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
004화
[행님!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불러 주이소.]노래방 사건이 있고 3일이 지났다.
이 덩치 놈의 핸드폰을 다시 뺏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와서 미치겠다.
[행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서 몸을 만들어서 조직에 폐를 끼치지 말라는 큰 뜻을 이제야 이해했습니다!]그런 뜻 없다.
[찌든 때를 벗겨 내고 단단하게 다듬고 있겠슴미다! 기대해 주이소. 행님!]아주 자기네들끼리 시나리오 쓰고 난리를 치네.
후……. 안 되겠다. 조만간 뺏어야겠다.
“그나저나……. 깡은 있나 보네?”
공사장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첫날에 몸살이 생기는 건 기본이고 다음 날이면 온몸의 근육이 조각날 정도로 아프다.
그렇게 참고 몸을 만드는 데만 해도 몇 주는 걸리는데, 이놈들은 3일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반장 아저씨한테 듣기로는 야간작업도 전부 시키고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
“몸은 쓸 만한 건가?”
하긴, 그러니까 중학교, 고등학교 통을 먹고 나왔겠지.
시간이 지나면 쓸만하게 다듬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놈들은 이렇게 놔두면 되고…….”
문제는 어떻게 주철수를 꺾느냐는 거다.
주철수는 지금 강남 쪽의 사업장을 접수해서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걸 바탕으로 숙소를 구하고 지방에 있는 혈기에 가득 찬 놈들을 데리고 오고 있다.
이러다 전쟁할 정도의 규모가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쳐들어가는 건 강북이 될 것이다.
‘그게 주철수의 1차 목표니까.’
서울 조직의 통합.
남쪽으로는 성남과 안양에 토박이 조직들이 진을 치고 있다.
서쪽에는 인천과 수원에 자리를 잡은 조직들이 버티고 있고.
주철수의 선택은 당연히 위쪽이었다.
밑으로 조직의 크기를 늘리기에는 뒷배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남 쪽이 삼합회, 인천 쪽이 야쿠자.’
한창 부동산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그곳들은 외국 세력이 들어와 이권을 나눠 먹고 있었다.
아무리 강남의 주철수라도 외국 세력까지 몰아낼 정도의 힘은 가지지 못한 상태.
지금은 서울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덩치를 키울 요량인 거다.
“지금부터 고춧가루를 뿌려야 하는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주철수란 인간이 크기 전에 고춧가루를 왕창 뿌려 두고 세력을 축소시켜야 한다.
그놈의 계획을 방해해야 미래의 그 주철수 회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게도 필요한 게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 되는 자금.
그게 없다면, 내가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주철수한테 비벼 볼 수가 없다.
나만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합법적이든 아니든 말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합법적인 걸로는 힘들겠네.
경찰이 손 쓸 수 없어서 첩자로 15년을 일하지 않았던가?
그때, 그렇게 용을 썼지만, 단 한 번도 주철수를 기소하지 못했다.
항상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유유히 빠져나간 그놈이었다.
그런 인간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상대할 수 있겠는가?
전생의 주철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힘과 권력이 밀집된 강남을 부여잡고 있는 인물이다.
현생에서 내가 경찰이 된다고 해도 그놈에게 스크레치 하나 낼 수 없을 거다.
검사가 된다면 다르겠지만……. 그만한 머리는 없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고로, 내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하나다.
자금을 만들어 주철수의 강남파와 대적할 만한 세력을 만든다.
그리고 그놈이 가는 길에 고춧가루를 왕창 뿌리다가 결국은 넘어지게 만드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 당장 자금이 필요했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2억. 전세금을 담보로 대출받아도 2억 5천.’
최대치는 이 정도로 보면 된다.
여기서, 대출로 어느 정도 더 커버할 수 있겠지만, 최대 3억이 한계였다.
이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꽤 큰 금액이다.
지금 분당 아파트 시세가 대략 평당 1,000만 원 수준이니까 30평대 아파트도 살 수 있다.
그게 내가 살던 시기엔 평당 4,500만 원을 넘어간다.
절대적인 통계라고 볼 순 없지만, 4분의 1이나 3분의 1 수준으로 보는 게 맞을 거다.
최대 3억. 시드머니로는 충분하다.
이제 이걸 최대한 불려야 하는데…….
“건덕지가 없나?”
미래를 알고 있다지만, 지금 시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IMF나 카드 대란 같은 굵직한 사건은 이미 지나갔고, 전 세계 경제에 여파를 미치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아직 3년 정도 남았다.
한창 이슈를 일으켜 주가나 선물, 옵션을 요동치게 할 만한 게 지금은 없다는…….
“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TV에서 나오는 뉴스가 내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황운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긍정적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난 줄기세포 논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황운석 박사는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줄 거라는 말과 함께…….
“!!”
저 사건이 이때인가?
일명, 황운석 논문 조작 사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혁신적인 치료 방법으로 쉽게 말해 줄기세포로 한 사람의 간이나 신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라. 내 유전자를 가지고 부작용이 없는 신장을 만들어서 이식할 수 있다면,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연장되겠는가?
그뿐 아니라 불치병이라 여겼던 수많은 숙제도 줄기세포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논문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건, 논문 조작이었다.
처음 발단은 황운석 박사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를 어디서 제공받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시사프로에서 취재한 바로는 금품을 통해 일부 여성들에게서 받았다고 했는데, 이게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를 건드리는 요소였다.
생명 윤리에 어긋나며 난자 채취에 의한 부작용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본질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난자의 채취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논문 자체가 조작되었다는 거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체세포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때까지 황운석 박사가 했던 모든 행동은 사기 행각이었고, 국가적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그의 인생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줄기세포 관련 주식을 사야 해.”
황운석 박사의 추락과 함께 줄기세포 관련주도 나락에 빠진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수직 상승하며 올라간다.
언뜻 기억하기로는 줄기세포 관련주가 몇 배나 올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배가 아파서 ‘나도 사 둘걸…….’하는 후회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살 수 있다.
“판을 키워야겠어.”
시드머니 3억으로는 부족하다.
확실한 미래가 눈에 보이는데,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는 건 병신 짓이다.
***
‘메디슨 포스터.’
이달 말에 코스닥에 상장하는 주식회사.
제대혈은행 및 세포치료제 연구업체인 이 회사를 타겟으로 잡았다.
인터넷 뉴스와 증권가에 도는 소식들을 종합 결과 이 종목이 줄기세포 대표주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타겟은 정해졌고.’
이제 돈을 빌리러 가야겠지?
시드머니를 왕창 불리기 위해서 말이다.
“들어오세요.”
‘영광대출’이라고 적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들건들한 놈이 나를 반긴다.
아마 이곳이 이 근방의 사채업장 중에서는 가장 큰 곳일 거다.
1층과 지하에 주차된 차들이 으리으리했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돈 빌리러 왔지. 뭐 하러 왔겠어?”
“허. 젊은 친구가 혀가 짧네.”
이런 놈들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막대한 고리를 수금해 가는지 알기에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2005년.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시기다.
대부업은 최고이자율이라는 게 있지만, 이놈들은 개인 간의 거래라는 빌미로 이자제한법 폐지를 악용한다.
1,000만 원을 빌리면, 몇달안에 2,000만 원이 되어있는 눈을 비빌 법한 일도 벌어지는 곳이 여기 사채업 시장이다.
이렇게 자세히 아는 이유는……. 내가 처음 조직에 들어가서 한 일이 이거라서다.
“여긴 혓바닥 길이 보고 돈 빌려 주나 봐?”
“이 새끼 보소. 젊은 놈이 싸가지가 아주…….”
건들거리던 사내가 팔을 올리며 내게 위협을 가할 때였다.
턱을 돌려 버릴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김 군아. 손님한테 뭐 하냐?”
“아……. 그게 사장님. 이 새끼가 혀가 많이 짧아서요.”
“혀 짧으면 어때? 돈만 잘 갚아 주면 되지. 안쪽으로 데리고 와.”
“……네.”
건들거리는 놈이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눈에 힘 풀어라. 봉사로 살고 싶지 않으면.
“여기 앉아.”
“그러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남자 앞에 앉았다.
이놈의 과거는 안 봐도 비디오처럼 펼쳐진다.
젊을 때부터 건달 생활을 하다가, 사채를 추심하러 다니고 이후엔 여기 사무실을 내며 서민의 고리를 뜯어먹는 짓을 하고 있는 게.
“젊은 친구. 우리 매너는 좀 가지자. 내가 너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겠구만.”
“존댓말하면 두 배는 더 빌려 줘?”
“하! 이 친구 보게. 재밌네.”
울대 한 대 처맞으면 재밌다는 소리는 못 할 거다.
그것도 영원히.
“그래. 젊은 친구. 존댓말하면 두 배는 빌려 줄게.”
오. 그래도 자존심은 있구만.
강하게 나가는데 그래?
알겠다. 존대해 주지. 대신, 우리나라 스타일로.
“그러죠. 존대하죠.”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하겠구만.”
그렇게 말하더니 사장이 다리를 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우리 젊은 친구는 얼마나 필요해서 이곳에 오셨을까?”
“최대한 많이 주쇼.”
“최대한 많이 얼마?”
“여기서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이미 은행 대출은 당길 만큼 당겼다.
시드머니 3억은 확보한 상태.
여기서 사채로 더 많은 시드머니를 확보해 ‘메디슨 포스터’ 종목에 들어가야 한다.
“하! 젊은 친구가 오랜만에 가슴에 불을 지피게 하네.”
재밌다는 듯 쳐다본 사장이 담배를 껐다.
“담보는 있어? 담보가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관대한 사람들이라도 돈을 빌려 줄 수가 없어.”
담보라……. 전셋집은 은행 대출로 이미 담보가 잡혀 있고 다른 재산은 없다.
뭐, 그래도 아예 재산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너희 생리를 잘 알기에 쓸 수 있는 담보가 있다.
“내 몸뚱이면 되겠소?”
“몸뚱이?”
“어차피 통나무 장사하는 인간들하고도 커넥션이 있을 거잖소? 건장한 남자에 혈액형은 O형. 담배하고 술은 해 본 적 없는 몸이고 가족력도 없소.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오?”
“……?!”
통나무 장사를 얘기하자 놀란 눈이다.
사채 하는 놈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겪어 봐서 잘 안다.
하다 하다 안되면 신체 일부라도 떼 가는 게 이놈들이다.
수십 번이나 내가 직접 목격했으니 잘 안다.
“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냐? 생활하던 놈이냐?”
“몇 년 굴렀수다.”
“야. 굴러 본 놈이 사채를 써? 알 만한 놈이?”
“하. 웃기지도 않네. 나 걱정해 주는 거요? 내가 급하게 쓸데가 있어서 그렇소. 그러니까 그런 값싼 동정은 필요 없고 얼마나 빌려 줄 수 있는지 말해 주쇼.”
“이놈 보게…….”
사장이 한동안 내 눈을 응시했다.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는 거 같은데, 똥 밭에서 굴러도 내가 더 많이 굴렀다.
너 따위에 겁먹었다면 15년은 버티지도 못했다.
“후……. 좋다.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거 같으니까 알려 주마. 눈깔, 간, 콩팥 그리고 뭐 이것저것 하면……. 1억 5천까지는 되겠네. 어때? 여기서 각서 쓸래?”
각서는 무슨. 법적 효력도 없는 신체포기각서 같은 거 써서 뭐 하려고?
난 각서 대신, 신분증을 테이블에 던졌다.
“돈 못 갚으면 찾아와서 마음껏 떼 가쇼.”
“와……. 이놈 깡다구가 보통이 아니네.”
이놈, 저놈 하지 마라. 진짜 아구창 날리고 싶으니까.
그리고 약속도 지켜야지.
“대출 서류 가져오쇼. 바로 작성하게. 그리고 빌려 주는 돈은 3억입니다.”
“뭐?”
“말했잖소? 존댓말 하면 두 배로 빌려 주는 걸로. 대출금 3억. 이 자리에서 현금으로 주쇼.”
뱉은 말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이 사채업자 새끼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