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6
045화
‘괴물 같은 새끼들.’
라세흠과 마종석의 싸움을 지켜본 고광목의 머리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조폭들의 싸움을 아득히 넘어선 인간들의 결투.
영화에서나 볼법한 액션 신이 두 눈앞에서 펼쳐졌다.
번뜩이는 단검이 수백 번이나 움직이는 것도 대단한데, 그걸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는 검은 옷도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비무장과 무장의 싸움이었다.
단검을 든 쪽이 훨씬 유리한 결투였기에, 결과는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게 이런 건가?’
검은 옷의 라세흠은 자신의 팔뚝을 내어주는 대신, 마종석 이사의 골을 흔들어 버렸다.
그것도 콘크리트라도 부술만한 내려찍기로.
“…….”
고광목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때였다.
여전히 팔뚝에 단검을 꽂은 라세흠이 자기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고용주가 당신을 좀 보자네. 같이 가지.”
“내가……. 순순히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나?”
“흠……. 그냥 와 주면 좋을 거 같은데. 저 꼴 나기 싫으면.”
라세흠이 마종석 이사를 흘깃 쳐다보자, 고광목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고 해도, 저놈은 괴물이다.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너희 고용주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
“좋다. 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순순히 따라가지.”
“응? 뭔데?”
고광목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방식.
이걸 이용해, 상대를 이기고 유유히 걸어 나간다.
“완타치.”
“완타치? 아……! 한 대씩 주고받는 거?”
“그렇다.”
“좋지. 나야 아주 좋지.”
훗. 그런 여유는 지금뿐이다.
아까는 요행으로 자기의 주먹을 받아 냈는지 모르겠지만, 한 대씩 주고받는 건 완전히 다르다.
상대에게 주먹을 허용해 줘야 한다.
피하는 순간, 지는 거다.
무조건 한 대씩. 완타치로 주고받는 거다.
잇뽕 김두한의 후계자라 칭송받는 고광목.
그는 이 완타치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
“먼저 쳐.”
라세흠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크큭. 끝이다.’
주먹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고광목이 아닌가.
그가 거대한 덩치를 바탕으로 허리를 완전히 틀었고.
퍽!
이내, 웅장하고 빠른 주먹이 라세흠의 턱을 강타했다.
끝이다. 이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너져 내릴 거다.
이때까지 자신과 상대했던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아야.”
“??”
저 말이 끝이었다.
왼손으로 턱을 매만지던 라세흠이 한 말은 고작 ‘아야’가 전부였다.
“너 제법 한다. 자. 이제 내 차례지?”
단검이 꽂혀 있는 오른팔은 놔두고, 왼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몸을 트는 라세흠.
‘주, 죽는다.’
저 주먹을 맞으면, 죽는다는 경고가 머릿속에서 삐삐 울리고 있다.
한 대 맞고 쓰러지는 게 아니라, 생사를 넘나들 정도의 공포가 몰려온다.
“자, 잠깐!”
“응? 왜?”
“따……. 따라가겠다.”
“더 안 하고?”
“그, 그래.”
목숨보다 중한 게 어디 있으랴.
저 주먹에 맞으면, 자기가 어떤 꼴이 될지 뻔히 보인다.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야 후일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낭만 주먹 고광목은 자신을 합리화했다.
오늘로 낭만 주먹이란 이명은 사라졌다.
***
“부장님! 괜찮으세요?”
“아프지. 인마. 아오. 내가 칼빵을 다 맞네.”
라세흠 부장과 함께 온 직원들.
다른 직원들의 옷에 묻은 피는 마종석 이사의 수하들을 처리한 남의 피다.
하지만, 라세흠은 달랐다.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핏물과 팔뚝에 꽂혀 있는 단검.
단검을 빼는 순간, 과다 출혈이 발생할 걸 알기에, 그대로 꽂고 사무실로 온 라세흠이었다.
“이거 참……. 거추장스럽네. 의사 좀 불러주라.”
“아. 네. 난쟁아. 신 닥터한테 빨리 오라고 해. 당장. 보수는 따블로 준다고 하고.”
“예! 행님!”
어둠의 세계엔 그들만의 의사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일로 다치게 되면 칼을 맞게 되는데, 그러면 의사들이 경찰에 신고하기 때문이다.
총상은 말할 것도 없고.
라세흠 부장처럼 팔뚝이 칼이 꽂혀 온 상태에서 응급실로 향하면, 경찰 조사가 이뤄진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조폭들만 전문적으로 치료해 주는 신 닥터를 불렀다.
“행님! 따블이라니까 바로 온다카네예.”
“상태는? 얘기했어?”
“예. 했습니더. 전용 차 타고 간호사랑 같이 온답니더.”
“알겠다.”
36인승 이상의 대형 버스를 개조해 만든 전용 차량.
이게 신 닥터를 유명하게 만든 이유다.
안에 어지간한 수술 장비가 다 갖춰져 있고, 무균실까지 준비해서 어지간한 외과 수술은 전부 할 수 있게 개조해 놨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거다.
다치면, 수술 장비까지 챙겨서 오는 전문의가 있다면, 나도 이용하고 싶다고.
그럼, 난 웬만하면 응급실로 가라고 추천할 거다.
단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인간이니까.
보험 처리가 안 되는 건 당연지사고.
그걸 알고 있는 라세흠 부장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야. 나중에 병원비 청구하지 마라. 이거 산재다.”
“큭.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 처리할게요.”
“아! 그리고 이 단검은 내 거다. 눈독 들이지 마라.”
“알겠어요. 가지고 싶어서 팔뚝에 꽂고 온 사람한테 달라고 안 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좀 쉬고 계세요.”
“그래. 그래야겠다. 에휴……. 운동량을 늘리든지 해야지. 용병 하나 상대하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아니요.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괴물이에요.
“덩치는 마종석 이사 단단히 묶어 놔라. 절대 못 풀게 꽉!”
“알겠슴니더.”
“돼지는 저 사람 좀 여기로 데려와라.”
“저 멀뚱멀뚱한 아저씨예?”
“어.”
사무실 안을 둘러보고 어이없는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남자.
고광목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앉았다.
“너 어디 소속이냐? SA시큐리티는 어느 조직 위장 회사야?”
아……. 이래서 멀뚱거리셨구만.
강남파도, 미추리파도 아닌 소속이 자기를 끌고 왔으니까.
그것도 SA시큐리티라는 경호 업체 간판을 단 곳에.
“질문은 안 받는다.”
“뭐? 이 어린놈의 자식이…….”
“어린놈의 자식한테 맞을래?”
어린놈한테 맞으면, 아픈 것뿐만 아니라, 자존심까지 상한다는 걸 모르네.
“낭만 주먹, 고광목. 잘 들어라. 우린 널 살려준 거야. 강남파의 마종석 이사한테 죽을 뻔한 너를 살려 준 거라고. 우리 현실 파악 좀 하자.”
“허! 그래서, 뭐?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
“흠…….”
콧소리를 뱉어내고, 라세흠 부장을 바라봤다.
“부장님. 이놈 이거 왜 이렇게 멀쩡한 겁니까? 순순히 따라올 놈이 아닌데, 멀쩡하게 잘도 걸어왔네요.”
“완타치 까자고 해 놓고, 자기가 맞을 차례가 되니까 꼬리를 말더라.”
“예? 큭. 크큭.”
그 소리를 듣고는 자기도 쪽팔리는지, 고광목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낭만 주먹은 옛날얘기네. 물주먹에 쫄보였어.”
“이……. 새끼가 진짜…….”
“어이. 고광목. 자세 낮춰라. 나 진짜 화나려고 하니까.”
“뭐?! 좀만 한 새끼가 어디서 목소리를 깔아? 너 돈 좀 있는 새끼냐? 프로들 고용해서 서울광목파를 어떻게 해 보려고? 너 이 새끼야. 잘못 생각했어. 우리 애들이 너 같은 어린놈의 새끼한테…….”
짜악!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어디서 영웅의 자식한테 이 새끼, 저 새끼야.
조폭 놈의 새끼가.
뺨을 잡은 고광목이 순간,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가리 자리로 올라가고 처음 맞아 보는 거겠지.
아프기도 하지만, 어안이벙벙할 거야.
“이 씹…….”
짝!
“개새…….”
짝!
“진짜 죽으려고…….”
짝!
놈이 휘두르는 주먹과 욕설을 모두 무시해 주며,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나도 라세흠하고 같은 류의 인간이야.
너 같은 깡패 새끼는 애초의 우리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더 맞을래?”
“하아……. 후…….”
분을 삭이려 애써 숨을 고르고 있다.
부은 얼굴로 그래 봐야 애처롭기만 하다.
“넌 진짜 운이 좋은 거야. 나한테 필요 없는 인간이었으면, 지금쯤 저기 마종석 이사하고 같이 묶여 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네 운에 고맙다고 빌어라. 지금처럼 개기지 말고.”
“하…….”
“한숨 고만 쉬어라. 고광목. 날 진심으로 만들지 마.”
진심이면, 당신 죽어.
여기 있는 누구든 당신 같은 인간은 일초지적도 안 돼.
아……. 통영 애들 빼고.
아니구나, 사발이랑 똥식이도 빼야겠구나.
뭐, 어쨌든.
“곰곰히 생각해 봐. 당신이 왜 이렇게 운이 좋은지. 왜 우리가 당신을 살려 준 건지.”
“…….”
“그래도 종로를 잡고 있던 놈이니까 대가리는 돌아갈 거 아냐? 그 머리는 모자 쓴다고 달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 생각해 봐라.”
“내가……. 필요한 거냐?”
“빙고!”
그래. 처음부터 이러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네 밑에 애들은 너를 주축으로 모여 있어. 돈으로 움직이는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고광목이라는 매개체가 중심이 돼서 하나의 조직이 된 거지.”
“그래서? 지금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부두목 새끼는 강남파로 갈아탔고, 내 건물에는 마약이 던져졌는데. 솔직하게 말한다. 난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다.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야.”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이 말을 꺼냈다.
“트럭은 우리가 타고 왔어. 아보카도는 지하 창고에 전부 넣어 놨고.”
“오키.”
마약을 던졌다는 걸 뻔히 아는데,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있나?
당연히 들고 와야지.
이로써, 밀수된 아보카도는 전량 회수했다.
“들었지? 던지기 안 당했다.”
“…….”
“그리고 네 밑에 있는 애들이 그놈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부두목이 조직한 반란 세력 말고 너를 따르는 놈들이 있을 거 아냐?”
“……있지.”
“그럼, 이빨이 빠지긴 했어도 어금니는 살아 있는 거네. 아니야?”
“……맞다.”
어디서 불쌍한 척하면서 기회를 보려고 그래?
네가 여기서 나가면, 남은 조직원들을 규합해서 반격을 준비할 거란 걸 모를 줄 알아?
내가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것만 15년이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내 눈에 훤히 보인다는 거다.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은 언제 하나로 모을 거야? 모아서 연장 챙기고 강남파 쳐들어갈 거잖아? 언제 하게?”
“……?!”
“뭘 놀라고 그래? 말하는 사람 민망하게. 너무 뻔하잖아. 명색이 주먹 하나로 종로를 통일한 고광목이 주철수한테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애들 모아서 쳐들어가겠지.”
“너……. 뭐 하는 놈이냐?”
“나? 음……. 뭐 하는 놈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정의의 사도. 뭐, 그 정도로 해 두자.”
내 정체까지 알아서 뭐 하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다.
난 몸을 바짝 당기며, 고광목의 눈을 쳐다봤다.
“이제부터 말하는 거 잘 들어라.”
“……?”
“너희 부두목이 배신한 이상, 서울광목파는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네가 남은 애들을 모아서, 반격을 준비해도 결과는 같을 거야. 오히려 네 식구들만 다치고, 죽어 나갈 거야. 주철수가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을 테니까.”
“…….”
“휘발유 끼얹고 불난 집에 뛰어들 생각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서울 조폭삼분지계는 서울광목파 부두목의 배신과 주철수의 계략으로 물 건너갔다.
세 개의 세력이 서로 견제하는 방식은 이제 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계획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희 애들 모아서 미추리파에 들어가라.”
“뭐?!”
“강남과 강북. 확실하게 선을 긋는 거다. 38선처럼 남북으로 갈라 버리는 거지.”
“!!”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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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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