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5
064화
내 말에 깡패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배신한 류수혁의 이름을 입에 담은 것만으로도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칼이라도 꺼내려는지 품 안을 뒤적거렸다.
나는 일단 손을 뻗어 깡패들을 진정시켰다.
“저는 정 사장님을 도와주러 온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믿겠어? 그리고 내 사고도 네가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확실히 독사 같은 놈이라 그런지 의심이 많았다.
“저는 류수혁의 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비열한 놈 밑에 더는 있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정 사장님을 찾아왔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나.”
금방이라도 내 배를 쑤실 듯한 눈빛에 나는 라세흠 부장이 문자로 보낸 정보를 풀었다.
“충청흥신소.”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정무배가 흠칫했다.
자신이 비밀리에 움직이던 조직의 이름을 외부인이 알고 있으니 충분히 당황할 만하지.
“제가 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겠습니까. 충청식구파가 아니라 류수혁 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무배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줬다.
“맞습니다. 류수혁은 충청식구파를 배신한 후에도, 충청흥신소에서 정보를 빼내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류수혁. 이런 개X끼가…….”
정무배는 아직 나에 대한 의심을 확실하게 거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류수혁에 대한 의심은 거의 확신에 가깝게 가지게 됐을 거다.
뒤에서 그런 수를 쓸 정도로 음흉한 놈인 걸 알고 있으니까.
나에 대한 정무배의 말투가 바뀌었다.
“날 왜 도와주는 거요?”
“류수혁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나는 분개한 얼굴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몇 년 전, 저는 제 친구와 함께 류수혁의 밑에 들어갔습니다. 운이 좋아 서울에서 가장 크다는 강남파에 들어갈 수 있었죠. 류수혁은 주철수 회장한테 잘 보이기 위해 돈이고 사람이고 이것저것 다 갖다 바쳤습니다.”
정무배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열한 놈이라면 그렇겠지.”
“그러다 결국 정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충청흥신소의 정보까지 팔아넘긴 겁니다.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듯 말입니다. 그 정보들로 강남파는 충청도에서 이득을 취했습니다.”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이 감정을 잡았다.
그러자 금세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들었다.
이 정도면 남우주연상도 노려볼 만하지 않나?
“그러던 어느 날. 류수혁은 이권 확장을 위해 무리한 지시를 내렸고, 그 때문에 제 친구가 칼을 맞았습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죠.”
“음, 유감이오.”
흐르는 눈물을 슥 훔치며 혼이 담긴 구라를 이어 나갔다.
“전 꼭 제 친구를 죽게 만든 류수혁을 몰락시키고 싶습니다. 정 사장님이 도와주시면 류수혁을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힘을 빌려주십쇼.”
내 진심 어린 말에 정무배가 눈썹을 좁히며 고민에 빠졌다.
“이런 개쉐끼가!”
“이 늙은 뱀 새끼!”
“형님. 배신자 죽이러 갑시다! 야들아, 안 그려?”
“기여! 시방 조져 버리자니께!”
오히려 주변에서 내 얘기에 몰입하고 있던 깡패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씩씩댔다.
심지어 몇몇 놈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눈두덩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나는 이놈들의 격한 반응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스토리텔링 능력이 이 정도라고?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정 사장님, 부탁드립니다!”
내가 허리를 숙이자, 정무배가 코로 숨을 길게 뿜으며 부하들을 둘러봤다.
“얘들아. 배신자 놈을 처단할 시간이다.”
“우오오!”
“드디어 그 늙은 뱀을 잡는구만유!”
예상대로 정무배는 내 작전에 제 발로 들어왔다.
내가 파악한 정무배는, 부하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굉장히 신경 쓰는 놈이다.
지금처럼 부하들이 복수를 부르짖고 있을 때 실리를 따져 일을 미룰 놈이 아니란 뜻이지.
정무배. 너는 결국 내 판의 말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정무배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강남파에 소속된 류수혁을 우리가 치면 문제가 생길 텐데, 거기에 대한 대책은 있는 거요?”
“형님! 그럼 전쟁 아니겄소!”
“이참에 우리 충청식구파가 서울을 먹…….”
퍽!
정무배가 말을 꺼내던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야 이 새끼야. 그놈들이 최소 우리 두 배는 된다. 복수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될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한테 류수혁이 주철수 몰래 돈과 세력을 모은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놈의 머리를 들고 주철수 회장에게 간다면, 오히려 강남파에게 무언가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좋소.”
정무배가 험악한 상판의 깡패들을 돌아봤다.
“잘 치는 놈들로 모아라. 배신자를 처단하러 가자!”
“예!”
“알겄습니다!”
사람 하나 담근다는 말에 사기가 오른 깡패들이 병실을 우르르 나갔다.
확실히 수하들을 다룰 줄 아는 놈이다.
그걸 보던 정무배가 조용히 말했다.
“확실히 강남파와 문제는 없는 거요?”
“예.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놈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시오. 내가 직접 모가지를 따 버릴 테니.”
“제가 류수혁의 주요 동선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걸 알아내는 건 별거 아니니까, 애들을 시키면 되겠지.
정무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나면 보수는 넉넉히 챙겨 드리겠소.”
그럴 리가,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 하나 정도는 아무도 모르게 묻어 버릴 생각이겠지.
정무배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을 살려 둔 적이 없다.
“제 평생의 숙원을 이루어 주신다는데 어떻게 보수를 받겠습니까.”
“그럼 이 문제는 나중에 얘기합시다. 내 명함이오.”
병실을 나가려던 정무배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살짝 돌리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못 했군. 이름이 뭐요?”
“이주혁.”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줬다.
“이주혁입니다.”
“이주혁……. 기억하겠소.”
그래, 기억해야지.
네 마지막 기억 속 이름이 될 테니까.
그렇게, 정무배와 류수혁을 처리할 기본적인 판은 깔렸다.
***
그날 밤, 나는 모텔을 하나 잡고 침대에 누워 작전을 생각했다.
내 계획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정무배와 류수혁을 이간질한 뒤, 둘 다 처리해 버릴 거다.
애초에 둘의 관계는 서로에게 눈엣가시.
기회만 되면 서로 죽이기 위해 온갖 수를 쓰겠지.
나는 전화기를 들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최용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게 있는가.”
-야! 왜 이제 연락해?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문자로 주소 하나만 달랑……!
-이 쉐끼야! 니 뭔데 행님한테 반말이고!
-뭐, 뭐? 이 새…….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전화 너머로 덩치가 말하기 시작했다.
-행님! 몸은 좀 괜찮아예?
“멀쩡하다. 용달이랑 통화 좀 하게 넘겨 줘.”
-에이, 정 없이 와 이라십니까?
“너는 왜 그러는데? 며칠 뒤에 올라간다. 가서 얘기하자. 이제 용달이 바꿔라.”
-옙! 용달아, 받아라.
-X발.
-마, 행님 앞에서 자꾸 욕하지 마라.
-……여보세요.
나는 침대 위에서 낄낄대며 용건을 말했다.
“최 사장님. 많이 기다렸지? 미안. 내가 좀 바빠서.”
-그래. 다 좋은데, 저 덩치 큰 새끼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나?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데 자꾸 반말을 지껄여.
-니가 내 행님이가!
-이 새끼가 진짜…….
얘들아…… 말 좀 하자.
또 정신없어지기 전에 나는 둘의 말다툼을 끊었다.
“그건 서열 정리를 하든 뭐 알아서 하시고. 최 사장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부탁은 무슨. 그냥 내가 뭘 하면 되는지만 말해라.
“역시 말이 잘 통하네. 일이 잘 끝나면 돈은 다 돌려줄게. 최철호 약점이 담긴 녹음기도.”
-저, 정말이냐?
“그래.”
보상이 걸리자 최용달의 목소리에서 의욕이 느껴졌다.
-뭐든지 말만 해라.
“류수혁 번호, 저장해 놨지?”
-당연하지. 그 개X끼.
명함은 구겨서 버리더니, 그새 번호는 외웠다가 저장했나 보네.
“내가 보낸 주소 있지? 네가 류수혁을 그쪽으로 불러내면 돼. 시간은 오늘 자정.”
-음……. 내가 부른다고 올까. 뭔가 그놈을 끌어낼 만한 거 없어?
“그런 것도 없이 내가 시킬까. 문자로 보낼 테니까 그거 이용해서 불러내. 협박을 하든, 부탁을 하든 무조건 데려와야 된다. 혼자 오라는 말은 꼭 남기고.”
-혼자 오라 한다고 혼자 올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겠지. 그냥 함정이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말이니까.”
최용달이 기대하는 건지 긴장한 건지 모를 묘한 목소리로 물었다.
-……담그는 거냐?
“에이, 그게 무슨 무서운 소리.”
전화 너머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쫄지 마. 일만 성공하면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반드시 성공해야겠구만.
“그렇지. 어쨌든 류수혁을 폐공장으로 불러내기만 해. 너무 경계해서 수하들을 잔뜩 데리고 오지만 않으면 끝. 오케이?”
-오케이. 문자 확인하고 다시 연락하겠다. 그럼…….
-마! 비키 봐라! 행님! 왜 이런 작전에 저는 안 불러 주십니꺼?
덩치의 의욕적인 말에 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야.”
-예!
“네가 무전중학교 먹을 때, 뭘로 먹었냐?”
-예? 아, 이 두 주먹으로 먹었지예.
“내일 가는 데는 주먹 쓰는 놈 하나도 없다. 다 연장 하나씩 들고 있어. 칼 맞아 봤냐?”
-…….
나는 말이 없어진 덩치를 위로했다.
너무 자존감을 낮춰서 좋을 거 없으니까.
“덩치야. 나도 그냥 쌈박질이었으면 너 데려갔을 텐데, 연장은 아직 위험해. 네가 못 미더운 게 아니라.”
-그렇지예? 다음에는 꼭 지도 델꼬 가 주셔야 됩니더.
“그래. 끊는다. 잘해.”
-예!
-알았다.
뚝.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최용달은 돈과 녹음기를 돌려받고 다시 최철호 라인을 탈 생각에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 벗어날 수는 없을 거다.
이런 놈은 써먹기가 좋거든.
덜컥.
“어우……. 오늘 운동 맛있게 했네.”
러닝을 마치고 온 라세흠 부장이 근육을 꿈틀대며 들어왔다.
“야, 주혁아. 근데 너 돈도 많으면서 왜 굳이 이런 모텔에 온 거냐? 아까 너랑 둘이 들어오는데 카운터에서 묘한 눈으로 쳐다보더라.”
“정무배가 우릴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조금만 참아요. 부장님도 저랑 뜻을 같이하는 동료라고 설명했으니까 알아서 처신 잘하시고.”
기분이 거지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라세흠 부장이 씻으려는지 옷을 훌훌 벗으며 물었다.
“근데 정무배는 어떻게 설득한 거야? 네 말을 바로 믿었을 것 같진 않은데.”
“약을 잘 쳐 놨거든요.”
오늘 정무배의 신뢰를 사기 위해 미래 지식을 내가 분석한 척하며 조금 풀어 줬다.
-그러니까, 여기에만 투자하시면 돈을 쓸어 담으실 겁니다.
-오. 혹시 경제학과, 뭐 이런 데 나온 거요?
-다 통계를 바탕으로 도출해 낸 결과죠.
-이야……. 대단하구만. 이런 인재가 고작 류수혁 밑에 있던 게 말이 안 되는데.
증권 시장의 분석이나, 서울 세력의 구도를 정리해 설명해줬더니, 정무배가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정무배는 나를 얻으면 정말 서울 진출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류수혁을 잡고 난 이후를 미리 엿봤으니 안달이 날 겁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신중하게 판단한 겨를이 없을 거예요.”
“확실히 주혁이 네가 입이랑 머리는 잘 돌아간단 말이야.”
“칭찬이죠?”
“당연하지.”
라세흠 부장이 욕실로 들어가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내 역할은 없어? 계속 대기조냐?”
“있죠. 아주 큰 역할.”
“오, 뭔데?”
내 말에 라세흠 부장이 기대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우. 좀 옷을 좀 입고 오시지…….
나는 눈을 가린 채 씩 웃으며 라세흠의 작전을 말했다.
“제가 말한 데로 가서 다 때려눕히면 돼요.”
“흐흐. 좋았어.”
라세흠 부장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정말…….
이래서 내가 우리 교관님을 데리고 다닌다니까.
나는 닫힌 화장실 문을 보며 혼자 낄낄대며 침대에 다시 털썩 누웠다.
정무배와 류수혁.
마음에 들지 않던 두 놈을 치워 버린다는 기대감에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고.
전생부터 느낀 거지만, 나는 그런 군자가 되긴 글러 먹은 놈이다.
어차피 새로 얻은 삶. 이제 경찰 신분이라는, 날 법의 테두리 안에 붙잡아 두고 있던 족쇄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행보는 온종일 임무의 압박감에 시달렸던 전생과는 달라질 것이다.
내가 정한 나의 이번 생은.
……빌런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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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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