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
005화
“6억.”
내 수중에 부여잡고 있는 돈이다.
삼전 주식만 사 놔도 15년이면 최소 8배는 오른다.
강남에 아파트를 사면 5배, 6배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안락한 인생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을 망가트리고 어둠의 세계에서 양지로 올라가는 주철수.
그 인간 때문에 15년간 건달 생활을 하며, 마지막엔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나.
주철수라는 거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싹을 잘라 놔야 한다.
국가를 좀먹는 암 덩어리를 내 손으로 치운다.
-네가 이루지 못한 걸, 모두 이루거라. 그리고……. 아주 나중에 보자꾸나.
시커먼 연탄가스가 차 안을 덮을 때, 환영으로 나타났던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 주철수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 자식 때문에 개고생만 하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방식이야 어떻든 난 주철수란 악의 축이 커 가는 걸 막을 것이고, 결국 이루어 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처럼, 아주 나중에 아버지를 뵙고자 한다.
“가 볼까?”
그때를 위해 난 나만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
“혹시……. 이주혁씨?”
“네. 제가 이주혁입니다.”
“하하. 생각보다 젊은 분이네요. 제가 비상장 거래를 자주 했는데, 이렇게 젊은 분은 처음 봅니다.”
“그런가요?”
커피숍에서 중년의 남성을 만났다.
이 사람이 내게 ‘메디슨 포스터’의 주식을 팔 사람이다.
아직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메디슨 포스터’.
이 주식을 사기 위한 방법으로는 두 가지 루트가 있다.
하나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날, 홈트레이닝시스템(HTS)로 간편하게 매수하는 방법.
또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 주식을 사람과 직접 대면해서 불편하게 매수하는 방법이다.
내가 굳이 불편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비상장 주식은 부르는 게 값인 만큼 더 비싼 가격에 살 수도 있고, 더 싼 가격에 살 수도 있다.
난 더 싼 가격에 사려고 한다. 코스닥에 상장된 ‘메디슨 포스터’가 고공행진을 하기 전에 더 빨리 그리고 더 싸게.
“한 주당 20,000원에 구입하시겠다고요.”
“그 정도 가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걱정이 묻어나오는 표정이었다.
“나야 그 가격에 팔면 좋긴 하지만……. 젊은 분한테 괜히 미안해지는군요. 메디슨 포스터 공모가가 얼마인지는 알고 있죠?”
“12,000원으로 들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20,000원에 사는 거면 60% 더 주고 사는 것도 아시겠네요.”
“네. 감안하고 매수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는 감안할 정도로 메디슨 포스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황운석 박사님을 믿는 거죠.”
이 종목은 철저히 황운석 박사의 행로에 따라 좌지우지될 종목이다.
줄기세포 관련주 중에서도 대장주가 될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황운석 박사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곤두박질치는 대표 주식도 바로 ‘메디슨 포스터’가 될 테니까.
내 앞에 있는 중년의 남자는 그런 위험성을 없애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나와 컨택이 됐다.
나한테 주식을 넘기는 순간, 60%라는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메디슨 포스터’가 상장할 때, 황운석 박사에게 악재라도 생긴다면 손해가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다.
이런 선택지 중에서 중년 남자는 안정적인 걸 택했다.
반대로 난 모험을 택하고 있는 거고.
물론, 이건…….
‘저 사람 입장에서 그런 거지.’
조만간 황운석 박사는 ‘복제 개 스쿨피’라는 성과를 발표한다.
나중에는 사기로 판명되더라도 지금은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했고 ‘복제 개 스쿨피’라는 엄청난 결과물이 나왔다 라며 언론과 국민들은 황운석 박사를 찬양한다.
그때가 되면 ‘메디슨 포스터’의 주식은 사고 싶어도 못산다.
아무리 고가에 매수하려고 해도 저런 호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누가 팔려고 할 텐가?
가지고만 있으면 2배, 3배는 손쉽게 수익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메디슨 포스터’ 상장 전에 내 모든 자금을 동원해 비상장 주식을 사 두려고 하는 거다.
“젊은 분한테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투자는 안정적으로 하는 게 좋아요. 고깝게 듣지는 말고요. 내가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요.”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네.
걱정은 고맙지만, 내가 안정적으로 투자할 상황은 아니라서.
“젊을 때, 도전해 보는 거죠. 황운석 박사님은 충분히 제 도전을 성공시켜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음…….”
“주식은 어떻게 파시겠습니까? 저는 현금으로 준비해 왔는데, 사장님은 어떻게……?”
“저도 증권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오. 그래요?”
남자가 007 가방 같은 걸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안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 준다.
‘메디슨 포스터 주식회사 주권.’
금 오백 원이라고 적힌 종이.
종이 안에는 회사명과 창립일, 액면가, 발행일 등등이 적혀 있고 대표이사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다.
이 종이 한 장이 20,000원이다.
액면가 오백원짜리 증권을 20,000원을 주고 사는 거다.
‘주권. 오랜만에 보네.’
사채를 빌려 주고 추심할 때, 이런 주권을 많이 받아 왔었다.
지금도 온라인으로 비상장 증권을 거래할 수 있지만, 미래만큼 편하지는 않다.
절차가 복잡하고 증권예탁원에서 처리가 늦어지면, 며칠 있다가 받을 수도 있다.
현물에는 현물.
현금을 주고 증권을 받는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 거래인가.
“나머지는 차에 있습니다. 현금은요?”
나도 007 가방을 하나 올렸다.
5만 원권이 나왔다면 그나마 편했을 거 같은데, 1만 원권이라 차에 박스가 몇 개는 있다.
“저도 나머지는 차에 있습니다. 바로 거래하실까요?”
“좋죠. 그럽시다.”
우린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로의 트렁크를 열어 박스에 담긴 현금과 또 다른 박스에 담긴 증권을 서로 교환한다.
누가 멀리에서 본다면, 나쁜 사람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현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한 장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건 아주 합법적인 거래였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하는 정상적인 거래.
박스 옮기는 게 끝나자, 중년 남자가 날 바라봤다.
“내가 투자로 먹고산 게 20년은 됩니다. 내가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줬으면 해요.”
“……?”
“너무 욕심은 부리지 마요. 분할 매수가 있듯이 분할 매도도 있는 겁니다. 적당히 수익이 나면 차근차근 매도해서 이윤을 남겨요. 한 방을 노리다가는 한 방에 갑니다. 알겠죠?”
“네. 그러겠습니다.”
이 사람. 은근히 사람이 좋네.
투자로 2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주식이나 선물, 옵션 투자로 2, 3년 안에 무너지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사채를 빌리러 오는 절반은 저런 투자 때문에 빌리는 사람이고 나머지 절반은 도박 때문에 온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로가 얼마나 처참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투자 바닥에서 20년 동안 살아남은 건, 이 중년 남성이 안정적인 투자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명함 하나 주실 수 있습니까? 전 명함이 없어서 드릴 게 없어서요.”
“아. 물론이죠.”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주었다.
‘HS투자연구소 허효섭 소장.’이라고 적혀있다.
대부분 주식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명함을 가지고 있다.
무슨 무슨 투자연구소 소장이나, 투자전문가 등이 명함을 들고 다닌다.
이 사람도 같은 부류이긴 한데…….
‘허효섭이라……. 이름이 낯설지 않네.’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확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명함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다는 건, 이 사람이 나중에도 이름을 알린다는 말이다.
그게 나쁜 쪽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내가 안 좋은 일은 잘 안 잊어먹는 타입이거든.
“언제든 주식 관련해서 물어볼 거 있으면 연락해요.”
“고맙습니다. 오늘 거래도 감사했고요.”
“에이. 거래야 내가 더 고맙지요. 그럼.”
허효섭이 자리를 떠났다.
나도 차에 타며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위해 준비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증권을 증권사에 입고하는 거다.
이걸 하지 않으면 거래가 되지 않으니,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여의도를 향하기 위해, 허효섭의 명함을 지갑에 넣을 때였다.
“응?”
양면으로 인쇄된 허효섭의 명함에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한쪽 면에는 한글로 HS투자연구소 허효섭 소장이라고 되어있었고, 뒷면에는…….
“존 허?!”
똑같은 내용이 적힌 명함의 뒷면에 영어 이름이 있다.
저 사람이 ‘존 허’라고?
그 투자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
35년 동안 매년 25% 이상의 수익을 내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무슨 25% 수익 낸 거 가지고 유명해지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복리의 무서움을 몰랐을 때의 얘기다.
천만 원으로 35년 동안 꾸준히 25% 이상의 수익을 내면 어떻게 될까?
투자한 돈을 빼지 않고 그대로 다시 투자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럼, 놀라운 금액이 나온다.
무려 246억 5,000만 원.
고작 천만 원이 35년 후에는 246억이 되어있는 것이다.
존 허는 그걸 이룬 사람이다.
초기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나중에 얼마나 벌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단 한 번의 손실도 없이 매년 25% 이상의 수익을 올린 투자계의 전설이었다.
“허! 나 지금 그런 사람하고 거래한 거야?”
신기하네. 과거로 돌아와서 처음 주식 거래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투자계의 전설이라니.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리고 있다.
비상장 상태의 ‘메디슨 포스터’ 주식 6억 원어치를 산 것과 거래한 사람과의 인연.
첫 단추가 순조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
첫 단추가 끼워지고 있던 그때.
♪띵.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행님. 저희 내일 좀 뵐 수 있을까예? 할 얘기가 있슴니더.]덩치의 연락이었다.
왜 보자고 하는 거지? 설마, 공사장에서 일 못 하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려는 건가?
투정 부리고 싶으면 부려라.
두들겨 맞다 보면 그 투정도 쏙 들어갈 테니까.
저녁이 되자, 내 집으로 찾아온 셋은 무릎을 꿇었다.
“행님. 부탁이 있습니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버린 덩치가 말을 꺼냈다.
어지간히 고생한 거 같긴 하네.
돼지도 튀어나온 배가 들어가고 있고 난쟁이의 어깨가 벌어지고 있는 걸 보니.
“무슨 부탁?”
“저희…….”
우물쭈물하며 덩치가 입을 열었다.
“하루에 만 원만 빼서 주시면 안 될까예?”
“어?”
“저희 셋이 올라와가 달방에서 사는데, 달세를 낼 수가 없어서예. 올라올 때 가져온 돈도 거의 다 쓰 가꼬예.”
훗. 찾아와서 무릎 꿇고 한다는 말이 이거야?
얼굴하고는 안 어울리게 하는 짓이 귀엽네.
“달방 살고 있냐?”
“예.”
“거기서 나와라.”
“예?”
“오늘부터는 여기서 지내.”
“……!!”
방 세 칸에 화장실도 두 개다.
혼자서 쓰기에는 적적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중학교 후배 놈들이니 내가 거둬 주마.
난 작은 방 하나를 가리켰다.
“저 방에서 셋이서 자.”
그러고는 다른 방을 가리켰다.
“저 방이 내 방이고.”
마지막으로 난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방에는 들어가는 순간 나한테 죽는다.”
아버지 방이다. 유품이 그대로 남아 있고 아버지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저기 들어가는 순간, 말 그대로 죽여 버릴 거다.
“해, 행님…….”
덩치가 말을 더듬더니,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슴니더. 진짜로 감사합니다. 행님!”
“감사합니다! 행님!”
“감사합니다! 행님!”
고마운 건 알겠는데, 머리 안 아프냐?
빌라 바닥에 구멍이라도 내는 줄 알겠다.
“고개 들고. 밥이나 이런 것도 여기 있는 걸로 해결해라. 내가 이런 편의를 봐줬으니까 일당은 그대로 노래방 사장님한테 갈 거다. 알겠냐?”
“물론입니더. 저희 염치는 있습니더.”
염치가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지를 말지.
음……. 아닌가? 어떻게 보면 노래방에서 행패를 부리고 나한테 걸린 게 행운인 건가?
적어도 강남파에 들어가서 고기 방패가 되는 건 막아 준 거니까.
“방 뺀다고 얘기하고 바로 짐 들고 와라.”
“지금 바로예?”
“어. 갈 데가 있으니까.”
“어디로 가실라 카는지……?”
“나이트.”
“……?”
“나이트클럽.”
주철수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첫 번째 방법으로 난 나이트클럽을 택했다.
물론, 거기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하는 하수 짓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파리처럼, 귀찮게 만들 생각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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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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