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회사로 돌아온 나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글라자의 정보원 중 한 놈을 마저 심문하기 위해서였다.
저벅.
아래로 내려오자, 정성스럽게 포로들을 관리하는 백기준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랑 이곳저곳을 닦아주는 게 무슨 간병인 같기도 하고.
“뭐 하냐?”
“관리.”
관리라는 말을 듣고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의자에 묶여있는 놈들을 보면 이미 반쯤 삶을 포기한 것 같은데 말이야.
툭툭.
옆자리에 축 처져 있는 놈 하나를 건드려 봤지만, 기절한 건지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이놈이 아마 경호대 중 하나였나?
“대체 관리는 왜 하는 거야?”
내 물음에 백기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뭐, 화초 키우는 그런 느낌이지.”
“…….”
계속 지하실에 먹잇감을 던져주다 보니 애가 더 이상해졌네.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본론을 꺼냈다.
“그놈은 어딨어? 그 외국인.”
“아, 이쪽으로.”
나는 백기준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무슨 장기매매하는 곳에 있을 법한 투명한 천막을 설치해 놔서 어떤 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펄럭-.
한쪽의 천막을 걷자, 아직 꽤 멀쩡한 상태의 금발 외국인이 화들짝 놀랐다.
“네가 데릭이냐?”
“Y, Yes.”
“스피크 코리안. 이 새끼야.”
“저, 저 좀 풀어주십시오.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억울한 표정을 짓는 데릭의 뺨을 후려쳤다.
짝!
“악!”
“네 조직에서 보낸 암살자 때문에 내 동료가 죽을 뻔했어.”
“…….”
“여기서 당장 널 죽여도 할 말 없다는 거, 너도 잘 알 텐데?”
그러자 놈은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 그래서… 절 죽이실 겁니까?”
“글쎄. 고민 중이야. 어떻게 할지.”
“살려주십시오. 고향에 가족이 있습니다….”
“너 때문에 죽은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없었나?”
하여튼, 이 새끼들 이기적인 건 알아줘야 돼.
“살고 싶으면 대답 잘 해.”
“예, 예.”
“너 말고 다른 정보원들에 관한 건데.”
놈은 내 말을 듣자마자 다급히 대꾸했다.
“그건 지난번에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
“어디 있는진 몰라도, 그놈들과 어떻게 연락하는진 알 거 아냐?”
데릭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지령은 상부에서 직접 내려오는 거라…….”
“지령 방식, 암호. 그런 것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릭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제 목숨은 보장해 준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지금까지 이런 적은 많았다.
사실대로 불 테니 안전을 보장해 달라. 뭐 이런 거.
물론 살려는 주겠지만, 끝까지 책임져 준 적은 없었다.
어차피 죄지은 놈들이고, 목숨 이상으로 내가 챙겨줄 필요는 없으니까.
이놈도 마찬가지다.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도, 살인에 협조한 놈이지.’
어쨌든, 지금은 이놈의 정보가 필요한 상황.
나는 백기준에게 손을 풀어 주라고 손짓했다.
“윽….”
손목을 매만지는 놈에게 가져온 노트와 핸드폰을 건넸다.
“네 핸드폰이다. 지정된 번호로 암구호 같은 게 오더군. 어떤 단어가 뭘 뜻하는지 싹 다 정리해서 적어.”
“예에….”
데릭은 5분 전보다 초췌해진 얼굴로 펜을 집었다.
사각사각.
“다 쓰면 아무나 시켜서 보내줘.”
“그래. 알았다.”
“어두운 곳에서 고생이 많다.”
내 격려에 백기준이 씩 웃었다.
“고생은 무슨. 취미 생활이지.”
“아…. 그러냐?”
“그런 김에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아이스박스 큰 걸로 몇 개만 사줄 수 있나?”
“당연하지. 근데 아이스박스는 왜?”
“좀 담아둘 데가 필요해서.”
끄덕.
뭘 담아두는 건진 굳이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지하실에서 올라오자, 웃통을 깐 채 체력단련을 하고 있는 팀원들이 보였다.
“얘들아. 잠시 주목.”
“음?”
“뭐야?”
내가 손뼉을 치며 말하니 팀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조만간 일이 하나 또 생길 것 같다.”
“무슨 일인데?”
“너희들도 들었겠지만, 지금 한국에 러시아 킬러랑 정보원들이 몇 명 들어와 있다.”
스윽.
“지금부터, 우린 그놈들을 찾아서 족칠 거다.”
그 말에 팀원들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넘치는 혈기를 전부 운동량으로 바꾼 탓인지 슬슬 무서울 정도로 근육이 살벌해지는 녀석도 있었다.
“기준이가 그쪽에서 사용하는 암호 체계를 알아 오면, 우린 러시아 놈들의 위치를 찾아가서 쓱싹하면 된다. 간단하지?”
“간단하네.”
“우선은 정보원부터 처리하고, 고립된 킬러들이 그다음이야.”
그때, 팀원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킬러면 구르카 애들보다 센가?”
“그러게?”
“에이, 킬러랑 용병이랑 같냐? 다 자는 밤에 몰래 와서 방아쇠만 몇 번 당겨도 킬러 할 수 있지.”
“그래도 살인에 이골이 난 놈들 아냐?”
“맞다. 주혁이랑도 비볐다며?”
“야. 비비긴 무슨. 그 새끼 꽁지 빠지게 도망쳤어.”
나도 모르게 욱해서 대답해 버렸네.
근데 사실인 걸 어떡해?
솔직히 맨몸으로 끝까지 싸웠어도 내가 지진 않았을 거다.
“총 들고 싸워도 이기냐?”
“아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들 본인 장비나 점검들 합시다. 언제 작전 나갈지 모르니까.”
“예에-.”
점점 유치해지려는 대화를 끊고 팀원들을 해산시켰다.
얘네들이랑만 대화하면 다시 군대에 있던 혈기왕성한 나로 돌아가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참.
덜컹.
“끝났다.”
“타이밍 죽이네.”
마침 백기준이 심문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여기.”
“수고했다.”
내가 암구호가 빼곡하게 적힌 노트를 받아 드니, 백기준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암구호를 알아도 그놈들한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 정보원들에게 암구호를 전달할 수단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일단 조부터 짜자고.”
* * *
작전의 준비가 끝난 건 다음 날이었다.
암구호를 알아낸 뒤, 그걸로 정보원에게 가짜 지시를 내려 킬러까지 굴비처럼 엮어온다는 계획.
이게 성공하기 위해선 조금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과거 글라자에 소속되어있었던 고상미의 자문을 받았다.
방식은 조금 바뀌었지만, 체계 자체는 동일하다더라고.
‘과정 자체는 복잡할 게 없었지.’
우선, 해당 지역에 있는 정보원에게 먼저 장소와 킬러 이름을 암구호로 된 문자로 전달한다.
그다음 정보원은 표적을 이미 숙지한 상태인 킬러와 접선하고, 그의 편의와 표적에게 접근하는 것을 돕는다.
또 킬러가 추가로 요청하는 정보에 관해 알려준다.
생각보다 상부가 크게 관여하는 사항은 딱히 없었다.
그 말인즉슨, 거짓 문자만 제대로 보낼 수 있다면 정보원을 낚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쪽의 전문가를 잘 알고 있었다.
-흥신소에, 이젠 보이스피싱까지. 날 아주 잡범으로 만드시는군.
최고 수준의 해킹 실력자, 고세운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내가 이해해 줘야지.
녀석도 자기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한 선생과 내가 잠시 협력하고 있는 걸 이해해 주고 있으니까.
-대체 누나를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고분고분할 거라곤 생각하지 마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예.”
-비꼬지도 마라. 나머지 문자는 네 직원들이 도착할 때쯤에 보내면 되는 거냐?
“어.”
-쯧. 이런 번거로운 일은 자꾸 시키지 말라고.
“…….”
예전에 러시아를 떠나면서 고세운은 글라자의 데이터베이스를 싹 다 긁어왔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날아오는 전파를 하이재킹해 어떤 연락이 오가는지 전부 확인하고 있단다.
혹시 러시아에서 그들 남매를 추적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다.
어색한 문자 내용이 있으면 전부 조사해서 핸드폰 주인이 어디 있는지까지 파악했다던데…….
‘무슨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분류하고 있댔나.’
요약하자면, 고세운 이 새끼는 글라자의 정보원들의 위치를 혼자 알고 있었다는 거다.
-…아직도 화나 있는 거냐? 나도 네가 물어봤으면 알려줬지.
“됐다. 넘어가.”
솔직히 열이 좀 받긴 했지만, 내가 물어보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고세운 이놈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여간 대단한 자식이다.
이 정도 능력으로 어디 FBI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승진할 텐데.
‘전생에선 왜 국정원을 털다가 잡힌 건지 궁금하네.’
어쨌든, 글라자의 정보원들은 각각 서울 강북구, 경기도 평택, 부산 광안리에 총 셋이 있었다.
타깃이 될 만한 인물들이 주로 대도시에 있어서 그런가, 정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가장 멀고 변수에 대처하기 어려운 부산에는 부장님과 팀원 넷을 보냈다.
평택에는 마종석에게 팀원 셋을 붙였고.
마지막으로 강북구에는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부웅-.
“요새 절 중히 쓰시는 것 같은 기분인데, 제 착각일까요?”
“돈 주고 고용한 건데 뽕은 뽑아야죠.”
내 차에는 배상훈과 백기준, 춘식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춘식이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다 핸드폰을 들고 물었다.
“강북 놈은 지금 어디 있어?”
그러자 고세운이 정보원의 위치를 설명했다.
-국립공원 입구 쪽.
“오케이. 들었죠?”
“예엡.”
춘식이가 북한산 국립공원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곳에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세운이 조작한 가짜 문자를 받은 정보원은 접선 장소로 나왔다.
가짜 문자의 내용은 암구호로 킬러에게 복귀 명령을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이곳으로 올 정보원과 킬러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었다.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적당히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국립공원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복을 입고 오가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하지만 놈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해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어디냐. 어디야…….”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행인들을 살폈다.
“위치 변화는?”
-없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 위주로 훑던 중, 한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중년 남자가 눈에 밟혔다.
행색은 평범한 관광객 같은데, 어딘가 수상하다고 해야 하나?
이상해서 중년만 계속 유심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쪽으로 다른 남자가 다가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등산객답지 않게 등에 기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 수염으로 보아 외국인이 틀림없었다.
“…….”
“…….”
두 사람은 잠시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좌우로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놈들이 우리가 찾던 목표인 것 같았다.
스윽.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고세운에게 물었다.
“위치.”
-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중년.
저 둘이 타깃이 맞다면, 둘 중에 수염 난 외국인이 킬러라는 뜻이었다.
사사삭.
나는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인파를 뚫고 다가가 외국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익스큐즈 미?”
외국인은 뒤를 돌아 내 얼굴을 확인했다.
“……!”
선글라스 너머의 동공이 커지는 걸 확인한 뒤 입꼬리를 올렸다.
씨익.
“스파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