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1
050화
며칠이 지나고 패러다이스 호텔 카지노 사업 입찰 기간과 최종 결정날이 정해졌다.
접수는 12월 1일부터 10일까지.
최종 결정은 12월 15일이다.
‘빨리도 결정하네.’
연 매출 조 단위의 사업권을 결정하는데, 접수에서 결과까지 고작 15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사업을 해본 사람은 안다.
작은 소기업도 억 단위의 사업권 하나 따내려면, 최소 한 달에서 몇 개월은 기본이다.
그런데, 조 단위의 매출이 뻔히 보이는 사업을 고작 15일 만에 졸속 처리한단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밑밥 하나는 제대로 뿌렸구나.’
관련 공무원, 호텔 관계자, 카지노 협회장한테 얼마나 로비했으면,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될 수 있는 걸까?
주철수 그놈의 수완이 좋기는 좋다.
이 정도로 밑바탕을 그려 놓은 재주는 인정한다.
그놈이 전생에 재계 3위의 재벌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재주와 실력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번 생은 아니다.
지난 생에 주철수는 거침없이 달려가는 치타였다면, 난 그놈의 달리기를 막는 돌부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도 시속 100km로 달리는 치타를 곤두박질치게 만들 수준의 돌부리로.
‘마지막에 한 방만 터트리면 된다.’
달리던 주철수가 넘어져서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터트릴 예정이다.
넘어져서 정신을 못 차리면 더 좋고.
그렇게 생각하며 계획을 짤 때였다.
거침없이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여어-. 잘들 지냈냐?”
라세흠 부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들어오는 들어온다.
오른쪽 팔에 단검이 꽂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퇴원입니까?
당신은 회복력도 괴물 수준인 겁니까?
“부장님. 팔뚝은 괜찮아요?”
“크큭. 이 정도야 간지럽지. 연고 바르면 낫는다.”
팔뚝에 붕대를 칭칭 감고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습니다.
무려 관통상인데, 연고로 나을 리가 없지.
수백 바늘을 꿰맸고, 잘린 근육을 맞췄다.
완전히 나으려면 한두 달은 더 요양이 필요했다.
‘좀이 쑤셨나 보네.’
그런데도 출근한 이유야 뻔하지.
집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뭔가 활동하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인간.
나중에 MBTI가 유행하면, 100프로 맨 앞에 E가 나올 거다.
“사무실에서 좀 쉬고 계세요. 당분간은 전화 업무만 하시고요.”
“나더러, 사무실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한 달만 그렇게 해 주세요. 팔은 나아야죠.”
“크음…….”
불만 가득한 콧소리가 사무실을 진동시키네.
“아니면, 지하에 내려가서 백기준을 돕든가요. 마종석 이사가 용병 출신이라 그런지, 중요한 정보는 절대 안 준다고 하더라고요. 부장님이 가서 설득해 보세요.”
“싫어. 고문도 전문가가 해야 하는 거다. 난 현장에서 뛰는 현장파고. 고문하고 꼬셔서 상대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내 전문이 아니다. 그리고 인마. 마종석 이사는 나랑 호각으로 싸운 놈이야. 그런 놈이 지하실에 갇혀 있는 걸 나보고 보라고? 그건 목숨 걸고 싸운 상대에 대한 예우가 아니지.”
거참. 확고하신 분이네.
그것도 이상한 방향으로.
“그래요? 그럼, 진짜 부장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처리해야 하는 다른 건도 있는데, 그것도 상대의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거거든요.”
“응? 뭔데? 싸우는 거야?”
“뭐, 경우에 따라서는 싸울 수도 있겠죠. 쉽게 입을 열 인간은 아니니까요.”
“그래? 어서 말해 봐. 응?”
라세흠 부장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이렇게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을 보았나…….
아니, 이건 이렇게 설명할 게 아니구나.
다 잡은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마종석 이사는 지하실에 갇혀 백기준의 정신 고문을 견디고 있다.
주철수의 심복이었던 그는 중요한 정보를 끝까지 다물며 버텼다.
남은 건 그의 입을 열게 하는 것뿐.
이건 라세흠 부장의 흥미를 동하게 하지 못하는 거였다.
하지만, 새로운 물고기를 찾아 사냥하는 건 다른 얘기다.
누군가를 제압하고 정보를 알아 온다는 건, 낚시 포인트를 새로이 찾아 낚싯대를 던지는 거니까.
라세흠의 반짝이는 눈이 이해가 된다.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있냐?”
“카지노 하는 사업체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협회죠.”
“그래? 그래서?”
“거기 협회장이 주철수한테 뒷돈을 받았습니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확실한 상황이죠.”
그렇게 말하며, 난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협회장한테서 주철수한테 뒷돈을 받았다는 내용만 녹음해 오시면 됩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그러네. 너무 간단하네. 하기 싫을 정도로…….”
라세흠 부장에겐 쉬워도 너무 쉬운 일이었다.
협회장 정도야 라세흠의 무력을 체감하면, 바로 입을 열테니 말이다.
그걸 뻔히 알기에, 라세흠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간단하긴 한데, 쉽진 않을 겁니다.”
“쉽진 않아? 오호. 왜?”
원래 쉬운 난이도에 즐거워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이 사람은 난이도가 높다고 하니, 오히려 더 즐거워하고 있다.
“협회장은 별거 아니지만, 아래에 있는 놈들은 전통 건달들이거든요.”
“오! 전통 건달! 막, 시라소니 같은 그런 사람들이야?”
“시라소니처럼 대단한 인물은 아니겠지만……. 평생을 주먹만 쓴 사람들이라, 덩치만 믿고 까부는 그런 놈들하고는 다를 겁니다.”
“와우!”
이 타이밍에 감탄사를 뱉는 사람은 라세흠 부장밖에 없을 거다.
카지노는 예전부터 건달들의 텃밭이었다.
외국인을 상대하고, 매출이 높고, 영업이익도 준수한 사업이라 돈 좀 있는 건달들이 건드리는 사업이다.
그래서, 주철수도 운영하고 있는 거고.
카지노 협회장 아래에서 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전통 건달 출신이었다.
똘똘하고 말 잘 듣는 사람 하나 협회장으로 올려놓고, 전통 건달들은 이사나, 상무의 직책을 가지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갔다.
그것도 수천만원씩.
이런 병폐는 나중에 정식으로 카지노 협회가 오픈하면서 물갈이되지만, 지금은 원로 조폭들의 소굴이다.
‘내가 직원들 데리고 처리하려고 했는데…….’
라세흠 부장이 온몸을 배배 꼬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뭐라도 시켜두지 않으면, 사고를 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세흠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평생 주먹만 쓴 건달들이라……. 너무 좋은데? 지금 가면 딱이겠다. 내가 오른팔을 못 쓰잖냐? 저놈들한테는 줄 수 있는 핸디캡으로는 최고지. 안 그래?”
“핸디캡을……. 안 줘도 되지 않을까요?”
“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한 팔 정도는 못 써줘야 흥이 나지.”
이 사람 흥을 맞춰 주다가는 전국의 조폭들이 남아나지 않겠다.
뭐, 그러려고 고용한 거긴 하지만.
휙.
라세흠 부장이 잽싸게 녹음기를 뺏어갔다.
“다녀올게.”
“부장님. 걔네들이 어딨는지 알고…….”
“지도 찾아보면 나오겠지. 간다. 나중에 보자.”
휭 하고 문으로 향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찰나.
“어? 부장님…….”
난쟁이가 들어오며 라세흠과 마주쳤지만, 그는 갈 길이 바쁜지 대충 눈인사만 하고 뛰쳐나갔다.
‘알아서 하겠지.’
라세흠 부장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누구든 제압해 버릴 무력과 확실한 전술, 전략을 가진 인간이니,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거다.
그사이에 부상자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부장님은 어델 저리 급하게 가십니꺼?”
“일하러.”
“무슨 일이길래……?”
“혼자 급한 일이 있어. 그건 그렇고, 알아본 건 어떻게 됐냐?”
“노트북에 정리해 왔슴니더. 이거 보시지예.”
자리에 앉은 난쟁이가 노트북을 열고는 주식 현황과 각종 그래프를 띄웠다.
‘SS건설.’
우리의 타겟이 될 건설사다.
한때는 재계 5, 6위를 차지하던 SS그룹이 IMF의 여파를 이겨 내지 못하고 해체되면서 시장에 나온 SS건설.
1998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되어 주식 감자와 출자전환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게 되고, 결국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SS건설의 썩은 부위를 도려낸다.
이후, 2004년 말에 워크아웃을 졸업하지만…….
‘나중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방만한 경영이 이어지며, 또다시 워크아웃이란 시련을 맞이하는 기업이다.
“행님. 진짜로 SS건설을 인수하실라고예?”
“응.”
“아따. 이 회사가 워크아웃은 졸업했어도 별로 좋은 기업이란 생각은 안 드는데예. 꼭 이 회사로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슴니꺼?”
마음에 안 드는지, 목덜미를 긁적거리며 묻는 난쟁이의 질문에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기술이 있잖아.”
SS건설의 기술력은 자타공인 알아주는 수준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 방식과 기하학적인 건축물을 건설한 기업이 SS건설이다.
그런데, 왜 다시 워크아웃을 당하냐고?
원인은 국가 기관이 최대 주주라는 것과 그에 따른 안일한 경영에 있었다.
최대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현재 SS건설을 매각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그런데, 사가는 기업이 없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기업을 정상화시켜 놨으니, 어느 정도 프리미엄을 받고 팔고 싶어 했고, SS건설에 관심이 있는 기업은 프리미엄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가 거의 10년간 지속되면서, 기업은 주인 없이 직원들이 고군분투하는 회사가 되어 버린다.
주인이 없는데, 회사가 잘 돌아갈 리가 있나?
10년이란 기간 동안 해먹을 놈들이 다 해먹고 나가고, 빚은 쌓일 대로 쌓이다가, 결국엔 자본잠식에 빠져 상장 폐지까지 되는 회사가 SS건설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인수하려고 하는 거지.’
기술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일례를 들자면, 2년 후에 수주하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건설하는 기업이 SS건설이다.
호텔 하나 건설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호텔 위에 배 모양의 하늘 공원이 올라가는 기하학적인 그 건물은 보통 기술로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건물 최대 기울기 52도, 하늘 공원의 무게는 무려 6만 톤.
현대판 피사의 사탑이라 불릴 만한 호텔을 SS건설이 만들어낸다.
그것도 포스트텐션 공법이란 최초의 공법을 도입해서 말이다.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회사야. 3차원 입체설계 능력도 가지고 있고, 특허도 수십 개는 들고 있는 알짜배기 회사지. 그런 건설사를 가만히 놔둘 수 있겠냐?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덥석 잡아가야지.”
“음……. 덥석 잡아갈 수 있으면 좋을 거 같긴 한데예……. 그기 좀 힘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더.”
“응? 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론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지분만 사들이면 된다.
난쟁이가 보여준 주식 현황표를 보니,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38.75%.
주식 수는 566만 주.
이걸 2만 원대에 사면, 1,132억이란 계산이 나온다.
부해양조의 주가가 계속 치솟고 있는 상황이라, 이 정도 자금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난쟁이는 인상을 쓰는 거지?
“우리사주조합이 문제라예.”
“어? 우리사주조합이라면……. 종업원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말하는 거야?”
“예. 그거예.”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
“SS건설이 지분 구조가 조금 복잡하더라고예. 우리사주조합하고 우선매수청구권하고 몇 개 합치믄 주식의 절반 이상을 확보할 수가 있슴니더. 한마디로 종업원 지주회사가 되는 거지예.”
“……?!”
이런, 꼬였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현실에는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방치로 SS건설이 몰락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종업원의 지분 갈등.
SS건설이 다시 워크아웃의 길을 걷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거 파고들면 들수록 복잡합니더. 대표이사는 분식회계로 잡혀 들어갔지예. 임원들은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 갑질하지예. 여기에 외국인들까지 조금이라도 더 묵고 나가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으예.”
난쟁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행님. 이 회사는 접읍시더. 머리 아픈 거보다 그게 더 나아예.”
“…….”
그러기엔, SS건설이 너무 아까운데.
기술력이라는 건,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거다.
건설에 관해서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 주는 SS건설의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이대로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SS건설을 제대로만 활용하면, 아파트 브랜드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데…….’
경영 능력이 개판이라 그렇지, 실력만큼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SS건설을 인수하면, 재건축 아파트 뿐만 아니라, 해외 호텔 수주와 플랜트 수주, 여기에 토목 공사까지 따낼 수 있다.
이대로 버릴 수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매물로 나와 있는데,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
“……?!”
그때, 난쟁이가 보여 준 지분 그래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기타 소액 주주가 30.88프로를 들고 있네?”
“이건 그냥 시장에 풀린 주식이지예. 행님도 잘 아시잖슴니꺼?”
“잘 알지.”
주식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30.88%.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38.75%
여기서 덧셈, 뺄셈을 하면 된다.
50.1%의 지분을 가지면, 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주식 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는 SS건설 주식 중에 11.35%만 가져오면…….
‘SS건설은 내 것이 된다.’
이번엔 시장의 단순한 논리를 이용해보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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