니까.
창고도 구해야 하고, 그 창고로 옮기는 작업도 필요하다.
경호 업무를 끝낸 직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팔짱을 낀 라세흠 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주혁아.”
“예.”
“이게 주철수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
“아직까진 관계가 없죠.”
“……?”
“이제부터 관계가 있게 만들어야죠.”
이번 작전의 핵심이 주철수 물 먹이긴데, 주철수를 뺄 수야 있나?
관계가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난 주철수를 이번 작전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
확실히 난쟁이는 머리를 잘 쓴다.
내가 계획을 알려 주자, 난쟁이는 램 도매 총판부터 찾아 나섰다.
램 도매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부터 찾아, 뒷돈을 먹여 볼 거라고 했다.
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이런 일을 마다할 선량한 총판은 거의 없다.
난쟁이는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것이고, 이건 주철수를 엿 먹이는 무기가 될 거다.
그렇게 난쟁이가 D램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던 때였다.
난 덩치와 중랑구의 한 공터를 찾아왔다.
“역시, 여기서 약 팔고 있구나.”
공터에 큼직하게 마련된 무료 경로잔치 공연장.
300평은 될 법한 공간에 커다란 천막을 쳐놓았고, 그 안에는 7, 80대의 어르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단상에서 마이크를 대고 목청을 높이며 말한 남자가 큰절을 했다.
적당한 키에 훈훈하게 생긴 외모.
30대 중반의 남자는 목소리도 굵직하게 좋았다.
‘오랜만이다. 사발.’
저놈이 사발이다.
이 일대에선 유명한 사기꾼으로 나중에 주철수 밑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현혹하는 업무를 맡는 인간.
사발한테 사기당하는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이고, 피해액만 수천억이다.
내가 그 증거를 확보하고 있기에 잘 알고 있다.
“어르신들에겐 모자라지만, 작은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크게 외치고는 단상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나훈아와 똑 닮은 라훈아가 모습을 드러냈고 모창 가수 특유의 노래 실력으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작업 치고 있네.’
적적한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거다.
이래야 잘 먹히거든.
라훈아가 단상에서 세곡을 연달아 부르며 분위기를 살렸고, 그사이 사발이 다시 단상으로 올라왔다.
“어르신들! 공연은 재밌습니까?”
“재밌어. 아주 재밌어.”
“좋구먼. 허허.”
“어르신들이 만족하시니 제가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또다시 넙죽 절을 해 댄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작업 들어가려고 연극하고 있는 거다.
“어르신들. 앞으로 이런 공연 자주자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자주 봐야지!”
“지금처럼 춤도 추시고, 자식 손주들 둥가 둥가도 해 주면서 인생을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이 사람아. 그러려고 사는 건데.”
“100세 인생입니다. 앞으로 30년, 40년은 더 살아야 합니다.”
“허허. 그렇지.”
“그런데, 어르신들. 30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몸 아파서 자식들한테 피해 주면서 살 수는 없잖습니까? 여기 ‘나 하나도 안 아프다.’ 이런 분 계십니까? 계시면 손 들어 주십시오.”
“…….”
7, 80대분들이 아픈 곳 하나 없는 게 비정상이지.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조용한 와중에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다.
옆에 있던 모창 가수 라훈아였다.
“가수 선배님만 손을 드셨습니다. 참고로 이분 나이가 올해 일흔다섯입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안 보이시죠?”
“진짜야?”
“일흔다섯이면 나보다 많구먼.”
“그렇게 안 보이는데…….”
실제로는 50대 중반 정도밖에 안 됐을 거다.
일부러 흰머리로 탈색해서 나이 가늠이 안 되게 만들어 놓은 거지.
“가수 선배님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꼭 이걸 드십니다.”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박스 하나를 든다.
겉면에는 인삼, 당귀, 감초, 산수유 등등. 몸에 좋아 보이는 건 죄다 그려져 있었다.
“공소차! 이게 바로 어르신들이 아시는 그 공소차입니다! 어르신들, 혈생혈사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피에 살고 피에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에는 5리터가 넘는 피가 매 순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몸이 상하게 되는 거고, 멈추면 죽게 되는 겁니다.”
당연한 상식을 거창하게 떠드네.
“이 공소차를 드시면,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피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만병의 근원을 막아 주고 어르신들의 건강을 찾아 줄 겁니다. 백번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겠죠. 그래서 제가 라훈아 선배님을 모시고 온 겁니다. 이 약의 산증인이신 분을요.”
사발의 말에 맞춰, 라훈아가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물론, 이 미소의 전매특허는 나훈아에게 있다.
“드셔 보십시오. 드셔 보시고 효과가 없으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전부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너를 어떻게 찾아가냐?
여기 접고 나면, 다른 지역 가서 똑같이 사기 치고 있을 텐데.
“딱 1,000개. 1,000개만 팔겠습니다. 이 귀한 약을 우리도 무한정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선착순으로 1,000분에게만…….”
이 자식, 마지막 하이라이트 들어가네.
사람 심리라는 게, 몇 개만 판다고 하면 더 동하게 되어있다.
한정 수량은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얄팍한 상술이니까.
이제 그만, 이 자리를 마무리시켜야겠다.
5만 원짜리 한약재를 50만 원에 팔아 재끼기 전에 말이다.
휘이익-!
덩치가 공연장이 정적으로 휘감길 정도로 크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동시에 내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수갑을 휙휙 돌리는 퍼포먼스를 더해 주면서.
“추현국. 당신을 부정 의약품 제조 및 판매 혐의로 체포합니다.”
반갑다. 사발아.
도망가려고 스텝 밟는 거 보니까, 넌 안 반가운가 보네.
“도망가시면, 죄가 더 무거워집니다.”
제발 도망가 주라.
너의 무거운 죄는 내 주먹으로 깨끗이 씻어 줄 테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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