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돌아와서 곧바로 경찰청장 이기성에게 보고서를 넘겼다.
최소한의 형식만 갖춘 보고서이긴 했지만,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건 나랑 비슷하더라고.
어차피 다 한패라 중간에 뭔 짓을 하던 아무도 태클 걸 사람이 없었다.
일정 수위를 넘어가지만 않으면 내 마음대로 움직여도 된다는 뜻이지.
스윽.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시간을 확인해 보니, 9시 10분 전이었다.
나는 지난번에 왔던 폐공장으로 스가와라를 호출했다.
누군가를 불러내기엔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줄 만한 놈은 아니었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선.’
가네무라 아키라. 본명 김용수.
원래 선생이 주도하던 모임의 일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김운택에게 마약 거래처를 알려준 놈이 바로 이놈이었다.
내가 분명히 얌전히 지내라고 했는데, 이런 괘씸한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다.
“왔네.”
마스크를 쓴 채로 옆에 서 있던 부장님이 말했다.
저벅. 저벅.
그와 동시에,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통 큰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 김용수가 성큼성큼 걸어와 섰다.
그 뒤에는 두 명의 수하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 야밤에 다 호출을 하시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이 새끼, 아직 상황 돌아가는 걸 모르나 본데.
탁.
놈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지그시 노려보자, 김용수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입꼬리를 내렸다.
“어쩐 일인지 몰라서 묻는 건가?”
내가 싸늘한 눈빛으로 물으니, 놈이 입맛을 쩝 다셨다.
“그거 때문입니까? 김운택? 전 그냥 알선만 해준 겁니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제 손에 떨어지는 것도 없었잖습니까.”
김용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래?”
나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용수의 뒤쪽에 서 있던 수하에게 걸어가 정강이를 걷어찼다.
빠악-!
“끄… 읍!”
조인트를 까인 녀석이 다리를 붙잡으며 주저앉았다.
갑작스럽게 험악해진 분위기에 김용수의 얼굴도 살짝 굳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인데, 내가 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
“실수. 실수라.”
나는 끙끙대는 수하 놈의 머리채를 잡고 물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정말 실수였나?”
“……예. 실수가 아니라 잘못입니다.”
“그렇지?”
머리카락을 놓은 뒤 다시 김용수의 앞에 걸어가 섰다.
턱.
김용수는 자기 어깨의 먼지를 털어주는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놈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김운택이랑은 무슨 관계야?”
“육촌 형님입니다.”
“그래?”
그것까진 나도 몰랐네.
“김운택으로 간 좀 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자리 잡으려고 했겠지.”
그 말에 김용수가 살짝 당황했다.
“내 말이 틀려?”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김용수.”
“예.”
꽈악.
어깨에 올리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김용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지막 경고다.”
“…….”
“네가 야쿠자든 아니든, 우리는 너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것만 알아둬.”
김용수가 눈썹을 꿈틀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놈의 사용처는 야쿠자들과의 연결고리 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건 사이토 회장과 직접적인 커넥션을 만들기만 한다면 해결되는 일이란 말이지.
“…자중하겠습니다.”
김용수도 내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깨에서 손을 뗐다.
괜히 그랬다가 또 사고 치면 곤란해지니까.
“그래. 일단 이번 일은 넘어가지. 대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뭡니까?”
“삼합회 놈들과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네가 먼저 접근한 건가?”
“…예. 그렇습니다. 밀항한 놈들을 발견해서.”
“또 알고 지내는 삼합회는 없나?”
스윽.
미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니, 김용수는 콧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이래 봬도 이름있는 야쿠잔데 삼합회랑 붙어먹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이번엔 진짭니다. 믿어주십쇼.”
피식.
“믿을 만한 놈이어야 믿지.”
“…….”
“다음엔 무릎 꿇는 걸로 안 끝난다. 가네무라 용수.”
그 말을 남긴 뒤, 놈과 수하들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이 정도 경고했으면 알아듣겠지.
일단 데려가기로 약속했으니 한번 기회는 주겠지만, 다음에도 이러면 얄짤없다.
우뚝.
걸음을 멈춘 나는 슬쩍 놈을 돌아보며 말했다.
“특수수사국, 들어봤나?”
“아, 예.”
“그거 내가 만든 거, 들었지?”
모임에 끗발 높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날엔 김용수를 부르지 않았다.
나중에 중요한 사항만 전달하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놈이 딴짓을 하고 다닌 걸 수도 있겠네.
“듣긴 했습니다만…….”
“다음 목표가 야쿠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건 진심이야.”
“예. 알겠습니다.”
야쿠자를 찍어서 수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천의 스가와라까지 닿을 수밖에 없다.
우호 관계인 지금 괜히 야쿠자들에게 불똥을 튀길 이유는 없으니까.
그럴 시간에 러시아 놈들이 들어오지는 않나 단속하는 게 더 낫다.
‘일단 이미 들어와 있는 정보원들부터 정리하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설마 하는 생각에 미간을 좁혔다.
설마, 그놈이 벌써 한국으로 들어온 건 아니겠지?’
* * *
“아이~. X벌 새끼. 퉤!”
이주혁이 떠나고, 폐공장에 혼자 남은 김용수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역시 욕은 X발만 한 게 없어…. 다리는 괜찮냐?”
그 물음에 정강이를 차인 수하가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금 간 것 같은데요…….”
“엄살은.”
“아, 진짭니다.”
“어휴.”
김용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김운택으로 간 좀 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자리 잡으려고 했겠지.
그놈이 이렇게 바로 정곡을 찌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김용수의 주요 수입원은 마약 유통과 거래 알선이다.
하지만 3대 야쿠자들이 뜻을 모아 마약 관련 범죄를 근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탓에 일본에선 마음 놓고 약을 만질 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주 활동 지역을 옮긴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X발. 그놈 말대로 간 좀 보려다가 X 됐네.”
칭다오에서 넘어온 삼합회. 그들에게 먼저 찾아간 건 김용수였다.
김용수는 파주 근처의 항구를 꽉 잡고 있기에, 밀항한 사람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김운택과 삼합회를 중개해 준 것이다.
어떻게 되나 상황을 좀 보고, 괜찮다 싶으면 뽕을 풀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쪽 클럽은 부잣집 자제한테만 제공하는 서비스였으니까.’
일반 중독자들을 타깃으로 잡으면 충분히 짭짤할 거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줄었으니, 비싼 값을 불러도 살 놈은 사게 돼 있다.
그러나 이주혁에게 곧바로 걸려버렸다.
“X발, 대체 뭐 얼마나 기다리라는 거야?”
김용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없는데도 회의가 열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칼밥 먹던 야쿠자 놈과 상종하기 싫다는 높으신 분들의 언질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걸 눈치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업이 전부 스탑됐는데, X부랄.’
몇 달 전, 김용수는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이주혁의 말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랬음에도 돌아오는 건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
척 봐도 그의 절반밖에 살지 않은 애새끼가 설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뭔가 성과를 내는 게 급했다.
그런 와중에 마약도 못 팔고, 세력 확장도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예….”
김용수는 더러워진 기분을 삼키며 발길을 돌렸다.
저벅.
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주혁이 다시 왔나 싶어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돌렸다.
“또 하실 말씀이라도… 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누구쇼?”
모자부터 신발까지 시커멓게 차려입은 건장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김용수는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물었다.
“묻잖아. 누구시냐고.”
“지나가는 사람인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김용수가 당황했다.
“뭐?”
“이 공장이 당신 거야? 들어왔다고 왜 반말을 지껄이시나.”
혀를 내두른 김용수는 이내 손을 휘휘 저었다.
“내가 실수했네. 그럼 가던 길 가쇼.”
그 순간, 남자의 팔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김용수는 그걸 인식함과 동시에 몸을 웅크렸다.
푸욱!
어깨에 충격과 함께 살이 갈라지는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큭, X발!”
그 틈을 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괴한이 단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채 뒷걸음질 치던 수하의 복부를 깊게 찔렀다.
“끄억!”
괜히 이주혁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녀석들에게 무기를 챙기지 말라고 한 게 패착이었다.
하지만 김용수는 혹시 하는 마음에 몰래 숨겨온 권총이 있었다.
총기 규제가 강한 한국이라 어지간하면 실제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자식… 아악!”
“코우지!”
김용수는 하나 남은 수하가 쓰러지는 걸 보며 총을 꺼내 들었다.
“死ね(죽어)!!”
타앙-!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그러나 괴한은 미리 옆으로 몸을 던져 총알을 피해냈다.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난 그는 고통에 신음하는 수하를 방패로 삼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개새끼가!”
김용수가 머뭇거리는 사이, 괴한은 공장의 자재 뒤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잠시 그쪽을 조준하던 김용수는 총을 내리고 수하들에게 달려갔다.
“코우지! 유스케!”
“쿨럭….”
배를 찔린 수하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다른 녀석은 목이 그어진 탓에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김용수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X발, 이게 대체 무슨…….”
난데없이 나타난 미친놈이 수하 둘을 죽여버렸다.
대처할 틈도 없이 벌어진 상황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쓰읍….”
김용수는 단검이 꽂혀있는 왼쪽 어깨를 살폈다.
그 거리에서 칼을 던져 맞힐 정도라면, 칼 다루는 데는 도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놈이 갑자기 자신을 공격했다.
이 일을 사주할 사람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주혁, 그놈 짓인가?’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이주혁이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후, X부럴….”
김용수는 바닥에 쓰러진 수하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칼을 맞은 상태라 이들을 수습해 주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총소리를 듣고 누가 올 수도 있었다.
“미안하다.”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묵념한 김용수가 다급하게 자리를 떴다.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혈흔을 지울 시간은 없었기에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타닷-!
김용수가 사라진 후, 검은 복장의 괴한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김용수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용수는 부상을 입고 도주했습니다.”
-어느 정도 부상?
“팔에 칼을 맞은 정도입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좋아.
전화 너머의 남자, 비서실장 조병철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