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4
063화
삑. 삑.
나는 병상에 누운 정무배를 내려다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죽일까?’
곁에 두고 평생 괴롭힐까 했는데, 이놈의 얼굴에서 자꾸 전생의 얼굴이 보였다.
내 마지막 순간에 짓던 미소.
그걸 떠올리니 자꾸 속에서 무언가 치밀었다.
하지만 주철수가 탐내던 걸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대체 뭘까?
어떤 것이길래 주철수가 적극적으로 차지하려 했을까?
“혀, 형님!”
“아이고, 형님!”
병실 바깥이 웅성대더니, 문이 열리며 덩치들이 밀려 들어왔다.
“괜찮은 거유?!”
“이게 무슨 일이여!”
어우, 시끄러워.
안 그래도 좁은 병실에 남정네들이 우르르 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그중 행동대장처럼 보이는 덩치 큰 놈이 날 보더니 대뜸 말했다.
“넌 뭐여, 이 새끼야?”
뭔데 초면에 욕을 지껄여?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저 아세요?”
“너 뭔디 형님 옆에 있냐고 이 쉐끼야.”
하, 말이 안 통하네.
손을 봐줄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 깡패들 뒤에서 들어온 의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설명했다.
“저……, 사고 후에 차 안에 있던 환자분을 이분이 구하셨습니다.”
“그, 그게 참말인겨?”
그 말을 들은 행동대장이 당황한 눈으로 이쪽을 보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은인을 몰라뵀구만유!”
이놈이 인사하자, 뒤에 서 있던 놈들이 다 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형님이 살았습니다!”
건장한 깡패들이 그렇게 말하니 병실이 시끌시끌해졌다.
머리가 아프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이놈들을 조용히 시켰다.
“감사는 됐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이니까요.”
“어이고. 서울 분이십니까?”
“예. 뭐, 그렇습니다.”
아쉽게 됐지만, 똘마니들이 온 이상 정무배에게 해코지할 수는 없었다.
일단 정무배가 깨어나면 그때…….
“으…….”
“형님!”
생각이 씨가 됐는지, 정무배가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새끼. 확실히 젊을 때라 그런가, 트럭에 치였는데도 금방 일어나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정무배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너, 너는……?”
***
라세흠은 한 건물 앞에서 마스크를 매만졌다.
‘여기가 정무배 사무실인가.’
주혁이가 시켜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정무배의 병문안으로 빈 사무실을 털어서 정보를 얻어 달라니.
차라리 깡패들로 꽉꽉 들어찬 사무실이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라세흠은 건물을 올라가 사무실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음? 잠겼잖아.”
생각보다 문단속을 잘하는 놈들이었다.
라세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철컥. 철컥. 우득!
뽑힌 문고리를 바닥에 던지고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사무실이 보였다.
“더럽게 넓네…….”
부대에서 정보 수집이나 첩보 쪽을 배우긴 했지만, 그것보단 전투 쪽이 체질이었다.
물건들이랑 서류 뒤적거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보상을 생각하니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대를 위하여.”
어깨를 돌린 라세흠이 사무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상 위부터 서랍 하나하나까지 싹 다 털었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었다.
담배나 군것질거리, 서류라 해봤자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뒤적거리다 나온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던 중, 저 멀리 칸막이로 분리된 자리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온다. 느낌이 와.”
라세흠은 그쪽으로 다가가 칸막이를 치웠다.
그러자 넓은 책상 위에 널린 서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옆의 책장에는 서류철 안에 가득 찬 종이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빙고.’
서류철을 꺼내자 [2006/1]이라고 적힌 표지가 보였다.
2006은 아마 연도일 거고, 그렇다면 그 뒤의 1은 1월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라세흠은 서류를 몇 장 꺼내 살폈다.
“뭐가 적혀 있으려나……. 대한일보?”
하나를 읽어 보니, 대한일보의 기자 하나가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를 불법적으로 취재했다는 증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라세흠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천안시 서북구 김석동 의원이 허준환 판사에게 5,000만 원 제공.] [아산 철두파가 유석명 검사 살해 후 사고로 위장.]연도별로, 날짜별로 이런 정보들이 정리된 서류.
다른 이들의 약점을 뭐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서류철들을 더 찾아보니 서울, 경주, 여수 등 전국을 걸쳐 수렴된 정보인 것 같았다.
‘깡패들이 어떻게 이런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애초에 이 정도 능력이면 깡패 때려치우고 정보 조직이나 하나 만들 것이지, 대체 왜…….
그때, 라세흠의 눈에 서류마다 공통된 점이 보였다.
‘써치 민간조사원?’
서류 맨 아래, 써치 민간조사원이라는 글씨와 함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라세흠은 머릿속에서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부름센터구만.’
어쩐지 깡패 주제에 이렇게 정리도 싹 해 놓고 사나 했더니, 협력 단체가 있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협력 관계인지, 정무배 산하 조직인지, 아니면 직접 만든 심부름센터인지는 몰라도…….
찰칵.
라세흠은 책장과 서류들의 사진을 찍었다.
전화해도 되지만, 지금 주혁이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에 일단 저장만 해 놓기로 했다.
이 정도면 주혁이도 만족할 거다.
라세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순대, 아니 주혁아, 기다려라.’
***
SA시큐리티의 건물 앞.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하, X발.”
SA시큐리티의 명함을 꽉 쥐고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는, 최철호의 수족이자 용달파의 수장 최용달이었다.
연락하라고 준 명함의 주소를 보고 찾아오긴 했는데…….
‘건물이 뭐 이렇게 좋아?’
최용달은 급하게 움직이느라 차림새도 영 민망한 상태.
이틀 연달아 당한 습격으로 조직원들도 많이 떠나 몇 명 남지 않았고, 돈도 다 털려서 아직 최철호의 별장에 사과 박스를 갖다 놓지도 못했다.
만약 최철호가 이 사실을 안다면 정말로 모가지가 날아가리라.
최용달은 일단 사과 박스라도 돌려받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웬 덩치 둘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뭔 몸이…….’
직전까지 운동하고 있었는지, 안 그래도 큰 몸의 근육이 성이 난 채 꿈틀대는 게 보였다.
그리 말을 걸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최용달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나도 2대 1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이고, 지랄. 나랑 붙어도 간당간당한 놈이.”
“간당간당은 무슨. 너 싸움 개 못하잖아.”
“이 새끼가……. 너 다시 따라와.”
“저기.”
최용달이 말을 걸자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다 멈췄다.
남자가 최용달을 보더니, 분위기만큼이나 험악한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누구시죠? 처음 보는 분인데.”
“그, 이주혁 사장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주혁이는 왜 만나시려고?”
순간 최용달은 움찔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처참하게 당한 뒤 어디론가 끌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혁 사장이 저한테 연락하라고 명함을 줬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최용달은 야생에서 살아온 것 같은 몸을 가진 남자들에게 최대한 웃으며 설명했다.
“어디서 온 누구신데요.”
“최용달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저희는 모르는데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최용달은 진땀을 흘렸다.
“그……, 용역 같은 일하는…….”
“아, 깡패시구나.”
“맞네, 깡패.”
최용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평소에는 자신이 깡패라는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번듯한 건물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용역이라니.
“그래서 어디 조직에서 오신 건데요?”
“용달파라고, 있습니다…….”
“강남파는 아니시네요. 강남파면 백기준이 보러 갔을 텐데.”
“그러게. 백기준이 그 새끼. 요새 맛 좀 보더니, 깡패들 좀만 더 넣어 달라고 하더라니까.”
“걔는 진짜 미친놈이야.”
최용달은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얘기를 하는 둘에게 살짝 짜증이 났다.
“그, 저번에도 교관님이 하나 잡아 왔었잖아. 용달판지 배달판지에서.”
“용달파 아냐? 잠깐, 용달파?”
둘의 시선이 가만히 서 있는 최용달에게 닿았다.
“혹시 용달파에서 나오셨어요?”
“예……. 그런데요.”
“아이고. 이거 상황이 난감하네. 빨리 주혁이 부르자.”
“주혁이 없잖아. 천안에 누구 잡으러 간다고.”
“엥? 언제 갔는데.”
“며칠 됐잖아. 넌 사장님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냐. 큭큭.”
최용달은 둘의 대화를 듣던 도중 귀를 의심했다.
“이, 이주혁 사장이 지금 자리를 비웠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셔야 할 것 같네요.”
“아니, 이게 무슨……. 그리고 아까 용달파 얘기는 뭡니까?”
그 물음에 덩치 두 사람이 시선을 피했다.
“아……. 맞다. 물통을 두고 나왔네.”
“엄마가 전화하라고 했는데 깜빡했다.”
둘은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최용달은 등 근육을 꿈틀대며 멀어지는 그들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X발……. 잡으면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리고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사라졌던 용태가 잡혀있는 것 같았다.
‘미친놈들. 사람을 납치해?’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놈의 본진에서 무언가를 할 순 없었다.
최용달은 명함을 꺼내 들고 거기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기다리자 그놈이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상훈입니다.
“장난은 집어치우고, 지금 자리 비웠다면서.”
-오우. 비대면으로 대화하니까 단어 선택이 좀 거치네? 자리 비웠지. 지방에 용건이 좀 있어서.
“야. X발 오라면서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어디 있냐?”
최용달의 짜증 섞인 말에 전화 너머의 이주혁이 코웃음을 쳤다.
-참나. 내가 연락하랬지 언제 찾아오랬냐?
“…….”
최용달은 이주혁의 말투에 열이 뻗쳤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놈의 말이 또 맞는 것 같아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맞지? 너도 방금 기억났지?
“……X발. 언제 돌아오는데.”
-이틀 정도만 기다려.
“부탁인데 돈은 돌려주면 안 되겠냐? 그래야 내가 최철호한테 붙어서 정보를 넘겨 줄 수가 있어.”
-정보? 정보라…….
이주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선심 썼다는 투로 말했다.
-오케이. 알았어. 그 정도는 해 줄게. 대신 내가 시키는 거 하나만 제대로 하면.
“알았다. 그게 뭔데?”
-거기 덩치한테 안내받아서 대기하고 있어. 나중에 연락할게.
“덩치가 누군데?”
-그렇게 말하면 알 거야. 바쁘니까 뿅.
“누구한테 물…….”
전화가 끊기고, 최용달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뿌드득.
“개X끼네 진짜…….”
***
전화를 끊은 나는 정무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덩치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깡패들이 좌우로 비켜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정무배가 재킷을 둘러 입으며 걸어왔다.
옷 안에 붕대가 감겨 있긴 했지만, 가오로 사는 깡패이니만큼 아픈 티를 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정무배를 보자 이 새끼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론이 섰다.
이놈은 숨 쉬는 공기마저도 아깝다.
살려놔 봐야 대한민국의 손해다.
웃으며 다가온 정무배가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고맙소.”
사극을 보고 잤나…….
이 새끼도 30대 주제에 말투가 늙은이 새끼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숨기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제가 거기 왜 있었는지 아십니까?”
내 표정에 정무배의 표정도 덩달아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당신 밑에 있던 류수혁.”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정무배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뭐? 당신 누구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한쪽 선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정무배의 지갑, 핸드폰 등 사고 현장에 떨어져 있던 것들이 놓여 있었다.
정무배는 선반으로 다가가 구겨진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너 누구야…….”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류수혁이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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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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