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5
054화
라세흠은 신나는 순간이 있다.
몸을 아리게 만들 정도 긴장된 시간이 연속으로 펼쳐질 때 그러했다.
휙. 휙.
조폭 놈이 힘차게 휘두르는 도끼를 피하고, 옆으로 찔러오는 칼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냈다.
동시에 앞에서 달려드는 덩치 큰 조폭의 태클을 밀치며 공간을 찾아 움직였다.
‘아……. 행복해.’
일반인과는 개념 자체가 다른 사람이 라세흠이다.
언제라도 목숨이 끊어질 수 있는 이 상황을 즐기며 스텝을 밟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너희 애들은 이게 다야? 어디 보자.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엥? 스무 명도 안 되네.”
“이 미친놈이. 이 상황에서 여유가 나와?”
“너무 여유로워. 아니. 한가로울 정도야.”
라세흠은 싱겁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문적으로 전투 교육도 받지 않은 조폭 18명.
고작해 봐야 연장이나 휘두를 줄 아는 놈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라세흠이 일부러 창고 중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너희들도 중고등학교 때, 학교 짱먹고 나오고 그랬겠지? 그러다가 선배 손에 이끌려 밤 세계에 들어갔을 테고. 배운 건 싸움질하는 거밖에 없으니, 조폭 형님이란 놈들 밑에서 공갈하고갈취나 하면서 연명해 왔을 거야.”
라세흠이 18명의 조폭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에 섰다.
원래라면, 전술적으로 이런 싸움 방식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거다.
좁은 곳에서 한 명씩 처리하는 각개격파야말로 다수 대 한 명의 싸움에서 기본이었다.
하지만, 고작 18명의 조폭 덩어리들이라는 것 때문에 라세흠은 흥미가 떨어졌다.
각개격파로 때려 눕히는 건, 쉬워도 너무 쉽다.
난이도를 올려야 자기가 원하는 긴장감이 솜털처럼 솟아오를 거 같았다.
“난 너희하고 살아온 방식 자체가 달라. 특수부대에서 매 순간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치르며, 실전 훈련을 했거든. 너희가 배때기에 살만 뒤룩뒤룩 찌우는 순간에, 난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쳐들어오는 북한 괴뢰군과 목숨이 오가는 전투를 치렀다.”
북한군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일은 빈번했다.
다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럴 때마다 북한 괴뢰군을 막은 게 라세흠 교관과 그 휘하의 공작원들이었다.
라세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주위를 돌아봤다.
“자. 시작하자.”
그 말을 시작으로 카지노 기계 제조 공장 안에는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
털썩!
라세흠 부장이 데려온 인물.
새치로 옆머리가 하얀 50대 중반의 남자가 사무실 쇼파에 내동댕이 쳐졌다.
“부장님……. 이 사람이 카지노 협회장입니까?”
“응.”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는 라세흠이 거울을 보러간다.
이내 얼굴과 몸에 묻은 피를 보며, 화를 냈다.
“에이. 피는 잘 안 지워지는데……. 옷도 버려야겠다. 젠장. 이거 새건데.”
흥건하게 피가 묻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조지고 다녔다는 겁니까?
“부장님. 협회장한테 주철수가 뇌물 준 거 녹취만 받아 오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뭘 한 겁니까?”
“아……. 그랬나? 저 협회장 새끼가 하도 도망 다녀서 깜빡했다. 요리조리 쥐새끼처럼 도망가는데, 그냥 잡을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좀 헤집고 다녔어.”
좀 헤집었다는 저 말이 무섭다.
안 봐도 눈에 보인다.
카지노 협회를 얼마나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을지가.
“녹취는 네가 따라. 데리고 왔으니까 네가 하는 게 더 편하잖아.”
“……그러죠.”
협회장의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데리고 왔으니 내가 물어보면 되긴 하지.
입을 안 열 거 같으면, 지하에 고문실로 보내 버리면 그만이고.
거기 마종석 이사가 숙식 중이거든.
마 이사 안 심심하게 협회장도 같이 넣어 주면 되지.
짝. 짝.
난 기절해있는 협회장의 뺨을 쳤다.
경로 우대 사상 따위는 저 멀리 보내 버렸다.
평생을 더러운 일과 못된 일로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갈취하던 인간이다.
나이 많다고 대접해 줄 이유가 없는 거지.
“으……. 여긴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지옥이지.”
너한테만큼은.
난 간이 의자 하나를 가져와 그의 앞에 앉았다.
“이제부터 내가 뭘 좀 물어볼 건데,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뭐? 너 뭐야? 뭐 하는 새끼야? 도대체 뭐 하는 새낀데, 나를 납치해서…….”
짝!
거참, 말 많네.
이럴 때는 매가 약이다.
“으…….”
부어오르는 볼을 잡고 협회장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만큼 아프겠지.
내가 싸대기 하나는 잘 때리거든.
“떠들지 말고 묻는 말에만 답해.”
“…….”
“알아들었냐?”
“아……. 알겠다.”
이놈들의 특징인 건지, 한국인의 종특인 건지.
맞아야 말을 듣는다.
“강주환 카지노 협회장. 맞나?”
“……그렇다. 내가 강주환이다.”
“내가 빙빙 돌려서 물어보는 재주가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주철수한테 얼마 받았냐?”
“누구……?”
“주철수 사장. 알잖아. 모른 척하지 마. 그러다가 진짜 아구창 돌아가서 평생 턱받이하고 살 수도 있으니까.”
협회장이 눈을 힐끗 피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주철수 얘기가 나오면 한 번에 실토하는 법이 없다.
주철수의 잔악함 때문이겠지만, 강주환 협회장이 그걸 걱정할 급은 아니다.
“당신이 주철수를 무서워할 이유가 있나? 내가 보기엔 없는 거 같은데.”
“…….”
“아무리 주철수가 개망나니에 서울을 휩쓸고 다니는 놈이라고 해도 선배에 대한 예우는 하는 놈이잖아. 아니야?”
“크음…….”
강주환 협회장은 옛날부터 건달이었던 사람이다.
주철수가 이 바닥에서 활개 치기 전부터 조직 생활을 해 왔던 사람.
의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직 폭력배 세계지만, 그래도 까마득히 높은 선배들을 건드릴 만큼 주철수가 앞뒤가 없는 놈은 아니다.
그리고 뭣보다 강주환 같은 대선배를 잘못 건드리면, 후폭풍이 엄청나다.
‘원로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김두환 같은 감성 주먹, 이후로 이정재 같은 정치 깡패.
그 아래로 김태촌이나 양은이파처럼 피가 난무하던 시대를 거친 이후, 지금의 시대가 열렸다.
여기서 말하는 원로들은 OB파, 양은이파, 범서방파의 주축 멤버였던 조폭들을 말한다.
그들이 가진 인프라와 세력 그리고 자금은 주철수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주철수라고해도 대선배인 강주환 카지노 협회장에게 위협을 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난 뒤를 돌아보며, 바닥을 닦고 있는 지동식한테 말했다.
“똥식아. 카메라 좀 가져와라.”
“……예. 그럽죠.”
말이 아주 띠껍네.
동식이파의 두목에서 SA시큐리티 청소부로 전락해서 그런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에 가득차 있다.
조만간 푸닥거리 한번 해야겠다.
살결을 연하게 만들어줘야 군소리없이 청소에 집중하지.
“어디 세팅할까요?”
“강주환 협회장 앞에 인터뷰하는 것처럼 세팅해 봐.”
“알았어요.”
카메라를 들이대고 녹화 버튼을 누르자, 강주환 협회장이 급하게 고개를 틀었다.
“뭐 하는 거야? 이거 찍어서 뭐 하게?”
“뭐 하긴? 언론에 뿌려야지.”
“어? 너……. 정신 나갔어? 내 얼굴을 언론에 까겠다는 말이야?”
“그럼, 까야지. 그래야 신빙성이 있잖아. 안 그래?”
패러다이스 호텔 카지노 입찰 비리 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은 셋이다.
하나는 앞서 내가 먼저 만났던 도시계획과의 문천식 과장.
이놈이 실토한 건 이미 내가 녹취록으로 가지고 있기에, 언제든 협박 카드로 써먹을 수 있다.
다른 놈은 패러다이스 호텔 관계자.
관계자가 워낙 많기에 정확히 누군지 파악이 안 된 상태다.
누가 주철수한테 뒷돈을 받았는지, 알아낼 수가 없다.
한 놈 일수도 있고 여러 놈일 수도 있다.
그러니, 패러다이스 호텔 관계자는 아예 빼 버렸다.
난 패러다이스 호텔에 입점하는 카지노를 아예 무산시킬 생각이다.
그 방법으로 언론에 이번 입찰 건에 관련된 비리를 공론화시켜 대중의 질타를 받게 만들려고 한다.
공직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국민들의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다.
이건 어떤 식으로도 가라앉지 않거든.
아예 무산시키지 않는 한.
‘문천식 과장의 녹취록은 터트리면 안 돼.’
공론화하는 방법 중에 강남구청 도시계획과 문천식 과장의 녹취록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써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게다가 문천식은 이용 가치가 충분하니까.’
도시계획과는 많은 걸 담당한다.
그중에는 이번에 삼성동 아파트 재개발 건도 있고.
여기에 내가 SS건설을 인수해서 참여할 계획이다.
그때까지는 문천식 과장이 도시계획과 과장으로 잘 앉아 있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양손으로 애써 얼굴을 막고 있는 강주환의 손을 치워 버렸다.
“좋은 말로 할 때 인터뷰에 응해 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피 묻은 옷을 벗어 던지고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라세흠 부장한테 눈빛을 줬다.
그러자, 그가 씨익 웃고는 천천히 다가와 내 뒤에 섰다.
라세흠은 공포이자, 위협이다.
별다른 말 없이 그가 내 뒤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협박이 된다.
“내 뒤에 이 분하고 찐하게 대화를 나눠야할 테니까.”
“너…….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너 이 새끼.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나 이러는 거야?”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원로 조폭들이 있겠지.
근데, 그게 뭐?
난 너희들과 사는 세계가 다르다.
너희들은 음지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난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거든.
주철수 같은 조폭 놈이야 두려워할지 몰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나야 네 뒤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잖아.”
라세흠이라는 괴물이 뒤에 있지.
체력단련실에는 라세흠 부장이 키워 낸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고.
강주환이 라세흠 부장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더니, 땀을 삐질 흘린다.
그럴 수밖에.
단신으로 카지노협회를 초토화시킨 인간인데, 두려워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자. 깔끔하게 인터뷰 하나만 따고 끝내자. 알겠지?”
“…….”
“대답.”
“아, 알겠다.”
.
.
“많이도 받아먹었네.”
인터뷰의 내용은 가관이었다.
주철수가 카지노를 운영할 수 있게끔 허가해주고 도와주는 조건으로 매달 수십억씩 상납받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카지노협회 후원금 명목으로 따로 뒷주머니를 찼고, 원로 조폭들 용돈하라고 몇억씩 챙겨 줬단다.
‘주철수 그 인간. 뒷돈 하나는 끝내주게 찔러 주네.’
확실히 보통 난 놈은 아니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적재적소에 뒷돈을 넣어 주며 제 살림을 키울 방법을 고안해내는 놈이다.
하긴, 그러니 한낱 조폭이 재계 3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겠지.
“제주도에도 카지노를 열 계획이었다고?”
“그건……. 내년에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막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주철수는 강남 패러다이스 호텔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도 호텔과 카지노를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놈의 앞길을 가로막으니 계속 다른 길을 찾고 있어.’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맘때쯤 주철수는 서울을 제패했어야 한다.
고기 방패를 앞세워 서울 전역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전국으로 세력을 확산할 시기였다.
그걸 내가 계속해서 방해하니, 다른 방도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든 사업체를 늘려서 세력을 확충할 방법을.
‘그렇게 노력해 봐라. 뭘 해도 안 되게 만들어 주마.’
네가 뭘 하든 넌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녹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강주환 협회장을 바라봤다.
“인터뷰 고맙다.”
“그걸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뭘 어떻게 해? 언론에 고발해야지.”
“너……. 진짜 미친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거 같아? 카지노 협회는 와해될 거고, 카지노 산업에 전반적인 조사가 들어갈 거야. 그게 끝일 거 같아? 관련된 모든 인물이 소환될거고 검찰의 조사를 받을 거다. 내 인터뷰 하나로 카지노 산업 전체가 흔들릴 거라는 말이다. 그 파장이 엄청날 거야. 이거……. 감당할 수 있겠냐?”
“훗!”
실소가 나온다.
“야. 이걸 내가 왜 감당해? 잘못한 놈들이 감당하겠지.”
잘못한 놈이 벌은 받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사회 정의를 위해 고발하는 나는 상장을 받아야지.
그게 도리고 이치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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