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4
053화
“와우!”
이야. 입에 단내 나도록 애널리스트 박찬구 실장을 꼬신 노력이 빛을 발한다.
“행님. 이거 뭡니꺼? 주가가 이렇게도 움직여예?”
“가끔씩. 저평가된 가치주가 제대로 평가를 받으면 이렇게 움직이지.”
“이거는 뭐, 거래가 없네예. 그냥 수직 상승이라예. 와……. 그냥 상한가에 꽂아 뿌네.”
흔히들 말하는 점상.
상한가에 안착해서 아무런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주식 호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점상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점이 하나 콕 찍힌 것처럼 상한가에 딱 달라붙어 있어서.
[11,500원. 15% 상승.]딱 10,000원 하던 부해양조 주가는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에 힘입어 15% 상승이란 기염을 토했고, 다음 날도 13,200원을 찍으며 상한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박찬구…….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네.’
개인 투자자가 한 기업을 상한가에 안착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미래처럼 동학개미운동이 벌어져서 천억이 넘는 자금을 몰빵시키지 않는 한 이런 그래프가 개인 투자자의 투자만으로 나올 수는 없으니까.
의아한 마음에 세세하게 뜯어 보니, 증권사도 이번 매수세에 동참했다는 걸 발견했다.
‘박찬구의 발언이 증권사 펀드매니저까지 움직인 거지.’
안 그래도 부해양조를 좋게 보고 있던 박찬구 실장이 아닌가?
그가 대놓고 부해양조는 프리미엄 소주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갈 거라고 말했으니, 증권사도 묵직하게 움직인 거지.
외국인, 개인 투자자, 증권사 모두, 한 푼이라도 벌어들이려고 들어오는 게 주식 시장이다.
이곳에서 입 하나로 먹고 사는 게 박찬구 실장이고.
그의 말은 증권사를 움직일 만큼 강했고, 힘이 실려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은 한 일주일은 상한가 치겠는데예?”
“올라가야지. 최소 두 배는 더 뛰어야 하지 않겠냐?”
“두 배믄……. 20,000원 보십니꺼?”
“25,000원 정도? 시장에 이슈가 커지고 증권사와 개인이 눈독들이고 있으니까 25,000원 정도는 봐도 될 거 같다.”
난쟁이의 물음에 답하고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가진 2,000만주. 거기에 25,000원을 곱하면…….
5,000억!
‘오호!’
내가 가진 부해양조의 주식 평가 금액이 5,000억이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주식 담보 대출로 2,500억을 빌릴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주식 담보 대출은 50%까지 가능하니까.
“크크크큭.”
“행님. 와 그랍니까? 갑자기 왜 실없는 사람처럼 웃으예?”
“좋아서 그러지 임마.”
주식 담보 대출은 말 그대로 주식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는 거다.
그럼, 생각해 보자.
2,500억의 대출을 받으려면, 1,000만 주를 담보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주가가 계속 올라서 부해양조 주가가 25,000원이 아니라, 50,000원이 된다면?
내 주식 평가액이 1조로 오른다는 거다.
이런 희망이 실현되면, 2,500억을 갚는 게 심플해진다.
‘딱, 500만 주만 팔면 돼.’
1,500만 주는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500만 주만 팔아 버리면 증권사에서 빌린 2,500억에 대한 상환이 가능하다는 거다.
내 주식은 최대한 지키면서 최저의 비율로 상환하는 것.
이 얼마나 노다지인가?
“난쟁아. 너 할 일 많은 거 알지?”
“예? 또 어떤거예?”
“판을 이렇게 벌여 놨는데, 수습해야하지 않겠냐? 프리미엄 소주 생산하는 거하고 모델 기용에 백화점 런칭까지. 네가 전부 진두지휘해라.”
“하……. 행님.”
응? 이놈 보게?
왜 이렇게 한숨을 길게 쉬어?
“지금 SS건설 지분 매입한다고 정신없으예. 바빠 뒤지긋는데, 프리미엄 소주 프로젝트까지 제가 해야 한다고예?”
아……. 그렇구나.
네가 지금 많이 바쁘긴 하지.
덥석.
난쟁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내 말고 다른 사람시키면 안 됩니꺼? 와따마……. ‘원소주’까지는 진짜 힘들어서 못 하겠으예.”
“……난쟁아.”
“예. 행님.”
“네가 봐라. 너 대신 누가 하면 좋을지.”
“예?”
난 반문하는 난쟁이를 보며 뒤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근육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오늘도 헬스장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운동 중독이 더 심해지는 거 같다.
덤벨의 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고, 턱걸이하는 직원의 타이어가 하나씩 추가되고 있다.
심지어 몇 명은 보이지도 않는다.
듣기로는 42.195km를 누가 더 빨리 뛰는지 내기하러 갔다고 한다.
지가 이봉주야, 뭐야? 마라톤 거리를 걷는 것도 힘든데, 왜 내기까지 해?
‘가만 보면 운동하려고 출근하는 거 같아.’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이놈들의 머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전문적인 경제 용어나 숫자 계산은 힘들어하는 친구들이다.
난쟁이만큼 수에 밝은 머리는 한 명도 없다는 거지.
“저기 똥식이 하고 사발도 있잖습니꺼?”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동식이파 두목에서 이제는 SA시큐리티 사무실 청소 전문이 된 똥식이한테 시키겠니?
그렇다고 사발한테 시키겠니?
“너처럼 머리 돌아가는 놈은 사발밖에 없어. 근데, 저놈 출신이 뭐냐?”
“그……. 사기꾼예.”
“그러니까. 평생을 사기친 놈한테 이런 일을 맡길 수 있겠냐? 이젠 우리 식구가 됐다지만, 저놈은 백 프로 믿으면 안 돼. 언제 뒤통수치고 나를지 모를 놈이야.”
“그라몬, 그때 우리가 잡아가 족치면 된다입니까?”
“나중에 잡아 족치는 건 문제 없지. 근데, 프로젝트 자체가 어그러지잖아. 우리가 하는 일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변수가 있어서도 안 되고. 우리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주철수 그 하이에나 같은 새끼가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테니까.”
“…….”
난쟁이도 반박할 말이 없는지, 시무룩해졌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거든.
‘그래도……. 한 명 고용하긴 해야겠네.’
빠릿빠릿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놈으로 한 명 데리고 와야겠다.
머리 쓰는 일은 너무 난쟁이한테 집중되어 있으니, 난쟁이한테 과부하가 오기 전에 서둘러서 데리고 와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아!”
순간, 번뜩하고 스쳐가는 인물이 있다.
‘우재성. 그 인간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주철수 밑에서 자금을 담당했던 놈 중의 하나인데,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놈이었다.
DG그룹에 있을 때, 지위는 이사.
우 이사라고 불렸던 그놈은 주철수를 재계 3위의 거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인물이자, MBA 출신의 수재였다.
회계장부도 적당히 얼버무려서 검찰의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하게 했던 놈.
‘지금이 2005년 말이니까……. 우재성은 미국에 있을 수도 있겠네.’
우재성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터지고 한국으로 넘어와 주철수의 밑에 들어간다.
그때가 우재성이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니까, 지금쯤 미국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MBA 학위가 거짓은 아니었으니, 학위 딴다고 고생하고 있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데리고 와야 하는 놈이야. 미래에 주철수 밑에서 일하는 인재를 빼 오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우재성이 얼마나 숫자를 잘 다루는지, 금감원과 검찰 금융수사부도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게 빙빙 돌려놨던 놈이다.
회계장부를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 관리했던 인간이자, 장부를 남기면 증거가 되기에 전부 머리로 기억했던 천재다.
‘나중에 주철수에게 플러스가 될 놈.’
반대로 말하면, 나에게는 마이너스가 될 인간이다.
내가 미리 빼 와서 내 밑에 일하게 만들면,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바뀐다는 거지.
턱.
난 난쟁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형이 좋은 놈 하나 데리고 올게.”
“진짜지예? 그라몬……. 이번 ‘원소주’ 프로젝트하고 ‘SS건설’ 인수하는 거까지는 제가 우찌 해 볼께예. 좀 서둘러 주이소.”
“알았어. 인마.”
팔자에도 없는 미국행이 예약되어 버렸네.
뭐,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휴향 차 미국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음……. 그런데, 뭔가 하나 빠진 기분이 드는데.
이건 기분만이 아니다.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커다란 존재가 빠져 있는…….
“아! 맞다.”
“예? 와예? 행님.”
“라세흠 부장님은 왜 안 오시냐?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아……. 라 부장님예.”
난쟁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전화해 봤는데예. 바쁘다고 끊으라고 하데예. 조만간 좋은 거 들고 갈 끼라면서예.”
“뭐? 좋은 거?”
무슨 좋은 거?
내가 시킨 일은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 협회장이 주철수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것만 녹취해 오면 된다는 거였는데?
이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이 인간…….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 거야?’
녹취록 하나 따라고 보냈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
“아이고. 불철주야 도망다니신다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제 고용주님이 볼 일이 있다고 해서요. 같이 가 주셔야겠어요.”
카지노 기기가 널려있는 넓은 창고 구석.
그곳에 카지노 협회장이 숨어 있었고, 라세흠 부장이 숨바꼭질한 아이라도 찾은 듯 환하게 인사하고 있었다.
“거참. 가서 대화만 좀 나누면 된다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키는 겁니까?”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하는 라세흠의 얼굴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물론, 자기 피는 아니다.
협회장을 지키려는 조폭들이 라세흠을 막아서는 실수를 저질렀기에 나온 부산물이었지.
“미, 미친 괴물 새끼.”
“아…….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항상 듣는 말이라, 감흥도 없는 라세흠은 벌벌 떨고 있는 라세흠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하고 같이 갈래요? 아니면, 기절해서 업혀 갈래요?”
“…….”
씨익 웃으며 말하는 라세흠의 표정은 공포 그 자체다.
라세흠은 이미 이주혁이 말한 지시 사항을 잊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뇌물을 받았다고 자백하게 만드는 건 너무 쉽고 고루하지 않나?
그것보다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를 쓸어 버리고 협회장을 둘러업고 사무실로 가서 이주혁한테 던져 주는 게 편하지.
보통 사람과 뇌 구조가 다른 라세흠이기에, 백여명의 원로 조폭들을 때려눕히고 안양의 한 카지노 기계 공장까지 찾아와 협회장을 협박하고 있다.
이주혁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기겁했겠지만, 안 보일 때 무슨 짓이든 못하겠어?
“손을 안 내미시네. 음……. 어쩔 수 없나? 역시, 처맞아야…….”
다리를 치켜올리며 턱에 뒷꿈치를 박아넣으려는 그 순간.
드르륵!
“협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협회장님!”
우르르 몰려온 카지노 협회 소속 조폭들의 외침이 들렸고, 움찔하고 있던 협회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넌 개X됐어. 이 미친 괴물 새끼야.”
“크크크크.”
야차처럼 웃은 라세흠이 창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몇 명이든 상관없다.
라세흠 부장의 아드레날린이 샘솟아 오르고 있으니까.
라세흠이 손가락을 우드득 풀며 미소를 지었다.
“어이, 협회장 아저씨. 개X된 건 당신이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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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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